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게시판 문제에 대해 일단 사과 말씀부터 드립니다. <div>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쓰는 글이지만</div> <div>요즘 사회문제가 된 대학교에서 선후배간 위계 문제와 관련이 있어 시사게에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저는 -중퇴를 하긴 했지만- 지방대 토목공학과 92학번입니다.</div> <div>문과 출신인데, 어쩌다보니 후기대 토목공학과를 가게 됐어요.</div> <div>수학교재가 미분적분학이고 600페이지 가량 되는 물리학 교재만 아니라면</div> <div>그럭저럭 재밌게 학교 생활을 했어요.</div> <div>선배들 얼굴, 이름, 학번을 외우라고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div> <div>오히려 신입생들과 친해지고 싶은 선배들이 전공 강의실로 찾아와서</div> <div>자기 소개를 먼저 하고 마음 맞는 신입생들과 낮술 하러 다니고...</div> <div>뭐 그런 분위기였죠.</div> <div>연합 MT 때 수백 명 되는 선배들과 인사도 했지만</div> <div>역시나 기억 나는 선배들은 강의실 찾아와서 술 사주고 당구비 내 주는 선배들이었죠.</div> <div><br></div> <div>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끝나고 햇빛 찬란한 봄이 찾아 왔습니다.</div> <div>그무렵 자연스럽게 결성된 우리 신입생 일당들의 주된 일과는</div> <div>학생회관 앞에서 어슬렁 거리는 거였습니다.</div> <div>밥 먹으러 가는 선배들이 있으면 쪼르르 쫓아가 격하게 친한 척을 함으로써</div> <div>1,500원 정도 하는 밥을 얻어 먹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죠.</div> <div>심지어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들고 있는 전공책을 보고 아는 척을 해서 밥을 얻어 먹은 적도 있습니다.</div> <div>우리가 선배들에게 관등성명을 댈 때는 그 때가 유일했습니다.</div> <div>그렇게 얼굴과 이름을 알려놔야 다음에 또 얻어 먹을 수 있으니까...</div> <div>- "선배는 걸어다니는 식권이다"라는 명언이 있었죠.</div> <div><br></div> <div>선배에 대한 호칭은 당연히 "형" 아니면 "선배"였습니다.</div> <div>"형님", "선배님"이라고 했다가는 선배들한테 호되게 혼이 나곤 했습니다.</div> <div>수평관계인 선후배 관계에서 극존칭인 '님'자 붙이는 거 아니라면서...</div> <div><br></div> <div>그렇게 밝고, 맑고, 뻔뻔하게 학교 생활을 하던 중</div> <div>드디어 동아리라는 곳에 가입을 했습니다.</div> <div>보통 3월에 동아리 신입생을 모집하는데,</div> <div>저는 맨날 선배들이랑 술 마시다가 4월이 되어서야 볼링 동아리에 가입을 했습니다.</div> <div>동기들은 이미 선배들이랑 친해져서 잘 어울리는데</div> <div>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맨날 겉돌기만 할 뿐</div> <div>좀처럼 동기들이나 선배들과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div> <div>그런 저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어느날 88학번 선배들이 저를 부르더군요.</div> <div>군대에서 전역하고 이제 막 복학한 선배들이었는데,</div> <div>무려 동아리 직속 선배들이었습니다.</div> <div>중간 학번들이 다 군대에 가 버리고 없었거든요.</div> <div>그날을 기점으로 거의 매일 동아리 선배들과 어울렸습니다.</div> <div>강의실로 찾아와서 불러내고, 하숙집으로 전화해서 불러내고...</div> <div>500원짜리 동전을 넣는 노래방엘 처음 간 것도,</div> <div>한참 유행을 하던 락까페란 곳엘 처음 간 것도,</div> <div>보쌈이란 음식을 처음 맛본 것도 다 그 선배들 덕택이었죠.</div> <div><br></div> <div>우연한 기회에 사물놀이 동아리 사람들과 친해지게 됐는데,</div> <div>수업 마치면 사물놀이 동아리방에 가서 술 마시고 자고</div> <div>다음날 다시 학교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죠.</div> <div>볼링 연습 때문에 시내 볼링장에 나갔다가도 다시 사물놀이 동아리방에 가기도 할 정도였습니다.