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대한 국민, 그리고 동포 여러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는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시신을 장사지내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악은 그들이 떠난 뒤에도 살아남아 있지만, 선행은 백골과 함께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주시민들! 그들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고귀하신 자칭애국자들은 일전 광주시민이 야심을 품은 공산당이라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한탄스러운 잘못이었고, 그런 잘못으로 인해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민주주의의영웅들 역시 인과응보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 현명하신 자칭애국자와, 역시 현명한 사람들인 그 일파의 허락을 받아 나는 영웅들의 장례식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나의 친구였고, 나에게 성실하고도 공정했습니다. 그리고 나또한 그 영웅들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자칭애국자들은 그가 빨갱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웅들이 과연 어떠했습니까? 영웅들은 정부에서 독재를 일으킬 때마다 수많은 희생자들을 내며 민주주의를 수호했고. 그 과정에서 단 한번도 자기 것으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야심에서 우러난 행동입니까?
국민 들이 민주주의를 울부짖을 때, 광주시민들은 , 아니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염원하는 그 수 많은 영웅들은 그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야심이란 이보다는 더 매정스럽지 않고서는 품을 수 없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칭애국자들은 그가 야심가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몸소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18일 , 전두환의 공수부대가 우리 영웅들을 쏘았을떄 ! 목숨을 담보로 걸고 항복을 요구했을떄 ! 우리의 민주영웅들은 모두 항복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래도 민주수호 용사들에게 야심이 있었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자칭 애국자들은 영웅들이 야심가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자칭애국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말하고자 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한때 영웅들을 사랑했고,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여러분은 그들을 위해 애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아, 정의의 신이여. 당신은 흉포한 야수에게로 도망쳐 버렸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내 심장이 저기 저 관 속에 있는 민주주의에 파편에게 가 버렸으니, 나에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주주의의 힘은 전세계와 맞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정의는 저기 누워 있고, 이제 아무도 그 정의를 경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의 가슴과 마음을 뒤흔들고 격분을 자아내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면, 자칭애국자들에게도 모든 대한 민주주의 수호자들에게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와 같은 현명한 사람들에게 덤비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은 자에게, 나 자신과 여러분에게 화살을 돌리겠습니다.
여기 용사들의 도장이 찍힌 문장이 있습니다. 광주도청의 어느 한 자락에서 찾아냈는데, 이것은 그들의 유서입니다. 이 유언은 참 국민들만 들어 주십시오……. 아니, 죄송합니다. 읽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숨진 용사들을 찾아가 그의 상처에 입맞추려고 했고, 그의 거룩한 피를 손수건에 묻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념으로 그의 머리카락 한 오라기를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자신들의 유서에 그 사실을 언급하고 후손들에게까지 귀중한 유산으로 물려주겠노라고 말입니다.
……참으십시오, 여러분. 이 유서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가! 북한군이라고 매도 받앗던 그들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알게 되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인 까닭에 그들의 유언을 들으면, 여러분은 감정이 폭발하여 광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두렵습니다. ……여러분, 좀 참아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유서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였습니다. 나는 수많은 총탄과 매도로 영웅들을 매장한 저 현명하신 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면 이 유서를 기어코 읽어 달라는 겁니까?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혁명 주위에 둘러서십시오. 그러면 그 유언을 남긴 분을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내려갈까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눈물이 있다면 지금 흘릴 차비를 하십시오. 여러분은 모두가 이 정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자리로 공수부대의 , 아니 잔인한 살인마들의 총탄이 뚫고 들어갔습니다. 이 옷이 어떻게 찢겨져 있는지 보십시오. 이곳으로는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은 또다른 국민들이 비수를 꽂았습니다. 그들이 그 저주받은 칼날을 뽑자, 민주주의의 피가 이렇게 그 뒤를 좇아 흘러내린 자국을 보십시오. 그때 정의는 그처럼 무례하게 민주주의를 두들긴 자가 바로 대한 국민 이였는가를 확인하려고 대한민국의 역사로 달려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 국가는 ! 우리 국민들의 천사였기 때문입니다. 아, 신들이여. 우리 국민들이 그 무자비한 자들을 얼마나 지성스레 사랑했던가를 팜가름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매정한 일격이었습니다. 고귀한 우리의 용사들은 총을 들고 덤비는 국가를 보자, 반역자들의 칼날보다도 더 무서운 배은망덕에 넋을 잃었고, 그의 튼튼한 심장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파편 밑둥까지 줄곧 피를 흘리던 그의 얼굴을 가린 실망 안에서 위대한 민주주의는 , 영웅들은 쓰러졌습니다. 아, 동포 여러분, 그 자리에 무엇이 쓰러졌겠습니까! 그때 나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쓰러진 것입니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독재가 우리를 뒤덮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동정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으니, 이제 우십시오. 그것은 자애로운 눈물입니다. 마음이 고운 영혼들이여, 여러분이 본 것은 우리 영웅들이 지켜낸 민주주의의 파편일 뿐입니다. 상처난 민주주의일 뿐인데도 울고 있습니까? 여기를 보십시오. 보다시피 반역자들이 난도질한 우리의 망가진 민주주의 앞에 우리들은 호의호식하며 서 있습니다.
착한 친구들, 마음씨 고운 친구들이여, 여러분을 선동하여 돌발적인 홍수와도 같은 폭동을 몰아와서야 되겠습니까! 이 짓을 한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귀하고 명예로운 자들이기에, 여러분에게 이치를 따져 대항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자칭 애국자와 같은 웅변가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내가 공개석상에서 5.18에 대한 성스러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람의 피를 끓게 할 기지도, 말도, 가치도, 행동도 없으며, 그러한 목소리도 언변도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 스스로 알고 있는 바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자애로운 용사들이 지켜낸 상처난 민주주의를 보여 드리면서, 이 가엾고도 가엾은, 아무 말도 못하는 상처가 나 대신 말을 해줄 것을 간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내가 자칭애국자요, 그들이 나 김준환이라면, 김준환은 여러분의 기개를 북돋우고 민주주의의 상처마다 혀를 달아, 대한민국의 돌마저 감동하여 일어나 폭동을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민주주의가 , 그것을 수호하려 했던 용사들이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말해 드리지요. 여러분은 그 영웅들의 유서를 잊어버렸습니다. 여기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노력한 모든 자들의 도장이 찍힌 유서가 있습니다. 그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민주주의를 남겼습니다. 살아갈 터전을 남겼습니다 ! 거기다 그들은 반만년의 강토를 모두 여러분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겨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휴식할 수 있고, 또 그것은 여러분 모두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