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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1120
    작성자 : 테라코타맨 (가입일자:2018-03-19 방문횟수:91)
    추천 : 7
    조회수 : 1780
    IP : 72.83.***.206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20/02/07 12: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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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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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 마스크



    투자 손실이 크기는 했지만 탈준경은 그 부자노인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 죽일 놈의 영감탱이가 내뱉은 마지막 한 마디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내 탈 만들어서 직접 쓰고 다니던가. 그 얼굴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어?"


    못생긴 얼굴. 가릴 수도 없는, 그래서 평생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낙인 아닌 낙인에다가 죽으라는 저주까지 받고 나니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날 밤으로 복면을 쓰고 담을 넘어들어가 노인의 가슴에 칼을 꽂아버렸다.


    "스위스 은행 계좌.. 안면인식.."


    노인은 죽어가면서 떨리는 손으로 금고와 자기 얼굴을 번갈아 가리켰다. 자그마한 금고는 잠겨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얇은 봉투 하나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얼굴에 발길질을 한 다음 금고에서 봉투를 꺼내들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워낙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거의 아무 생각도 없이 저지른 일이었다.


    탈준경이 눈을 뜬 것은 다음날 오후 4시경이었다. 새벽부터 거의 12시간을 내리 잔 셈이었다. 그곳은 가구라고는 책상과 간이침대밖에 없는 작은 방이었다. 백 평짜리 공장의 한 귀퉁이에 벽만 세워놓은 그의 사무실이자 숙소이자 부엌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니 작업대 위에 테라코타 흉상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그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지난 밤의 살인은 그저 꿈만 같았다. 사람을 죽였다는 엄청난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악몽 같았다. 눈을 떠도 깨어날 수 없는 악몽. 그 테라코타 흉상은 바로 그 부자노인의 것이었다. 붉은 황톳빛의 얼굴은 웃는 표정이었다.


    "잘 해줘. 데드 마스크, 영정 사진 대신이야."


    공장 한 켠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동굴 같은 입체 스캐너 속에 누운 채 들어갔다 나온 노인이 한 말이었다. 아흔이 넘었다는 노인은 큰 부자라서 그런지 그 나이에 일흔 남짓으로밖에 안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에 전화를 해서 흉상의 입체 해상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100 마이크론입니다. 프린트하면서 쌓아올리는 한 층의 두께가 0.1 밀리미터라는 거죠."


    "그걸 더 높일 수 있을까?"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입체 스캐너와 입체 프린터의 최고 해상도가 바로 100 마이크론입니다."


    "지문까지 재현하려면 해상도가 얼마나 되어야 할까?"


    "1 마이크론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그걸로 갑시다."


    탈준경은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지라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노인은 뜻밖에도 끈질기게 나왔다. 그는 마침내 설득당하고 말았다. 주문한 기계가 도착해서 설치한 다음 시험 가동을 하고 있을 때 노인이 찾아왔다.


    "고해상도 데드 마스크는 필요없게 되었어. 그냥 지난번 스캔한 것으로 만들어 줘."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벌써 엄청 비싸게 주고 고해상도 스캐너와 프린터를 구입했는데.."


    "탈 사장, 왜 그래. 결국 고해상도 서비스도 필요하잖아. 우리가 장사 어디 한두 번 하나."


    "근데 왜 갑자기 안 하신다는 겁니까? 기껏 하시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문까지도 똑같이 나올 정도면 홍채, 안면.. 하여간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정말 너무 하십니다. 그러니까 저를 의심하시는 거군요. 영감님의 지문을 훔칠까 봐.."


    투자한 셈 치라는 노인의 말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엉겁결에 투자하지 않으면, 그의 겁많은 성격상 그런 큰 투자는 끝까지 못하기가 십상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누명을 쓴다는 것은 몹시 억울했다. 거액의 투자가 묶인데다가 졸지에 예비 사기꾼으로 의심받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 노인은 약간의 치매끼가 있는 듯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몇 번의 비약을 한 끝에 나중에는 탈준경이 무슨 거대한 음모를 준비중인 것처럼 단단히 믿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내 탈 만들어서 직접 쓰고 다니던가. 그 얼굴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어?"


