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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2472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22
    조회수 : 3917
    IP : 183.100.***.213
    댓글 : 12개
    등록시간 : 2017/02/12 20:10:51
    http://todayhumor.com/?panic_92472 모바일
    [약혐]나는 나를 요리한다
    옵션
    • 창작글
    <p class="MsoNormal">벽장 시계 속에서 뻐꾸기 횃대만 나온다<span lang="en-us">. </span>시계는 울지 않는다<span lang="en-us">. </span>시계 속 뻐꾸기는 오래 전에 잡아먹었다<span lang="en-us">. </span>더 이상 시간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으니<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span lang="en-us">. </span>그 동안 내가 먹어본 것들을 떠올려본다<span lang="en-us">. </span>여러 가지 있었지<span lang="en-us">. </span>갖은 산해진미에서부터 오지의 전통음식<span lang="en-us">, </span>남들이 듣기만 해도 질색하는 몬도 카네<span lang="en-us">(Mondo Cane</span><span style="font-family:'바탕', serif;">怪食</span><span lang="en-us">), </span>심지어 오랫동안 인륜으로 금지되어 온 음식들깢<span lang="en-us">. </span>그 중 특이할 만한 것은 역시<span lang="en-us">, </span>산달 직전 태아 고기 요리 정도일까<span lang="en-us">. </span>나의 식<span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바탕', serif;">食</span><span lang="en-us">)</span>에 대한 욕심은 생물의 것을 넘어 무생물의 영역까지 치솟았다<span lang="en-us">. </span>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늘 타고 다니던 메르세데스 벤츠<span lang="en-us">-</span>의 모듬 요리였다<span lang="en-us">. </span>온갖 조리 방법을 다 동원해도<span lang="en-us">, </span>쇠를 씹는 건 고역이었다<span lang="en-us">. </span>같이 살던 여자의 악어가죽 백은 먹을 만했다<span lang="en-us">. </span>원재료가 동물의 가죽이었기에 가능했지<span lang="en-us">. </span>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도저히 어떻게 해서도 먹을 수 없는 것의 리스트를 만들어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니<span lang="en-us">, </span>종국에 내게 남은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span lang="en-us">.</span><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span lang="en-us">‘</span>시작은 몇 분 후로 설정하시겠습니까<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인공 눈알을 통해 들어오는 메시지는 살아있는 눈을 통해 들어오는 것보다 맑고 선명하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왜 진작 눈을 먹어버리고 인공장기로 교체한단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span lang="en-us">. </span>젤라틴을 채운 눈알 슬라이드는 샐러드와 궁합이 환상적이었다<span lang="en-us">. </span>그 중에서도 이탈리안 드레싱과 제일 잘 어울렸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span lang="en-us">‘</span>시작은 몇 분 후로 설정하시겠습니까<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재촉하듯 메시지가 다시 뜬다<span lang="en-us">. </span>음성 인식 시스템이라<span lang="en-us">, </span>불편하지만 의수를 움직여 보이스 생성기를 통해 음성으로 시간을 인식시켜야 한다<span lang="en-us">. </span>조금 전 내 성대를 먹었기 때문에 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span lang="en-us">. </span>생각을 하니<span lang="en-us">, </span>막 먹어버린 성대의 맛이 생각난다<span lang="en-us">. </span>발렌시아 산 최고급 암염에 버무려 동양식으로 무침을 해서 먹었다<span lang="en-us">. </span>다시 그 맛을 떠올리니<span lang="en-us">, </span>순대로 만들어 먹은 내장이 꿈틀거리는 기분이 든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span lang="en-us">‘5… </span>ㅂ<span lang="en-us">…</span>ㅜ<span lang="en-us">…</span>ㄴ<span lang="en-us">…</span>ㅎ<span lang="en-us">…</span>ㅜ<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의수의 손가락이 천천히 쿼티 자판을 누른다<span lang="en-us">. </span>차가운 금속의 터치감이 아직 남아있는 뇌의 감각체를 자극한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나는 오른손잡이였기에<span lang="en-us">, </span>오른쪽 팔의 근육이 더 많아 왼쪽 팔이 더 부드럽고 지방도 적당했다<span lang="en-us">. </span>왼팔은 와인에 재운 뒤 구워먹었고 오른팔은 고기가 질겨 일본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담가 조림으로 해서 먹었다<span lang="en-us">. </span>가장 