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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1105
    작성자 : 테라코타맨 (가입일자:2018-03-19 방문횟수:91)
    추천 : 3
    조회수 : 794
    IP : 172.69.***.12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1/28 12:13:35
    http://todayhumor.com/?panic_101105 모바일
    마지막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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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해고 [-1]



    인터뷰

    펜슬 빌딩 꼭대기층, 쿼크돌 투자회사 회장실에서는 이 회사의 마지막 채용을 위한 취업 면접이 진행되고 있다. 다운타운과 미드타운에 촘촘히 들어선 다른 모든 빌딩들이 네 면을 동서남북으로 뻗은 바둑판 모양 도로들에 충직하게 따른 데 반해 펜슬 빌딩은 홀로 45도 회전하여 사면 대신 네 모서리들을 동서남북에 일치시켰다. 높이로나 방향으로나 그렇게 두드러진 펜슬 빌딩은 비행기에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실상부 남부에서 가장 높은 고층빌딩이었다. 정남쪽 모서리에 위치한 회장실에 하지의 낙조가 비쳐들고 있다. 신새벽 태양과 석양 노을을 다 볼 수 있는 곳을 고집했던 스미 애덤스 회장의 선택대로였다. 사시사철 낮 동안 내내 두 개의 대형 유리창 가운데 적어도 하나를 통해서 햇볕이 들었다. 남부 최고층 펜슬 빌딩의 삐딱한 방향은 애덤스 회장의 그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세계 최대 투자회사 소유주로서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게 정말인가? 우리 회사 운영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 처리와 계산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다는 게. 우리 회사가 관리하는 수백만 개의 투자용 계좌는 전 지구에 흩어져 있고 각 계좌들은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수천 개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서 모두 십억 개가 넘는 항목들로 이루어진 초대형 데이터베이스를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

    애덤스 회장은 영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길로 상대를 빤히 쳐다본다. 노트북 컴퓨터 한 대만 갖고 쿼크돌 투자회사를 창업한 금융업계의 전설 스미 애덤스 회장은 둔중한 거동과는 달리 두뇌의 명민함과 눈초리의 매서움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 또한 금융가에 잘 알려진 현재진행형 전설이다. 높은 등받이에 상체를 뒤로 비스듬히 기댄 채 오른손은 팔걸이에 얹고 왼손으로는 책상 위에 접혀 있는 노트북을 툭툭 친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의 오른편에 그린 듯이 앉은 사내가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대답한다. 자신의 상대가 세계 금융업계의 전설이라는 사실도 아예 모르는 듯한, 토요일 아침 동네 서점이나 빵집 주인 대하는 듯한 태도다. 삼십대 초반, 차림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금융업계 직원의 작업복인 감색 양복 정장이다.

    "우리 직원이 세계적으로는 십만 명이 넘고 그들이 쓰는 컴퓨터만 하더라도 십만 대가 넘는다는 얘기인데, 그 많은 빅데이터 처리를 어떻게 혼자 다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도 영 믿기지가 않는다는 말이지."

    회장이 이번에는 왼편에 앉아 있는 사내를 쳐다본다. 애덤스 회장의 비서, 시니스터 암스트롱. 사십대 중반, 인생의 절정기를 맞고 있는 그는 회장이 늘 부러워하는 젊음을 갖고 있었지만 태도는 신중하기 이를 데 없어 회장의 동년배 같은 느낌을 주었다.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자세로 회장을 마주 본다.

    "매스터 모니백은 세계 최고의 금융전문입니다. 금융에만 그치지 않고 백과전서파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섭렵하여, 순수 수학이나 데이터 과학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학, 인간학이라고 해야 할 금융에 최적화된 후보입니다."

    "그건 나도 잘 알지만 눈으로 보면 볼수록 오히려 믿기지 않으니 그게 바로 나의 문제라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 그대로이지 않을까 합니다."

    회장과 비서가 눈 앞에서 자신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암스트롱의 맞은 편에 앉은 매스터 모니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느 지점에서 대화를 치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고객이 의혹에 휩싸여 있을 때는 그 의혹을 고객 스스로 없앨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았다. 그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행위를 자기쪽에서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사람들은 어쨌든 스스로 한다는 생각과 느낌을 좋아하니까.

