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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878329
    작성자 : 메지컬
    추천 : 9
    조회수 : 1298
    IP : 218.38.***.106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7/03/30 14:24:00
    http://todayhumor.com/?sisa_878329 모바일
    이쯤에서 다시보는 무령왕릉 발굴 사건

     "일본의 어느 유명한 고고학자는 그런 행운은 백년에 한번이나 올까말까 하다고 나를 축하해주었지만,

    이 엄청난 행운이 그만 멀쩡하던 나의 머리를 돌게 하였다.

    이 중요한 마당에서 나는 고고학도로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

    -김원룡-





    1971년 봄, 문화재관리국은 공주 금성동 송산리 백제 고분군의 정비계획을 확정하였음.


    공주시내 중심가로부터 북북서쪽으로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송산리 고분군에는 모두 6개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었.

    그 중, 돌방무덤인 제5호분과 벽돌무덤인 제6호분은 장마철이 되면 산 능선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무덤 안에 침투되는 일이 빈번했.


    그래서 문화재관리국은 두 고분의 뒤 쪽을 둘러 파서 배수로를 만들려고 했다.


    그리하여 1971년 6월 29일 공사가 시작되었.


    그런데 공사가 시작된지 일주일 후인 7월 5일, 

    한 인부의 삽 끝에 딱하는 소리와 함께 돌 하나가 걸렸.


    배수로 공사를 담당하던 현장 소장 김영일은 그것이 그냥 돌이 아니라, 무덤에 쓰이는 전돌(벽돌)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

    당시 수시로 현장에 나와서 공사를 지켜보고 있던 김영배 공주박물관 관장과 공주사범대 교수 안승주등도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전돌벽을 확인했죠.


    그들은 분명 공사 현장 근처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


    그리고 7월 6일, 송산리 6호분 배수로 공사현장에서 의문의 전돌을 발견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송산리 배수로 공사현장 감독관이었던 문화재관리국의 7급 건축기사 윤흥로도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

    윤흥로가 현장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배수로 현장에서 전돌을 쌓아올린 무슨 단같은 시설이 드러나 있는 상황이었.



    11.jpg 무령왕릉 사건 


    김영배 관장은 그 시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작업을 계속할 것을 주장하였고,

    그에 따라 인부들은 전돌이 나온 주변을 더 파내려 가기 시작했.


    잠시 후, 전돌을 몇겹 쌓은 단 아래로 아치 모양의 문 시설이 드러났.

    그 문 모양의 시설에는 또 다른 전돌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시설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백제의 왕릉이라고 생각했.


    김영배 관장과 안승주, 박용진 등은 왕릉의 발견에 흥분하여 작업을 계속하고자 하였.

    그런데 그 때, 윤흥로가 단호하게 그들의 주장을 막아서며, 작업을 중지시켰

    문화재관리국에 보고하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 아래 내린 결정이었.

    윤흥로는 그들에게 추가발굴은 절대 불가라고 못을 박은 후, 문화재관리국에 직접 보고를 올렸.


    보고를 받은 문화재 관리 과장 장인기는 곧 문화공보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문화공보부 장관 윤주영은 문화재관리국 산하 문화재 연구실의 직원들을 현장에 파견하기로 결정했.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


    당시 문화재 연구실장이었던 김정기가 7월 7일 일본으로 출장을 갈 예정이었던거.

    결국, 윤주영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인 김원룡을 대신 내려보내기로 결정했.


    이것이 무령왕릉 발굴의 첫번째 불운이었


    그 무렵 국내 고고학자들 중에서 발굴을 하는 과정이나, 유물이나 유적에 대한 실측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사람은,

    문화재연구실장 김정기뿐이었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운명의 장난처럼 자리를 비우게 되었던 것이.


    어쨋든, 이렇게 해서 김원룡을 단장으로 한 발굴단이 꾸려졌고, 이들은 7월 7일 공주로 급파되었.

    장인기, 이호관, 손병헌, 조유전, 지건길은 7월 7일 오전 공주로 떠났고, 김원룡은 따로 출발하여 오후 3시경에야 공주에 도착했.

    (그런데, 이들은 공주에 도착할때까지도, 자신들이 무슨 일 때문에 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채,

    그저 위에서 가라고 하니 무작정 내려갔었다고 하.)


    공주 현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김영배 관장과 안승주, 박용진 등의 교수들은,

    김원룡 일행이 도착하자 그들에게 합류하였.

