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화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형성되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라고 한다면

직업과 주택은 시장경제에 맞겨두면 안된다.

왜냐하면 직업과 주택은 시장경제에 맞겨두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수요와 공급 곡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공급곡선은 재화가 독점상태에 놓여 있지 않고, 

또한 재화의 공급량이 공급자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조절가능하다는 가정하에서 형성될 수 있는데

직업과 주택은 그런면에서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수요곡선은 수요량이 수요자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형성될 수 있는데

직업과 주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재화라서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품가방은 비싸면 안사거나 덜 사면 그만이지만

쌀값이 오르면 쌀 소비를 줄이거나 다른 먹거리로 일부 대체하면 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는 직업과 주택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명품가방처럼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하는수 없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직업과 주택의 수요자들은 직업과 일자리 공급자들의 횡포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집은 비싸다고 해서 그럼 사지 말지 이런게 아니라, 선택권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해야 하는 것이고,

월급이 적다고 해서 그럼 하지 말지 이런게 아니라, 선택권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해야 하는 것이다. 

집값이 100일 때에 수요자가 100이라면, 집값이 200일 때도 수요자는 크게 차이가 없을 수 있고,

급여가 100일 때에 수요자가 100이라면, 급여가 50일때도 수요자는 크게 차이가 없을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수요 곡선은 전통적인 역비례 또는 반-역비례 형태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직업의 경우 그 수요와 공급량이 전통적인 수요공급 곡선으로 수렴하게 하는 방법으로는 한창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가 있다.

기본소득제도가 도입이 되면 노동자들에게는 (명품가방처럼) 직업을 취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생긴다.

즉, 최악의 경우 노동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일자리 공급자들의 횡포로 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최저임금제가 이미 도입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수요공급 곡선 자체를 인위적으로 왜곡시키는 형태이다.

또한, 일할 사람은 여전히 널렸기 때문에 급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근무환경은 제대로 존중받고 보호받기 어렵다.

직업의 경우와 달리 주택의 수요와 공급량을 전통적인 수요공급 곡선으로 수렴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기본소득이야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주택의 가치는 워낙에 복잡해서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실세(空室稅)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즉, 다주택자의 경우 (월세 전세나 팔린 주택 말고) 그냥 공실에 한에서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 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있는지 어쨋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처럼 주택 보급률 자체는 충분히 높은 상황에서는 유효하다 할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노동자들에게서 직업을 취할지 말지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할 권리를 주어

일자리 공급자들로부터 아쉬운 상황에 처해지지 안게 하는 장치적 제도라고 한다면

공실세는 (주택 수요자 만큼은 아니지만) 유사 주택 공급자들에게도 주택을 처분에 대한 약간의 압박을 만드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집이 팔리던 말던 일단 높은 호가를 불러놓고 느긋하게 취약한 주택 수요자가 걸리기를 기다려도 되었다면

또는 특별히 처분할 계획이나 생각도 없이 그냥 마냥 방치해 놓아도 되었다면  

공실세가 도입되면 집이 안팔리면, 또는 방치하면 거기에 대한 추가적인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호가를 실거래가 수준으로 낮추어서라도 집을 월세든 전세든 매매든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즉, 공실세는 슈퍼갑의 위치에 있는 유사 주택 공급자의 입지를 그냥 갑인 상태로 낮추게 하는 장치라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