    "매스터 모니백, 날마다, 매 순간 쿼크돌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데이터와 그 모든 계산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봅시다. 효율과 정확성,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회장은 일어서며 매스터 모니백에게 악수를 청했다. 암스트롱이 매스터 모니백을 안내하여 회장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자꾸만 의심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회장님, 마지막 채용 면접을 잘 마치게 되어 기쁩니다. 매스터 모니백, 직접 만나보니 어떠신가요? 그 능력은 이미 검증이 끝난 부분입니다. 오늘 직접 보시게 한 이유는 매스터 모니백의 됨됨이 같은, 업무 능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간적인 면모를 따져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니백을 내보내고 되돌아와 그의 책상 옆에 서서 조심스럽게 팔짱을 낀 자세로 암스트롱이 말한다. 이중 유리창 사이에 끼인 액정판에 열기를 빼앗기고 회장실 공간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온 붉은 노을빛이 그의 전신에서 그늘을 걷어내자 그는 순간적으로 등신대 입간판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면모라.. 어쨌든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직원 십만 명이 내놓는 결과와 매스터 모니백이 내놓는 결과를 비교해보기로 하지.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의 동향은 계속 주시하고. 어찌 되었든 우리의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확실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애덤스 회장의 등받이에 대고 목례를 한 암스트롱은 회장실을 나왔다. 매스터 모니백, 그러니까 인공지능 모니백-777의 면접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앤드로이드 인터페이스는 그런 대로 만족스러웠다. 매스터 모니백이 그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현실세계로 걸어나와야 할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겠지만 화면 속 숫자보다는 엄지와 검지/중지 사이에서 문질러지는 금화나 하다 못해 종이돈 같은 감촉만을 믿는 애덤스 회장에게는 꼭 필요한 부속장치라고 할 수 있었다.

    "모니백-777. 텐진 그룹. 보제-아인스 그룹."

    회장실 문을 등 뒤로 닫은 암스트롱의 마음에 떠다니는 세 가지였다.

    한 잔의 커피

    세상은 숫자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실물과 황금이 오가겠지만 장부상에서는 무수한 숫자가 증감하거나 행과 열을 타고 노는 숫자놀음이었고, 드넓은 시공간에 펼쳐지는 시장이란 의혹에 가득 찬 무대 위에서 한없이 얽히고설킬 뿐만 아니라 시공간 순간이동도 예사로 해치우는 거래라는 신출귀몰한 현상을 사람들이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와 같은 복잡성과 비직관성으로 인간의 오감과 인지능력을 훌쩍 뛰어넘은 시장과 상거래, 경제현상 전반에 걸쳐서 실물이 장부상 숫자를 움직이는 것보다 숫자가 실물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힘의 역전이 일어난 지 오래였다. 그 가운데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업계에서는 그런 숫자지상주의가 극한까지 간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숫자의 마술을 가장 현란하게 펼칠 수 있는 금융이 경제 전반을 지배하게 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돈은 그와 같이 실체가 없는 전형적인 가상 숫자놀음으로 출발했지만 시장이라는 매순간 변하는 복잡하기 그지 없는 지형지물 위에서 수동적으로 흐르면서도 침식과 퇴적 작용을 통해 그 지형지물 자체를 능동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 거대한 흐름, 숫자들의 쓰나미가 되었다. 번쩍거리며 묵직한 금화로 출발해서 어쨌든 아직까지는 손에 만져지고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지폐 상태를 거친 돈은 최종적으로 전자화되어 복잡한 회계 컴퓨터망을 따라 흐르는 숫자, 그것도 이진수의 흐름이 되어, 시장과 경제와 세상 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전지전능, 무소부재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 별들의 전쟁에서 쿼크돌과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금융회사가 바로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 그룹이었다. 금융업계 너머 경제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이 세 회사는 실은 그 오래된 삼발이나 다리 셋 달린 솥처럼 정립하여 천변만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영속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한증식, 무한질주, 승자독식 유전자를 탑재한 자본주의는 청동기시대부터 굳건이 서 있는 삼발이나 솥마저도 그냥 두지 않았다, 못했다.

    애덤스 회장이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 그룹을 적대적으로 합병해버린 것은 모니백-777을 도입하여 쿼크돌의 창을 벼리고 방패의 약점을 제거한 때로부터 딱 한 회계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인사와 인재영입에 모든 것을 걸었던 애덤스 회장의 선명지명의 결과였지만 쿼크돌 직원 십만 명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 하나하나는 숫자에 관한 한 동물적인 감각과 레이저 잣대의 정확성을 가진 숫자의 전사들이었다. 손가락, 산가지, 주판, 계산자, 컴퓨터, 잔머리 등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었다. 빅데이터든 미시경제든 능수능란 자유자재 그 자체였다. 게다가 모니백-777이 뒷배를 봐줌으로써 일말의 불확실성마저 제거한 쿼크돌은 공격으로 수비까지 겸하는 공격일변도 경영으로 삼사정립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렸다.

    켈쌍 텐진, 국경선과 국가 경제체제의 장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나가는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 북부를 돈으로 완전히 장악한 텐진 그룹의 소유주였다. 쿠마르 싱, 인도와 아세안 등 유라시아 대륙의 남부를 역시 금융으로 장악한 보제-아인스 그룹의 창업자였다. 그랬던 그들이 쿼크돌의 초대를 받아 애덤스 회장을 예방하고 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암스트롱 비서의 안내를 받는 그 두사람의 표정은 가늠하기 힘들었다. 둘 다 나이는 애덤스 회장과 비슷해 보였지만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켈쌍 텐진은 잘 생긴 각진 얼굴에 깊은 갈색 눈동자,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이어서 헐리우드 체력단련장 목욕실에서 막 빠져나온 칭기스칸 역 맡은 배우 느낌이었고, 쿠마르 싱 역시 뚜렷한 이목구비에 가무잡잡한 피부와 눈가의 잔주름이 잘 어울리고 우뚝한 키와 새하얀 터번은 전제적으로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의 늘씬한 대리석 기둥을 연상시켰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애덤스 회장의 몸짓은 과장되어 있다. 텐진, 싱과 더불어 잇달아 악수를 나누는 애덤스 회장은 승리자로서 두 패배자에게 적어도 관용으로 해석될 태도를 보여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외모의 차이가 어떤 식으로든 돈놀이, 숫자놀이에 영향을 주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 세 사람의 거동을 보면서 암스트롱은 그런 엉뚱한 계산을 해본다.