    발굴단이 그렇게 꾸려진거죠.


    발굴단은 그 날 오후 4시경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였는데, 그 날 자정 30분전까지 작업이 계속되었


    작업으로 인해 전돌로 쌓아올린 부위가 점차 넓게 드러날수록, 발굴단은 전율할 수 밖에 없었.



    10.jpg 무령왕릉 사건 



    바로 옆에 있는 제6호분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벽돌무덤의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

    이윽고 아래쪽으로 아치형의 입구도 점점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발굴단은 탄성을 연신 내뱉었.


    하지만 입구쪽 땅이 단단하고 저녁 무렵부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여 작업은 쉽지 않았.

    게다가 폭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

    발굴단은 무덤 앞면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구덩이식으로 땅을 파놓았는데,

    그 곳에 빗물이 고이기 시작하여 무덤속으로 들어갈 위기가 발생한 것이.

    이에 발굴단은 폭우 속에서 다급하게 배수로를 내어 물을 빼냈고,

    그러다보니 이미 시간이 흘러 당초 계획했던 작업을 강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첫날의 작업은 이렇게 끝이 났고, 그들은 숙소로 돌아갔.


    그런데, 그 곳에서 뜻밖의 인물이 발굴단을 기다리고 있었.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인 허영환이었.


    7월 7일 오전 문화재관리국에 들렀던 허영환은,

    문화재과장 장인기와 국립박물관 관장 김원룡이 공주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의 직감으로 공주에 무슨 큰 일이 생겼다는 것을 확신했.


    그래서 그 날 사진기자 1명을 데리고 곧바로 공주로 내려와 김원룡등의 숙소를 찾아냈던 것이.

    이렇게 해서 허영환과 마주치게 된 발굴단은 그에게 왕릉발굴을 숨길 수 없게 되었.


    그리하여 다음날인 7월 8일, 한국일보는 새로운 백제왕릉을 발견했다는 특종 기사를 실을 수 있게 되었.

    물론 기사를 쓴 사람은 허영환이었.


    그러는 동안, 발굴단은 새벽부터 일어나 발굴 현장으로 달려갔.

    다행히 폭우도 그쳤고, 빗물로 인한 피해도 없었.

    발굴단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작업을 시작하였.


    작업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되었는데, 오후 3시가 될 무렵 무덤 입구의 바닥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

    발굴단은 이 무덤이 예상했던대로 제6호분과 똑같은 벽돌무덤임을 확신했.


    그런데, 입구가 드러나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



    9.jpg 무령왕릉 사건


    그 날 오전 한국일보의 특종이 터진 후, 언론사 취재단은 물론이고, 공주의 현지 주민들까지 모두 몰려들어,

    발굴현장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사람들을 통제해야 할 현지 경찰들조차 발굴현장을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었.


    그런 와중에 입구가 드러나니, 취재진은 어서 무덤을 열어 보라고 아우성이었고,

    현지 주민들 역시 덩달아 그들에게 가세하여 소란을 일으켰.


    그런 상황에서 발굴단은 간단한 위령제를 올렸.

    그리고 그 후, 김영배와 김원룡이 각각 무덤의 입구를 채우고 있던 벽돌 무더기 중 가장 위쪽에 있던 벽돌 한장을 빼냈.


    그러자, 무덤 안쪽에서 하얀 김이 빠져 나왔.

    무덤 안에 있던 찬공기가 밖으로 나오면서 결로 현상을 일으켰던 것이었.


    발굴단은 김이 빠져 나오길 기다렸다가 입구를 막고 있던 벽돌들을 모두 빼냈.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서지 않았던 왕릉의 문이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


    입구가 개방되자, 김원룡은 그 안으로 들어섰.


    입구는 아치형의 터널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무령왕 부부의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무덤길이었.

    플래시를 든 김영배와 김원룡을 필두로 발굴단은 조심스럽게 그 무덤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서 흥분하지 않으려고 조심하였.

    발굴단이 흥분한다면 바깥에 있던 취재진과 구경꾼들이 덩달아 흥분하여 무덤 안으로 들이 닥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


    어쨋든 그렇게 조심하며 얼마를 걸었을 무렵, 발굴단의 눈 앞에 마침내 괴이한 물체 하나가 나타났.


