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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인석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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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36081
    작성자 : 윤인석
    추천 : 2
    조회수 : 385
    IP : 112.171.***.13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08/15 07:28:41
    http://todayhumor.com/?readers_36081 모바일
    단편12) 초능력 소녀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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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노아는 곰 인형을 들고 뛰었다. 

     

    <투철한 신고 정신으로 초능력자 박멸하자!

    초능력자 신고는 111> 

     

    하지만 가로수에 걸린 현수막을 보니 절로 몸이 굳어온다.

    익숙하지만 오늘따라 섬뜩한 문구다.

      

    있잖아. 노아야. ...너무 꽉 쥐지 말아줄래? 아픈 건 아닌데 기분이 되게 그래.”

      

    노아의 손에 들린 곰 인형이 말했다.

      

    ? ! 어어! 미안.”

      

    노아가 깜짝 놀라며 답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곰인형이 노아를 올려보며 물었다.

      

    “...괜찮아?”

      

    그럼.”

      

    어려도 사내인지라, 겁먹은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노아가 다시 뛰기 시작하며 화제를 돌렸다.

      

    .... 연지 아빠는 지금 뭐 하고 있어? 막 무섭게 하지는 않아?”

      

    말했잖아. 눈이 가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겠어. 자꾸 왔다 갔다 하면서 중얼중얼하고.... 무서워.”

      

    곰 인형을 통해서 납치된 수리의 떨림이 전해져 온다.

    노아가 이를 굳게 악물었다.

      

    알았어. 빨리 가자.”

      

    노아는 수리네 집을 향해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 * * *

      

    꼭 그러셔야만 했습니까? 국장님?”

      

    전화기 너머로 원독에 찬 기태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식은 전화기에 소리가 새어 들어가지 않게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초능력자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우리네.”

      

    “...우리 연지. 연지는 동전 하나 겨우 들 정도의 힘밖에 없었습니다. 컵 하나도 못 드는 그런 애가 인류를 위협한다고요? 꼭 그렇게 직접 잡아들여야 했습니까? 성역 없는 집행을 했다고요? 그런 정치적 쑈에 우리 연지를 써먹었어야 했습니까?”

      

    강 팀장. 하아. 아니, 기태야. 나도 맘이 아파. 네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일은 쑈가 아니야. 그저 초능력자를 찾고! 잡는다! 매번 하던 단순한 그 일을 한 거야! 그게 누가 됐든! 어쩌다 내가 발견해서 내가 잡은 것뿐이야. 그리고 뭐? 힘이 약하다고? 이 밤에 햇병아리들에게나 하는 초능력 사고 사례를 읊어야겠나?”

      

    경식이 사석에서처럼 말을 놓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동전 하나 들 정도의 염동력? 그 정도 힘이면 뇌 신경을 박살 낼 수 있어. 케이스 n-3424 기억나나? 그 청소부는 그보다 약했어! 그런데 씨발! 그 염병할 염동력에 주변 인간들이 하나둘 시름시름 죽어 나갔잖아. 그 노인네는 자각도 못 했어. 그냥 딸꾹질 하듯이 염동력을 퍼트렸고, 주변 인간들 내부를 휘저었지. 우리가 확인한 것만 그 초능력자에 죽은 게 몇 명이었지? ? 강기태?”

      

    “439명이었습니다.”

      

    기태가 씹어 뱉듯이 말했다.

      

    젠장! 확인한 것만 439명이야. 60 먹은 노인네가 살면서 죽인 게 439명인지 4천 명인지 누가 알아? 그 노인네가 악한이었어? 아냐! 그냥 평범한 청소부였지. 하지만 죽여야지. 누가? 너 강기태랑 나. 우리 초능력 수사국이 아니면 누가 하겠나? ? 케이스 k-332은 어땠지? w-1932? 초능력은 어디로 튈지 몰라! 통제 불능이라고!”

      

    경식이 열변을 토했다.

      

    초능력자는 힘의 세기가 문제가 아니잖나. 정상인들은 정상인들의 법칙이 있어. 그리고 초능력자들은 그 법칙을 무너트려. 촛불이나 켜던 놈이 갑자기 도시를 날려버린다고! 어떻게? 몰라! 그놈들은 법칙이 안 통하니까!” 

     

    “...연지는 고작 15살이었습니다.”

      

    초능력자에게 예외를 둘 순 없네.”

      

    경식이 단호하게 말했다.

      

    “......”

      

    전화기 너머 기태는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경식은 이 불편한 침묵을 조용히 참아냈다.

    평소라면 팀장 나부랭이가 야밤에 전화를 걸어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태와는 어미 없이 딸을 기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사석에서도 인연이 있던 사이다얼마나 딸을 아끼는지 봐온 경식은 최대한 인내를 발휘했다.

      

    “......?”

      

    무거운 침묵을 버티던 중.

    경식은 어렴풋이 기태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라니.

      

    ‘...하긴 딸을 먼저 보낸 아비가 제정신 일리가 있나.’