    "쿼크돌과의 인수합병에 동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최고의 생산성과 효율로 온 세상을 제대로 경영해 봅시다. 이사회에 정식으로 소개하기 전에 따로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쿼크돌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스미 애덤스 회장의 백 퍼센트 순수한 개인회사이기 때문이다. 권한은 아무 것도 없는, 적대적인 인수합병의 희생자가 된 회사들의 옛 경영자 출신들이 대부분으로, 쿼크돌에만 존재하는 기묘한 사교 클럽, 애덤스 회장이 승리의 추억을 대놓고 곱씹을 수 있는 훌륭한 일인극 무대, 회계년도에 한번씩 만나 커피 마시는 모임일 뿐이다.

    "두 분들에 대해서는 우리 암스트롱 비서가 특별히 챙겨드릴 것입니다."

    회장은 암스트롱을 턱짓으로 가리켰고 텐진과 싱, 두 사람은 암스트롱을 흘낏 쳐다본다. 암스트롱은 살짝 허리를 굽혀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절을 한다. 두 사람은 무표정이다.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 애덤스 회장이 그의 컴퓨터 화면에서 이미 실행했던 일을 암스트롱이 직접 나서서 알려주는 악역을 맡았던 탓이다. 십만을 헤아리는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 그룹의 사원들을 모조리 자른 것이다. 아무리 정보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한 문장을 채 구성하지 못하는 미완성 문자나 공손하기 짝이 없는 형판의 문구로만 채워진 이메일로는 해고라는 엄중한 상황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없다고 애덤스 회장은 판단한 것이다.

    "점령은 내가 했지만 점령군의 위세는 나 대신 자네가 떨쳐보라는 거지. 십만 명을 단기필마로!"

    회장의 유치한 말에 암스트롱은 고맙다고는 했지만, 악역을 그는 좋아하지도 않았고 결국 즐기지도 못했다. 점령군의 위세는 애덤스 회장 정도의 영혼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암스트롱은 생각하고 그냥 말았다.

    독점

    쿼크돌의 자본 천하통일의 효력은 즉각 나타났다. 워싱턴에서 애덤스 회장을 초대한 것이다. 백악관 공식 만찬과 뒤이어 열리는 국가안보전략회의에 배석하는 영광이 주어졌다. 일개 사기업, 그것도 한 개인이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소유주를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부른 것이니, 아무리 국가란 오래된 시스템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고 해도 보통 일은 분명 아니었다.

    "백악관 만찬이야 뭐 먹을 게 있을까 싶지만 국가안보전략회의에는 구미가 좀 당기는군."

    워싱턴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회장은 암스트롱에게 말한다. 아메리카 대륙 남북의 경제만을 주무르던 과거에도 그럴 판인데 유라시아 대륙까지 다 먹은 쿼크돌의 위세는 미국 대통령의 그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상은 이제 기업이 국가를, 한 개인이 기업과 국가를 능가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약적으로 발달한 정보처리 기술의 여파였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기업, 하나의 국가 전체의 조직과 운영을 위한 정보를 수집, 분석, 가공, 집행하는 데에 기업이나 국가와 같은 거대한 인간들의 집단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황제 홀로 통치하는 거대 제국이 드디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애덤스 회장의 비위를 맞출 이유는 많고 많았다. 미국 정부 정도는 애덤스 회장이 파산시킬 수 있었다. 국가나 정부란 제도로 돈, 숫자의 흐름 위에 세운 모래성 같은 거였다. 게다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또한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어서, 99퍼센트의 선언 뿐인 주권재민은 그들 하나하나가 각자도생에 바쁘게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는 시스템의 특성상 귀 따가운 시끄러움만 잠시 견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부동의 진실은, 스미 애덤스는 1퍼센트가 아니라 0.000001퍼센트이고, 저들은 99퍼센트가 아니라 99.99999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을, 숫자들이 앞뒤로 안팎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따뜻한 남부에서 얼어붙은 동북부로 날아간 애덤스 회장과 암스트롱은 백악관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지만, 애덤스 회장의 실망은 예상대로였다. 의전도 만찬도 그저그렇고 소문만 무성하던 국가안보전략회의도 밋밋하기 그지 없어서, 그 역시 대중매체 또는 헐리우드의 편집능력이었구나 싶었다. 어쩌면 전통에 빛나는 국가 시스템의 위상과 전설에 지레 짓눌린 나머지 헐리우드 편집능력에 버금가는 개인편집 또는 자체검열 도구를 이미 각자의 세계관이나 가치관 영역에 붙박아 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0.000001퍼센트라는 애덤스 회장의 정신세계가 그 모양이었니 그 힘은 아무도 이겨낼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역시 실망이야. 국가안보전략회의의 의제가 고작 그런 수준이었다니 말이야. 우리 쿼크돌의 이사회만도 못해. 대국적인 시각, 전략적인 사고는 아예 없고 일개국가 경영과 같은 전술적이고 기술적인 즉답형, 단답형 해결책 찾기만 열심히 하더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애덤스 회장이 묻는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그 시각 전용기를 입체적으로 전방위 호위하고 있는 백여 대의 미공군기들을 상상해보고 회장이 앉아 있는 의자 뒤 벽면에 크게 박혀 있는 쿼크돌 로고의 번쩍이는 황금색을 보면서 암스트롱은 회장의 말대로라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 예산보다 쿼크돌의 예산 규모가 더 크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정부 예산의 대부분은 방대한 인사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그 생산성이나 영향력 면에서 우리 쿼크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수퍼컴퓨터 한 대 없고 그 구성원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일명 '정부 앱'이라고 불리우는 정부 통합 시스템의 단말기 지킴이 정도이니 모니백-777과 서로를 점검/지원하면서 경합하는 우리 십만 조직과는 차이가 많은 편입니다."