    8.jpg 무령왕릉 사건


    그것은 돌로 만들어진 짐승의 상으로,

    앞발 하나가 바닥면에서 들려 약간  기우뚱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 맷돼지같기도 하고 쫑긋한 귀가 살찐 토끼처럼 보이고,

    뭉뚝한 아가리를 헤벌린 모양이 어쩌면 하마나 코뿔소 같기도 한 그런 해괴한 모습이었.


    왕릉을 발견하기 전날인 7월 4일 밤, 산돼지 꿈을 꾸었던 김영배는,

    그 돌로 만든 짐승이 자신의 꿈에 나왔던 그 산돼지였음을 깨닫고 경악했다고 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것은 무령왕 부부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진묘수(鎭墓獸)였.


    그리고 그 진묘수 앞에는 석판 두 장이 가로놓여 있었


    하지만, 당시 무덤 안을 돌아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발굴단은, 석판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무덤 방으로 들어섰.

    무덤방은 머리가 천장에 닿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넓고 높은, 커다란  아치형의 방으로,

    각양 각색의 무늬를 새겨넣은 벽돌로 쌓아 올려 만든 구조였.

    방 바닥에는 폭삭 내려 앉은 나무널이 있었고, 군데 군데 유물들이 널려 있었는데,

    방 안이 어두워서 그것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는 없었.


    발굴단은 찬찬히 무덤을 살펴본 후, 그것이 도굴을 한번도 당하지 않은 왕릉임을 확신했.

    그들은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채, 무덤 방 밖으로 나왔.


    그런데, 다시 되돌아 나오는 길에, 김영배 관장은, 진묘수 앞에 놓인 석판의 글씨를 발견하고 경악했.


    "사마왕?!"



    7.jpg 무령왕릉 사건 



    석판의 첫줄에는  ‘寧東大將軍百濟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두번째  줄의 ‘麻王年六十二歲癸’이라는글자와 이어져 있었.


    즉 이어서 보면,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五月 丙戌朔 七日壬辰 崩到

    乙巳年八月 癸酉朔 十二日甲申 安登冠大墓 立志如左" 이라는 글로, 해석하자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 는 뜻이었.


    사마왕은 바로 백제의 제25대 왕인 무령왕이 살아있을때 불리던 이름이었.

    (무령왕의 휘가 부여사마 혹은  부여융이기 때문에 사마왕으로 불리었.)

    그리고 그 석판 위에는 무령왕 재위 때 중국에서 통용되었던 동전 꾸러미가 놓여 있었.


    그러니까 석판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의 지석이자 매지권이었고,

    (지석은 죽은 사람의 내력을 새긴 것이고, 매지권은 토지신에게 토지를 매매하였다는 증서.

    무령왕의 지석 뒤편을 살펴보면 토지신과 매매계약을 하였다는 글귀가 있.)


     이 무덤은 바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었던 것이.


    김원룡과 김영배등은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감격하고 흥분했.

    완벽하게 보존된 백제 왕릉, 그것도 백제의 부흥을 이끈 무령왕릉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학자는 없었을 것이.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엄청난 발견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맞이한 그 엄청난 행운이 무령왕릉에게는 또다른 불운이었.


    김원룡이 했던 말처럼, 그 행운에 눈이 멀어 그들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들을 저지르며,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졸속 발굴을 하고 말았으니까요.


    어쨋든, 김원룡과 김영배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무덤을 빠져나왔.

    그러자 그들 주변으로 취재진과 주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서,  결과를 빨리 말하라고 아우성을 쳤죠.


    이에 김원룡은 "이 무덤은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며, 지석을 갖춘,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입니다." 하고 발표했.


    그런데 그 무렵, 사건이 하나 발생했.

    중앙일보 기자 이종석이 그 자리에서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 과장이었던 장인기의 뺨을 때렸던 것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이종석은 자신에게 늦게 알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발굴 현장은 더욱 소란스러워졌.

    늦게 달려온 취재진들은 사진촬영을 허락해달라고 협박과 같은 요청을 하기 시작했.

    당시 경황이 없었던 발굴단은, 이들의 압박에 못이겨 취재기자들에게 1명당 2~3장의 사진촬영을 허락했.


    그러자 이번에는 취재기자들이 사진을 찍되,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문제가 되었.

    소란스러운 논쟁 끝에 공영방송이었던 kbs가 먼저 찍기로 하였고, 뒤를 이어 한국일보와 중앙일보가 찍기로 하였.


