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오른쪽)이 8일 도쿄 방위성에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과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일본 과거사·영토 도발 거세져
‘안보 분리대응’ 나서기에도
국민감정에 비춰 쉽지않아

전문가들, 적극 대응 주문
“근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되면
한국 운신폭 커질것” 지적도
한국 외교가 두 겹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상황에 더해, 이젠 한-미-일 관계에서도 갈수록 밀착하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외교 실패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노골적으로 한-일 관계에서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8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는 한국이 과거사 갈등에 얽매이지 말고 한-미-일 삼각공조 구도에 빨리 올라타야 한다고 등 떠미는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최근 미 당국자들의 발언은 미국의 혼네(본심)인 것 같다”며 “우리는 불쾌하지만, 미국은 자기 국익 중심으로 하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삼각공조 구축이 최우선 과제인 미국으로선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 때문에 동참을 머뭇거리는 한국을 갈수록 거북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미국에 바짝 붙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과 집단자위권 용인 등 아베 신조 총리의 숙원을 풀더니, 한국을 대상으로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과 ‘외교청서’ 발표 등 과거사 ‘역주행’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문제는 한국 외교가 돌파구를 못 찾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영토 도발과 안보 현안을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 접근을 기조로 삼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8일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일본과는 강하게 대응할 부분과 협조할 부분에 균형을 맞추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도발 강도가 갈수록 세지는데도 모르는 척 안보협력에 나서기는 국민감정에 비춰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의 삼각공조 편입을 강하게 압박하는 미국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한층 어려운 숙제다. 덜컥 삼각공조에 끌려들어갔다가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미국·일본의 과거사 발언과 정부 반응
성향에 따라 방향과 강조점은 달랐지만, 전문가들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외교 대응을 주문한다. 최강 아산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이 좀더 일찍 주도적으로 ‘투 트랙’ 접근을 했다면 한-일 관계에서 전략적 우위에 도덕적 우위를 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초반부 과거사 문제에 너무 강한 고리를 걸었다가 일본의 반발과 미국의 외면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드 문제와 과거사 및 삼각공조 문제의 다른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사드의 경우 미국과 중국이 자기 쪽으로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사안인 반면, 한-미-일 관계의 딜레마는 미국과 일본이 한 방향으로 한국의 선택을 몰아붙이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인식 전환이 선결되어야 한국의 한·미·일 안보협력 참여도 원활해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지금과는 반대로 미국이 오히려 일본의 과거사 태도 전환을 강하게 압박하는 쪽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강대국 대상 외교의 협소한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층 거시적인 시야에서 “외교 난국을 풀 실마리를 ‘남북관계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북한과 관계 개선이 되면 안보에서 일본은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며 “과거사 문제에서도 더 강하게 우리 얘기를 할 수 있을뿐더러, 미국이 압력을 주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외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