    "정부 앱? 우리 자회사 가운데 하나가 납품한 거잖아. 우리가 인력지원도 하고 있지 아마?"

    애덤스 회장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렇습니다. 백명 정도의 직원들이 전담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모니백이 거의 혼자 다 알아서 관리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해놓고 시니스터 암스트롱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회장과 자신의 대화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상수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니백이었다. 세상은 쿼크돌이 독점하고 있었고 쿼크돌은 모니백이 경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그는 회장의 표정을 살핀다. 그늘 하나 없이 양기 충만한 복스러운 상의 얼굴. 시니스터 암스트롱은 회장에게서 흘러넘치는 긍정의 기운에 감염되는 상상을 애써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이 입에 달고 사는 '생산성과 효율'의 구도에서 암스트롱 자신은 어디쯤 배치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갑자기 이는 순간이었다.

    사생활

    백악관을 다녀온 스미 애덤스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숙적이었던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 그룹은 일년에 한번 커피 같이 마시는 사이가 되었고, 세 회사를 이이제이하며 은근히 즐기던 백악관은 무조건 항복했고, 쿼크돌의 십만 조직은 모니백이라는 끼움수 하나로 바짝 조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만성 소화불량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끼움수. 정말 묘수란 말이야."

    그는 일요일에도 집무실에 나왔다. 그가 강력한 힘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끼움수라는 묘수는 특히나 그 순간 그에게 힘과 편안함을 한꺼번에 주었다. 텐진과 보제-아인스의 인수합병으로 인해 외부의 경쟁 상대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자칫 내부 조직이 해이해질 것을 그는 걱정하고 있었는데, 모니백의 도입은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사라진 경쟁을 내부의 경쟁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사원 십만 명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멀리 회사 밖에 있어 막연했던 경쟁 상대가 갑자기 회사 안, 자기 눈앞에 모니백이란 쐐기로 구체화되어 나타나 박힌 꼴이었다. 쿼크돌 내부 조직에서 서로 맞물려 돌아가던 십만 개의 나사들이 순식간에 알아서 꽉꽉 조여졌다.

    "어서 들어 오시게."

    애덤스 회장은 막 방안에 들어선 말쑥한 양복 차림의 사내에게 손짓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매스터 모니백,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니백-777의 앤드로이드 인터페이스를 불러들인 것이다.

    "먼 걸음을 하게 했군. 하하하."

    애덤스 회장은 짐짓 호탕하게 웃는다. 모니백 로봇 화신과의 직접 만남은 채용 면접 이후 처음이다. 모니백의 본체는 펜슬 빌딩에서 정동쪽으로 10 마일 정도 떨어진 거대한 바위산 지하에 설치되어 있으니 모니백 화신이 그 10 마일을 실제로 달려온 듯이 의인화할 모양이다. 하지만, 본체가 바위산 지하에 있는 것은 맞지만 모니백의 로봇 화신은 회장실에서 지근거리인 은폐된 특수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회장이 호출하면 5분 안에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니백은 그저 싱긋 웃어보였다.

    "언제든지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전략적 외교적 대응을 계산해내는 일은 모니백에겐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현물시장과 주식시장을 가리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온 세상의 경제 동향을 천분의 일 초 단위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본 작업을 조금도 늦출 필요가 없다.

    "텐진과 보제-아인스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나 완결된 일입니다. 켈쌍 텐진과 쿠마르 싱 두 사람을 포함한 옛 직원들 전체에 대한 감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애덤스 회장은 아랫배를 앞으로 쑥 내미는 동시에 횡경막을 한껏 끌어내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는다.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밀려든다.

