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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5: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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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
후지무라 신이치
고교 졸업 후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웠다. 1981년에 미야기현에서 무려 4만년 전 유물을 발견하여 일본 전역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무려 70만 년 전 유물을 파내는데 성공함으로서 일본 구석기 시대의 연대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일본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발굴은 결과적으로 모두 가짜였다. 후지무라는 미리 유물을 준비한 다음 유적지에 묻어 둔 다음 며칠 후에 파내는 방법을 써서 고대 유물을 발굴했다고 사기를 친 것. 2000년에 어떤 제보자가 미심쩍은 점을 발견하고 이를 마이니치 신문에 제보하고, 마이니치 신문에서 조작 현장을 포착하여 대서특필하면서 그의 사기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은 조작 장면을 촬영하고도 그걸 미리 터트리지 않고 후지무라가 자기가 묻은 유물을 파낸 후 새로운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를 한 다음에야 기사화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다)
결국 후지무라는 모든 것을 시인하였고, 그가 발굴해 낸 가짜 유물들은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었으며 당연히 교과서에서도 빠졌고 후지무라 역시 고고학계에서 제명당하였다. 사실 그 이전까지 고고학계 일부에서는 후지무라의 발굴에 의혹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후지무라가 치밀하게 유물이 나올 법한 곳에 묻었고, 구석기시대 유물의 연도대조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 일본이 이렇게 역사가 긴 민족이다' 라는 극우세력들의 국뽕 분위기에 휩쓸려 그의 사기는 20여년동안 걸리지 않았다. 일본 극우세력들은 후지무라가 발굴해 낸 유물을 근거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 연대가 앞선 문명이 일본에 존재했다라며 일본을 세계 4대 문명중에 하나로 끼워넣으려는 시도도 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후지무라의 발굴에 이견을 다는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후지무라 사건 이후 일본의 고고학계는 엄청나게 신뢰를 잃어버렸다. 국제 고고학회의에 참가를 거부당하기도 했고, 일단 일본 학자가 발굴했다고 하면 국제 고고학계에서 믿어주지를 않았으며, 이후 일본 내에 고고학 유물이 발굴되자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 학자를 초빙해서 연대측정을 해야 했던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후지무라 교수는 이후 아내와도 이혼하고 화초가위로 자신의 손가락 2개를 자르기도 하여 해리성 정체감 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병원에서 만난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현재는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데, 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날조한 상황에 대한 기억은 '기억상실'로 날아갔다고 한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