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font size="3"> 숨을 고르고,</font></div> <div> </div> <div>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당황한 탓일까 생각이 좀처럼 쉽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div> <div> </div> <div> 그러자 꽉끼는 모자를 누군가 억지로 씌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좀 필요한 것 같아.</div> <div> </div> <div> 더듬더듬 어지러운 방을 나와서 냉장고를 열어본다. 캔 맥주가 있으면 좋을텐데...</div> <div> </div> <div> 마침 하이ㅌ 한캔이 있다. 아사ㅎ 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간에 마개를 따고 차분히 한모금 들이켜본다.</div> <div> </div> <div> </div> <div> 평소 알던 사람의 얼굴이 생경하게 보일때 가 더러 있었다. 그래 맞아! </div> <div> </div> <div>그런 경험이 분명 여러번 있었고 그 중에는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순간도 있었다.</div> <div> </div> <div>벌써 십여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div> <div> </div> <div>입대하고 갓 훈련소를 퇴소한 이등병 시절. 자대 배치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div> <div> </div> <div> 어떻게 24시간 같이 생활하는, 그것도 날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 이었던 김상병의 얼굴이</div> <div> </div> <div>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로 보일 수 있을까..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그 날은 고단한 하루였다. 자리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div> <div> </div> <div> 잠들기 까지의 하루 일과는 기억이 흐릿한데 갑자기 눈이 떠진 새벽 2시경이 </div> <div> </div> <div> 또렷히 기억난다.</div> <div> </div> <div> 분명 자다가 알수 없는 이유로 잠이 깼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신이 또렷할수 있는지</div> <div> </div> <div> 다시 생각해 보아도 신기한 일이다.</div> <div> </div> <div> 어쨌든 잠이 좀처럼 다시 들지 않아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div> <div> </div> <div> 내가 누워 있던 당시의 내무반이 굉장히 어색하고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div> <div> </div> <div> 모두가 잠든 고요한 한밤중이라지만 어째서 옆사람 숨소리 한토막 들려오지 않았는지...</div> <div> </div> <div> 그날 따라 붉은 빛깔의 취침등은 어째서 그렇게 요사스런 기운이 느껴졌는지...</div> <div> </div> <div>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보니 슬그머니 겁이 나서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는데</div> <div> </div> <div>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div> <div> </div> <div> 의식은 또렷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니!</div> <div> </div> <div> </div> <div> 나는 평소 똑바로 누워서 자는 편인데 어쩌다 깨고 보니 그날은 평소 날 그렇게</div> <div> </div> <div>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던 김상병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자고 있었나 보다.</div> <div> </div> <div>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다가 문득 보게 된 김상병 얼굴에 나는</div> <div> </div> <div> 심장이 뻐근할 정도로 놀라버렸다.</div> <div> </div> <div> 생전 처음 보는, 전혀 누군지 모르겠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옆에 누워있었다.</div> <div> </div> <div> 게다가 자는 사람의 무표정이라고는 해도 어떻게 그렇게 비 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div> <div> </div> <div> 아무 표정이 없을 수 있는지.... </div> <div> </div> <div> 당시에 나는 꼼짝달삭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급격히 밀려오는 공포감을, 또렷한 정신으로</div> <div> </div> <div> 견뎌내야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서 주변 상황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div> <div> </div> <div> 그래서 이곳이 내가 생활하고 있는 내무반이라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div> <div> </div> <div>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보려고 애를 써도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누군지 모르는</div> <div> </div> <div> 아무 표정도 없는 남자의 얼굴과 계속 마주보고 있어야 했다. </div> <div> </div> <div> </div> <div> 정신이 또렷한데 신체가 내맘대로 통제되지 않아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일까?