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골수도, 에어포켓, 리프트백, 감압챔버, 다이빙벨, 소조기, 조금기, 변침, 외방경사, 평형수, 스태빌라이저…
세월호 침몰 15일째다. 신문과 방송에선 연일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진다. 배가 시퍼런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면, 혹은 정상적으로 구조작업이 이뤄졌다면 우리가 굳이 몰라도 됐을 법한 단어들이다.
‘언딘’도 그 중 하나다. 연 매출액 150억원(2013년)에 불과한 중소기업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Undine Marine Industries)’는 며칠 사이 삼성전자만큼이나 유명해졌다. 그러나 알려진 건 많지 않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불거진 언딘 관련 의문을 정리했다.
언딘은 구조 업체인가?

먼저 언딘이 어떤 업체인지 알아보자. 공식 홈페이지에 보면, 언딘은 ‘오프쇼 해양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주식회사 언딘은 오프쇼 해양엔지니어링 기업으로서 심해구조물 및 오프쇼 플랜트 시공, 해양구난 및 해양장비 관련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해양산업 전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언딘 공식 홈페이지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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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딘이 제작한 홍보 브로셔 표지

언딘은 해양 관련 다양한 사업에 발을 담그고 있다. 공식 브로셔에 따르면, 사업 분야는 크게 7개로 나뉜다. 해상 풍력발전기를 건설하기도 하고 해저케이블 공사를 수주하기도 한다. 방파제도 짓고, 기름 유출 방제 작업도 한다. 침몰선박 인양 역시 사업 분야 중 하나다.
그러나 이미 보도된 것처럼, 언딘은 인명을 구조하는 업체가 아니다.

언딘의 주요사업 내용을 보면 선체 인양, 기름 유출 방제 등이 기록돼 있을 뿐 인명구조에 관한 내용은 없다. 언딘이 공개한 기존 사업 내역에서도 언딘이 인명구조 작업을 한 기록은 없다. 정부는 언딘이 국내 유일한 국제구난협회(ISU) 정회원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언딘에는 전문 구조인력이 없어 필요할 때마다 단기로 계약해 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4월24일)

해경은 언딘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국제구난협회(ISU) 회원사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언딘 측에서도 'ISU 회원만 대형 해양사고 처리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ISU는 '카르텔'일 뿐이라는 것.

언딘이 ISU 회원이라는 사실은 "왜 언딘이 구조.수색 작업을 주도하고 독점하느냐"는 다른 민간잠수사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를 무마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법은 물론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에도 ISU와 관련된 이런 내용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수부 관계자는 "ISU에 독점적 권한을 주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경 측도 "IMO 협약 내용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사고 이후를 수습하는 보험회사들이 ISU에 가입된 업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구난 작업에 참여하는 데 유리할 뿐이지,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양구난 계약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4월30일)
언딘의 작업은 적절했나

이 때문에 언딘이 애초부터 구조 작업보다는 인양 작업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정부는 뒤늦게 이를 시인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2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언딘의 활동이 선박 인양이 주목적인 것은 맞다. 17일(사고 다음날) 계약을 맺고 현장에 오니, 구조가 우선돼야 하고 해경·해군 등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으니까 구조에 동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4월25일)

언딘이 주도한 구조작업은 혼선을 거듭했다. 잠수사 투입을 놓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 구조작업은 지체됐다. 23일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기존의 바지선을 준공검사도 마치지 않은 언딘의 '최신' 바지선으로 교체하느라 8시간 가까이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황대영 한국수중환경협회장은 23일 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계약을 맺은 ‘언딘’측이 구조작업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교묘하게 민간잠수사들을 배제시키고 있다”며 “언딘이 현장을 장악하면서 일주일동안 물속에 들어간 (민간 잠수부들은) 불과 몇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4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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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충격적인 사실은 또 있었다. 사고 직후였던 17일 오전, 언딘의 고위 인사가 시신 인양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구조 작업이 15시간가량 중단됐다는 민간 잠수사들의 증언이 나온 것이다.

민간잠수사들은 지난 19일 오전 7시 언딘의 고위 인사가 시신 인양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구조 작업이 중단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5시간 뒤 언딘의 구조 작업이 다시 시작됩니다. 당시, 해경은 기상 악화와 거센 조류 때문에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고 밝혔습니다. 
고명석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대변인) : 강한 조류와 기상 불량으로 인해 수중 수색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민간잠수사들은 기상 탓이 아니라 구조 작업을 언딘에게 넘기려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JTBC 뉴스9, 4월28일)
왜 언딘이 구조 작업을 주도했나?

