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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1079
    작성자 : 테라코타맨 (가입일자:2018-03-19 방문횟수:50)
    추천 : 0
    조회수 : 993
    IP : 72.83.***.206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20/01/14 13:17:42
    http://todayhumor.com/?panic_101079 모바일
    무명씨의 이름
    옵션
    • 창작글
    <p style="margin-bottom:0in;" align="center"><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무명씨의 이름<span lang="ko-kr">”</span></span></font></font></p> <p style="margin-bottom:0in;" align="center"><br></p> <h6 class="western"><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전사</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는 자신의 마약 중독이 이율배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는 정신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약물을 쓴다는 사실은 전투적인 유물론자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지극히 유물론적인 접근법이라고 확신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활성화된 정신으로 다시 육신의 절정을 이끌어낸다 한들 육신을 자극하여 육신을 고양시켰을 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인정하지도 않았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신의 존재를 믿지도 증명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그는 가상현실 헬멧을 쓰고 인터넷에 접속하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현재의 컴퓨터와 네트웍의 기술적 한계 때문이겠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상현실의 현실성은 마약으로 완성된다는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인터넷의 전설을 그는 믿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수많은 바둑판 모양 뒷골목</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가운데에서도 사방이 고층건물로 막혀 일년 내내 하루 종일 해 한번 비치지 않는 저층 하숙집의 옥탑방이 순식간에 천사의 도시 속 유리성으로 탈바꿈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는 마침내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에 젖어들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열탕과 냉탕 사이를 널뛰기 하고 칠흑과 어스름 사이를 오가는 옥탑방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숨도 못쉴 만큼 답답해지곤 했던 터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죽음 이후 천당과 지옥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만약 지옥과 천당이 존재한다면 가현 인터넷 접속 전후의 옥탑방 같으리라고 상상해 볼뿐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일단 그는 자신의 사이버 공간을 둘러보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단 침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지상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 지하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00</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의 구조로 건설되어 있는 그 가상 공간은 그가 처음 그 공간에 들어가기 시작한 다섯 살 무렵 이후 지난 </span></font><font face="Gulim, serif">20</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여년 동안 꾸며온 구조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지상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으로 시작한 그의 사이버 공간은 처음에는 평면적으로 확장되었다가 가현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하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즉 마약을 가상현실 증폭기로 쓰기 시작한 십대 중반부터는 지하로 한층 한층 파내려가기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의 몸에서 한시도 떼지 않았던 스마트 안경</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파 감지기 등을 통해 그의 모든 기억과 추억</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오감 정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심지어 그가 거쳐오거나 그를 거쳐간 문자 정보까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여간 인생의 모든 기록이 어떤 형태로든 낱낱이 저장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의 뇌 또는 마음과 그 내용물들을 그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가상 공간은 그의 마음 속에 무수한 기억의 바이트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억의 바벨탑</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화석이란 메모리칩이 무수히 박혀 있는 기억의 지층을 파내려간 고고학자의 지하낙원 같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1</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에서 시작해서 지하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00</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까지 내려가면서 층마다 돌아보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마치 평생의 일기장을 엄지손가락에 걸어 주르륵 훑어보는 느낌이랄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기억과 기록들은 대부분 </span></font><font face="Gulim, serif">2</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차원 이미지와 </span></font><font face="Gulim, serif">3</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차원 홀로그램으로 형상화되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바닥뿐만 아니라 사면과 천정까지 전시공간으로 쓰는 무중력 박물관식으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평생을 아주 짧은 시간에 복기할 수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대목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내가 죽고 나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내 몸이 분자와 원자 수준으로 흩어져 버리고 나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 가상 공간은 어떻게 되는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나는 과연 유물론자인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태어나서 죽어가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천신만고 끝에 조립되어 생겨나고 결국 분해되고 사라지는 육신이 바로 나 자신인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마약에 취한 그의 정신은 그와 같은 철학적인 사고에 맞지 않는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지하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00</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까지 내려간 그는 지난밤 그가 자고 있는 동안 추가된 어제의 기억방으로 가서 편집을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평면적인 정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매킨토시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28</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케이</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에 갈무리되었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입체적인 정보들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시간 순서대로 기억의 소인국을 이루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편집은 쉬웠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해당 부분에 편집 모드로 접속하여 기억을 더듬어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동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시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층으로 올라온 그는 문을 열고 나서 광장으로 나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혼자만의 사적 공간에서 빠져나와 백억의 인간들과 접속되는 공적 공간으로 들어선 