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우리집 책장엔 짝을 잃은 책이 몇 권 있다.</div> <div>길게 이어지는 시리즈 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보통 한 권에 끝나는 책 위주로 골라 읽곤 하지만</div> <div>어쩌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겼거나, 일 때문에 꼭 봐야할 책이라면 보통 첫번째 권을 다 읽지 않았어도 완권을 사두곤 한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천성이 게으른 터라 두 권이상의 책을 연달아 읽지는 못한다.</div> <div>그렇게 쌓아둔 책 중에 첫번째 권을 다시 뽑아 읽고는 너무 마음에 들어 두번째 책을 읽을라치면</div> <div>도통 어디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제야 기억해낸다.</div> <div>일전에 누군가에게 빌려줬던 것임을.</div> <div>근데 왜 1권도 아닌 2권을 빌려줬던 것일까.</div> <div><br></div> <div>그런 경우는 흔히 두 가지다.</div> <div>누군가와 책 얘기를 하다가, 자신은 1권을 읽었는데 2권이 없어서 빌려달라고했거나</div> <div>누군가와 책 얘기를 하다가, 나 아직 1권 못읽었는데 말하면 그럼 2권이라도 빌려달라고 했던 경우다.</div> <div><br></div> <div>여기도 또 의문이 생긴다.</div> <div>전자는 그럴 수 있지만, 후자는 왜 그랬을까.</div> <div>그건 그냥 나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어서 였을거다. </div> <div>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말고는 없다.</div> <div>1권을 읽어야 내용을 알 수 있는 책들인데, 굳이 2권 먼저 빌려간 것을 보면.</div> <div><br></div> <div>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모두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div> <div>돈이나 옷 등을 빌려주고 돌려받은 경우는 종종 있지만</div> <div>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div> <div><br></div> <div>책은 재산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div> <div>좋아하는 책은 다시 펴보지 않을지언정 쟁여두는 나는</div> <div>다른 물건에는 별로 애착이 없지만 책에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div> <div><br></div> <div>그런 책들을 돌려받지 못했다니.</div> <div>새삼 화가 난다.</div> <div>더군다나 책을 빌려주고 그 책 어땠냐는 간단한 얘기도 나눈 적이 없었다.</div> <div><br></div> <div>물론 정말로 좋아하는 책을 빌려준 적은 없다.</div> <div>책 얘기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지만,</div> <div>어쩌다 서로 좋아하는 책 얘기가 나와서 </div> <div>내가 어떤 책에 대해 찬양을 시작하면, 대뜸 나오는 소리는</div> <div>나도 읽어보게 빌려줘. 이다.</div> <div><br></div> <div>그럴땐 거절 못하는 내 입에서 단박에 안된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div> <div>안돼. 책은 못돌려받는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빌려봐바.</div> <div>혹은</div> <div>아니야. 그거는 사서 봐야돼. 돈이 아깝지 않을거야. </div> <div>라는 말로 애둘러 말하기도 한다.</div> <div><br></div> <div>책꽂이에 비어있는 책을 보면서 문득 화가 나서 끄적여본다.</div> <div><br></div> <div>도대체 왜 책은 돌려주지 않는 걸까.</div> <div>한때 만났던 어느 남자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의 시리즈 물 중 2권을 빌려줬었다.</div> <div>그때는 많이 좋아하기도 했고,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빌려준 것이었는데</div> <div>결국 돌려받지 못했다.</div> <div>하지만 그 남자같은 경우는 조금 덜 억울하다.</div> <div>그 남자가 아끼던 책 1권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div> <div>그걸 어떤 연결고리로 남겨둔 것은 아니다.</div> <div>마지막에 헤어질 땐 너무 질리고 싫어져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발길을 끊은 것이었기에</div> <div>그토록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책을 돌려받는 일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div> <div>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서로 되바꾼 후에 헤어질껄 하는 약간의 후회도 있지만,</div> <div>또 생각해보면 그 책을 돌려받았으면 지겨운 만남이 한 두달간 더 이어졌을 거란 생각도 든다.</div> <div><br></div> <div>이래저래 잡생각이 많은 월요일이다.</div> <div>일하기 싫어서 그렇다.</div> <div class="autosourcing-stub-extra"></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