</div> <div> </div> <div> 갑자기 누군가 날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웃기면서도 다른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웃음.</div> <div> </div> <div>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ㅎㅎㅎㅎㅎㅎㅎㅎ' 같은 웃음이였다. </div> <div> </div> <div> 나는 입을 열어 대화를 할수는 없었지만 놀라서 누구야! 같은 말을 지껄였던 것 같다. </div> <div> </div> <div> 내 마음속에서만 외치는 말이었지만 느낌상 상대가 듣고 있는 것같았고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다는</div> <div> </div> <div> 기분이 들었다. 계속 누군가는 날 'ㅎㅎㅎㅎㅎㅎㅎㅎ' 비웃고 있었고 나는 누구야 너 어디야 따위로 말을 걸고</div> <div> </div> <div>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한테 왜 이래 원하는게 뭐야 라고 물어보자 상대가 대답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내가 원하는거? "</div> <div> </div> <div> "니 몸을 뺐을거야. 그리고 널 죽일 거야"</div> <div> </div> <div>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목소리. 그러나 그 말이 곧 실현될 것만 같은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div> <div> </div> <div>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가 난생 처음으로 발작이라는 것을 일으켰고</div> <div> </div> <div> 지나가던 불침번이 마침 중대 최고의 FM이라고 불리던 박일병이었기에 나를 발견하고 나는 진정할 수 있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당시 내무반은 한바탕의 소란으로 강제 기상을 당했고</div> <div> </div> <div> 고참들은 황당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웠는지 저마다 낄낄거리면서 김상병에게</div> <div> </div> <div> 그러니까 애좀 적당히 갈궈라 며 농담을 해대며 다시 잠을 청했고</div> <div> </div> <div> 김상병은 개X끼야 너때문에 이게 뭐야 나중에 두고보자면서도 그날 이후로 내게 심하게 대하진 않았다.</div> <div> </div> <div> </div> <div> 그리고 그 후로, 난 비슷한 경험조차 해보지 못했다.</div> <div> </div> <div> 나중에 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그건 자대배지 받은지 얼마 되지않은 이등병이</div> <div> </div> <div> 작업으로 고단한 육체와, 갈굼으로 인한 피폐한 정신으로 만들어낸 환청과 착각 이지 않았을까...</div> <div> </div> <div> </div> <div> 얼마 남지 않은 맥주가 맛이 없다. </div> <div> </div> <div> </div> <div> 그래 지금 일어난 상황도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사람 얼굴을 착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div> <div> </div> <div> 뭔가 머리 속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그래. 다른 사람일리가 없자나.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div> <div> </div> <div> 오랬동안 꿈꿔왔던 순간이지만 막상 사람을 죽이려니까 긴장도 되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거야.</div> <div> </div> <div> 개같은 년. 이건 날 기만하고 걸레같이 이놈저놈 자고 다닌 벌이다!</div> <div> </div> <div> </div> <div> 초조한 마음으로 숨어서 기다리다가 어김없이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이년을 포식자가</div> <div> </div> <div> 사냥감을 해치우듯 칼로 몇번을 찔렀는지 모른다. 그리고 죽어가는 얼굴을 바라보며</div> <div> </div> <div> 비웃어 주고 싶었는데 생경한 얼굴이라니! 순간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얼굴에 칼로 난도질를 해버리고</div> <div> </div> <div> 말았다. 나도 모르게 우와아 따위의 비명소리를 냈었던거 같은데 제발 별일 없기를....</div> <div> </div> <div> </div> <div> 이년의 더러운 집을 나서기 전에,</div> <div> </div> <div>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만 다른 사람 일리가 없다. 품을 뒤져 지갑이라도 확인해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div> <div> </div> <div> 사람 죽이는건 처음이니까 놀라서 잘못 봤겠지. 그렇지 하면서 다시 후드를 뒤집어 쓰고 마스크를 고쳐쓴다.</div> <div> </div> <div> 아차 마시던 맥주캔은 챙겨가야지...... 큰일 날뻔했네. 그나저나 저렇게 난도질을 해놨으니까 원한 관계로 인한</div> <div> </div> <div> 살인으로 보겠지. 어차피 상관은 없다. 헤어진지 2년이나 지났으니까.</div> <div> </div> <div> 날 용의 선상에 올려놓지는 않을거라고 확신한다. 다른놈과 섹스하던 순간을 내게 들켰지만 난 큰 문제를</div> <div> </div> <div> 일으키지 않았고 쿨하게 헤어졌으니까. 사람이 감당할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 오히려 극도로 차분해 질수</div> <div> </div> <div>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개 쓰레기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상쾌함을 느끼면서 집을 나선다.</div> <div> </div> <div> 잘못봤을리는 없다. 2년간 몰래 숨어서 지켜봤으니까 개 같은년.</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