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더운날 멍하니 앉아 있다보면 문득 생각나는 소녀가 있다. 그러면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지고 그리움에 한숨을 쉬고는 궁상을 떨곤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다는 말이 참 무색하다. 때는 이제막 소년티를 벗고 사춘기가 중간쯤 접어들 무렵, 즐겨보던 만화도 유치해지고 수염도 거뭇거뭇 나기시작하고 마음 있는 여자애가 하나씩쯤은 있었던 시절, 마치 자신이 어른이 된냥 착각하던 그 때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입학실날 나는 무척 긴장을 하며 학교에 갔다. 친하던 친구들과늠 뿔뿔히 흩어져 새로운 친구와 사귀어야 했고 선배들한테도 찍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루하디 지루한 입학식날 조회 나는 하품을 하며 슬쩍 주위를 봤다. 더벅머리에 충혈된 눈 뭔가 중얼중얼 대는 녀석 한놈이 보였다. 왜인지 똘끼가 다분해 보여 이 친구는 조심해야 되겠다고 명심하던 순간 조회가 끝나버렸다.

   교실에 들어가자 이미 말문을 튼 녀석들끼리 혹은 같은 학교 출신끼리 뭉쳐있었다. 나는 아는 녀석도 하나 없기에 조용히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 말문을 틀만한 만만한 녀석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녀석이 내 옆에 앉는 것이었다. 조회시간에 봤던 그녀석! 그 많은 자리중에 하필이면 왜 내 옆자리인것이냐! 그냥 한숨만 나왔다. 고등학교 생활의 첫 시작은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길을 걷는데 골목길에 노점상이 하나 있었다. 무얼 파는고 하니 오래된 장식품 같은걸 파는 모양이었다. 정말 오래된거 같은 두뼘정도 되는 거울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얼굴에 조금씩 올라오는 여드름과 외모에 슬슬 관심을 같기 시작했던 터라 고민하지 않고 구입 했다.

   그날 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오한이 들어 잠이 깼는데 왠 여자아이가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난 바로 꽥 하고 돼지멱따는 소리를 내며 기절하고 말았다.

   난 괜스레 한숨을 쉬었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꼬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똘끼녀석과 짝이 된것과 왠 여자아이가 내 방에 있었던 것. 생각하니 또다시 오한이 들었다.

   난 그렇게 말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성격도 내성적인 편이라 결국 첫 말문을 튼 녀석이 바로 똘끼녀석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과 생각외로 잘 맞았다. 단지 그 녀석이 오컬트 매니아라는 것만 빼고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그 여자는 밤마다 찾아왔다. 무서웠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몸도 날로 수척해지는거 같았다. 그 여자는 나의 판단력으로 보건데 귀신이 분명했다. 밤에 그 여자가 나타나면 난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여자가 찾아왔고 난 돼지 멱따는 소리로 꽥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라? 정신이 말똥말똥한게 기절한게 분명 아니었다. 설마 벌써 아침인가? 난 슬며시 눈을 떴다. 그 여자가 내 코앞에 얼굴을 드밀었다. 난 다시 꽥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여자도 화들짝 놀라더니 거울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자마자 나는 그 오컬트 똘끼녀석이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녀석은 오컬트 매니아 답게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함부로 거울을 버리지 말 것과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손을 대면 대가가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조금 사라지는듯 했다. 확실히 나에게 뭔일이 생긴것은 아니였으니 말이다.

  그날밤 나는 만만의 준비를 해두었다. 십자가와 마늘 그리고 오컬트 녀석이 준 부적까지 올테면 와보라지 라는순간 그 여자애가 거울에서 튀어나왔다. 이런 만만의 준비가 무색하게 나는 돼지멱따는 소리로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 여자애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훑어봤다. 나도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봤다. 귀신은 다리가 없다더니 다리다 있구나 하던 찰나 내 코앞으로 그녀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나는 비명을 지르기는 커녕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렇다. 그녀는 이뻤다. 

   그일이 있은 후 나는 오히려 밤이 기다려졌다. 마치 내가 어떤 퇴마만화의 주인공이 된듯 했고, 어느날 갑자기 그녀와 같이 요괴를 소탕하러 여행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나는 밤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녀는 말을 할순 없었고 나만 이야기를 했어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내심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대부분 학교 이야기와 고민거리들이었지만 그녀는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었다.

   그녀와 함께한지 제법 오랜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녀의 입모양으로 어느정도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런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와 나는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었다 그동안 그녀 만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날 아침 학교를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다. 안절부절하며 불안한 눈 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버스가 오자 그녀가 팔을 벌리며 나를 막아섰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잊은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리 없는 그녀에게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왜 그러는데? 뭔일인데? 그녀의 입모양이 말했다. '가지마......' 

   그날 결국 학교를 지각 했고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버스 전복 사고였다. 그 때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다. 만약 내가 그 버스를 탔더라면....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집에오자 거울은 언제있었다는 듯 사라져있었도 책상위에 하얀 종이학만 덩그러니 노여있을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예전에 오컬트 녀석이 해주었던 말이 귀에 맴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손을 대면 대가가 따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