    6.jpg 무령왕릉 사건 



    그런데 일단 무덤에 들어가게 되자, 기자들은 애초의 약속을 어기고 앞다두터 무작정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

    현장은 통제가 불가능했고, 우와좌왕하던 끝에 유물중 하나인 청동 숟가락이 부러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


    하지만 어쨋든 이런 일련의 소동 끝에 사진촬영이 끝났.


    그러자 김원룡은 발굴단원들에게 무덤 안으로 들어가 실측을 하라고 지시를 내렸.

    그런데 이조차도 엉망이었.


    5.jpg 무령왕릉 사건


    임무를 맡았던 조유전과 김세현은 손전등에만 의지해 어두운 무덤 안에서 실측작업을 벌여야 했다.

    그러니 제대로 실측을 할 수 있을리 없었


    한편,


    조유전 등이 실측을 하고 있는 동안,

    김원룡 등 나머지 일행은 숙소로 자리를 옮겨 왕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열었.


    몇시간의 회의끝에, 김원룡과 김영배등은 즉시 발굴하자는 결론을 내렸


    취재진과 현지 주민들 때문에 현장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으니, 

    한시라도 빨리 발굴을 끝내는 것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이었지만, 당시 발굴단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


    그러는 동안, 밤 10시무렵, 실측을 위해 들어갔던 조유전이 밖으로 나왔

    김원룡은 그런 그를 향해 "뭘 꾸물거리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


    이렇게 졸속으로 실측이 끝난 후, 발굴단원들은 조를 나누어 유물 수거 작업에 들어갔



    4.jpg 무령왕릉 사건



    왕 쪽은 김원룡과 지건길이, 왕비쪽은 김영배와 손병헌이 맡았고,

    이호관과 조유전등은 밖에서 이루어지는 유물의 수습, 운반, 발굴용품의 조달을 맡았


    그리고 발굴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공주군청에 도움을 청해 발전기 시설을 가져왔는데, 발굴단은 이 발전기의 전력으로 전등의 밝혔.

    그런데 발전기의 돌아가는 속도 때문인지, 전등이 희미해졌다가 밝아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예 꺼져 버리기도 하는등,

    상황은 엉망진창이었

    사진을 찍기로 하였던 지건길의 경우는 새 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조작을 하다가 실수를 하여 사진을 제대로 건지지도 못했.

    발굴을 위한 인프라까지 최악의 상태였던 것이


    어쨋든 그런 상황에서 유물은 하나 둘 씩 무덤 밖으로 옮겨지기 시작했

    당시 유물에는 풀뿌리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마음이 급했던 발굴단들은 그 뿌리를 가위로 잘라가며 작업을 해나갔.

    그러다보니 실측은 눈에 띠는 유물에 대해서만 이루어졌고, 자잘한 것들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

    그리고 새벽이 다가오자, 작업을 더욱 서둘러 아예 막바지에는

    바닥 위에 깔린 유물들을 풀뿌리채 큰 삽과 빗자루로 긁어 모아 자루에 담아 내보냈


    그리하여 몇달은 걸려야 했던 작업이 단 8시간만에 끝이 났

    다음날인 9일 오전 8시쯤에는 더 이상 바깥에 내줄 만한 게 없었죠.


    이런 졸속작업때문에 후에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

    2009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새로운 무령왕릉 발굴 보고서 발간을 위해 출토 유물을 재정리하였는데, 


    3.jpg 무령왕릉 사건 



    71년 당시 삽과 빗자루로 긁어 자루에 담았던 부스러기 유물에서

    왕 또는 왕비의 뼛조각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뼛조각 4점이 발견된 것이.

    후손들을 잘못 둔 탓에, 무령왕 혹은 왕비의 유골이 38년동안 저런 수모를 당하였던거라;;


    어쨋든, 71년 7월 9일, 발굴단은 수습된 유물을 공주박물관에 보관시키고, 널문 입구를 임시로 폐쇄시킨 뒤,

    필요한 자료만 챙기고 서울로 철수하였


    발굴 보고서 집필을 위해서는 당장 수습 유물들을 서울로 운반해야 했지만, 그것들을 가져가는데에는 일주일이 걸렸



    2.jpg 무령왕릉 사건

    <실제로 당시 주민들이 반대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임>


    공주 주민들의 반대가 격렬하였기 때문이

    그래서 주민들에게 무령왕릉 출토 유물의 전시를 위한 새 박물관 건립등을 약속한 뒤에야, 유물들을 옮겨올 수 있었.


