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지난 글 <font size="2"><b>" </b><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line-height: normal"><b>전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지만 젊은 세대 비판하지 않아요" </b>에 이어서 글을 남겨 봅니다. </span></font></div> <div><br /></div> <div>87년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div> <div>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87 항쟁이 일어나서 민주화를 쟁취하게 되었는 지 생각하면 참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div> <div>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 암기 등 초중고 시절 독재정권의 복종을 강요하는 세뇌교육 아래서 성장한 대학생들이 이런 시위를 주도 했다는 것이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 같습니다. (참고로 저의 국민학교 교과서에 북한군의 머리에는 뿔리 달려 있었습니다 ㅠㅠ) </div> <div><br /></div> <div>본인의 경우 정치학을 전공했음에도, 25세에 군 전역 후 정신차리고 공부하면서 세상을 뒤 늦게 알게 된 경우였으니까요.</div> <div><br /></div> <div>대구에서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거의 매일 같이 시위가 있었습니다. </div> <div><br /></div>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photom.imaeil.com/supervisor/UploadFiles/photo_gallery/ds0000/1.26691084049E+130001.jpg" width="447" height="354" alt="http://photom.imaeil.com/supervisor/UploadFiles/photo_gallery/ds0000/1.26691084049E+130001.jpg" style="border: none" /></div> (사진출처 : 대구 매일신문사 포토갤러리)</div> <div>사진과 같은 상황이니 학교에선 시위가 있는 날이면 조기 귀가를 시키곤 했고, 최류탄 냄새로 수업에 많는 지장이 있곤 했답니다. </div> <div>물론 집에 일찍 가지않고 구경하기도 하고, 또 버스가 못와서 어쩔 수 없이 걸어서 시내를 벗어나다 보면 많이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div> <div><br /></div> <div><br /></div>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photom.imaeil.com/supervisor/UploadFiles/photo_gallery/ds0000/1.26690695493E+130001.jpg" width="614" height="822" alt="http://photom.imaeil.com/supervisor/UploadFiles/photo_gallery/ds0000/1.26690695493E+130001.jpg" style="border: none" /></div> <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사진출처 : 대구 매일신문사 포토갤러리)</span></div> <div><br /></div> <div>물론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도 보기도 했습니다. </div> <div><br /></div> <div>지역이 보수적이다 보니, 부모님 세대들은 대부분 자식이 위와 같은 시위에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들어가면 절대 나쁜 선배들과 </div> <div>어울리지 말거라,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나 하고" 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div> <div>지금 생각해 보면, 민주화 운동에 동의하는 부모님은, 침묵을 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연설의 "멸문지화"가 두려웠을테니까요.</div> <div><br /></div> <div>수업시간에 선생님들에게 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절반의 선생님은 학생들 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들어갔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div> <div>하지만 절반의 선생님은 침묵했습니다. "크면 알게 될 거야".. 이 분들도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 무서웠을 겁니다. 그 후 후자에 해당되는 많은</div> <div>선생님들은 전교조 가입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div> <div><br /></div> <div>경상도에서는 80년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전두환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고, 김대중은 국가반란을 주동한 세력이었지요.</div> <div><br /></div> <div>경찰서에서의 가혹행위는 일반인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div> <div>학교 동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락실에서 가방 도둑으로 몰려, 파출소에서 손바닥을 맞으면서 자백을 강요 받았고, 시골의 절도 피의자는 군 단위의 </div> <div>경찰서에서 고문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div> <div>술만 마시면 부모님을 폭행하던 동네 청년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서 삼청교육대에 보내 졌고, 그 후 정신이 이상해져서 나왔습니다. </div> <div>배추값이 폭락해서 1톤 트럭으로 부산지역에 가서 배추를 처분하고 오다 고속도로에서 경찰에 단속된 부모님은, 1만원을 요구 받고, </div> <div>5천원에 흥정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던 때였습니다. 5천원 짜리가 없어 만 원을 주니 5천원 거스름돈을 돌려 주더랍니다. </div> <div><br /></div> <div>이런 세상에서 교육을 받은 윗 세대들은 대학에서 어떤 심정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을까요? </div> <div>위의 사진 속 시위 현장에 내가 있다고 생각해 보면 40대 중반인 지금에도 오금이 저립니다. </div> <div><br /></div> <div> <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www.korea.kr/newsWeb/resources/attaches/namo/2010.10/18/15448/2020610_0106(6%EC%9B%94%ED%95%AD%EC%9F%81).JPG" width="527" height="346" alt="http://www.korea.kr/newsWeb/resources/attaches/namo/2010.10/18/15448/2020610_0106(6%EC%9B%94%ED%95%AD%EC%9F%81).JPG" style="border: none" /></div><br /></div> <div> (출처: 연합뉴스 )</div> <div>위 사진에서 전경과 맞서 돌을 던지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86년 사진이니, 그 때 대학 1학년이었다면 47세, 복학생이었더라도 지금은 </div> <div>50대 초반 쯤 되었을 것 같습니다. </div> <div><br /></div> <div>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예나 지금이나 있었습니다. </div> <div>90년 대 초반에도 학내에서의 시위는 많이 있었습니다. </div> <div>주로 도서관 앞에서 했습니다. 민중가요를 부르고, 겨우 수십명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쳤고 대형스피커에 키보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습니다.</div> <div>"뭣도" 모르는 신입생이 도서관에서 80년대 학번 선배들에서 "쟤네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죽겠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div> <div>그 선배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허름한 방에 자취를 하며 도서관에서 죽어라 장학금을 위한 공부, 공무원 공부만 하는 선배였지만 안색이 변하며,</div> <div>호되게 후배를 꾸짖었습니다. 동참은 못하고 침묵했지만 그들의 투쟁에 이렇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div> <div><br /></div> <div>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 지 모르겠네요. </div> <div><br /></div> <div>이 분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요? </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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