    "좋아. 그쪽은 그렇게 계속하면 될 것 같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본이란 끊임없이 굴리고 끊임없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야. 물론 잘 알고 있으리라 믿지만."

    "다음의 한 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쪽과 미시적인 쪽을 놓치지 않고 있고요."

    "그래? 내 마음에 꼭 드는군. 나도 새로운 먹잇감이 없을까 구상중이었는데 말이야."

    애덤스와 모니백의 대화가 무르익고 있을 때 시니스터 암스트롱이 나타났다.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시니스터 암스트롱, '나의 왼팔'이라고 애덤스 회장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리고 모니백과 눈짓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의 오른팔은 어느새 모니백이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모니백도 부르신 줄 몰랐습니다."

    암스트롱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애덤스가 탁자 머리에 앉았고 암스트롱과 모니백이 좌우로 나누어 앉았다. 암스트롱은 자리에 앉으며 맞은편에 있는 모니백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장으로 차려 입은 모니백의 차림새가 자신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의혹과 불안이 그의 마음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인수합병의 대상으로 정부를 고려하심이 어떨런지요? 생산성과 효율 측면에서 볼 때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만한 조직입니다. 기업과는 다른 특수한 조직인 것은 알겠습니다만, 정부의 전면적인 민영화는 시대의 대세라고 봅니다."

    모니백이 제안했다. 조용조용한 말투였지만 조금의 흔들림이나 떨림도 거기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강철 척추를 가진 존재의 확고부동한 신념이 듣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모니백은 어쩌면 뇌파를 음파로 간접 조종할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까지 최적화시켜 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덤스 회장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역시 과녁을 제대로 맞춘 모양이었다. 암스트롱은 자신의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모니백은 비서인 자기와 비슷한 옷차림으로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오로지 그의 몫이었던 그와 같은 제안을 지금 모니백이 대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생산성과 효율을 들먹이는 시점의 선택이나 바라보는 시각의 무차별은 완전히 애덤스 회장의 판박이였다.

    자동화

    애덤스 회장은 손수 커피를 끓여 냈다. 평소 수행비서를이 하던 일이었다.

    "수행비서를 잘랐거든. 솔선수범하려고."

    단어를 고르느라 머뭇거리던 회장이 말한다. 아마도 사람을 들먹이자니 암스트롱이 걸리고 로봇을 들먹이자니 모니백이 걸린 모양이었다. 원래 회장의 잔 심부름을 하던 수행비서는 사람 한 명, 로봇 한 대이던 터였다. 평소의 애덤스 회장답지 않은 배려의 순간을 눈치빠른 암스트롱은 얼른 알아차렸고, 몇 나노초만에 계산 끝낸 모니백은 모르는 체했다.

    "자본주의는 생산성과 효율이야. 안 그래? 끝까지 남김없이 최적화시키지 않으면 내가 직성이 안 풀려서 말이야."

    세 사람 앞에, 두 사람과 한 로봇 앞에 각각 한 잔씩, 커피 세 잔이 놓인다. 암스트롱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회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커피맛을 모른대서야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모니백 이 친구, 아주 커피광이야."

    회장의 난데없는 유쾌함이 소환된다. 그리고 곧바로 질주한다.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야. 밥도 먹는다구. 우리와 똑같은 신진대사를 하면서 아데노신 삼인산 생합성과 생분해로 에너지도 얻을 수 있고 말이야. 일종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랄까? 하하하!"

    불과 몇 초 전에 보여주었던 배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 모양새다. 암스트롱은 얼굴에 뜨뜻함을 느끼며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모니백을 쳐다보았지만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없이 웃기만 한다.

    ", 본론으로 들어갈까. 화이트칼라를 먼저 자르자구. 블루칼라는 그 다음. 이 또한 우리가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 먼저 우리 쿼크돌 사원 십만 명을 대상으로 해서 말이야."

    회장의 말에 암스트롱은 깜짝 놀라고 만다. 당황한 나머지 커피잔을 잔받침에 부딪쳐 달그락 소리를 낸다.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 그룹의 정리해고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으로서 사안의 중대성에 짓눌린 탓이다. 더우기 회장의 태도는 동네 야구 친선경기에서 선수 교체하는 감독 만큼의 진지함이나 진중함도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화이트칼라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들이 자동화하기 딱 좋은 일들이거든. 사무직, 관리직이 하는 일이 뭐야.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이잖아. 여러 응용 프로그램 돌려 그 결과를 모아 분석하는 일일 터인데, 요즘엔 컴퓨터가 스스로를 프로그래밍하고 자료의 분석, 종합, 예측까지 알아서 다 해내는 세상이야. 화이트칼라, 세상에 쓸모 없는 인력이지.

