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72일을 맞이하는 5월 26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유혜원 학생의 생일입니다.
유혜원 학생입니다.
혜원이는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쌍둥이 남동생 둘, 이렇게 동생이 셋이나 있는 사남매의 맏딸입니다. 맏이답게 집에서는 동생들한테 엄하게 군기 잡는 "군기반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생들 앞에서는 무게를 잡아도, 혜원이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발랄한 십대 소녀였습니다. 학교에서 장기자랑이나 학예회를 하게 되면 안무를 알려주고 친구들을 주도하는 것은 혜원이 몫이었다고 합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해서 혜원이는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팬클럽에까지 가입할 정도로 열성팬이었습니다. 혜원이의 꿈은 방송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혜원이는 평소에는 느릿느릿하고 얌전하고 잠자는 걸 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행동이 느리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성격이라서 횡단보도에 아무도 없어도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혜원이 별명은 "거북이"였습니다. 혜원이는 쉬는 날에 잠자는 걸 너무 좋아해서 24시간을 내리 잔 적도 있고, 친구가 놀러왔을 때도 자고 있어서 친구가 깨우다가 포기하고 집에 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혜원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실 때가 많았다고 해요.
혜원이네는 형제가 많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혜원이 아버님은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해서 혜원이와 형제들의 대학 등록금을 모아두셨습니다. 혜원이도 부모님이 힘들게 애쓰시는 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혜원이는 학교까지 40-50분 되는 거리를 걸어다녔고, 과자 하나 사먹을 때도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을 받을 정도로 알뜰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용돈 5만원을 받았는데 혜원이는 그 중에서 겨우 2천원을 썼습니다. 부모님은 혜원이 대학 학자금 모은다고 아끼고 아꼈던 게 지금 와서는 후회되고, 그냥 마음껏 쓰라고 그 돈 다 줘버릴 걸 그랬다고 아쉬워하십니다.
아버지는 집안 형편이 걱정되니 일을 해야 해서 혜원이와 많이 놀아주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대리기사 일하시면서 야간자율학습 끝날 때쯤 단원고 부근을 지나게 되면 혜원이한테 전화하셔서 "아빠 너 봤다" 하고 반가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혜원이도 "나도 아빠 봤다" 하고 같이 반가워했습니다. 아빠는 혜원이가 귀여워서 자주 놀리고 장난을 치셨고 뽀뽀도 해 주는 다정한 부녀 사이였습니다. 혜원이가 아직 중학생일 때 아빠가 쓰시던 컵이 깨졌다고 직접 아빠 컵을 만들어드리기도 했습니다.
혜원이는 참사 6일째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살아 있을 때 가장 친했던, 옆반 2학년 2반 한세영 학생과 함께 서울 동작구 달마사에 잠들어 있습니다. 혜원이 아버님은 혜원이를 잃고 나서 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으러 전국을 돌고,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도 하셨습니다. 3반 유가족 반대표를 맡아서 열심히 활동하시느라 원래 편찮으시던 다리가 더 아파졌지만 아버지는 치료받는 것조차 혜원이한테 미안해서 수술을 미루셨다고 합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 허망하게 뺏겨버린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셔서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은 24시간 운영하며 무료입니다. #1111로 문자 보내 혜원이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얌전하고 귀여웠던 혜원이, 알뜰한 맏딸이고 다정한 친구였던 혜원이를 잊지 말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