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처음 만난 날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은, 서로의 감정이 묻어 더 이상 그 원래의 색을 볼 수 없는 둘 만의 사랑을 차갑게 비웃는 것 같았다. 서서히 굳어가는 눈 위로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지만 그녀의 얼굴에도, 그 얼굴의 주인에게도 반가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선뜻 건넨 커피와 같이 그들의 마음도 그랬으니까.
“변해 버린 걸까.”
“아니, 처음부터 그랬어.”
식어버린 커피가 아쉬워 건넨 말에, 그녀는 약간이나마 남은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말을 하는 그의 눈엔 봄과 같은 따뜻함은 없었고, 풍기는 체취에 여름의 뜨거움도 없었다. 기분 좋은 서늘함 이었던 목소리는 이미 겨울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아아. 이젠 정말 끝이다.
“왜 부른 거야?”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 연신 눈길을 주는 것이 조금이라도 같이 있기 싫다는 그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슬퍼 보이는 게 왜일까. 그녀의 눈가에 조금씩 맺혀가는 눈물 때문에? 아니, 그들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괴리감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
그녀의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했다. 이미 끝났다고, 모두 버렸다고 여겼거늘 무엇이 남아 이렇게 슬프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변덕이 심한 감정은, 자신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몸,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 그리고… 산산조각 나버린 마음까지.
“너 웃긴다.”
못 볼꼴을 본다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얄밉게 보인다.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무너지는 걸 즐기는 듯 약간의 웃음마저 띄며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아닌가? 그녀가 믿었던 그의 진실 된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고 거짓으로 남아 믿음까지 지웠다.
“이러려고 부른 거면, 사람 잘 못 봤어. 구차해지지 말자. 응? 서로 즐겼으면 됐잖아? 그러니까…”
그녀는 더 이상 듣는 걸 거부했다.
“너 진짜…”
들리지 않았다.
“질린다.”
듣지… 않았다.
그
뿌옇게 변해버린 세상에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커플들이 사사로이 뭉쳐 저마다의 사랑을 뽐냈다. 자칫 사람이 얼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추위도 그들을 막지 못할 뿐, 그저 홀로인 사람의 옆구리를 간질거리는 게 끝이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의 풍경이 심했는데, 커피 두 잔을 양손에 쥐고 이름 모를 가게 앞에 앉아 뚱 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는 한 남자는 연신 그것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누구 놀리나. 으흡.”
말하다 말고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최대한 움츠리는 모습이 사뭇 우습게도 보였다. 얼마나 밖에 있었는지 뻘겋게 달아오른 코는 그걸 더했으면 더했지, 그가 바란 멋들어지게 보이는 걸 연출하지는 않았다.
“제발 좀 식어라 응?＂
그가 이렇게 밖에 나와 앉아 있게 된 원인은 그 말을 그대로 무시한 체 연신 김을 뿜으며 나 아직 안 죽었다며 외쳤다. 몇 십 분이나 계속 된 촌극 아닌 촌극. 조금씩 늘어가는 주변의 시선 덕에 그는 결국 무생물에게 말을 거는 걸 포기했다. 시간을 때울 만한 걸 찾기 위해 머릿속을 뒤져보다 아직도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얼마 전의 기억. 강제로 빨려 가듯이 그의 의지는 흩어지고 다시금 제발 지워지길 바랐던 마음이 솟아나 눈앞을 채웠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그는 앞에 지나가는 하나의 세포 같은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도 도둑놈 소리를 들을 법한 예쁜 애인이 있었고, 간 쓸개는 물론 오장육부 전체를 내주더라도 아깝지 않다 여길 정도로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일 년 전, 지금과 같이 눈이 잔뜩 내리는 날에 그 시작을 알렸으나 며칠 전에 그 끝도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 누군가 사랑이 식어 헤어졌냐 묻는다면 그의 대답은 지금도 같다.
“당연히 아니지.”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되어 이별이 되었다면 이 자리에 나와 있지도 않았을 거고, 어설픈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커피를 사다 식을 때까지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녀도, 이별을 부추겼던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잘못. 강하고, 단단하지 못한 게 죄라면 큰 죄다.
“시발, 드라마도 아니고.”
애인의 부모가 찾아와 딸과 헤어져 달라면 드라마 같은 상황이긴 하지만 어째 이해는 해보려고 노력은 할 수 있다. 하다못해 친구까지는 억지로라도 우겨 넣어 볼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도, 친인척도, 가까운 사이도 아닌 제 3자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당연히 처음엔 그도 미쳤냐며 난리를 부렸다. 헌데, 도리어 자신이 미쳤다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어이가 없어 사고를 칠 뻔 했다. 친구가 억지로 끌고 간 병원의 정신과 의사에게 그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그는 자신이 마치 부처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뜯어 말리다 시피 겨우 진정을 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도, 그렇게 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무당의 말처럼 믿지 않았다.
어쨌거나 달변가의 친구 말에 속아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조금씩 흐려지며 사라져가는 모습에 자신이 미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 년간 조금의 시간도 아까워 늘 같이 붙어 다녔던 여자친구가 흩어지는 모습은 누가 적응이란 걸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아연실색하며 마음을 다스리다 이별 아닌 이별을 시리도록 느끼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일주일 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에서 봐.』
귀신에게도 핸드폰을 팔아먹는 통신사의 수단이 대단하다며 놀리는 친구를 냅다 걷어차고 급하게 준비해서 나온 것이 오늘. 완벽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이 어설픈 식어버린 커피. 오늘만은 쓰레기가 되라며 다시금 놀리는 친구를 아예 굴려버린 뒤, 하염없이 식기를 기다린지 어언 몇 십 분.
우웅
『나 도착했어.』
타이밍 좋게 울리는 핸드폰에 그는 잠겨버린 생각을 벗어났다. 이제 남은 건 가슴 아픈 이별의 연기. 그는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양손에 커피를 쥐고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
“너 진짜… 질린다.”
모든 상황이 지나가고, 그는 등을 돌렸다. 무너지는 그녀를 보니 왜인지 가슴이 아팠지만, 조금씩 흩어져가는 모습에 현실이 아니라 억지로 여겨본다. 마지막 가는 길,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며 좋게 보내주고는 싶지만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면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누군가의 말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변명하며 합리화 했다.
일 년 간의 기억이 조금씩 눈에 새겨진 발자국에 비춰졌다. 저마다 웃는 얼굴로 가득 찬 그녀의 모습.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말. 이 말 정도는 해줘도 될 터. 이제 몸이 사라져 얼굴만 남은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했어.”
“…….”
그 말을 듣자 그녀는 마지막으로 웃어 보인 뒤 사라졌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만족하길 바랄 뿐이었다. 부정하고, 모질게 대했지만 어쨌거나,
“첫사랑이지.”
그는 그 말을 남긴 체 거리 잔뜩 몰려 있는 연인들 속으로 사라져갔다.
꿈으로 남았지만, 사랑했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녀가 원하던 따뜻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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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으나 오유에 올리는 글이니 패스. 절대 제가 그걸 못해서 못적어서 안한 건 아닙니다.
급하게 적은 거라 퇴고는 못했습니다.
asdqazwsxedcrfv@한메일
히히히힣 이별 발사!!!
*제목 변경이 불가하다면 탈락 처리 해주세요. 모티브로 따온 예전에 적었던 글 때문에 비슷하게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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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녀의 고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