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방학때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br><br><br>남자 다섯이서 갔는데, 남자들이 놀러나오면 다 그렇듯이, 기껏 배타고 섬까지 왔음에도 물놀이 1시간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숙소에서 밤까지 술먹고 떠들다가 잠들었다.<br><br>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3시쯤부터 마시기 시작하고 8~9시쯤에 잠들었던것 같다. <br><br>몇시간이나 잠들었을까. 근처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는 숙취로 징징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br><br>처음에는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어스름하게나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주병과 싸구려 안주들로 개판이 된 방 구석에서 찬호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잡아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새벽 2시였다.<br><br>"야, 뭐하냐?"<br><br>다소 짜증섞인 내 목소리에 찬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br><br>"아.. 깼어? 낚시좀 하려고"<br><br>그러고보니 이놈은 여기서 낚시하겠다고 낚시채비를 가져왔었다. 그리고 우리가 물놀이할때 한쪽에서 낚시대 드리우고 아무것도 못낚았었지.<br><br>"아까 했잖아. 그리고 뭔 새벽에 얼어뒤질 낚시야"<br><br>"야, 원래 낚시는 새벽낚시가 진리다. 내가 돌돔 몇마리 잡아서 해장 끝내주게 해줄게"<br><br>"지랄. 아까도 헛탕쳐놓고."<br><br>"야야, 아까는 물때가 안좋았고. 지금 시간이 딱 밀물이라서 잘 낚여."<br><br>"...헛탕에 만원 건다."<br><br>"개자식. 낚으면 니 몫은 없다."<br><br>이런 잡담을 하면서 나도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낚시는 관심 없었지만 숙취때문에 바깥바람을 좀 쐬고싶었기 때문이다.<br>코를 골며 자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숙소에서 나온 나와 찬호는 선착장 근처의 방파제로 향했다.<br>편의점 하나 없는 작은 섬마을이라 그런지 드문 간격으로 설치된 가로등을 제외하면 깜깜했다. 지금 철에는 뭐가 잘낚이니하는 찬호의 낚시열변을 반쯤 흘려들으며 나는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별자리로 수놓아진 밤하늘을 바라보고 걸었다.<br>그렇게 한 10분을 걸었을까. 새까만 바다와, 어둠에 덮힌 방파제가 보였다. <br><br><br></font> <div style="text-align:left;"><font size="3"><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709/15061888350a2714fbc5924b9fab1a46c4cfabccec__w800__h533__f86816__Ym201709.jpg" alt="사진08-방파제의-낚시꾼.jpg" style="border:medium none;width:320px;height:213px;"></font></div><font size="3"></font> <div style="text-align:left;"><font size="3">※방파제<br></font></div><font size="3"><br><br>커다란 방파제를 성큼성큼 뛰어넘으며 적당한 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찬호가 낚시대를 세팅하기 시작했다.<br>능숙한 손놀림으로 낚시대를 펼치고, 거기에 낚시줄을 꽂고, 바늘과 추를 단다. 그리고 미끼통에서 큼지막한 갯지렁이를 한마리 꺼내더니 3등분으로 잘라 3개의 바늘에 꽂았다. 그리고 가까운 위치에 낚시줄을 던졌다.<br><br>그리고 과정을 3번 반복했다. 찬호가 가져온 낚시대가 3대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낚시대 끄트머리에 방울을 달은 찬호는 그대로 주저앉아 숙소에서 가져온 캔맥주를 땄다.<br>한편 나는 숙취때문에 알콜을 더 먹을 마음이 없었기에 어제 마시다 남은 김빠진 콜라를 홀짝이고 있었다.<br>그렇게 우리는 적당히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찬호의 호언이 허풍은 아니었는지, 중간중간 낚시대가 흔들렸고, 한 1시간쯤 후에는 손바닥만한 우럭 1마리와 볼락 2마리가 어망에 들어갔다. 비록 그의 장담처럼 돌돔은 낚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특필할만한 성과였다.<br><br>오늘 아침에 숙소 이모한테 고추가루랑 무를 좀 얻어서 매운탕을 해먹을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찬호가 벌떡 일어났다.<br><br>"왜?"<br><br>"나 화장실좀 다녀올게"<br><br>"그냥 여기서 싸"<br><br>"...큰 거다 이놈아."<br><br>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에게 다녀오란말을 하고, 찬호는 나에게 물에 드리워진 낚시대를 부탁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멍하니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찬호가 방파제를 성큼성큼 뛰는 발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그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br><br>쏴아아-<br><br>쏴아아-<br><br>혼자 남은 밤바다에는 파도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숙취가 상당히 진정되어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었다.<br>솔직히 생각할 일이 많았다. 가족문제, 알바문제, 학업문제 등등. 