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trong>[그릇백화점]</strong></div> <div> </div> <div> 경남 합천에서 그릇 전문 가게를 열고 장사 중인 자영업자입니다! <br>기묘한 일화 공모전이라니, 딱 제 취향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응모합니다. <br>사실 퍽 환상적이라거나 오싹하지 않은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br>남부 지방에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장사는 접은 셈치고 TV를 보고 있는데 <br>우산도 없이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한 명 불쑥 들어오더라구요. <br>비를 피하러 온 건줄 알았죠. <br>그래도 예의상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그릇이라도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br>두리번거리다가 찜솥이 있는 쪽으로 가더라구요. 말도 없이. <br>하, 바닥 더러워지게 물을 줄줄 흘리는데 언짢더군요. <br>각설하고, 그녀가 첫 마디를 뗐어요. <br>“이 솥.. 아기 한 명 정돈 들어갈 수 있겠죠?” <br>엥? 아기? “에.. 그정돈 되겠죠.” 했더니 지갑에서 돈이란 돈은 다 꺼내주더니 솥을 들고 나가더군요. <br>“저기요! 거스름돈은!” <br>솥 안에 검은 비닐봉지로 쌓인 묵직한 덩어리를 집어넣더니, 끙끙대며 사라지는데.. <br>경찰에 신고는 했습니다만, 당시 합천의 날씨가 나빠 일대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 <br>아무리 찾아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br>그게 제가 받은 연락의 전부에요. 아기가 들어갈 솥이라뇨, 이상하죠, <br>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br>진심으로.</div> <div><br><strong>[공대여신]</strong></div> <div><br> 혜영은 대학교 3학년이 되도록 차별만 당했다. <br>여자 귀한 공대의 두 여학생이지만 몸매도 미모도 빼어난 수희와 비교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br>같은 잘못을 해도 자신은 구박을 받고 수희는 위로를 받는다. <br>심지어 둘의 싸움 이후엔 수희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조차도 혜영이 이해해주지 못한 탓으로 여겨진다. <br>넌 애가 왜 그래, 얼굴 따라가냐? 그 말은 혜영의 대학교 3년을 내내 따라다니며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br>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던가, 그녀는 면도칼을 준비했다. <br>여느 때처럼 쥐를 갖고 놀고자 고양이가 다가온 어느 날 잽싸게 달려들었다. <br>수희의 얼굴은 난도질을 당했고, 혜영 또한 무사하진 못 했다. <br>둘의 얼굴은 채칼로 감자를 썰어댄 듯 갈렸고, <br>미이라처럼 붕대에 감겨 병원에 누워있다. <br>둘 모두 위독하다. <br>공대 사람들이 병원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말이 혜영의 몽롱한 의식 속에 전해진다. <br>그녀는 반쯤 달아나버린 입술로 희미하게 웃었다. <br>이제 공대 여신은 나야.. </div> <div> 괜찮아? 괜찮아? 공대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br>빨간 붕대가 나란히 누운 병실, 그나마 상태가 나아보이는 쪽. <br>이 쪽이겠지? 수희야! 수희야!</div> <div>새로운 공대여신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div> <div><br><strong>[자장가]</strong></div> <div> </div> <div> 음악게시판에 글을 쓰는 건 처음이네요.<br>자장가를 찾고 있습니다. 가사가 좀 특이해요.<br>자장, 자장, 나고 자고, 자고 자라, 새 나라 새 일꾼,<br>무럭무럭.. 여기까진 확실하구요. 음은 자장 자장,<br>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자장, 자장, 잘도 잔다, <br>그 자장가랑 똑같아요. 부탁드립니다.<br> 여기에 올린 게 처음은 아닙니다. 지식검색 해봤고,<br>각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며 물어봤지만 답이 없더라고요. <br>자작곡일수도 있겠죠. 그게 아니길 바라기에 이렇게 찾고 있는 거지만.. </div> <div> 음악게시판에 맞지 않는 질문을 좀 해도 될련지요? <br>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저 자장가의 작사 작곡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br>한 번이라도 들어보셨다면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br>스쳐지나가다 들은 거라도 꼭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br>제겐 너무 절실합니다. </div> <div> 제 어린 시절,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살던 어느 날 <br>어머니 무릎을 베고 저 자장가 소리에 스르르 잠에 들었다 일어났을 때 <br>더 이상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탁드립니다. <br>제게 단서라곤 저 자장가 밖에 없습니다. <br>어머니가 살아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br>우리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br>저 자장가를 들어보셨습니까? 생각 좀 해보세요..