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친구가 대학교에 다닐 적에 답사를 갔다 들었던 이야기입니다.</div> <div><br></div> <div>당시 친구는 진주 쪽에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교수님을 따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리 크지는 않은 마을이었지만, 친구 일행은 마을 노인정에 들어가 노인 분들의 이야기를 취록하게 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보통 노인정에서 취록을 하면 그 마을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나 유래, 서낭당이나 장승, 하다못해 산이나 저수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div> <div><br></div> <div>민속학 연구를 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는 셈이지요.</div> <div><br></div> <div>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마을 분들은 이야기를 꺼리셨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대부분 취록은 학생들 단계에서 끝나기 마련이었지만, 결국 그 날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교수님이 직접 나서서 부탁하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마을 어르신 중 흰 수염을 길게 기르신 분 한 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여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것은 오래 전에 이 마을 근처에서 [목격 되던 것] 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새마을 운동과 농촌 개량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아직 지붕이 슬레이트가 아니라 기와와 초가로 이루어질 무렵이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지금은 1차선 도로가 나 있는 마을 어귀에는 본디 갈림길이 있어서, 왼쪽 길은 산 속으로, 오른쪽 길은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길은 아니었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런데 그 어귀는 대낮에도 나무들이 무성하고 길게 금줄이 쳐진데다, 어두컴컴해서 혼자는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오싹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오죽하면 들짐승들조차 나다니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렇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그 곳을 지나갈 때는 혼자서 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이유는 바로 대낮에도 출몰하는 [그것] 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것이 귀신인지, 도깨비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가끔 심한 악취가 나며 벌레조차 울지 않을 때가 오는데, 그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이야기를 해 주신 할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막 권좌에서 물러날 무렵이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마을 어르신들의 당부를 한낱 헛된 것으로 생각하던 할아버지는 동네 젊은이들과 내기를 하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래서 읍내에서 다른 이들이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혼자 빠져나와 집에 따로 가셨다는 것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친구들은 먼저 집으로 갔고, 잠시 읍내에서 머물다 출발한 할아버지는 마침내 마을 어귀까지 오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처음으로 혼자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것이었기에 많이 긴장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는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의기양양하게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런데 그 때 갑자기 뒤쪽에서 바람결을 따라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할아버지는 누가 밭에 둘 퇴비라도 삭히나보다 생각하셨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리고 분명히 등 뒤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는 [돌아보면 안 된다, 돌아보면 안 돼!] 라고 생각하며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div> <div><br></div> <div>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마침내 잘 움직이지 않는 발로 달리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러다 문득 할아버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셨습니다.</div> <div><br></div> <div>뒤에서는 마을로 난 길 바깥쪽 풀숲에서 무엇인가가 마구 쫓아오고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것은 점점 풀숲에서 나와 길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너무나도 겁이 난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고, 마침내 그것이 풀숲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 후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신 것은 사라진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마을 어른들이 톳불을 들고 온 한밤 중이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는 그것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으셨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친구는 계속 다음 이야기를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진저리를 치시며 생각하기도 싫다고 이야기를 꺼리셨고 아예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다행히 그 당시 할아버지와 내기를 했었다는 다른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이어서 해 주셨습니다.</div> <div><br></div> <div>당시 그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기에 읍내의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병원에서는 정신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렇다며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하고 별다른 처방은 하지 않았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의 말처럼 할아버지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그 날 보셨던 것에 관해 결코 이야기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세월이 흘러 새마을 운동으로 신작로가 나고, 일차선이기는 해도 포장된 도로가 깔리면서 마을 어귀의 갈림길이 사라지자 가장 속시원해 하던 것은 바로 그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리고 그 즈음에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그 때 할아버지가 봤던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가 보셨던 것은 시커먼 사람이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온 몸이 완전히 썩어서 온통 검었고, 썩은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게다가 다리는 썩어서 떨어진 것인지, 허리까지만 남은 몸을 팔로 미친 듯 기어서 할아버지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정작 할아버지를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던 것은 눈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이미 썩어서 눈알은 떨어지고 퀭하니 눈구멍만 남은 그 눈이.</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분명히 할아버지를 향해 똑바로 바라보며 미친 듯 기어오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 이야기를 듣자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님까지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마을에서의 답사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답사를 마치고 시내버스에 올라탄 채 터미널로 향하면서, 학생 중 한 명이 교수님에게 그것의 정체를 물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때 마침 버스에 타고 계시던 나이 지긋한 비구니 스님께서 이야기에 끼어드셨습니다.</div> <div><br></div> <div>[어디 마을이라구요? 지금이야 별 이름도 없지만, 옛날에는 유명했지요. 일제 시대 전인가? 옛날에 그 마을에서 큰 돌림병이 돌았어요. 마침 그 때 가뭄도 겹쳤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병까지 도니까, 병에 걸린 사람들을 모아다가 산에다 버리고 마을에 금줄을 쳤었다는 거죠.]</div> <div><br></div> <div>그 때 돌아가신 분들의 공양을 스님의 절에서 하고 있기에, 그 때 이야기는 아직도 전해내려와 잘 알고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교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듣자 [과연...] 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자,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div> <div><br></div> <div>[자네들 집에 가면 조선 말, 고종 14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씩 찾아들 보게나.]</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성격 급한 친구 몇몇은 바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나머지 친구들 역시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div> <div><br></div> <div>[1877년(고종 14년), 삼남지방 대기근, 역병 창궐.]</div><br><br>출처: <a target="_blank" href="http://vkepitaph.tistory.com/636?category=350133" target="_blank">http://vkepitaph.tistory.com/636?category=350133</a>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