    미남형의 노인은 그렇게 쐐기를 박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사무실에 남겨진 채로 한 삼십 분을 그대로 서 있었다. 폭발 직전의 분노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사십 평생 지겹게 들어오던 스타카토 조롱과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똥물 같은 느낌의 역겨운 시선까지 그 모든 수모가 한꺼번에 천둥 같은 메아리가 되어 그의 두개골을 뒤흔들어 대고 있었다. 눈코입 붙어 있는 그 좁은 곡면에 지나지 않는 얼굴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그런 시선을 접할 때마다 그는 상대방의 눈알을 안와골에서 파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총천연색과 입체로 생생하게 느끼곤 했다.


    탈준경의 회사는 입체 프린터로 소품을 찍어내는 1인 기업이었다. 정교한 돋을새김 조각이 들어간 비녀에서 호랑이 같은 맹수의 등신대까지 다 만들었지만, 사람의 상반신을 테라코타로 만든 흉상이 전략 상품이었다.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나름 비결을 터득하여 그 분야에서는 꽤나 잘 나갔다. 그 바람에 뒤늦게 미술대학 조소과에 한 학기 등록하기도 했다.


    테라코타 흉상이나 등신대의 용도는 다양했다. 무덤 안에 넣기 위한 부장품이나 납골당에 세울 흉상 같은 데드 마스크뿐만 아니라 갓난아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 1년에 한번씩 인증사진 찍듯 등신대를 제작하는 유행이 일기도 했다. 재질도 다양했다. 실리콘을 사용한 정교한 얼굴가면은 시신을 보여주는 문화에서 장례용 인피면구로 수요가 있었다. 죽음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하는 얼굴에 생전에 떠놓은 인피면구를 씌워놓고 '뷰잉' 하는 식이었다.


    평생 뒤틀린 영혼이 평생 쌓아온 증오를 일거에 터트리느라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라, 그가 살인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얼마나 주먹구구로 저질렀는지, 자각과 공포가 밀려온 것은 그렇게 자신의 공장 작업대 위에 놓인 테라코타 흉상을 본 순간이었다. 범행도구는 복면과 장갑과 칼, 그 세 가지가 다였다.


    금방이라도 경찰이 닥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탈준경은 하루가 지나자 느긋해지기까지 했다. 그 노인의 죽음은 자연사로 보도되었다. 대기업 회장을 했던 그 노인은 정계와 재계를 넘나들던 거물로서 온갖 탈법, 불법을 저지른 악명 때문인지 아무도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아서,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뉴스도 조용했고 경찰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례를 비공개로 치른 유족도 무슨 꿍꿍이속인지 조용했다. 지저분한 가족관계 때문에 유산분쟁이 내연하고 있으리라는 추측보도만 났다. 그로서는 부자 노인이 지독한 수전노여서 이미 십 년 전에 고장난 방범 시스템을 전혀 손보지 않았고 고인이 평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탓에 가족들은 무조건 쉬쉬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스위스 은행 계좌.. 안면인식.."


    탈준경은 그 날이 저물기 전에 노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살인이 덮여버리고 나니, 증오가 새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투자금을 바로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대담한 발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가 가지고 나온 봉투에 모든 답이 다 들어 있었다. 스위스 은행 계좌 정보와 인출방법까지도.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안면인식으로 인출이 가능했지만, 안면인식의 해상도가 문제였다. 100 마이크론이 아니라 1 마이크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이미 스캔해놓은 것은 쓸모가 없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10억 스위스 프랑.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는 고비 때마다 살인 순간에 그를 사로잡았던 증오를 생생하게 소환했다. 달도 없는 밤, 적외선 안경을 쓴 채 무덤을 파고, 시신의 일부를 절단하고, 얼음 상자에 넣어 공장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수도 없이 그렇게 했다. 자기 공장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 얼음 상자를 내려놓고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하얀 형광등 불빛이 얼음 상자를 둘러싼 검은 기운과 기묘한 악취를 일거에 없애주는 것 같았다.


    최신 입체 스캐너는 훌륭했다. 바로 그 거액의 투자를 종용했던 인물의 두상을 스캔해서 최초의 초고해상도 입체 데이터를 출력하는 데에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원본을 고온 플라즈마 토치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은 간편한 선택사항이었다.


    "이제 입체 프린터를 써볼까?"