</div> <div><br><strong>[예뻐졌다]</strong></div> <div> </div> <div>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 흰 피부, 화사한 웃음. <br>청순한 듯 세련된 얼굴과 태가 나는 옷맵시, <br>그녀가 올해 동창회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br>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br>그녀, 미영은 왕따였으니까. <br>늘 어두운 얼굴로 쉬는 시간마다 600원짜리 햄버거를 사먹으며 교실로 뒤뚱뒤뚱 걸어오던 그녀.</div> <div> 작년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떠받들던 화장 짙은 여자들의 시샘이 <br>향수냄새와 함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지만 <br>남자들은 이미 청순가련 그녀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br>내가 그랬던 거 사과해, 사실 난 너 은근 마음에 있었다? <br>지랄도 가지가지구만.</div> <div> 그녀는 늘 혼자였으니 그녀와의 추억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br>죄다 환심사기용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았지만 그녀는 밝게 웃어주었다. <br>놀라운 일이야.. 예뻐진 것도 놀랍지만 그 모든 상처를 잊고 웃어줄 수 있다니.. <br>예뻐지면 성격도 바뀐다는게 정말인가? 그래도 좀 아쉽다. <br>똑같이 못 생겨서 관심 밖이었던 또 다른 학생인 나에겐 좀 아는 척 해줄 수 있잖아. <br>나랑 햄버거도 많이 먹었잖아. <br>나도 살 빼고 꾸미고 이것저것 다 해서 이정돈데, <br>이젠 내가 부끄럽니? 그래서 날 모르는 척하는 거야? </div> <div> 동창회가 끝나고, 바쁘다며 2차를 거부한 채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 <br>무리에서 빠져나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 생각으로 따라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br>풀숲에 숨어 있다 나온 거대한 곰 같은 여자가, 쭈뼛거리며 30만원을 내밀자 <br>30장을 세곤 ‘다음에도 불러주세요.’하며 헤어지는 모습을. </div> <div><br><strong>[공주님]</strong></div> <div> </div> <div>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사지를 묶인 채 입을 틀어 막힌 나는 <br>그가 하는 말을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다. 모든 일은 자던 중 순식간에 벌어졌다.</div> <div>“내 목소리, 몰라? 난 네 목소리를 매일 생각할 때마다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br>네가 내게 준 고통을 생각할 때마다 뼈에 새겨진 흉터를 곱씹어야만 했다. <br>참회할 기회는 없다. 그래도 죽일 생각도 없어. 자, 뭐라도 말해봐.”</div> <div>그가 내 입에서 재갈을 풀자마자 난 소리쳤다.</div> <div>“내 아내, 아내를 어떻게 했지? 돈이라면 다 줄게, 제발 아내만은 살려줘, 그녀는 임신 중이란 말야!”<br>“나는 네 이기심 때문에 모든 삶을 잃었다. <br>여전히 네 잘못을 뉘우치기보단 네 행복을 잃기 싫은 게 우선인 모양이군.. <br>가치가 없어, 곧 죽여주마. 아내 곁으로 보내준다는 이야기야.”<br>“무슨 소리야, 그녀를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냐고!”<br>“공주님이더군.”<br>“...무슨 소리야.”</div> <div>으앵,으앵.. 닫힌 문틈으로 들려온다.<br>아직 출산예정일이 아닌 아이가 분명히 울고 있다.</div> <div>“아빠가 된 걸 축하해. 죽기 싫겠는걸, 아내와 당신을 반반씩 닮았더군. <br>딸의 얼굴은 지옥에서 보게 될거야. 네 다음으로 보내줄테니까 말야.”</div> <div><br><strong>[마네킹]</strong></div> <div> </div> <div>“진짜 이런 8등신 길쭉한 몸매가 있을까?”<br>“왜 없어, 톱스타들 보면 몰라?”<br>“언니, 그래도 이런 마네킹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면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 중엔 비교불가 아닌가?”<br>“그야 그렇겠지. 내일 샵에 옮기자. 피곤해. 잘래.”</div> <div> 동생과 힘을 합쳐 옷가게를 열기로 한 전날, <br>집에 마네킹 5구를 받아 놓고 저는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br>고향에서 아빠가 소형 트럭을 몰고 오시면 샵에 옮겨놓을 예정이었죠. <br>동생은 마음이 부푼 모양인지 제가 꽤 잠을 설치는 동안에도 <br>혼자 거실에서 부스럭부스럭, 뭘 그리 살피고 점검하는지.. </div> <div>“야, 내 구두 어디 갔어? 아빠 왔어? 마네킹은?”<br>“언니가 다 옮긴 거 아니었어? 난 언니 구두 다 없길래 언니가 만진 건 줄 알았지.”<br>“네가 어제 늦게까지 안 자고 마네킹 만졌잖아!”<br>“뭐래, 나 언니 들어가자마자 나도 가서 바로 잤어!”</div> <div> 아빠의 곧 도착한다는 문자에 답장도 하지 않은 채, <br>저와 동생은 이상한 줄 알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싸우고 있습니다. <br>만약 둘 중 누구도 아니라면 일은 더 복잡해지니까요. <br>마네킹이 구두를 신고 정말 살아 움직여 제 발로 나가지 않은 이상, <br>누가 이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둑이겠죠? 그렇겠죠? <br>동생한테 그만 싸우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얘기해야겠어요. <br>마네킹 도둑이겠죠. 아닌게 이상한거잖아요. <br>마네킹이 구두를 신고 나가다니요? <br>하하..하, 말도 안 돼. <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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