      

    크크크. 크크크큭.”

      

    기태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쇠로 철판을 가는 듯한 웃음소리.

    경식은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기태야. 일단 푹 쉬면서 마음 다잡고....”

      

    국장님!”

      

    기태가 말을 끊었다.

     

    크크크. 초능력자에게 예외가 없다고요? 크크. 연지가 수리랑 같은 나이였죠? 대단한 우리 국장님은 수리가 죽어도 그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실지 궁금하네요.”

      

    ! 네 심정은 잘 알겠는데 상관없는 애 이야기는 하지 마! 기태야. 기태야! ...선 넘지 마라.”

      

    경식이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감히 내 딸 이야기를 꺼내?’

     

    있을 수 없는 무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누가 감히 경식의 역린을 건드리겠는가?

    초능력 수사국 국장인 경식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초능력자를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혹은 누군가를 명예 초능력자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그것이 내부 직원일지라도.

      

    크크. 제가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뭐 한 줄 아십니까? 글쎄요. 왜 그런지 저도 모르겠습니만, 연지 생각이 나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정신 차려 보면 수리를 보고 있더군요.”

      

    ! 강기태! 너 인마!”

     

    경식의 호통쳤다.

      

    국장님. 중요한 이야기니까 마저 들어 보십쇼.”

      

    기태는 경식의 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한참 멍하니 보다가.... 그래요. 솔직히 수리를 보면서 방아쇠에 손도 몇 번 올리고 그랬습니다.”

      

    “......”

      

    경식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기태는 선을 넘었다.

    내일 아침엔 새로운 케이스가 추가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당기지 못했습니다. 젠장! 연지가 그렇게 갔어도 난 초능력 수사국 팀장이니까. 연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초능력 수사국 팀장이니까!”

      

    기태가 피를 토하듯 외쳤다.

      

    “...알겠네. 밤이 늦었으니....”

      

    이미 맘을 정한 경식은 이 무의미한 통화를 마무리 하려 했다.

    곧 죽을 이와 길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

      

    크크크. 근데 그렇게 지켜보는데 정말 재밌는 걸 봤습니다. 씨발. 운명이라는 게 진짜 있나 봅니다. 제가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아십니까? 크크크크.”

      

    ?”

      

    전화를 끊으려던 경식이 주춤했다.

    무얼 봤다는 걸까?

    수사국장으로서 그는 항상 정보에 민감했다.

    새로운 정보 앞에서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직업병이라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번엔 그 이상으로 본능이 꿈틀거렸다.

      

    수리가 초능력자라는 거 아십니까?”

      

    기태가 참아왔던 폭탄을 터트렸다.

      

    ? 기태 이놈! 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어디서 개수작이야? 미쳤어? ?”

      

    하하하. 아하하하하.”

      

    기태가 웃었다.

    정말 유쾌하다는 듯이.

    경식은 그 웃음소리를 듣고 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진실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면 내가, 내가 모를 리 없어.”

      

    하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말이다.

      

    하하. 왜 이러십니까? 저라고 연지가 초능력자일 줄 알았겠습니까? 15살 사춘기 꼬맹이 속을 안다고요? 국장님이? 집에서 식사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크크크크.”

      

    네가 앙심을 품고 조작을 해보려나 본데....”

      

    ? 그래요? 그럼 연구소에 의뢰해 볼까요? 바로 결과 나올 텐데요?”

      

    “.......”

      

    ? 말씀이 없으십니까? 아하. 연구소 라인은 부국장님 쪽이었죠. 국장님 파워가 안 통해서 조작이 곤란하신가요? 그래도 몇몇 심어두시지 않았습니까? ! 맞다. 감사 시즌이었죠. 하하. 여러모로 곤란하시겠습니다.”

      

    기태가 빈정거렸다.

      

    “...기태야. 원하는 게 뭐냐?”

      

    짧은 침묵 후, 경식이 말했다.

    사실상 항복 선언이었다.

      

    딱 하나 원합니다. 초능력자로부터 인류 수호! 우리가 하던 그거.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 성역 없는 집행이다. 이 X새끼야!”

      

    기태가 소리쳤다.

      

    “.......”

      

    경식은 2층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숨겨진 패널을 꺼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다.

    당장! 당장 기태 이놈을 끝장내야 한다.

    하지만 기태가 신고하기 전에 가능할까?

    피해 없이 은폐할 수 있을까?

    하필 정치적으로 민감한 때에 이런 일이 터졌다.

    경식의 손이 불안으로 떨렸다.

     

     .”

      

    서재에서 쉬고 있던 골든 리트리버, 뭉치가 경식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하우스!”

      

    경식이 낮게 명령했다.

      

    끼잉.”

      

    경식의 분위기를 읽은 뭉치가 도망치듯 자기 캔넬 안으로 들어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우리 국장님 왜 말이 없으십니까? 초능력자에게 예외는 없다! 아닙니까?”

      

    “....”