그렇다면 왜 언딘이 끼어든 걸까.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배가 침몰하면 사고 선박의 선주(船主)인 선사는 사고를 수습하고 침몰한 배를 인양할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언딘은 절차에 따라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고 사고 직후인 17일부터 현장에 투입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처음부터 언딘은 구조작업을 주도했다. 해경도, 해군도 아니었다. ‘민·관·군 합동 구조팀’은 언딘 잠수사들을 위주로 작업을 벌였다. 왜 그랬던 걸까.

22일 해경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시행된 수난구호법에 따라 해경이 허가하는 법정단체인 (사)한국해양구조협회가 23일 창립식을 열고 출범한다. (중략) 이에 따라 협회는 앞으로 해상에서 선박 충돌이나 침몰 등과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경과 함께 수색구조에 나선다. 국내 대형 구난업체의 주도로 회원사들의 장비와 인력을 통합해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2013년 1월23일)

언딘이 합동구조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근거는 2012년 8월 전면개정된 수난구호법이다. 2012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면서 “수난구호협력기관 및 수난구호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그리고 이때 법이 개정되면서 수난구호협력기관의 하나로 한국해양구조협회가 설립됐다. 한국해양구조협회는 수난구조활동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 (한겨레 4월24일)

‘협조 체계’라고는 하지만, 실제 구조 작업은 언딘이 주도했다. 해경은 “민간기업이 선체 수색 등 특수분야에서 더 전문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언딘이 해경보다 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틀린 말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애초 수난구호법(제 4장, 5장 참조)이 만들어진 취지가 그렇다.
법이 만들어질 당시, 해경은 ‘모든 장비와 인력을 다 갖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구조선박 한 척의 구입비와 유지비는 육지의 경찰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이 때문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대신, 민간의 장비를 그때그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논리가 등장했다.
언딘과 해경의 ‘부적절한 커넥션’

그런데 해경은 한국해양구조협회와 수난구조작업만 같이 한 게 아니었다. ‘낙하산’도 내려 보냈다.

작년 국감에서는 해양구조협회에 해경 퇴직 간부 6명(협회 지부 포함)이 취업한 것과 관련, 해경이 유관단체를 만들고는 퇴직 간부의 재취업 공간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협회 사무실은 해경청 내 민원동에 자리잡고 있다. (연합뉴스 4월27일)

-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제기인가요? 
김춘진 (새정치연합 의원): 해양구조협회는 무엇보다도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해경 퇴직자들의 재취업 공간으로 전락할 경우에 특히 이제 전문성,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판단해서 질의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나 대거 취업을 해 있던가요? 
김춘진 : 상근으로 있는 사람이 2명 비상근으로 4명인데 이 당시에 거의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무국장 중에 해경출신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4월29일)

김윤상 언딘 대표는 해양구조협회의 부총재를 맡고 있다. 19명의 부총재 중에는 전 현직 해경 간부급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언딘과 해경의 ‘부적절한 커넥션’ 의혹은 민간 잠수사가 처음으로 시신을 발견했지만, 언딘 측이 ‘윗사람이 다친다’며 만류했다는 보도로 한층 더 짙어졌다.

사고 발생 나흘째인 지난 19일 새벽 4시 20분쯤, 자원봉사에 나선 민간 잠수사들이 구조작업을 하다 처음으로 세월호 안에 있는 시신을 발견합니다. 4층 객실 유리창을 통해 3구가 보인 겁니다.
그런데 오전 7시, 계약 업체인 언딘의 고위간부가 해경 지휘함에서 이 배로 건너왔다는 겁니다. 한 민간 잠수사는 이 고위 간부가 "시신을 언딘이 발견한 것으로 해야 한다"며 "지금 시신을 인양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대로 시신이 인양되면 윗선에서 다칠 분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는 겁니다.
민간 잠수사들은 해경이 나흘 동안 구조작업을 한 상황에서 민간잠수사가 먼저 시신을 인양하면 해경의 구조 능력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민간 잠수사는 언딘 측이 “직원으로 계약을 해주겠다”면서 “모든 일은 비밀로 한다”는 조건도 제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JTBC 뉴스9 4월28일)
언딘 급성장 뒤에 정부 있었다
언딘은 2004년 벤처기업으로 설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급성장했다. 정부의 도움이 있었다. 수난구조법 개정으로 해경으로부터 건 당 수 억원을 받고 사실상 해양사고 수습 활동을 ‘아웃소싱’ 받은 것뿐만이 아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언딘에 30% 가량의 지분도 투자했다. 김윤상 대표의 지분(64.52%)와 개인주주 3명의 지분(5.56%)을 제외한 29.92%가 정부 출자 펀드의 몫이었다.

