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28일이 첫 집회였던가요.
광우병 집회 때도 회사일에 지쳐 피곤하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던 저였지만
나라에 망조가 들었구나 싶은 지난 9년의 시간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남기 어르신 사건이 있었기에 집을 나설 때 혹시나 무서운 생각 들기도 했습니다.
초반에 오유에서도 '저들이 어떤 자들인데 평화 집회를 두려워 하겠느냐'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고
저 역시 촛불만 든다고 저들이 국민을 두려워할까 심란했습니다.
하지만 평화 집회에 수많은 분들이 '이게 나라냐!' 저와 같은 분노로 나오셨지요.
100만명, 200만명이라는 기록을 거푸 세우면서요.
그리고 박근혜 탄핵 되었습니다.
명백히 탄핵 사유이고 헌법 유린 사유라고 해도
촛불의 힘이 아니었다면 과연 헌법 재판관들이 탄핵 인용을 하였을까요?
오늘 친한 후배와 광화문에서 소리 소리 지르며 탄핵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감기 때문에 계속 기침과 콧물에 시달려서 진이 빠지긴 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도 눈물 찔끔 흘려가며 부르고
혼자 오신 아주머니께 사탕도 나눠 드리고요.
광화문에 쏘아 올려진 폭죽은 정말 감동스러웠지요.
후배와 전에도 하고, 오늘도 나눈 대화입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참 많은, 운명적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민들이 정치와 복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오늘의 촛불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 그 계시라 생각합니다.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내세우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 복지 혜택, 그리고 정치가 잘 돌아가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하나의 신선한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 싸움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진보적인 교육감이 당선되었고요.
복지란 가난한 극빈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의식에서
국민이라면 당연히 나라에서 받아야 하는 혜택으로 조금씩 국민들 의식이 달라지게 된 것 같아요.
무상급식 싸움은 뜻밖에도 서울시장을 5살 훈이에서
(그래도 그렇지, 서울시장을 어떻게 다섯 살짜리한테 맡겼는지... ㅜㅜ)
박원순 시장으로 교체시킵니다.
그리고 이분은 촛불집회 때 평화 집회가 될 수 있도록
물대포 사용할 수 없도록 막으셨을 뿐 아니라,
질서 유지를 위한 안전 요원들과 구급요원, 소방대원 등등
촛불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많은 걸 제공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 나이든 어르신들, 중고생들이
축제 같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이게 나라냐' 분노하면서도
또한 당당하게 박근혜 탄핵을 외칠 수 있게 되었지요.
노무현 대통령님이 겪었던 탄핵조차도
지금의 국면이 나오기에 큰 도움이 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기까지의 과정이며
헌재에서 탄핵 심판하는 과정까지,
절차적인 점검을 이미 이전에 했었던 적이 있기에,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의원들)이
절차를 문제 삼아 탄핵을 지연시키기 어려웠습니다.
탄핵 심판까지 90여일 걸리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절차적인 정당성이 문제 되지는 않았으니 큰 도움이었지요.
오유에서 자주 언급된 일이지만
2015년 말에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것도
지금의 결과에 큰 일조를 하였습니다.
안철수 탈당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회색분자들, 사쿠라들로 손가락질 받던
많은 정치 자영업자 국회의원들이
본성대로 새누리당으로 기어들어 가거나 안철수에게 얹혀 갔지요.
덕분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의 더불어 민주당으로
당명도 바꾸고 국회의원들 성향도 바뀌게 됩니다.
'미워도 민주당'이라는 애증을 갖고 있던 야권 지지자들이
야권의 자멸위기 앞에 긴장하여 대거 당원 가입을 한 것도
지금의 더불어 민주당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가입한 당원들이 권리 당원이 되어 각종 당내 선거에 적극 참여하여
추미애 당대표를 당선시켰습니다.
추미애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더불어 민주당이
탄핵 국면에서 아젠다를 가지고 촛불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도록 진두 지휘를 하였습니다.
광우병 집회 때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회색분자들의 분탕질에 야성을 잃고 힘없던 당시 민주당을 생각하면,
위기의 정국에서 든든하고 선명한 야당이 있다는 게
국민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요.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가 된 것은, 촛불이 명령할 때 이를 받아 안을 정치세력이 있기에
국회에서 탄핵 가결시켰다는 결과를 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철수 탈당 이전에 문재인 전 대표가
온라인 당원 가입 시스템 개발을 적극 독려한 것도 신의 한수입니다.
당시 당원 가입은 팩스나 지역 당사에 방문해야 했는데요.
IT 시대에 맞춰서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당원 가입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PC만이 아니라 휴대폰으로도 가입할 수 있었으니,
온라인 활동에 익숙한 2~40대의 야권 지지자들이 적극 당원 가입하게 되었지요.
온라인 당원 가입 시스템 개발이 끝난 날짜가
안철수 탈당 이전인가 이후인가, 암튼 탈당을 기준으로 며칠 전후였으니
충격 받은 야권 지지자들-정권 교체를 바라던 이들이
미워도 야당을 지켜야 한다며 앞다투어 당원이 되셨지요.