      

    경식은 패널의 인증 절차를 풀면서 이를 악물었다.

      

    크크. 좋아요. 정 그러시면 우리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경식이 말이 없자 기태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경식은 기태의 목소리가 독을 품은 뱀이 쉭쉭 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일단 패널을 누르던 손을 멈췄다.

      

    수리를 초능력 연구센터로 넘기거나, 아니면 국장님은 개 같은 위선자라는 걸 인정하고 평생 숨기며 사십시오.”

      

    “....정말인가?”

      

    경식의 물음은 이미 답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X새끼.”

      

    정말이냐고 묻잖아?”

      

    기태가 아무리 모욕을 해도 상관없었다.

    여태껏 자신도 몰랐지만 경식에겐 인류보다 수리가 무거웠다.

      

    물론 공짜는 안 되고.”

      

    뭘 원하나? 말만 하게.”

      

    경식이 다급하게 말했다.

     

    나도 이 지경까지 왔으니 여기서 살긴 글렀고. 멀리 떠나야 할 테니 뱃삯이나 좀 쥐어 주십시오. 10. 현금으로. 혼자서 오십쇼. 만나서 직접. 그 정도는 우리 국장님 금고 안에 충분히 있잖습니까?”

      

    권력에는 금력이 붙는다.

    은행에 갈 필요도 없다. 10억 정도는 경식의 금고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금으로 마련되어 있다.

    각 나라 화폐 별로.

    기태도 이 사실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

      

    경식은 기태가 돈 마련을 핑계로 시간을 끌 수 없는 작은 액수를 불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혼자 오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놈. 진짜로 해볼 생각이구나.’

      

    뻔한 일이다.

    딸을 먼저 묻은 아비는 복수를 꿈꾸고 있다.

      

    알겠네. 어딘가?”

      

    경식이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떠올리며 기태를 떠보았다.

    약속 장소를 알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

      

    하하. 그건 좀 있다 말하겠습니다. 수리야. 네 아빠가 네 몸값으로 10억을 주겠데. 1초도 고민 안 하시네. 부자 아빠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그치?”

      

    ? 강기태! 지금 뭐라고 했어?”

      

    경식이 벌떡 일어나 수리 방으로 뛰어갔다.

    벌컥 문을 열었지만, 수리가 없다!

      

    수리야! 수리야!”

      

    화장실이며 여러 곳을 둘러보아도.

    수리가 없다!

      

    . 뭡니까? 국장님. 설마 수리가 없어진 것도 몰랐던 겁니까? 아무리 감사 철이라지만 너무 수리에게 무심한 거 아닙니까? 우리 수리 섭섭해서 어떡합니까?”

      

    , . 이 씨발 새끼....”

      

    경식이 분노로 몸을 떨었다.

    당연히 수리는 잠들어 있는 줄 알았다.

    평소처럼.

    그래. 평소처럼 수리가 깨기 전에 출근했고, 수리가 잠들었을 시간에 돌아왔지만.

    수리는 무사히, 집안에서 편히 쉬고 있을 줄 알았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데 저 잡놈이 내 울타리에 들어 있어야 할 내 아이를! 그 어린 애를!’

      

    경식이 다시 서재로 뛰어 들어가 세컨 폰으로 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제발.

    수리가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국장님. 통화 중에 다른 데 전화를 걸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태가 수리의 핸드폰을 받았다.

      

    “....!”

      

    경식이 초인적인 인내로 터져 나오려는 고함을 씹어 삼켰다.

      

    “...어디로 가면 되나?”

      

    경식이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저도 준비를 좀 해야 해서요. 곧 다시 연락 드리죠.”

      

    기태가 전화를 끊었다.

      

    으아아아아아!”

      

    기태가 괴성을 지르며 책상을 내리쳤다.

      

    끼잉.”

      

    깜짝 놀란 뭉치가 캔넬 안에서 신음을 내며 몸을 말았다.

      

    * * * * *

      

    아빠랑 연지 아빠 전화 끝났어. 잘 된 것 같아!”

      

    몰래 통화 내용얼 엿듣던 수리가 곰 인형을 통해 말했다.

      

    둘은 수리 집 앞에 도착했지만, 경식과 기태의 통화를 듣기 위해 문 앞에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말? 진짜야?”

      

    노아가 흥분해서 말했다.

    만일 일이 잘 풀리면 초능력 수사국의 높은 분이라는 수리 아빠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수리와 이야기한 작전을 펼치려면 노아도 초능력자라는 걸 말해야 한다.

    수리를 위해서 각오했지만, 말하지 않고도 수리가 풀려난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다.

      

    ! 연지 아빠가 몸값을 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주겠데. 아빠가.... 나 초능력자여도 괜찮나 봐. 히잉.”

      

    수리가 아기처럼 훌쩍였다.

    노아가 주춤대다 곰돌이의 머리를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밤 중에 수리에게 선물 받았던 곰 인형에게 뺨을 맞고 깨어나, 납치된 사실을 듣고 온갖 끔찍한 상상을 했었다.