우선 정책금융공사(이하 정금공)가 지난 2010년 조성한 ‘KoFC-네오플럭스 파이오니어 챔프(Neoplux Pioneer Champ) 2010-7호 투자조합’이 10.98%를 보유 중이다.
이 펀드는 당시 정금공이 ‘녹색 및 신성장산업을 영위하는 국내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한다’는 목적으로 조성된 펀드다. 중개는 벤처캐피털인 네오플럭스가 맡았다. 지원대상은 녹색인증분야에 해당하는 중소·중견기업이다. 언딘은 지난 2012년 5월 녹색기술 인증을 취득했으며 오는 5월까지 유효하다.
역시 정금공이 조성한 ‘KoFC-보광 파이오니아 챔프(Pioneer Champ) 2010-3호 투자조합’도 5.49%를 가지고 있다. 중개는 보광창업투자가 맡았다. 보광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동생인 홍석준 씨가 최대주주 겸 회장으로 있다. (뉴스1 4월29일)

파이낸셜뉴스의 2012년 보도를 보면, 언딘은 2011년 말 400㎿급 조류발전 단지 조성을 위한 조류발전기 설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고갈됐다. 이 대목에서 정책금융공사가 구세주로 등장했다. 정책금융공사는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조에 맞춰 ‘녹색금융’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언딘은 해상 풍력발전소 설비 건설사업 등을 벌였고, 정부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특허청도 중소기업의 특허기술 사업화를 지원하는 펀드인 ‘EN-특허기술사업화투자조합’을 통해 언딘에 투자해 13.45%의 지분을 획득했다.
언딘은 지방자치단체들과도 협력 관계를 맺었다. 뉴시스에 따르면 경북 울진군은 지난해 8월, 언딘과 해양레포츠센터 민간위탁 계약을 맺었다. 147억원을 투입해 건립한 이 시설의 운영을 언딘에 맡긴 것. 이 시설은 현재 ‘(주)언딘 울진해양레포츠센터’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한국폴리텍대학도 언딘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에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산업잠수사 과정이 마련돼 있는데, 언딘은 지난 2006년 이 대학과 산합협력 교류를 체결했다.
언딘의 해명과 남아 있는 의문
언딘은 29일 진도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윤상 대표는 기자회견문에서 구조작업을 지연시켰다는 등의 의혹이 전날(28일) JTBC에 보도된 데 대해 “무책임한 보도”라며 “JTBC 보도가 사실이라면 저는 회사의 대표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수 이사는 “지금 타이밍은 들어가도 성과 없으니 계획과 작전을 짜서 정확하게 타깃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이 말이 '고의로 시신 인양 작업을 지연시켰다'는 오해를 빚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JTBC는 29일 뉴스에서 또 다른 민간잠수사의 증언을 재차 소개했다. 실제 민간잠수사들이 시신을 처음 발견한 건 19일 새벽 4시경이었지만, 언딘이 시신을 인양한 건 그날 자정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또 언딘 측 주장과는 달리, 당일 날씨도 좋았다고 반박했다.

-그 이후에 언딘이나 해경 쪽에서 '시신 수습은 좀 미뤄야 된다'는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강대영(민간 잠수부) : 당시 그 김 이사라고 하시는 분이 현장의 작업장소에는 없었는데 언제 올라왔는지 자꾸 와서 "선배님, 이거 저희가 전체 맡아서 하는 일인데 제가 이런 일을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부터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 당신도 회사생활을 해봤는지 몰라도 이런 경우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큰 손실이 있겠느냐." 이러면서 좀 더 미뤄줬으면, 그리고 또 뭐 원하는 게 있느냐.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JTBC 뉴스9 4월29일)
민간 잠수사들로부터 시신인양 작업을 '양보' 받은 언딘이 왜 시신 인양 작업을 20시간 가까이 지체했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언딘 측이 민간잠수사들에게 '윗사람'을 언급했던 것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추정이 나오지만, 아직 확인된 건 없다.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의 안전은 국가가 지켜야 한다. 해양 안전을 민간기업의 장비와 인력이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민관 협력’이라는 취지가, 이런 것이었을까.
지난 2010년,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호는 깊은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정부는 수색작업을 담당할 업체로 언딘을 선정했다. 유족 이원상씨는 “처음에 5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는데, 선체 진입을 위해서는 5억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끝내 형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세월호 실종자는 30일 현재 9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