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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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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101314
    작성자 : B14
    추천 : 6
    조회수 : 1481
    IP : 183.101.***.5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4/18 23:51:07
    http://todayhumor.com/?panic_101314 모바일
    [단편] 제 여자친구는 모기입니다
    옵션
    • 창작글

    덥다. 여름날이 더운건 당연하다만야 이건 너무하다. 더운 날씨에도 모기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낮잠이라도 잘까 하면 꼭 얼굴 쪽으로 날아들어 왱왱 거리며 생존신고를 한다. 

    손바닥으로 이때다! 하고 얼굴을 짝-소리나게 때려보지만 애꿏은 내 얼굴만 아플뿐이다. 

    선풍기에다가 모기약을 발라놓으면 나한테 날아오다가 자동으로 픽픽 쓰러지지않을까하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멍하니 노려보고 있는데, 윙윙 핸드폰이 울린다.


    장구다. 

    부랄친구 김장구. 

    만년동정 김장구.


    10000일을 넘는 그의 인생에 이성의 인연이라면 암컷 모기들한테 여름마다 잔뜩 쏘인 것이 다인 불행한 친구였다. 과연 그에게 단 한 줌의 빛이라도 슬며시나마 볕들 날이라도 있을까.

    얼굴은 그렇다쳐도 여름마다 파리까지 꿰어들이는 액취증만 없었다면 그의 살아온 역사는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초중고 통틀어 아이들 모두 장구를 놀리고 피하는 와중에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던 것도 내가 가진 심한 비염 덕분이었다. 


    “여보세요?”

    “어. 지금 시간 있지? 빨리와서 모기 좀 찾아줘.빨리.”

    뚝-


    방금 들린 소리가 전화가 끊기는 소리인지 내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하지만 이 더운 여름날에 날 찾는 이가 겨우 모기나 잡아달라는 친구 한 명이라도 있는게 어디냐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짓고서 옷을 걸쳐입었다. 모기를 잡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모기를 찾아달라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생각된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이 새끼, 더위를 심하게 먹어서 언어 관리 중추가 조금 익어버렸나 툴툴거리며 난 장구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는 최소한 에어컨이라도 있을테니.


    “Django!(D는묵음), 나 찾았냐?”

    이미 다 알고있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급히 누르고 벌컥 들어가자 눈 앞에 웬 모기 한마리가 날아든다.

    짝- 

    어림없지.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날아드는 모기를 양 손을 마주 쳐 짜부러트러버리고 탈탈 손을 털었다. 다시 손을 보니 이거 모기가 아니라 풀벌레였나, 초록색 점액만 잔뜩 묻어있다.

    그러고 대답없는 장구 방을 열어보니 이 새끼 가관이다.

    잠자리 채 모가지만 손에 붙들고, 집에 에어컨도 있는 녀석이 선풍기도 꺼놓고 서서 우두커니 방 벽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거기다 초등학교 이후로 본 적 없는 곤충채집통엔 모기 몇마리가 잡혀있었다. 스님처럼 벽을 보고 마주 앉은 장구의 방에선 밖에서 맴맴거리는 매미 소리만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어우, 더워, 야 나 불러놓고, 면벽 수행하고 있었냐, 에어컨도 안켜고, 뭐해?”


    장구는 천천히 뒤를 한번 돌아, 어서 오라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다시 뒤를 돌아 벽 구석을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친구가 모기가 됐어. 찾는 것 좀 도와줘. 죽이진 말고.”

    하-

    얼척없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안믿기겠지. 알아. 근데 ”

    미친새끼의 ‘미’자가 입에서 튀어나올락 말락하던 나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 웃음소리에 다시 뒤를 돈 장구는 울고 있었다. 장구의 작은 두 눈에 그렇게나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있는 걸 보는 건 정말 처음있는 일이었다, 눈물을 삼킨 장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안믿어도 좋으니까 찾아주기라도 해줘. 그리고 죽이진 마 절대로.”


    “아니 믿고 안믿고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지. 모쏠이면서, 무슨 여자친구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다 모기는 뭐고?”


    “그동안 못 밝혀서 미안하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고해성사를 듣는 난 황당할 뿐이었다.


    “수정 씨는 나한테서 냄새가 안난다고 했어. 비염이 정말 심했거든. 너처럼.”


    “그래서, 수정 씨가 누군데?”


    “내 여자친구.”


    “아니, 그럼 여자친구가 있던 걸, 나한테도 몇년을 숨겨온거야? 실망이 크다. 김장구.”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그래도 김장구 이놈이 독거노인으로 혼자 죽진 않겠구나 싶어서 마음 한 편으론 장구가 대견스러웠다.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미안. 수정 씨는… 기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거든.”


     이새끼 더위를 먹은 거였구나 역시.


    “ 모기는 그만 찾고 병원부터 가자. 오늘 토요일이라 진료 시간 좀 있으면 끝나.”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지, 장구는 계속해서 허공을 보며 수정 씨를 찾아댄다.


    “수정 씨는 대학에서 양자 원격 전송으로 논문을 썼었고, 이듬해에 비밀리에 군사기밀연구소 소속으로 특채로 뽑혔어. 날 만난 것도 그 때쯤이었고.”