문재인 전 대표의 인재 영입도 오늘의 촛불 승리에 한 축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광우병 집회 당시 상황을 언급하겠습니다.
당시 비록 집회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신문을 보며 참으로 답답하였습니다.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이 이토록 끓어 오르는데도
모여진 힘과 열망을 받아 안을 정치권과 정치세력이 없었으니까요.
민주당은 힘도 없고 야당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사쿠라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결국 광우병 집회에서 모인 힘과 열망은 그대로 흐지부지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야권 성향이 강한 인재들,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는 인재들, 각 분야별 인재들을 더민주에 영입했습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여당이나 국민들을 놀라게 할 사람들이었지요.
그 인재들이 김병관, 문미옥, 박주민, 표창원, 조응천, 김병기, 손혜원 의원 등등입니다.
이들이 더민주에 합류하면서 더민주는 선명한 야당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천 탈락, 컷오프로 더민주를 떠난
은수미, 진성준, 김광진 의원 등등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들도 아주 더민주를 떠나지 않고 민주종편 등을 통해
더민주의 외곽 지원 세력으로 여전히 남아주기도 하였고요.
암튼 문재인 전 대표의 인재 영입은 이후 아슬아슬하였지만 더민주의 총선 승리에 큰 힘이 되었고,
이후 촛불 정국에서 야당으로서의 선명한 행보, 어떠한 흔들기에도 주저 앉거나 물러서지 않는 힘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국민만, 촛불만 바라보며 우리와 함께 싸워 나갔지요.
팟캐스트 역시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김어준과 주진우, 정봉주, 김용민의 <나는 꼼수다>는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힘을 보였습니다.
이명박이나 새누리당이 팟캐스트도 다른 방송들처럼 심의를 받도록 규제하여
자신들의 감시와 제어하에 두려 하였으나...
후배의 표현대로 박그네가 어리석어서 이걸 법제화시키지 않은 덕분에,
팟캐스트는 이이제이, 그것은 알기 싫다를 비롯해서
진짜가 나타났다, 서당캐, 국민TV, 노유진의 정치카페 등등등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공중파에서는 다루지 않는, 왜곡하는
정치의 민낯을 샅샅이 파헤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권 지지자들을 더욱 단결시키고
이도 저도 아니던 시민들을 각성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평생 1번만 찍었다는 여당 지지자들조차 돌아서게 했지요.
JTBC에서 손석희를 콜하고, 손석희가 그걸 받아들인 게
오늘의 상황을 만들 줄은 손석희 본인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손석희 때문에 뉴스룸이라는 놀라운 프로그램이 생겼고,
최순실이 버린 태블릿 피씨는 뉴스룸 기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최순실이 버린 태블릿 피씨, 그걸 발견한 건물 관리인이
야권 쪽 지지자였다는 것 역시 놀라운 신의 한수였지요.
아니었다면 누가 뭘 버렸든 말든 무관심하게 자기 일만 하고 말았을 겁니다.
아무리 JTBC가 열심히 취재를 하고 다녔더라도
결정적인, 어떻게도 덮을 수 없는 이 증거만큼 강력한 것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안종법 수첩이 있었다 하더라도, 태블릿 피씨가 가직 강력한 힘-
이것이 신문사도 공중파도 아닌, JTBC 기자에게 전달된 것은 신의 한수였습니다.
너무나도 아픈 세월호 참사 역시 촛불 집회의 힘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그저 '나와라' 한 마디만 선내 방송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던 믿기지 않는 참사였습니다.
수수방관하던 정부와 해경, 이를 꿀 먹은 듯 입 다물고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공중파.
유가족들은 통곡하였고 온 국민들은 숙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슬픔을 두고 갑자기 종북, 빨갱이 타령을 하고 돈에 눈이 멀었다는 둥,
손가락질하는 방향이 정부를 향하지 않고 유가족들을 향했습니다.
이 기막힌 상황에 분노하던 국민들은 촛불 집회에서 높이 촛불을 들며
측은지심이 상실된 시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였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높이 외쳤습니다.
야권에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선 주자들이 많았다는 것도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정권 교체를 원하는 야권 지지자들에게 관심 받던 대선 주자가 누가 있었나요? 문국현?
당선 가능하여 확실히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다고 기대되던 대선 주자가 있었나요?
그러나 지금은 이 사람 둥 누구라도 야권의 최종 후보가 된다면
기꺼이 내 표를 주겠다며 야권 지지자들이 아끼는 대선 주자들이 여러 명이었습니다.
슬프게도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요.
그러나 적어도 작년 말까지는 야권 지지자들은 정권 교체를 꿈꿀 수 있는, 기대할 수 있는
강력한 야권 주자들을 여럿 두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탄핵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승리입니다. 촛불의 승리입니다.
세월호의 승리이며 5.18 광주의 승리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힘은 강하며 오랫동안 그 힘을 노련하게 휘둘러온 경험이 있습니다.
적폐 청산과 정권 교체의 길을 걸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지금까지의 촛불 이상으로 더 많은 촛불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너무나 많은,
결정적인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신이 신중하게 한 수 한 수를 둔 것이 아닌가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과 우리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여러분- 우리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함께 해요. 싸워서 반드시 이깁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