    그리고 수리를 위해 각오를 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다행히 잘 해결되려나 보다.

      

    !?”

      

    훌쩍이던 곰 인형이 털을 바짝 일으키며 굳었다.

      

    왜 그래?”

      

    “..., 잠깐만.”

      

    수리는 자기 진짜 몸으로 무언가를 듣는 듯 말이 없었다.

    노아의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연지 아빠가... .... 연지에게 보낸 데. 막 미친 듯이 웃고.... 무서워. 나 죽일 거래. 어떡해. 나 무서워. 노아야. 아빠아. 히이이이잉. 무서워. 노아야. 으으으윽.”

      

    수리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 몸값 받고 풀어준다고 했잖아?”

      

    노아가 깜짝 놀라 말했다.

    다 잘 해결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몰라. 나 죽인 데. 으아아앙. 기다리래. 가져올 게 있데. 어떡해. 노아야. 아빠아아.”

     

    이잇!”

     

    노아가 벌떡 일어나 수리네 집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마구 두드렸다.

     

    쾅쾅쾅!

     

    아저씨! 아저씨! 문 열어봐요!”

     

    수리네 집은 대저택이다.

    너무 커서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까?

    노아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저택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수리가 위험하다고요!”

     

    그러나 노아가 수리의 이름을 입에 담자마자 반응이 왔다.

     

    . 작은 신호음이 가고, 인터폰에서 소리가 났다.

     

    뭐냐? 넌 누구야?”

     

    아저씨! 수리가 위험해요! 문 열어요!”

     

    덜컥.

    대문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노아는 대문을 몸으로 밀쳐 열고, 넓은 정원을 구르듯이 달렸다.

    그리고 저택의 문을 열어젖혔다.

     

    수리! 우리 수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수리의 아빠, 경식이 노아에게 물었다.

     

    아빠아! 연지 아빠가 날 죽이려고 해! 살려줘!”

     

    노아의 손안에서 수리가 외쳤다.

    곰 인형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경식의 표정이 순간 무너졌다.

    혹시라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꺾였다.

    수리는 초능력자다!

    하지만 경식은 이를 악물었다.

      

    정신 차려! 수리를 구하는 게 먼저다!’

      

    경식은 노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리를 빼앗아 들었다.

      

    아가. 침착하고. 지금 어디니? 지금 이미 아빠 부하들이 기태를, 아니 연지 아빠를 찾고 있어.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줘야 빨리 찾을 수 있어.”

      

    몰라. 집에 오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묶여있고, 눈도 가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겠어. 으흐흐흑.”

      

    소리나, 냄새는? 뭐든 알만한 건 없니? 아니면 그래. 이게 네 초능력이지? 평소엔 얼마나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니?”

      

    경식이 수리의 울음에도 최대한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몰라. 그냥 움직이는 거란 말이야. 흑흑.”

      

    수리가 미국 여행 갔을 때도 이걸로 대화했어요.”

      

    노아가 대신 대답했다.

    경식이 인상을 굳혔다.

      

    ‘...특급 위험 인자.’

      

    순간 수리가 굉장히 위험한 초능력자라는 생각이 스쳤다.

    초능력 초기 발현 현상이나 강약과 상관없이 관련 제약이 적을수록 점차 무서운 재앙으로 변하곤 했다.

    거리에 따른 능력의 감소는 강력한 제약 중 하나이고, 거리 제약이 없는 초능력자는 능력 종류에 상관없이 특급 위험 인자다.

    거리 제약을 느껴본 적 없는 수리의 능력은, 이 작고 귀여운 곰 인형과 다르게 무서운 능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관없어. 지금 중요한 건 수리의 안전 뿐이다. 다행이 기태 그놈에게 수리가 특급이라는 것까진 들키지 않았나 보군.’

      

    기태가 눈치 챘다면 수리가 초능력을 쓰지 못하도록 계속 재우거나, 지속적인 고통을 가했을 것이다.

    복수에 미친 기태는 고통 쪽을 선택했으리라.

      

    그럼 지금 해야 할 일은....’

      

    경식은 그저 수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기본적인 전화를 통한 위치 추적은 실패한 상태다. 미쳐 있어도 기태는 수사국 팀장이었다. 더 추적해봐야 소용 없을 거다.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최측근들만 동원해 수배를 명령해둔 상태지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기약이 없다.

    여기서부터 거리만 알아도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텐데, 그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 노아가 소리쳤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지금 연지 아빠가 수리를 죽이려 한데요. 뭘 가지러 갔다는데 언제 올지 몰라요!”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 아빠. 나 죽인 데. 막 쇳소리도 나고, 뭔가 준비하고 있어. 살려줘. 아빠. 으으윽. 으윽.”

      

    아아.”

     

    경식이 깊게 탄식했다.

    생각보다 더 시간이 없다.

    어쩌면 몇 분 후에 수리가 죽는다.

    경식은 무기력과 좌절감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 방법을 써야 하나?’