    이러한 우여곡절끝에 무령왕릉의 발굴이 끝이 났

    훗날 현장에서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무령왕릉의 발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후회할만큼,

    이것은 세계 고고학 역사를 살펴보아도 최악으로 손꼽힐만한, 졸속 발굴이었


    하지만 당대에는 물론이고 이후 30여년동안 이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


    특히 당시의 언론은 발굴 과정에서 청동숟가락과 진묘수의 뿔이 부러졌다는 것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쳤고,

    대부분의 관련 기사는 발굴과정은 순조로웠다는 내용과, 무령왕릉을 발견하였다는 감격에 겨운 글뿐이었.


    그 무렵 합동통신 문화부 기자였던 신찬균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하

    "우리는 발굴을 그렇게 하는줄 알았다."


    그런 발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문화재 관련 기자들도 모두 발굴 현장에 무지했었다는 얘기


    하지만 이것은 기자들이나 발굴단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

    모두가 발굴에 무지했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 발견의 중요성을 알아줄 분위기가 아니었.


     청와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이를 살펴보아도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


    1971년 7월 9일에 발굴이 끝이 나고, 며칠 지난 어느날 저녁,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으로 김영배를 찾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하.

    전화를 건 사람은 "각하께서  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보고 싶어하신다."는 말을 전했


    깜짝 놀란 김영배는 전화를 받은 다음날 새벽, 유물들중에서 왕비의 팔찌등을 담아 서둘러 서울로 향했.

    김영배가 서울에 도착하자, 김원룡이 그를 맞이하여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


    청와대에 도착한 김원룡과 김영배는, 곧 박정희와 만남을 갖게 되었

    박정희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한 후, 유물을 살펴보.

    그러다가 유물들 중에서 왕비의 팔찌를 집어 들더니,

    박정희는 "이게 순금인가?" 하고 말하면서 갑자기 팔찌를 두 손으로 쥐고는 가운데를 휘어 보았.

    김원룡과 김원배는 박정희가 팔찌를 휘었다 펴는 걸 어떻게 말릴 도리가 없어서 그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함.


    이처럼 누구 하나 유물의 중요성이나, 발굴의 중요성에 대해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

    게다가 그 해 7월 1일, 박정희는 제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무령왕릉이 7월 5일에 발견되었으니,

    대통령의 취임에 맞추어 성과를 내보이는데 급급했을지도 모르겠

    발굴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당장 남들의 눈 앞에 내어놓을 유물들이 필요했겠지

    그래서 더욱 발굴은 졸속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


    그러니까 어쩌면 이 일은 70년대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최악의 사건일지도 모르겠.


    어쨋든 연속된 불운과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벌어진 졸속발굴은 무령왕릉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가했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도굴을 피한 몇 안되는 왕릉중 하나로

    그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백제의 중요한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 분명했던 문화유산이 

    이처럼 후손들에 의해 훼손되었다


    그리하여



    1.jpg 무령왕릉 사건 


    무령왕릉은 그 때 입은 손상의 여파때문에 1997년부터 지금까지 영구폐쇄된 상태.



    그나마 의의가 있다면,

    그럼에도 수습한 유물들 덕분에 베일에 가려져있던 백제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과,

    이후 발굴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던 발굴단원들이 이 때를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것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제 뉴스에서 보니 세월호 조사 도중에 뼈가 발견되어 조사를 잠시 중단 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기자들이 이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혹자는 "그런건 한눈에 보기에도 짐승뼈 라는걸 바로 알아 챘어야 하는데 일부러 시간 끌려고 조사 중단을 한거다." 라는 기사도 쓰더군요.


    그런 기자들에게 무령왕릉 발굴 사건을 알려주고 싶네요.






    저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세월호 조사단의 판단이 정답 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꺼진불도 조심하면서 하나라도 미심쩍거나 수상한게 있다면 신중하게 조사를 하기를 바랍니다.



    출처 http://www.fmkorea.com/62652657
    메지컬의 꼬릿말입니다


    세월호 인양에 대해서 설레발 치는 기레기들 봐라 

    그놈의 빨리 빨리는 매국 10년 정권들 취재를 해야되는 니들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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