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괜찮아? 지금 패트롤 불렀어 금방 올꺼야 정신 차려~~ 나 보여?"
삐삐 거리는 경보음과 유정씨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금 이간 고글 유리 너머로 붉은색의 경고 싸인이 일그러진 체로 팔딱거렸다.
슬로프 왼쪽에 큰 바위를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 바위는 마치 점프를 하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만든 것 같은 각도로 예쁘게 눈을 뎦어 쓰고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바위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점프를 시도했지만 점프는 불가능했다. 매끄러운 곡선인줄 알았던 바위는 가운데가 커다랗게 갈라진 두 개의 바위였고 그 결과 나는 달려 오던 속도에 더해 마치 고장난 투석기가 바위를 바로 앞의 땅에 내리 꼿듯이 앞쪽에 패대기 쳐졌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유라시아 횡단열차 여행 중 첫 번째 패키지에서 사고라니. 추위를 싫어하는 유정씨는 탐탁지 않아 했고 신혼여행에 대한 결정권은 신부에게 있는 거지만 백두산에서 스키는 양보할 수 없었다. 200년전에 유행했던 스노보드라는 익스트림 스포츠광과 결혼했다면 이정도 배려는 해줘야 하지 않겠냐며 우기고 우겨서 겨우 넣은 일정이었는데..
다행히 최신형 에어백이 잘 펴져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벌떡 일어나지진 않는걸로 봐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자기야 올해가 2316년이잖아~ "
"그런데 그게 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유정씨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처다 보았다.
"내가 이렇게 사고가 난건 300년전 2016년 촛불시민혁명 때문이야.
"무슨 소리야"
“300년전 우리나라는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한쪽으로 밀처놨던 각종 사회적인 문제들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촛불시민혁명으로 해결했잖아. 생각해봐 얼마 전에 끝난 미니시리즈 ‘쓸쓸하고 찬란하神 병신년’에도 나왔잖아 그때 박근혜가 탄핵되고 국민들의 각성으로 민주정부가 줄줄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완전히 새로 태어난잖아. 연이어 들어선 정부들이 그 당시 위태 위태하던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큰 원칙의 외교로 돌아서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스위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영세중립국을 선포하고 열강들의 조절자 역활로 포지셔닝했고 우리나라는 그전과 비교할 수 없는 안정과 함께 국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잖아"
"그런데 그게 자기가 이렇게 다쳐서 우리 신혼여행 스케쥴이 완전히 망가지려는 이 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다쳐서 눈밭에 고꾸라져 있는 내가 걱정되어 눈물을 흘리며 당황하던 유정씨는 어느새 도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내게 쏘아 붙였다.
"그런데 국력만 강해진 게 아니잖아. 대외적으로 강대국들과의 외교에도 성공했지만 얼어 붙었던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어정쩡해진 중국 대신 북한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잖아. 그래서 결국 이후에 김정은이 죽자 북한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세계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나라와 막후 합의를 통해 30여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문호가 개방됐고 결국 통일이 됐잖아. 생각해봐 그렇게 통일이 안됐으면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탈 일도 없고 백두산에서 스노우~ 아야~~~"
내 실없는 소리에 정신이 팔렸다 어느새 달려온 패트롤의 드론 로터소리에 정신이 든 유정씨가 내 뺨을 꼬집었다.
"괜찮으세요? 환자분 힘 빼시구요 치료는 받으시겠지만 헬멧에 녹화된 사고 당시 자료를 보니까 슬로프에서 속도위반에 정식코스도 이탈하시고 몇 가지 범법사실이 확인 되셨어요. 아마 벌금이 상당히 나올꺼 같네요"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로 우리나라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다짐과 함께 채택된 노란색 리본을 어깨에 단 패트롤 요원은 친절하지만 감정은 1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줄줄 늘어놓았고 유정씨의 눈꼬리는 점점더 치켜 올라갔다.
“유정씨~ 그런데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 있잖아~”
“대통령이 왜?”
“아 갑자기 그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얼굴은 딱 생각 나는데.. 그 왜 ~”
“아 몰라 뭘 자꾸 딴소리야. 됐고~ 벌금은 당신 용돈에서 다 깔꺼니까 그렇게 알어”
“유정씨~~ 안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