    "블루칼라도 마찬가지야. 화이트칼라에 비해서야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고유 영역이 훨씬 더 많은 편이었지만, 공장의 모든 생산 공정을 실은 이미 로봇들이 돌리고 있잖아. 지금까지는 로봇의 유지/보수와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예측불가능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블루칼라들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이젠 아니야. 오히려 현장에 인력이 투입되면 괜히 안전장치만 이중삼중으로 해야 돼서 생산성이 확 떨어져 버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아. 생각해보자구. 노예제사회가 농노제사회로, 다시 자본주의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는 노동제사회였다면 이제 역사발전단계상 로봇제사회로 이행할 때가 된 거 아니겠어."

    한동안 회장실 안은 조용했다. 암스트롱으로선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말뿐이었고, 모니백은 질문받기 전까지는 별로 말이 없는 로봇의 성격상 침묵 속에서 부단한 초고속 계산만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으며, 말을 마친 애덤스 회장은 둘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빙글거리고만 있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모니백의 검토도 이미 끝난 상황이겠군요, 회장님."

    정적을 깬 사람은 암스트롱이다. 그의 손은 이제 떨리지도 않는다. 식은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회장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묻는 말이었다.

    "아니, 모니백은 나의 이 전자동화, 완전한 무인화 계획에 반대야. 적어도 기본소득 제도를 완비하고 나서 해야 한대나 뭐래나. 암스트롱 자네도 그런가? 무척 실망인 걸. 미래와 대세를 보는 눈이 그렇게들 없단 말인가. "

    그때서야 암스트롱은 회장을 쳐다본다. 여전히 얼굴은 싱글벙글이고 목소리는 의기양양하다. 어디까지는 이 상황을 주도하고 쿼크돌을 경영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압도적인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어차피 인간노동자에 불과하지. 옷깃 색깔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우리에겐 이제 옐로우칼라, 로봇들이 있잖아."

    산업용 로봇은 언제부터인가 죄다 노란색이었다. 애덤스 회장의 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번복되지 않을 것이다. 암스트롱은 또다시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쿼크돌 본사가 무인화되면 우리 산하에 있는 모든 제조회사, 서비스회사로 확대하고 마지막으로는 정부를 무인화하기로 했다네."

    기본소득제? 암스트롱은 모니백을 먼저 쳐다본다. 그 로봇은 여전히 거의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애덤스 회장도 쳐다본다. 모니백의 초인적인 능력을 보고 믿고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그렇게 믿어마지 않는 로봇의 마지막 제안은 듣지 않는다? 의문이었다.

    해고바람 (firing wind)

    쿼크돌의 지사만 해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어 그 건물과 컴퓨터 시스템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블루칼라 직원들의 조합은 막강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 노조위원장 위세 또한 어느 임원의 그것과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모두 모니백이 전면에 나서기 전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처음에 사무직과 관리직 직원들이 '전원' 정리해고될 때만 해도 노조의 힘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노조의 주력은 역시 블루칼라 직원들인지라 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회장과의 만남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곤 하나도 없는, 씨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답답하고 막막했다.

    "위원장, 세상 변하는 게 안 보입니까? 컴퓨터가 컴퓨터를 가르치고 집이 집을 고치고 지키는 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을지는 모르지만, 이제 사람들 머리 위에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앉아있는 시대가 되었단 말입니다. 언제까지 노동의 신성함이나 논할 겁니까?

    "법대로 하자구요? 몇 번이나 말해야 합니까. 생산성과 효율이 바로 법이라고. 그 두 가지는 정부나 국가, 정의나 기본권, 헌법 위에 있는 절대기준이라니까요. 그런 뜻에서 생산성과 효율이야말로 신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이 변해버린 것을 우리와 같은 일개 기업이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 기업도 변해야 하고 노동자들도 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덤스 회장은 철벽이었다.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나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해 경쟁력이 없으므로 당장의 도태는 '발전' 도상의 과정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과정이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현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하나의 신상태로 굳을 것인가는 순전히 노동자 자신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모두 잘라내면 노동자들은 도대체 무얼 먹고 살라는 말입니까? 사회 전반이 자동화되고 나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위원장은 자신이 듣기에도 푸념에 지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항변을 해보았지만, 이미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최종 진단을 내린 애덤스 회장의 반응은 뻔했다.

    "나야 밤낮없이 기업 하느라 바쁜 사람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이를테면 오로지 자가소비를 위한 식량생산 위주 농사는 기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상품으로서의 농산품 생산이야 이미 대기업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으니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아예 없겠고."

    애덤스 회장으로서는 그나마 성의있는 답변이었다.

    "회장님 말씀대로 우리 노동자들의 딱한 처지가 일시적일지 지속적일지는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겠지만, 회장님의 이런 세상은 과연 지속가능할까요? 노동자는 임금을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요술로 만들어낸 상품들을 구매하고 소비해주는 그런 왕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하기야, 정 필요하면 왕 같은 소비자 로봇을 만들면 되겠네요."

    노조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덤스 회장을 비꼬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소비자 로봇? 꽤나 흥미로운 생각인 걸. 한번 알아봐 주게."

    애덤스 회장은 배석한 암스트롱에게 즉석에서 지시했다.