</div> <div>사물놀이 동아리 선배들은 신입생 모집이 끝났지만 특별히 받아줄테니 가입을 하라고 했지만</div> <div>저는 그냥 그 생활이 좋아서 끝까지 가입을 하지 않고 그렇게 놀러만 다녔습니다.</div> <div>그런 저에게 선배들은 .5기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div> <div>동기들이랑 같은 기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 식구 아니라고 할 수도 없으니</div> <div>동기들 기수에다가 .5기를 붙여준거죠.</div> <div><br></div> <div>군생활을 남들보다 길게 하고 자퇴를 하는 바람에 당시 선배들, 동기들과 제대로 연락은 되질 않지만</div> <div>지금도 문득문득 그리워서 애가 타기도 합니다.</div> <div><br></div> <div>21세기 대학생 여러분...</div> <div>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문득문득 그리운 사람이고 싶습니까?</div> <div>아니면 후배들에게 똥군기를 강요하던 못된 선배로 남고 싶습니까?</div> <div>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똥군기인지 모르겠습니다.</div> <div>학과의 특수성을 들먹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도대체 당신들의 특수성은 무엇입니까?</span></div> <div>대관절 어떤 특수성이 있기에 후배들에게 불합리한 악습을 강요하는 겁니까?</div> <div>90년대에는 유일하게 똥군기를 강요하던 곳이 체대입니다.</div> <div>그들은 늘 우리들의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었죠.</div> <div>하도 특수성 특수성 하길래 그렇게 똥군기 잡아서 운동 잘 할 거라면</div> <div>우리나라는 진작에 스포츠 강국이 됐을 거 아니냐고 쏴붙이기도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은 뭘 많이 먹이는 거라고 하죠?</div> <div>맞아요.</div> <div>군소리 없이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선배들에게는 후배들이 알아서 붙어요.</div> <div>억지로 주입식으로 가르침을 주려는 선배들 보다는</div> <div>술 마시고 장난 치고 노는 중에도 뭔가 배울점이 있는 선배들이 있어요.</div> <div>그런 선배들은 후배들이 알아서 존경해요.</div> <div><br></div> <div>후배들에게 존경을 강요하지 마세요.</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존경 받을 자격도 갖추지 못한 주제에 존경 받고 싶은 욕심만 넘쳐 나는 일부 몰지각한 대학생 여러분...</span></div> <div>존경 받을 자격을 먼저 갖추세요.</div> <div>열심히 공부하고 인격을 갖추면 저절로 존경을 받게 됩니다.</div> <div>후배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후배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면</div> <div>후배들이 먼저 당신을 존경할 겁니다.</div> <div>강요된 존경은 존경이 아닙니다.</div> <div><br></div> <div>부디 진리를 추구하는 상아탑에서 더이상의 악습이 없길 바랍니다.</div> <div><br></div> <div>＊ 우스갯소리 하나</div> <div>일주회(日酒會)와 우주회(雨酒會)란 것이 있었습니다.</div> <div>일주회는 해 뜬 날만 술 마시는 모임이었고</div> <div>우주회는 비 오는 날만 술 마시는 모임이었습니다.</div> <div>일주회 회원들은 자동으로 우주회에 가입 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 우스갯소리 둘</div> <div>사물놀이 동아리방 앞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습니다.</div> <div>제가 입대하기 1주일 전 쯤 선배 한 명이 열심히 살구를 주워 모으더군요.</div> <div>저를 위한 술을 담그려고 한답니다.</div> <div>우리는 열심히 살구를 주워 모아 술을 담그고 살구나무 아래에 파묻었습니다.</div> <div>개봉일은 제가 군대에 갔다가 휴가를 나오는 날이었습니다.</div> <div>기초군사교육에 후반기 교육까지 받고 발령 나고 어쩌고 하다보니</div> <div>거의 1년 만에 학교에 찾아 갔습니다.</div> <div>살구나무 아래에 묻었던 술은 제가 입대하고 1주일 후에 꺼내 먹었다고 하더군요.</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