것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전투적인 무신론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과학</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성</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논리 지상주의자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의 하루가 시작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광장에는 그처럼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나온 아바타들로 흘러넘치는 중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장 쉽게 건설할 수 있는 가상현실은 바로 현실 세계를 그대로 베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현실 세계를 사이버 공간으로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가현 세계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일단 설계비가 따로 들지 않아서 좋았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바타들은 익숙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가상현실 속 세상에서 건축을 비롯한 공공재의 디자인 취향은 극도로 보수적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바타들의 입성도 대부분 전통 의상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느 한 전통 한 나라의 옷이 가현 세계 전체의 진정한 대세가 되는 경우는 없었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영화에나 나올 변형된 전통 의상을 입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전사 무무가 전투를 벌이는 곳도 가현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광장</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느 카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여느 만남의 상황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넓은 광장에는 한 무더기씩 아바타들이 둘러서서 목청을 높이는 광경이 흔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토론의 주제는 종교와 과학</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철학</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정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경제</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예술 등으로 끝이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그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뜨거운 주제인 종교와 과학 토론에서 유명한 전사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의 동지들은 벌써 어느 종교 토론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그 유명한 별들의 전쟁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그 전투의 한 가운데로 곧장 뛰어들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기는 광선검 대신 대상을 가리지 않는 세 척 남짓의 삿대질과 독 묻힌 비도처럼 상대를 원격 타격할 수 있는 세 치 혀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패거리들은 자신들을 과학지상주의자들로 자리매김했는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자신들끼리 모여서 과학지상주의를 토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자신들의 정체성을 전투적인 무신론자로 살짝 비틀어 주로 종교 토론장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쳐들어가는 게 일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들은 비과학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혹세무민하는 종교는 박멸해야 하는 해충이라고 확신하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분히 종교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는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것은 그들만 모르는 사실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현란한 광선검과 독비도 초식이 끝난 때는 그의 신진대사 시스템과 피에서 마약 성분이 잦아든 시점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오늘도 무지몽매에 빠지려는 세상을 건져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가현 인터넷을 빠져 나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상현실 인터페이스 의자에 누운 채 헬멧 속에서 눈을 뜬 그는 그새 피로해진 몸과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안마의자 기능을 켰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h6 class="western"><a></a><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기억궁</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당신이 오감으로 감지하는 모든 자극들 그리고 당신 자신이라는 자의식까지도 실체가 없다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악몽에서 깨어났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어제 토론에서 한 참석자가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그의 두개골 안에서 다시 메아리쳤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는 가현 인터넷이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과 사물들은 평면이든 입체든 빛이나 전자의 흐름으로 근사된 허상일 뿐 당연하게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차피 홀로그램인 가현 인터넷 속에서 종교와 과학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의 죽음이 정녕 존재의 끝이라면 육신의 정수라고 해야 할 뇌가 죽는 치매에 걸린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겠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치매 걸린 무신론자의 전투는 어떤 형태를 띠는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토론 상대자는 가사 한 자락 가볍게 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입술조차 달싹이는 듯 마는 듯 목소리는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변사도 없는 무성영화 같은 초식이라 그는 광선검과 독비도를 어떻게 놀려야 할지 손발이 어지럽기만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치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정말 무서웠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죽음과 함께 자신의 육신과 정신이 동시에 원자와 분자 수준으로 해체되고 대자연의 지수화풍에 스며들어 아예 형체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건 괜찮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차피 볼만한 대상도 그것을 지켜볼 주체도 없어지는 상황이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은 멀쩡한 채 정신만 파괴된다면 그건 몹시 당황스러운 그림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정신은 육신과는 별개</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라는 느낌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은 멀쩡한데 정신만 죽을 수 있다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반대로 육신은 죽었는데 정신만 멀쩡한 상태도 가능하지 않을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론 육신의 일부인 뇌가 망가져서 정신이 따라서 망가지는 과정이란 설명이 더 과학적이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과학지상주의자 무무의 마음마저도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정과 느낌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게다가 자신의 검과 도를 무력화시켰던 가사 차림의 고수가 암시한 대로 현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실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의식이 양파 껍질처럼 계속 벗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가 느끼는 불편함은 점점 더 커져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루 일을 끝마친 그는 가현 엘에이서 현실 속 엘에이로 나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두개골 안에서만 빛나던 형광빛 태양 대신 망막과 얼굴로 캘리포니아의 햇빛을 직접 받는 느낌은 남달랐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가 하숙집 옥탑방에서 거리와 연결되는 일층으로 내려오는 일도 드문 마당에 사면을 막아선 깎아지른 듯 우뚝한 고층빌딩의 포위를 벗어나는 일은 그야말로 일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누구든 