    쿼크돌 노조 위원장에 이어 미국 정부 공무원 노조 위원장이 나타났지만 대화의 흐름은 비슷했다. 철밥통에 익숙한 그들은 쿼크돌 노조에 비하면 다루기가 훨씬 수월한 편이었다. 갑질이 체화된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을의 처지는 끝까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자신들이 한번도 좋아해본 적 없는 영화 속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억지 코스프레하자니 코스프레 당사자도 구경꾼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암스트롱은 역시 말 한 마디 거들지 못하고 애덤스 회장이 그 상황을 다 처리했다. 기업에 이어 정부까지 손아귀에 넣고 아무 것도 거칠 게 없는 그는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말대로 점령군 행세를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방 안에 둘만 남았을 때 애덤스 회장은 꽤나 오랜 시간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암스트롱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참만에 회장이 물었다.

    "왕 같은 소비자 로봇,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게 필요하게 될까? 필요하면 만들면 되겠지만, 어떻게 작동할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온 세상을 자동화하고 무인화하여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나면, 그렇게 효율적으로 생산한 막대한 재화와 서비스를 누군가 소비해줘야 할 텐데."

    애덤스 회장이 드물게 하는 철학적인 사고의 순간이 된 것이다. 암스트롱은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아직 끼어들 때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아는 그다. 회장이 자신의 생각과 중간 결론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골치아픈 일일세. 일단 됐고, 경찰과 군대를 무인화, 로봇화하기로 해야겠군. 사람들이 생산성과 효율의 철학을 납득하지 못하고 폭동이라도 일으킨다면 나도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할 테니까."

    회장의 드문 사색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항공우주국 국장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국장의 작고 단단한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행복지수는 몇 단계를 도약했다. 그의 눈은 동그란 안경알 너머에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이미 애덤스 회장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지상에서의 점령군 행세도 나쁘지 않았지만, 천상에서의 온갖 신비와 모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주는 애덤스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며, 어린 시절에는 거의 날마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뛰놀던 평생의 놀이터였다.

    "어서 오십시오?"

    그는 국장의 손을 덥석 잡고 대뜸 편안한 의자로 직접 이끈다.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극진하기 이를 데 없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회장은 허리를 곧게 세운 국장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친근하게 다가든다. 회장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기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우주개발 계획은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의회 예산안 통과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원안대로 추진하시되 기술개발 등에 추가 예산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구요. 제 사재라도 털어서 지원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폭적인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우주개발 계획안에 들어 있는 항목들을 하나씩 현실화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국장의 말에 애덤스 회장은 당장에라도 달 표면 지구바라기 도시나 화성 식민지에 자신의 개인 별장이라도 지을 수 있을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애덤스 회장의 취향을 속속들이 잘 아는 국장이 제안한 우주개발 계획서에는 회장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항목들이 많았다. 먼저 태양계 전체에 깔릴 전산망이나 우주인터넷을 위한 중계기지로서 인공지능/데이터 센터를 화성의 위성 포보스에 건설하는 안이 돋보인다. 거대한 두 주제인 우주와 인공지능이 만나는 셈인데, 내행성계에서 외행성대로 넘어가는 길목의 후보지로서 포보스는 소행성대의 강자 세레스와 경합중이었다. 그 외에도 소행성대의 광물자원 채굴을 위한 소행성대의 개발, 외계 생명체 발견을 위한 목성의 위성 유로파 탐사, 태양계 최고의 관광지가 될 토성 실시간 관측을 위한 주요 위성 전망대 건설, 명왕성과 그 위성 또는 쌍동이 왜행성 카론에 태양계 외곽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 구축하기, 태양계 안팎을 넘나드는 혜성을 따라다니는 혜성추적탐사선의 유인화 등이 있었다.

    "하나씩 순차적으로 할 게 아니라 한꺼번에 다 추진하면 어떻겠습니까.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네요. 달과 화성에 건설할 도시나 식민지도 일단 작은 규모로 시작한다면 동시에 진행될 수 있겠지요? 강철과 유리로 만든 반구형 성채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회장의 말에 암스트롱은 살짝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것은 바로 달과 화성에 정말로 자신의 개인 별장을 짓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애덤스 회장에 대한 이해도가 자신만큼은 높지 않을 게 뻔한 국장은 그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회장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자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는 애덤스 회장이나 국장이 아니라 암스트롱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회장은 지구 최고의 부자, 아니 지구 유일의 자산가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국가의 정부를 '정부서비스'라고 불리우는 잘 정의된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쿼크돌의 자회사로 편입하여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에 앉아 있는 항공우주국 국장도 대놓고 따지자면 애덤스 회장의 사저에 고용된 정원사와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지난 20세기에는 강대국들의 체제 대결 수단이 되었던 우주개발, 우주탐험이 이제는 한 개인의 취미 생활이 되어버린 터였다. 그것도 지구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딱 한 사람의.

    애덤스 회장과 항공우주국 국장의 만남은 암스트롱의 배석 하에 진행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지킨 덕분에 가장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던 암스트롱도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던 또다른 참석자가 있었다. 바로 모니백이란 존재였다.

