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641일을 맞이하는 1월 16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김동협 학생과 2학년 7반 오영석 학생의 생일입니다. 반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div><br></div> <div><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1/1452909456QTbx7ghYyhEHO.jpg" width="407" height="508" alt="김동협.jpg" style="border:none;"></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김동협 학생입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혹시 혼동하실까봐 사족을 덧붙이자면 2학년 4반에는 김동<b><u>혁</u></b> 학생이 있습니다. 동<b>협</b>이랑 동<b>혁</b>이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반이 다릅니다. </div> <div style="text-align:left;">오늘 생일은 <b><u>동협</u></b>이입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동협이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연극부에서 활동하면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협이는 단원고 연극부 차장이기도 했습니다. </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때 동협이는 다섯 살 위의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배가 기울어지는데 다른 가족들이 걱정할테니까 말하지 말라고 누나한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동협이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생애 최고의 연기를 시작했습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배가 점점 더 기울고, 기울어진 배의 화장실에서 물이 새고, 전기가 끊어지고, 친구들과 함께 20년 넘게 묵은 구명조끼 하나에 의지해서 기울어진 배 안에 앉아 있는 광경을 유머를 섞어 중계합니다. "지금 배는 85도, 내 머릿속 온도는 100도!" 하고 랩도 하고, 나중에 구조되면 핸드폰 영상을 뉴스에 내보내고 세월호를 고발할 거라고 협박도 합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살고 싶다"고,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외칩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동협이는 속았습니다. 동협이와 친구들은 모두 속았습니다. 구조대는 오지 않았습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동협이의 핸드폰 동영상은 2014년 7월, 유가족분들이 진실규명을 위한 단식에 돌입하고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이 한창일 때 광화문 광장 세월호 농성장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난! 살고 싶은데!"라고 외치는 동협이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지자 동협이 어머님은 오열하다가 쓰러지셨습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함께 생일을 맞이한 2학년 7반 오영석 학생입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1/1452909456dDbrDqBEpuo9jAi.jpg" width="407" height="508" alt="오영석.jpg" style="border:none;"></div><br></div> <div>영석이는 외동아들입니다. 엄마아빠랑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머니가 반대하셨습니다. 영석이는 이 때 굉장히 실망했다고 합니다. </div> <div><br></div> <div>그래도 영석이는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좋아하는 애교 많고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설거지도 도와드리고 청소도 도와드리고, 엄마가 "사랑해" 하시면 "세상에서 어머니가 최고야"라고 대답했습니다. </div> <div><br></div> <div>영석이 아버님이 무릎을 다쳐서 수술을 하신 적이 있었고, 영석 어머님도 몸이 편찮으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석이는 이 때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간호조무사가 되겠다고 장래희망을 정했습니다. 어머니가 왜 의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냐고 물으셨는데, 영석이는 "환자들을 직접 돕는 일을 하고 싶다, 환자분들이 즐겁게 치료받을 수 있게 곁에서 도와드리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영석이는 무릎 수술을 하고 뼈에 철심을 박으신 아버지께 자기가 간호전문가가 돼서 그 철심을 빼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른이 돼서 돈 많이 벌면 부모님 세계일주를 시켜 드리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영석이는 고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무슨 고기든지 다 좋아해서 영석 어머님은 본인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시지만 영석이를 위해서 삼겹살도 구워주시고 치킨도 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면 영석이는 삼겹살로 상추쌈을 싸서 엄마가 좋아하시는 매운 고추를 넣어서 입에 넣어드리곤 했습니다. 영석이가 고기 구워먹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할머니 댁에는 영석이가 직접 만든 전용 석쇠도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그걸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영석이 아버지는 이제 그 석쇠를 만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div> <div><br></div> <div>영석이는 세월호 참사 5일만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이 영석이를 수습해서 구급차를 타고 진도에서 안산으로 돌아오실 때, 구급차 기사님께서 어디로 가면 좋겠냐고 여쭤보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영석이를 데리고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셨습니다. </div> <div>영석 아버지는 농담도 잘 하시고 다혈질이신데,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가 떨리시더니 끝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div> <div><br></div> <div>영석 아버지는 같은 7반 민우 아버지와 함께 근 1년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다가 샹하이 샐비지에서 세월호 인양 작업을 시작하면서 다른 부모님들과 함께 춥고 험난한 동거차도에 인양작업 감시를 하러 가셨습니다. 지금도 안산과 팽목을 오가면서 열심히 활동중이십니다. </div> <div><br></div> <div>영석 어머님은 안산 합동분향소 가족대기실을 돌보고 계십니다. 합동분향소 가족대기실에 오시는 가족분들을 위해서 분향소 옆에 컨테이너를 마련해서 간단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는 "부엌"을 차리셨습니다. 영석 어머니는 진실규명도 인양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미안해서 분향소 안에 들어가 영석이 얼굴을 볼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1월 10일 "겨울방학식" 때도 영석 어머니는 학교 안에 들어오시질 못하고 교문 앞에 계셨습니다. </div> <div><br></div> <div>아래는 오늘 생일인 2학년 6반 김동협 학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핸드폰 동영상입니다.</div> <div><br></div> <div><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FAbdIywTB7M" frameborder="0"></iframe><br></div> <div><br></div> <div>동협이의 마지막 목소리를 많은 분들께서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div> <div><br></div> <div>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 은 24시간 운영되며 무료입니다. #1111 로 문자 보내 동협이와 영석이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세월호에서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 빼앗긴 304명을 잊지 말아 주세요.</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