    난 말없이 불쌍한 친구 말을 그냥 조용히 들어주기로 했다.


    “수정 씨는 내가 가까이 가도 얼굴 한번 찡그린 적이 없었어. 나 액취증 심한 거 너도 알잖아.”


    아직도 지금 장구가 하는 말이 장난인지 진짠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수정 씨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양자 물리 이동장치야. 영화에서 본거 있잖아. 사람이라 물건을 바로 한번에 이동시키는 거.”

     

    요전날에 케이블에서 봤던 영화 스타트렉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스쳐지나갔다.

    맨날 페이커가 쩔었니, 지가 CS를 몇 개를 먹었니 하던 놈 입에서 나올 단어가 아닌데 이거.


    “수정 씨는 자기 연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어. 나만 보면 이번엔 무슨 성과가 있었느니, 난 볼줄도 모르는 그래프와 숫자를 말하며, 좋아했지.”


    “기밀이라면서 너한테 보여줬어?”


    “응. 한번은 내가 장난으로 내가 사실 스파이라서 너한테 접근한거면 어쩌려고 다 보여주냐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러더라. 니가 보면 아냐고.”


    그건 대학물 맛이라도 본 남자친구한테는 좀 굴욕적인데.


    “난 그래도 수정 씨가 좋았어. 자기 일에 대해 그렇게 열정을 가진 모습도 좋았고, 나한테서 냄새나지 않느냐고 해도 상관없다며 웃어준 내 첫 사랑이니까.”


    뒤돌아서있어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장구의 말투에서 애틋한 감정이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선 그 수정 씨라는 여자분의 손을 맞잡은 행복한 장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때 장구의 말투가 금새 어둡게 변했다.


    “수정 씨의 프로젝트는 실험 단계를 앞두고 있었대. 근데…”


    “근데?” 


    “순간이동실험의 인체실험 단계에 지원자가 전혀 없었대. 거기에 수정 씨가 지원했어.”


    “그런 거 위험한 일 아니야?”


    “하지말라고 위험하다고 말렸지 당연히. 그런데 아직은 기밀이라도 , 이게 성공하면 자기 이름이 꼭 역사책에 실릴거라고. 결국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어.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말리겠냐.”


    “...거기서 사고가 난거야?”

    수정 씨를 찾으러 책상 밑에 기어들어간 장구는 내 질문에 침묵으로 답했다. 


    “소장이란 사람 말이 원래 수정 씨말고 일정크기 이상 생명체는 절대 들어가선 안 됐었는데... 실험장치에 모기 한 마리가 끼어들어갔다나봐.” 


    파리가 들어간게 아니고? 난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장구의 뒷통수를 쏘아봤자만 장구는 묵묵히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수정 씨는 좀 이상하긴 했어. 비위도 약했는데, 만날 때마다 맨날 선짓국을 찾질 않나, 마장동가서 생간을 먹자고 하질 않나, 이렇게 되어버리기 직전엔… 생식까지 손을 댔었어.” 


    “생식? 그럼 피?”

    아직도 뒤돌아 있던 장구는 말없이 뒤통수로 까닥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어제 한밤중에 우리집에 찾아온 수정 씨는… 더 이상 수정 씨 모습이 아니었어. 창문의 그것은 거대한 모기같았지. 그래도 아직은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았어.”


    나는 게임에서 보이던 이상하게만치 그래픽 좋은 거대모기가 창문 밖에 왜앵하고 떠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장구 몰래 소리없이 질색을 했다. 


    “수정 씨는 자기를 꼭 찾아달라며, 그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곧 몸까지 줄어들어서 어디론가 사라졌어.”


    “야 그럼 여자친구분이 아무리 모기가 됐어도, 너한테 보일만한 위치에 있겠지. 어디로 가겠어?”

    난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수정 씨 말로는 모기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인간처럼 행동할 수 없을 거래. 뇌의 크기마저 줄어들어서 버리니까…지능은 없이, 곤충으로서 본능만 남는거지.”


    “그래서 그 모기, 아니 수정 씨를 찾았다 치자 그럼 그게 수정 씨인지는 어떻게 알고, 모기 모셔놓고 살꺼야,뭐야? 대책은 있어?”


    책상 아래는 다 살폈는지 이젠 커튼을 살짝 살짝 건드리며 모기가 된 여자친구를 찾는 장구는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양자상태로 변하면 부작용으로 헤모글로빈 상태가 변질되서 피가 초록색이 된대. 나도 잘 모르지만,  일단 지금 내 방 안에 있는 모기는 다 데리고 가서 확인해봐야지. 

    그 연구소장이란 놈이 찾기만...찾기만 하면 되돌릴 수 있다고 했으니까.”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입고온 청바지에 초록색 점액이 묻은 손바닥을 슥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난 있었다해도 더 이상 있을리 없는 장구의 여자친구, 수정 씨를 찾아 말없이 장구의 방 구석구석에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 날 오후, 맴맴하는 여름철 매미소리와 가끔씩 훌쩍대는 장구의 울음소리만이 장구의 방을 채울 뿐이었다.


    출처 피를 빠는 모기는 전부 암컷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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