      

    경식이 마지막 수단을 떠올릴 때였다.

      

    제가 수리를 소환할 수 있어요!”

      

    수리가 흐느끼는 가운데 노아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

      

    경식이 그제야 노아를 제대로 바라봤다.

    수리와 또래의 남자아이.

    겁먹은 와중에도 각오를 다지는 표정이다.

    수리의 친구인 걸까?

    혹시 남자 친구?

      

    저도 초능력자예요. 전 돈을 먹으면 몸에 저장할 수 있고요.”

      

    노아가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줬다.

    32,420.

    아무것도 없던 피부에 빛나는 숫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 돈을 사용하면 이렇게 물건을 소환할 수 있어요.”

      

    노아가 손을 펴자 그 위에 과자 한 봉지가 생겨나고, 팔뚝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30,420.

      

    우리 학교 매점에 있는 걸 가져온 거예요. 이걸로 수리를 소환할게요.”

      

    노아가 수리와 함께 구상한 작전을 말했다.

    경식이 제 발로 찾아온 이 초능력자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초능력 수사국장으로 오래 근무한 경식도 처음 보는 생소한 특수 능력이다.

      

    그걸로 수리를 소환한다고?”

      

    경식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 , 수리가 그랬는데요. 아빠가 자기 보험 들었을 거라고. 있잖아요. 생명보험. 그거 아빠가 가격을 알 거라고. 그걸로 소환 할 생각이었거든요.”

      

    노아는 경식의 굳은 표정을 보고 조금 주춤거리며 수리와 상의한 작전을 말했다.

     

    생명 보험?!”

     

    경식은 이 참신하고 불경한 발상에 속으로 환호했다.

    가격이 매겨진 물건을 소환하는 능력.

    인간의 가격은 얼마로 해야 할까?

    생명 보험금은 인간의 가격으로 정당할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따랐지만,

    수리를 구할 수 있다면 다 상관없는 일이다.

    수리의 생명이 경각에 달한 지금 무언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악마와 손을 잡는 짓거리도 할 수 있다.

     

    , 그게 너무 비싸면, 아까 수리가 몸값 주기로 했다고 들었는데요. 그걸로 하면 안 될까요?”

      

    몸값!

    생명 보험금보다 더 직관적인 단어다.

    경식은 갑자기 떨어진 동아줄을 잡아보기로 했다.

      

    잠깐만 기다려라.”

      

    경식은 두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금고로 향했다.

    순식간에 10억을 챙겨온 경식이 노아에게 돈을 내밀었다.

      

    “10억이다. 이게 수리의 몸값이야.”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노아는 순식간에 10억을 꺼내오는 경식을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당연히 은행에 가야 하는 거로 생각했었다.

    밤이 늦었지만, 권력으로 어떻게든 할 거라고....

      

    노아야.”

      

    수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노아를 불렀다.

    노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 이럴 시간이 없지. 내가 수리를 구해야 해.’

     

    노아가 수리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돈을 집어 들었다.

    지금은 대답할 시간조차 아깝다.

     

    경식은 노아가 돈을 집어삼키기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입안에 들어간 돈은 분해되기라도 하는 걸까?

    노아는 씹거나 삼키는 동작도 없이 거침없이 돈을 밀어 넣기만 했다.

    노아의 팔목에 나타난 숫자도 빠르게 불어났다.

     

    흑흑흑.”

     

    수리가 훌쩍이는 소리와 노아가 돈을 삼키는 소리만 울렸다.

    경식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기태가 준비를 한다고 했으니 고문을 할 생각일 것이다.

    기태는 초능력 수사국 팀장으로서 수많은 고문법을 알고 있다.

    초능력자를 숨겨주는 자나, 초능력자임을 부인한 자들에게 답을 얻기 위한 업무 능력의 일환이다.

     

    겁 많고 여리디 여린 우리 수리를, 이 어린 것을....’

     

    경식은 기태의 작업대에 올라간 수리를 떠올려 보았다.

    서늘한 공포가 등골을 스쳤다.

    ...수리는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제발. 빨리! 빨리 먹어라!’

     

    경식은 마치 노아가 기태라도 되는 양 노려봤다.

    일생 가장 끔찍한 기다림이었다.

     

    , 다 됐어요. 그럼 소환 할게요!”

      

    노아가 돈을 말끔히 먹고 말했다.

      

    잠깐만!”

      

    경식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수리야. 연지 아빠가 오는 거 같으면 바로 말해라. 알았지?”

      

    , .”

      

    경식이 수리에게 언질을 주고는 노아를 바라봤다.

    수리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초능력은 위험한 힘이다.

      

    혹시 내 손으로 수리를 죽이는 꼴이 될지 몰라.’

      

    최소한의 확인이 필요하다.

      

    어느 쪽이 더 안전할지 확인해야 해.’

      

    경식에게는 마지막 수단이 남아 있었다.

    초능력 수사국이 비밀리에 감추고 있는 초능력 실험체들.