    탈준경에게서는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인조피부용 고분자화합물 수십 가지를 공급받는 입체 프린터는 머리카락과 눈썹까지 재현한 얇은 복면형 인피면구를 단면 하나하나를 쌓아올리며 만들어갔다. 바깥쪽에는 부자노인의 얼굴을 양각하고, 안쪽에는 미리 스캔해둔 탈준경 자신의 얼굴을 음각한 형상을 만든 다음, 가마에 넣고 형상기억 물질로 숙성시키는 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는 입체 프린팅이 진행되는 동안, 스캔하느라 목위로는 머리카락과 수염은 물론이고 솜털까지 다 밀어버린 달걀귀신 같은 형상으로 하루를 보냈다. 일단 스위스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그리고 문제의 스위스 은행을 찾아가 예금을 인출하고 미국으로 튀는 시나리오대로 머릿속 예행 연습을 몇 번이고 거듭했다. 그 시나리오도 탈준경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자 노인의 금고에서 가져온 봉투 속에서 여권과 미국시민권까지 함께 나온 문서에 있는 그대로였다. 평생을 탈법과 불법과 비리의 대마왕으로 일관한 한 달인의 지혜 같은 거라고 할 만했다.


    "완벽해!"


    부자 노인은 탈준경으로부터 양심의 가책마저도 덜어가는 느낌이었다.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자였던 거야. 아흔 넘기게 두다니.. 세상이 너무 태만했던 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뜻대로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에 기고만장해서 그는 신성모독, 아니 적어도 염라대왕 모독도 서슴지 않았다.


    "완벽해! 완벽해!"


    부록으로 제작된 열 개의 지문은 그의 열 손가락 끝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이물감은 없었다.


    "드디어.."


    부자 노인의 인피면구를 쓸 차례였다. 아니, 부자 노인이 될 차례였다. 한 많은 얼굴을 돈 많은 얼굴로 가릴 때가 되었다. 그는 숙성된 인피면구를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일단 너무 가벼웠다. 머리카락 부분만 뺀다면 손에 잡히는 질감은 딱 뱀 허물이었다. 아래로 열려 있는 목 부분으로 털을 모두 밀어버린 머리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첫 느낌은 좀 팽팽한 고무 가면 같았다. 얼굴은 물론이고 정수리와 뒷통수와 목 둘레에도 꼭 끼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눈과 코와 입 부분의 위치를 맞추어 갔다.


    "스스슥~!"


    눈썹 위쪽을 동시에 잡아당겼다가 눈이 잘 보이도록 놓은 다음 인중 부분을 잡아당겨 위치를 잡아 놓는 순간, 인피면구는 마치 살아있는 물건처럼 뱀이 풀밭을 헤치고 지나가듯 사사삭~ 소리를 내며 도미노 조각처럼 제 자리를 찾아갔다. 두 눈과 인중이 제 자리를 잡아 기준점이 정해지자 나머지 부분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제 자리를 잡아간 것이었다. 무려 1 마이크론의 해상도로 맞아들어간 탈준경의 피부와 인피면구는 물샐 틈 없이 들어맞았다. 순간, 그는 얼굴과 뒷통수 그리고 목 둘레까지 그 어디에도 어색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요철이 맞지 않아 끝내 불편하던 가면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다시 맨 얼굴이 된 느낌이었다. 거울 속에는 부자 노인이 웃고 있었다.


    탈준경은 부자 노인의 여권을 들고 부자 노인의 탈을 쓰고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3시간 뒤면 그는 떠나게 되어 있었다. 비행기는 편도. 사람을 죽인 지 사흘, 예정에도 없던 출국, 남은 시간은 단 3시간, 그 속도를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연쇄반응이라면 그런 연쇄반응이 없었고 도미노라면 이런 도미노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색안경과 모자를 쓰고 사람들 틈에 묻혀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경찰이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스위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는 비행기 맨 뒤로 들어가 안쪽 자리에 앉았다.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가 앉은 좌석열은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 비행기 문이 닫혔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질주하다가 앞바퀴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온몸의 맥이 탁 풀리며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했다.


    얼마나 잤을까. 그는 나른한 가운데 살며시 눈을 떴다. 왼쪽에 난 비행기 창으로 검푸른 빛을 띤 산줄기들이 보였다. 그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자리 건너 통로쪽에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찾아다녔네요.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지 뭡니까?"


    그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운이 사내 쪽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 뭐라구요?"


    좌석에서 몸을 곧추 세운 탈준경은 벌써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검은 갓, 검은 두루마기, 검은 바지. 새하얀 얼굴에 굳게 다문 입술은 까만 색이었다. 그는 바로 부자 노인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였다. 그는 웃옷을 헤집고 미친 듯이 인피면구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것은 매끄러운 피부일 뿐, 부자 노인의 얼굴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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