맛있었던 부위는 역시 안쪽 허벅지 살이었다<span lang="en-us">. </span>클래식하게<span lang="en-us">, </span>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해서 스테이크를 해서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span lang="en-us">! </span>그때 맛을 떠올리니 저절로 입에 침이 돈다<span lang="en-us">. </span>살아오며 입에 넣어본 스테이크 중 단연 최고였다<span lang="en-us">. </span>한입 베어 물자 가득한 육즙하며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육질<span lang="en-us">! </span>품종 개량하여 다리가<span lang="en-us"> 8</span>개 달린 돼지처럼 나를 바꿀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span lang="en-us">‘</span>준비 완료<span lang="en-us">. </span>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모든 준비가 끝났다<span lang="en-us">. </span>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 앉는다<span lang="en-us">. </span>거울 속 나는 오래 전 사교계의 총아였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span lang="en-us">. </span>허리 밑으로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었고 양팔은 기계로 된 의수<span lang="en-us">, </span>내장도 먹어 치워 배는 내용물 하나 없는 가방처럼 흐물흐물 거린다<span lang="en-us">. </span>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치아가 훤히 드러나<span lang="en-us">, </span>어디를 보아도 흉물이란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span lang="en-us">. </span>하지만<span lang="en-us">, </span>그게 무슨 상관인가<span lang="en-us">. </span>나는 곧 내가 모르는 미지의 맛을 알게 될 텐데<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의자 뒤로는 자가 외과수술에 사용되는 정교한 기계가 있다<span lang="en-us">. </span>로봇 팔에는 몇 개의 외과수술용 톱이 매달려 있고<span lang="en-us">, </span>다른 로봇 팔에는 새하얀 접시가 올려져 있다<span lang="en-us">. </span>나머지 로봇 팔은 집게를 개조하여 스푼과 포크<span lang="en-us">, </span>나이프로 바꾸었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톱날들은 정확히 내 머리를 향하고 있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시간이 되면 저 톱날들은 내 머리를 가르고 거기서 나의 뇌를 꺼내어<span lang="en-us">, </span>자동으로 내 입을 향해 넣어줄 것이다<span lang="en-us">. </span>순서는 완벽하다<span lang="en-us">. </span>우선은 대뇌의 언어 부분을 관장하는 부위를 먹을 것이다<span lang="en-us">. </span>그 다음은 사고력과 기억력을 관장하는 부위를 먹고<span lang="en-us">, </span>다음이 소뇌다<span lang="en-us">. </span>절대 미각을 담당하는 부위를 건드려선 안 된다<span lang="en-us">. </span>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는 몇 번이나 실험을 해보았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준비는 완벽하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매직을 쥔 로봇 팔이 눈썹 위에서부터 한 바퀴 돌아가며 톱날이 거쳐야 할 루트를 정해준다<span lang="en-us">. </span>레이저는 쓰지 않을 것이다<span lang="en-us">. </span>레이저의 열기로 뇌의 맛이 변질될 수 있으니까<span lang="en-us">. </span>무통주사도 놓지 않을 것이다<span lang="en-us">. </span>주사의 약 성분은 미각을 방해한다<span lang="en-us">. </span>온전한 정신으로 내 머리를 열어 그 안에 담긴 호두 같이 탐스런 나의 뇌를 맛볼 것이다<span lang="en-us">. </span>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span lang="en-us">, </span>역시 마지막에 먹어버린 혀 정도 일까<span lang="en-us">. </span>혀 없이 먹는 뇌 요리는 아무래도 탐닉할 수 있는 감각이 떨어질 테니<span lang="en-us">. </span>그래도 어쩔 수 없다<span lang="en-us">. </span>뇌를 먹고 혀를 먹을 수는 없잖은가<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나의 뇌는 나의 뇌를 먹으면서 무슨 맛이라고 생각할까<span lang="en-us">. </span>맛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span lang="en-us">‘Bon Appetite!’</span></p> <p></p> <p class="MsoNormal">기계가 마지막 인사를 날려준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톱날이 다가온다<span lang="en-us">. </span>나는 흥분상태에 돌입한다<span lang="en-us">.</span></p> <p></p> <p class="MsoNormal">나는 과연 무슨 맛일까<span lang="en-us">.</span></p> <p></p>
    수컷수컷의 꼬릿말입니다
    수컷인데 수컷 노릇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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