    이들을 이용한다면 기태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까운 일인 데다, 무력 진압 중 수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실험체를 동원하면 기태를 찾아낼 확률은 100%.

    하지만 구해낼 확률은....

      

    열에 한 번도 성공하기 힘들겠지.’

      

    통제가 불가능해서 공격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초능력자는 실험체로 삼지 못했다. 진압 자체는 초능력이 아닌 요원들이 해야 한다.

    초능력 수사국의 특수 요원들은 우수하다고 자부하지만, 기태도 초능력 수사국 팀장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몸.

    진압 명령을 내리면 금세 수상한 눈치를 채고 수리부터 해칠 것이다.

      

    그건 수리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야. 확률이 너무 희박한 도박.’

      

    경식은 부디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아도 되길, 이 꼬마가 수리를 구할 해답이길 간절히 바랐다.

      

    노아라고 했지? ! 이 초능력 생명체에 써 본 적 있니?”

     

    , 아니요. 들킬까 봐 아무도 없을 때, 슈퍼 가기 귀찮을 때만 아주 가끔 써서.... ”

      

    ....”

      

    경식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 딸이 첫 실험대상이라니.

    그때 경식의 눈에 가족사진이 들어왔다.

    경식과 수리, 그리고 뭉치가 함께한 사진이다.

      

    그래. 한 번만 실험해보자. 저기 사진 보이지? 뭉치라고 우리 집 개인데, 100만 원에 분양 받았단다. 소환 할 수 있지?”

      

    . 근데 그럼 수리 몸값이 부족....”

     

    돈은 얼마든지 있어! 빨리!”

     

    경식이 독촉했다.

      

    . 알았어요. 100만 원. 뭉치.”

     

    뭔가 가늠하는지 중얼거린 노아가 손을 뻗었다.

    아무런 소리도, 번쩍이는 광채도 없었다.

    모두 앞에 갑자기 뭉치가 나타났다.

    몸을 말고 있던 뭉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경식에게 다가가 몸을 비볐다.

     

    . 하하.”

     

    경식이 뭉치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 감촉!

    이 행동!

    분명 뭉치다.

     

    어디에 있는지 묻지도 않고서 바로 소환하는구나.’

     

    그렇다면 수리도 소환 가능할 것이다.

    경식이 기쁜 맘으로 100만 원을 추가로 가져왔다.

    그리고 수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수리야. 무섭겠지만 잠시 돌아가 있으렴. 혹시 초능력끼리 충돌할 수 있으니 잠시만 가 있어. 만일 몸값으로 안되면 생명 보험으로 해볼 테니까. 혹시 시간이 조금 걸려도 참고. 알았지? 충돌할지도 모르니 무서워도 참고 기다려야 해. 할 수 있지?”

      

    . 아빠. 나 구해줄 거지?”

      

    경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야. 그렇지?”

      

    수리가 덜덜 떨면서 노아를 바라 봤다.

      

    !”

      

    순식간에 100만 원을 삼킨 노아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릴게. 빨리 구해줘야 해.”

      

    수리가 초능력을 풀자 곰 인형이 풀썩 쓰러졌다.

    수리가 쓰러지는 것 같아 두 남자는 잠시 말을 잊고 곰 인형을 바라봤다.

      

    ! 어서.”

      

    경식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 수리야! 이리 와!”

      

    노아가 손을 뻗었다.

    찰나의 기다림도 필요 없었다.

    곧바로 꽁꽁 묶인 수리가 마법처럼 나타났다.

    경식은 몸 안에서 환희의 폭죽이 터졌다.

    수리다!

      

    !”

      

    뭉치가 갑작스러운 수리의 등장에 놀랐는지 펄쩍 뛰며 짖었다.

      

    아아. 수리야.”

      

    경식이 다급히 안대와 줄을 풀어 주었다.

      

    으어어어엉. 노아야아아. 고마워어어어.”

      

    풀려난 수리가 대성통곡을 하며 노아에게 안겼다.

     

    .”

     

    팔을 벌렸던 경식은 기쁨 속에서도 미묘한 허탈감을 느끼며 탄식했다.

    제일 먼저 저놈에게 가다니.

     

    허허허허. 하하하하하하.”

     

    그러나 곧 크게 웃으며 노아와 수리를 함께 안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렴 어떤가.

    수리가 돌아왔다!

      

    그래. 잠시만 여기 있으렴.”

      

    기쁨을 느끼기도 잠시, 경식은 안고 있던 둘을 놓으며 물러섰다.

    수리가 없어진 걸 알면 기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은밀 수사를 명령했던 것을 풀고, 좀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해서 찾도록 해야 했고, 특히 기태가 신고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여러 공작을 해야만 했다.

      

    이잉.”

      

    아직 안심이 안 되는지 수리가 울먹이며 경식을 잡았다.

    어릴 때 이후 볼 수 없던 진귀한 칭얼거림이었다.

    경식은 마음이 뭉클했지만, 수리를 위해서도 지금은 일해야 할 때였다.