이번 여행에 승낙한 이유도 잠깐 이 문제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서였으니까.<br>그런 면에서 이렇게 조용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지금은 좋은 기회였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상념에 빠졌다.<br><br>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파도소리에 섞여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br>상념에서 깬 직후의 나는 그것이 고양이 울음소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것은 발정기를 맞이한 고양이의 음산한 울음소리와 비슷했었다. 나는 이것이 마치 아기 울음소리같아서 매우 싫어했다.<br>하지만 잠시 후, 나는 그 소리에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br><br>-달어으애흐<br><br>-다러즈애으<br><br>-사러주새오<br><br><br><br>-살려주세요<br><br><br>그래. 어눌한 그 소리는, 확실히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br>멍해있던 머리가 망치를 맞은 듯이 또렷해진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둠으로 덮혀진 이곳에는 여전히 나 밖에 없었다.<br>무서워진 나는 외쳤다.<br><br>"누구 있어요?"<br><br>얼마 후, 아까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br><br>-사려주세요<br><br>그 목소리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래, 방파제 한 가운데에서 들려왔다. 나는 휴대폰의 후레시를 키고 조심조심 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었다.<br><br>"어디에요?"<br><br>-살어주세오<br><br>여전히 어눌한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나는 이 소리의 주인이 방파제에서 떨어졌으리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방파제에서 떨어지면 매우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br><br>"어디냐고요!!"<br><br>-살려두세요<br><br>계속 걷는다.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br><br>"이봐요!!"<br><br>-살려주세오.<br><br>이윽고 소리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br>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특정할 수 없었다. 이 주변 방파제 밑을 하나하나 뒤지기도 힘들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수도 있다.<br>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단 사람을 불러오기로 했다.<br><br>"사람 불러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br><br>나는 그렇게 외치고 육지쪽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br>하지만<br>옆의 방파제로 뛰어넘으려고 한쪽 발을 들었을 때,<br>방파제 위에 있는 다른 쪽 발목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진 직후,<br>나는 균형을 잃고, 공중을 부유했다.<br><br><br><br><br>가파른 언덕에서 구르는듯한 감각, 그리고 격통이 느껴졌다. <br>특히 등과 뒷통수가 아팠고, 팔과 다리도 크게 긁혔는지 많이 따가웠다.<br>욕지거리를 하며 어떻게든 자세를 잡은 나는 눈을 떴다.<br><br>밝은 방의 불을 갑자기 끈 듯이, 사방은 새까맸다. 희미하게 눈 앞에 새하얀 콘크리트가 보이는걸 보아 아무래도 나는 방파제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br>어두움을 밝히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찾았지만, 떨어질때 휴대폰도 떨어뜨렸는지 발견되지 않는다.<br>방파제 사이로 약간의 달빛이 들어왔고, 파도소리에 맞춰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것이 보였다.<br>그리고 시선을, 달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로 돌린 나는, 그 직후 후회했다.<br><br>동그란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br><br>툭 튀어나온 새하얀 흰자위와, 가운데의 새까반 검은자위. 그래, 마치 동태눈깔같은 그 눈이,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br>굳어져버린 나를 바라보며, 아주 약간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윤곽이 간신히 보이는, 마치 양서류처럼 쫙 벌어진 입이 움직였다.<br><br>-사려주세오<br><br>그 소리였다. 아까부터 나에게 끊임없이 구조를 요청한, 그 어눌한 소리였다. 그것이 지금 내 바로 앞의, 괴물의 입에서 들려왔다.<br>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괴물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br><br>"으아아아아아아아악"<br><br>정신이 든 것과, 비명이 터져나온 것은 동시였다.<br>그리고 본능에 따라 방파제를 기어 올라가려고 했다.<br>하지만 바닷물에 젖은 방파제는 미끄러웠고, 내 손은 자꾸 미끄러져 헛손질을 했다.<br>그래도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올라간 순간, 발목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br>그리고 강한 힘으로 잡아당겨졌다. 그대로 나동그라진 나는 아픔과 함께 방파제 밑으로 다시 떨어졌다.<br>절망에 빠진 나는 뒤를 돌아봤다. 