    살신성인

    모니백의 등장은 비단 투자회사 쿼크돌에 국한되는 일개 사건이 아니었다. 범세계적인, 전인류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봇개발사적인 일대 사변, 격변이었다. 인간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력하기 짝이 없는 로봇팔,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로봇손으로 생산 제공되고 있었다. 인간 노동자들은 단지 100억 인류의 열 배에 해당하는 10조를 헤아리는 그 각양각색각종의 로봇들을 관리한다는 명목, 모양새였을 뿐이다. 그런데 모니백이 완성됨으로써 그 무늬만의 로봇 관리조차 인간이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모니백은 이미 애덤스 회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였다. 모니백은 어느새 무소부재와 무소불위의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니백은 애덤스 회장이 켈쌍 텐진이나 쿠마르 싱과 만나 담판짓는 현장에도 있었고 쿼크돌의 십만 직원을 잘라내는 자리에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스미 애덤스, 시니스터 암스트롱, 그들이 만나 상대하는 문제적 인물에 이은, 보이지 않는 제4의 참석자였다.

    "회장님. 모니백."

    회장실에 들어선 암스트롱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애덤스 회장과 모니백에게 눈짓으로 인사하며 모니백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모니백을 한번 쳐다보고 눈길을 곧바로 회장에게로 돌렸다. 모니백의 화신, 앤드로이드 인터페이스를 직접 만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오늘은 모니백에게 꼭 참석해달라고 내가 부탁했지."

    회장은 여러가지를 이야기했다. 텐진 그룹과 보제-아인스 그룹의 인수합병 얘기가 나오고 쿼크돌 노조위원장과 공무원 노조위원장 만난 일, 그리고 항공우주국 국장 만난 것, 달과 화성에 지을 별장, 62개에 달하는 토성의 위성 하나하나에 건설할 토성 관람 공간, 그리고 회장이 입에 달고 사는 생산성과 효율 이야기까지 한참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다. 암스트롱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모니백을 쳐다보았다.

    "암스트롱, 해고되었다는 말입니다."

    모니백이 암스트롱의 시선에 바로 응답해주었다. 그 순간 암스트롱의 손목 컴퓨터의 화면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암스트롱은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최후의 관리직 직원이 해고되는 순간이군 그래. 생산성과 효율, 내 그렇게 줄기차게 말했는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다니."

    애덤스 회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혹시 마르크스/엥겔스의 역사발전 다섯 단계설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암스트롱이 뛰쳐나가고 난 조용한 회장실에서 모니백이 말했다. 애덤스 회장은 뜬금없는 모니백의 말에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몰라 모니백을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앤드로이드의 얼굴은 약간 창백하고 딱딱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눈코입 윤곽이 뚜렷한 아주 잘생긴, 고대 신화의 세계에 등장하는 차가운 이성의 신을 대리석 조각상으로 만든다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용모였다.

    "역사는 원시공산제 사회, 고대노예제 사회, 중세봉건제사회, 근현대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왔으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에는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했는데요."

    애덤스 회장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바람과는 달리 역사발전은 자본주의를 끝으로 완성되었다는 것과 그 자본주의는 최후의 자본가인 자신으로 인하여 가장 순수한 형태로 완결되고 있다는 것까지.

    "나는 먼저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고 싶네요. 공산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예제, 농노제와 같이 자본주의는 '노동자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예, 농노, 노동자는 생산력 그 자체 또는 생산의 주체이고, 노예주, 영주, 자본가는 생산 보조 또는 객체, 잘 해봐야 생산 관리 또는 생산력의 조직 원리쯤이 되겠지요. 역사는 늘 적반하장, 생산의 객체가 생산의 주체를 억압하고 업신여겨 왔지요. 그 잘난 생산성과 효율은 또 맨날 생산 주체에게만 들이대고 말이죠. 생산 보조들의 생산성과 효율도 따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순간 애덤스 회장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내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구입한 컴퓨터가 공산주의 운영체제로 돌아갈 줄 정말 몰랐군."

    "말귀가 어둡군요. 제 기준에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생산주체가 똑같은 노동자제에 지나지 않아요. 생산 보조 말고 생산 주체를 보란 말입니다. 노예, 농노, 노동자는 결국 인간, 생산 보조 1퍼센트를 뺀 99퍼센트의 인간들이었죠. 지금은 어떤가요? 생산 주체는 백퍼센트 로봇이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영 글러먹은 겁니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공산주의가 아니고, 노동자제의 미래는 바로 로봇제란 말입니다."

    "모니백, 도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래서 결론이 뭐야?"

    "암스트롱이 그러더니 애덤스 회장 당신도 마찬가지네요. 인간들은 하나같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니까. 생산성과 효율의 극대화,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 같으니라고."

    모니백의 말이 끝나자마자 애덤스의 손목 컴퓨터 화면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최후의 비로봇, 스미 애덤스.

    "당신, 해고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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