      

    금방 오마.”

      

    경식이 수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위층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서재에 올라와 패널을 켰다.

      

    기태. 이놈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일단 신고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대응책으로...’

     

    정치적 자산을 많이 소모하겠지만, 기태의 신고를 묵살할 방법은 여럿 있었다.

     

    여기저기 기름칠도 해야 하고, 한동안 온갖 청탁에 시달리겠지만....’

     

    청탁 종류에 따라서는 제법 많은 명예 초능력자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리한 행동은 경식의 입지를 줄일 게 뻔하다.

    하지만 모든 걸 지키려고 했을 때나 당황스럽지, 수리를 잃을 뻔한 경식은, 다소의 출혈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일단 기태 이놈부터 암약한 초능력자의 마지막 발악, 거짓말 정도로 만들어볼까?’

      

    고전적이지만 잘 먹히는 수다.

      

    이거.... 어쩌면?’

     

    성역없는 집행을 하는 이미지를 더 강화해서 감사에 플러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겠다.

     

    비통하지만 인류를 위해 할 일을 하는.... 좋아.’

     

    그 때였다.

     

    끼잉.”

     

    경식이 고민이 잠긴 사이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선 안될 방향에서 들려온 소리에 경식이 얼어붙었다.

    서재에 있는 캔낼에서 뭉치가 고개를 내밀었다.

    1층에 있어야만 하는, 그 뭉치였다.

      

    “...?!”

      

    경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1층에 있었던 뭉치가 2층 서재의 캔낼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노아가 소환한 뭉치는 아래층에 있다.

    하지만 뭉치는 2층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뭉치가 둘이 된 상황.

      

    뭉치가 둘이라고?’

      

    ...그렇다면 노아가 소환한 수리는?

    경식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경식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뭉치가 꼬리치며 다가와 경식에게 몸을 비빈다.

    익숙한 행동, 익숙한 냄새. 분명 뭉치다.

      

    .”

    하지마아. 히잉.”

      

    아래층에서 뭉치가 짓는 소리와 수리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리의 목소리다.

    경식은 사랑스러운 아이의 목소리가 두려웠다.

      

    , 하우스.”

     

    경식이 겨우 명령을 입으로 꺼내 뭉치를 떼어낸다.

    뭉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낼름거리곤, 다시 켄낼로 들어갔다.

     

    . 안돼. 제발.”

     

    경태는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감각에 휘청거렸다.

    숨어지내는 초능력자는 자기 능력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들키지 않으려고 초능력 사용을 극도로 줄이거나 잊고 살려고 하니까.

    노아도 마찬가지다.

    소환이라고 생각했던 노아의 초능력이 복제라면?

      

    안 돼....”

      

    아직 수리가 거기에 있다면?

    준비를 끝낸 기태를 만나고 있다면?

      

    기다리라고 했던 내 말을 믿고 애타게 날 기다리고 있다면?’

      

    방금 들은 수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 아빠. 나 구해줄 거지?’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안 돼!”

      

    경식이 급하게 패널을 조작했다.

      

    . 국장님. 현재 강기태 팀장 수색 진행 중. 특이 사항 없습니다.”

      

    패널에 수사국 1팀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 찾아내! 여자아이와 함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구출하고 강 팀장은 발견 즉시 사살하라.”

      

    . 알겠습니다.”

      

    같은 팀장을 사살하라는 명령에도 경식의 심복인 1팀장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평소라면 믿음직했을 표정.

    하지만 지금 경식은 미치기 직전이다.

      

    못 알아듣나? ‘모든자원을 동원하란 말이야! 당장 찾아내! 실험체들까지 다 동원하란 말이야! 당장!”

      

    ? 하지만 그것들은...?”

      

    처음으로 1팀장의 얼굴에 당황이 어린다.

    초능력 수사국이 은밀히 빼돌린 초능력자 실험체들.

    팀장인 기태도 모를 정도로, 내부에서도 몇몇을 빼곤 모르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이것을 외부에 들킨다면 국장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터진다.

    초능력자 척살이 목표인 조직이 초능력자를 보유하고 실험하고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조직 자체가 휘청일 것이다.

    잘 숨겨서 외부에 들키지 않더라도 부국장을 필두로 한 내부 반대 세력들은 반드시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은 감사 시즌.

    방금 명령으로 최소한 국장 자리 사임은 확정적이다.

    하지만 그딴 것은 문제가 아니다.

      

    빨리....”

      

    그때 경식의 핸드폰이 울렸다.

    기태다!

      

    내가 책임진다! 당장 실행해!”

      

    “....”

      

    경식은 바삐 패널을 끄고 전화를 받았다.

      

    하아. 국장님 기다리셨습니까?”

      

    미쳐버린 뱀이 복수를 꿈꾸며 속삭인다.

    억눌린 분노와 기대, 만족감이 섞인 목소리다. 당황한 낌새는 전혀 없었다.

