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나이가 들면서 옛날 일은 자세히 기억하는데 최근 일은 누가 상기시켜 주기 전까진 까맣게 잊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p> <p>친구들의 경우는 다들 오랜기간 술을 마셔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오래 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상당 부분 왜곡이나 첨삭되어 기억하고 있더군요</p> <p><br></p> <p>올리버 색스 라는 신경학자가 쓴 책들에는 뇌를 다친 환자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p> <p>부분은 정교하게 볼 수 있지만 전체를 시각화하지 못해서 그것을 통째로 인식 못하는 환자도 있고, 화가였는데 사고 후 색맹이 된 환자,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환자 등 특이하고 흥미로운 경우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뇌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p> <p>책 속에서 어느 환자의 수기가 나오는데,</p> <p>'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p> <p>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p> <p>가만히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다면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네요</p> <p><br></p> <p>거기서 좀더 생각의 가지를 뻗어보니 </p> <p>기억 능력을 훼손당한 환자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도 어차피 날마다 조금씩 변형되고 보정, 추가되고 삭제된 것일텐데, 매 순간 판단을 거쳐 행동해야 함에도 그 판단의 기준이 내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번 나와 내 행동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의 정체성이란 것이 모래 위에 쌓은 성 같은 것이 아닐까? </p> <p>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p> <p>나에 대한 의심이 아마도 반성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해봅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