마치 긴팔원숭이처럼 긴, 그러나 털이 아닌 비늘로 덮힌 팔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떨어진것을 확인했는지 그 팔을 거두었다.<br>나는 괴물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지만, 한참동안을 바라봐도 괴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듯했다.<br>그리고 괴물이 기다리는것이 무엇인지 곧 알 수 있었다. 갑자기 파도가 들어와 내 몸을 강하게 때렸기 때문이다.<br>파도의 물살에 휩쓸려 방파제에 머리를 부딪히고 나는 놈의 속셈을 깨달았다.<br>찬호는 분명 밀물이라고 말했다. 밀물, 들어오는 물. 확실히 갓 왔을 때에 비해 물이 많이 들어왔었다.<br>그래. 이 놈은 내가 바닷물에 익사하기를 기다릴 생각인 것이다.<br><br>잠깐만. 찬호?<br>찬호가 있었다. 화장실 다녀온다고 했고, 그 때부터 시간도 꽤 지났으니 슬슬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br>그 생각에 이르른 나는 위를 향해 최대한 크게 외쳤다.<br><br>"찬호야!!!! 살려줘!!!!!! 찬호야!!!!!"<br><br>"살려줘!!! 찬호야!!! 제발!!!"<br><br>"찬... 컥... 쿨럭쿨럭"<br><br>아까처럼 파도가 내 몸을 때렸다. 하필 외칠때 파도가 들어와서 목에 바닷물이 들어가 기침을 했다.<br>그러고보니, 들은 적이 있었다. 방파제 아래에 떨어지면 파도소리때문에 바깥에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그래서 구조를 구하기 힘들어 매우 위험하다고.<br>그래, 휴대폰. 휴대폰으로 구조를 요청하면 된다. 같이 떨어졌다면 분명 이 근처에 있을것이다. 나는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고, 다행이게도 휴대폰은 곧 발견되었다.<br>하지만, 그것이 절망으로 바뀌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바닷물을 먹은 휴대폰은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던것이다.<br><br>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방파제 사이에 있는 괴물의 얼굴.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기분탓인지 나의 발버둥을 비웃는것처럼 느껴졌다.<br>사면초가였다. 방파제를 기어올라가려면 놈이 끌어내리고, 목소리는 닿지 않고, 전화는 고장났다.<br>이제 내가 할 수 있는건 없겠지. 나는 좌절감에 빠졌다.<br>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외쳤다.<br><br>"찬호야.... 찬호야.. 살려줘.."<br><br>얼마나 외쳤을까. 목이 완전히 쉬어버릴 정도로 오래 소리지른것은 틀림없다.<br>그 사이에도 놈은 움직임이 없었다. 여전히 번뜩이는 눈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어느새 바닷물은 내 가슴까지 차올라 10초에 한번 꼴로 파도에 맞아 물을 먹는다.<br>내가 완전히 체념하려던 참이었다. 마치 기적처럼, 하얀 전조등빛과 밧줄이 방파제 위에서 내려왔다.<br>허겁지겁 그 밧줄을 붙잡고, 천천히 끌어올려진 나는, 마지막으로 놈을 보았다. 분노로 충혈된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놈은 서서히 방파제 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br><br><br>이후, 구조된 나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고, 그대로 숙소에서 쉬게되었다. 그 때가 새벽 4시였다.<br>듣자하니 화장실을 다녀온 찬호가 내가 사라진것을 알고 바로 마을 해경에 연락, 마을사람들도 총출동해서 수색작업을 벌였고, 늦지 않게 나를 찾아냈다고 한다.<br>내 상태는 찰과상이 많고, 잠깐 저체온증이 온 걸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방파제에서 떨어지면 골절하는 경우도 잦다고하니 운이 좋았다나 뭐라나.<br>아무튼 아침해가 뜨고 찾아온 마을 이장님한테 엄청나게 혼난 우리들은 숙소를 간단히 정리하고 선착장에서 아침 첫 배를 기다렸다.<br><br>"야, 너 나한테 목숨 빚진거다?"<br><br>"그래그래. 존나 고맙다"<br><br>찬호의 말에 대충 대답한다. 내심으로는 찬호가 낚시하겠다고 설쳐서 이렇게 된게 아닌가하는 불만이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br>그 때 저 멀리서 배가 오는게 보였다. 찬호와 나머지 친구들이 짐을 챙기고, 환자특권으로 짐이 면제된 나는 잠깐 선착장의 화장실에 다녀왔다.<br>화장실에서 나올 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방파제가 보였다. 어제 내가 사고를 당한 방파제이다.<br>참고로 나는 그 괴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믿어줄까하는 의문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도 지금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br>아마 긴장으로 인한 환각, 환청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br><br>"뭐, 상관없나"<br><br>어차피 두번 다시는 이 섬에 안올거다. 그리고 두번 다시는 방파제 위에 올라가지 않을거고.<br>어제의 일이 사실이든 환각이든 꿈이든간에, 살아 돌아온 이상 나와는 관계 없다.<br>나는 방파제쪽에서 등을 돌리고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그 때였다.<br><br>-차노야 살러저<br><br>나는 홱 뒤돌아보았다. 눈 앞에는 방파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br>그 놈이 방파제 아래에 숨어있는 것을. 잡은 사냥감의 목소리를 흉내내, 다음 사냥감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br>두려움에 빠진 나는 도망치듯이 배로 뛰어갔다.<br></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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