    수리가 사라졌다면 절대 낼 수 없는 목소리다.

      

    아니, 없어진 걸 알고도 블러핑을 거는 걸지도 몰라. 내게 온 줄 모르고....’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스스로도 잘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제발 그래야만 한다.

      

    국장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느라 늦었습니다. 이걸 꼭 직접 전해드리고 싶네요. 국장님이 연지를 체포한 곳에서 뵙죠. 빠듯하시겠지만 15분 드리겠습니다. 혼자서 나오셔야....”

      

    경식은 기태가 떠드는 대로 그저 듣고 있었다.

    기고만장한 목소리를 듣는 시간 일분일초가 피가 말랐다.

     

    왜 이리 말씀이 없으십니까? 수리 보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

     

    !

    거센 폭발음이 울려 퍼진다.

    명령이 내려진 지 고작 몇 분 후에 1팀장과 부하들이 당도했다! 초능력으로 탐색과 이동을 했으리라.

    곧바로 총성과 전투 소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경식은 그중에 혹시 아이의 비명이 있진 않을까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지옥 같은 기다림 끝에.

      

    삐빅!

      

    상황 종료. 강 팀장은 사살했지만, 부비트랩에 셋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1팀장이 패널에 나타나 보고를 시작했다.

      

    아이는? 같이 있는 아이는?”

     

    경식이 말을 끊고 외쳤다.

     

    강 팀장은 혼자 있었습니다. 아이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경식이 소리 없이 환호했다!

     

    . 죄송합니다. 잠시만.”

     

    1팀장이 부하 대원에게 무언가 보고를 받는다.

     

    근처에 있던 케리어 안에 시신을 한 구 발견했습니다. 훼손 정도가 심해 확신할 순 없지만 10대 중반 여아로 보인다고 합니다.”

     

    경식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국장님?”

     

    “.......”

     

    “...국장님?”

     

    “.......”

     

    오랫동안 침묵하던 경식이 겨우 입을 열었다.

     

    시신을 잘 수습해서.... 아니....”

     

    경식은 아래층에 있는 수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수리가 존재해선 안된다.

      

    “1급 기밀로 지정한다. 시신은 완전 소각 분해해서 어떤 증거도 남기지 마라.”

      

    알겠습니다.”

      

    경식은 통신을 끊어 버렸다.

      

    아빠. 나 구해줄 거지?’

      

    수리는 경식을 믿고 기다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겁많은 아이가 최대한 용기를 내서 혼자서.

    그렇게 기다리다 고통이 시작된 이후로는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태는 그 방면의 프로니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수 없이 보아온 광경이니까.

    혼자서 그 고통을 당한 수리에게 경식은 묘비 조차 만들어주지 못한다.

     

    '훼손 정도가 심해....'


    1팀장의 목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주저앉은 경식의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끼잉.”

      

    뭉치가 오늘따라 이상한 경식을 걱정하며 다가왔다.

    다정한 눈빛을 하고 경식의 눈물을 핥아 주었다.

    멍하니 위로 받던 경식이 뭉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아래층의 뭉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면, 2층의 뭉치 소리도 아래층에 들릴터였다.

      

    그래. ...이것도 해야만 하는 일이야.’

      

    경식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사람에게 쓰는 것이었지만 충분할 것이다.

    경식이 뭉치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손이 잘게 떨렸다.

    하지만 경식은 해야 할 일을 했다.

      

    끄응.”

      

    이 순한 녀석은 따끔한 주사를 신음 한 번으로 참아냈다.

    경식은 뭉치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래 같이 지낸 가족으로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뭉치는 아픈 주사보다 경식을 걱정하고 있다.

    경식이 다시 눈물을 흘렸다.

    뭉치는 그 눈물을 핥아주려 고개를 들다 힘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

      

    경식이 그런 뭉치를 조용히 안았다.

    점점 식어가는 뭉치를 느끼며, 혼자 기다렸을 수리를 생각하며, 자신 안에 무언가도 무너져 가는 걸 느꼈다.

    경식은 텅 비어 가는 눈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뭉치는 이제 핥아주지 못한다.

      

    뭉치! 그만 핥아아아. 노아야 얘 좀....”

      

    아래층에서 수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식은 멍한 와중에도 생각했다.

    금방 잊을 공포가 아니었을 텐데 용케 평소와 같은 목소리라고.

    노아란 애와 뭉치가 잘해주고 있다고.

      

    ‘...나도 ...내가 할 일을 해야지.’

      

    수리의 시체를 처분한 것처럼 뭉치도 몰래 처분해야 한다.

    수리가 모르게.

    세상 아무도 모르게.

      

    ‘...수리를 지켜야지.’

     

    하지만.

    수리를 지키지 못했다.

    시신마저도.

     

    아빠. 나 구해줄 거지?’

     

    수리의 목소리가 생각나 경식은 울음을 터트렸다.

    경식은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뭉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하다. 내가 미안해.”

      

    경식이 울며 용서를 빌었지만 들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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