텅빈 우주공간에서 단독자로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긴 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렇다고 해서 꼭 매일 매일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근거리 접촉</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심지어 악수하는 축축한 손바닥</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정전기 튀기며 스치는 옷깃</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코와 입을 드나들며 찝찝하게 뒤섞이는 숨결과 입냄새로 만나야 할 필요는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일상의 삶을 위해 세상과 무무 사이에서 일어나야 하는 소통의 두 가지 형식</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질과 정보 가운데 정보의 입출력은 가현 인터넷으로 충분하다 못해 홍수가 날 지경이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질의 입출력은 택배와 쓰레기통 그리고 상하수도관을 통해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가 슬리퍼를 운동화로 바꿔 신고 하숙집 현관을 나서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터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거의 일년 만의 외출이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골목길을 빠져 나와 윌셔대로에서 서쪽으로 꺾어 여전히 쨍쨍한 가을 저녁의 노란 빛깔 햇살을 전신 전면에 받으며 버몬트소로에서 시작해 열 대여섯의 소로와 대로들과의 교차로를 건너는 이십여 분 남짓 나들이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현 인터넷 속 가상현실 윌셔대로와 똑같았고 차도를 달리는 차량의 물결과 인도를 오가는 인파는 오히려 가상현실에 비해 그 규모가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차도는 대부분 택배 트럭들이 차지하였고 인도는 기후마저 온화하기 짝이 없는 가상현실 속 기상도가 지겨워서 잠깐만이라도 진짜 바람을 쐬고자 </span></font><font face="Gulim, serif">7</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년만에 외출한 기상학자처럼 서쪽에서 불어와 작은 소용돌이로 코끝에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바다라도 찾으려는 듯 킁킁거리는 사람들뿐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휴지 한 조각 흩날리지 않는 거리는 무무의 기억 속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는데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신도심에 상권을 모두 빼앗겨버린 구도심의 쓸쓸함이 느껴졌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삼분의 일 정도는 아마도 병원에 가서 서로 만날 환자와 의사들일 거야</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무리 택배가 무인자동차와 드론으로 지상전과 공중전을 입체적으로 결합했다 한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병원을 택배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환자를 택배로 부친다면 모를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너만 해도 제 발로 찾아온 환자라고 해야 하겠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무무의 삼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의 말은 그럴 듯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병원이 들어선 고층빌딩의 중간쯤에 위치한 무유의 사무실에서는 석양이 내려앉은 엘에이 시가지가 지평선까지 뻗어나가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새하얗게 칠한 사무실 벽은 무척 비현실적이어서 삼촌의 말이 그의 마음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너 같은 젊은이가 치매를 걱정한다니</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슨 구체적인 증상이라도 있었더냐</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런 건 아니구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겉으로 멀쩡해보이면서 정신이 나간 상태를 상상하기도 싫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치매를 예방하거나 치매에 걸리더라도 치료할 수 있는 확실한 치료법 같은 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가능성이라도 알아놓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네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의학적으로 확실한 방법은 아직 없다고 봐야겠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오히려 컴퓨터공학자로서 너의 전공에 가까운 해결법을 찾아보는 게 어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안 그래도 지난 뇌과학 학회에서 발표된 어느 연구가 꽤 재미있던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멈춰버린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해 다시 뛰게 만드는 제세동기와 같은 장치를 뇌에도 심으면 되지 않겠느냐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블루 스크린이 뜬 컴퓨터를 다시 부팅하는 뇌 스위치를 달거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치매로 망가진 기억을 되살려주는 하드디스크나 데이터베이스 바이오칩을 심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게 가능할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도 컴퓨터 같은 정보처리장치이긴 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복잡도는 하늘과 땅 차이일 텐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에 조직적인 자극을 주면 치매 예방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렇게 두 사람은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의 언어 영역과 오감 영역에 자극을 주는 뇌제세동기 같은 장치의 설계 제작이 목표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첫번째 임상실험 대상은 프로젝트의 제안자이기도 한 의욕에 넘치는 무무가 될 예정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h6 class="western"><a></a><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식물인간</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가 쓰러진 곳은 가현 인터넷 속 무유의 사무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결국엔 현실 속 옥탑방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들은 공동연구를 위해 하루에 한번씩 만나고 있었는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바로 그 시간에 무유 삼촌의 눈 앞에서 무무의 아바타가 의식을 잃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말이 씨가 되었다기보다 가능한 응급상황에 대한 시기적절한 사고실험대로 무무를 옥탑방에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나른 장비는 바로 응급환자수송용 드론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마약 과다투여가 원인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치매에 대한 공포와 막바지에 달한 연구에 대한 조바심과 중압감에 못 이겨 결국 사고를 낸 탓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어처구니 없게도 먼 미래의 치매를 피하려다가 지금 당장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생명유지장치의 도움 없이 살아있을 순 있었지만 전투적인 무신론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죽음을 절대무로의 환원으로 이해하는 철저한 유물론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성과 논리의 여백을 인정하지 않는 고고한 과학지상주의자로서 본인의 입장에서는 어리석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유신론자</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물론자들의 지옥보다 더한 치욕에 빠지고 만 처지가 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몸은 마비되어 눈꺼풀 하나 열고닫을 수 없어도 뇌만 정상이면 가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장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건 쉽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미 다 개발되어 있기도 하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 뇌를 정상 작동 상태로 끌어내서 최소한 가상현실 속 몸인 아바타와 합체하여 완전체를 만들수 있을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게 문제이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 자신이 무무에게 말했던 딱 그 문제 상황에 봉착한 순간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설계가 거의 끝난 뇌제세동기를 하루빨리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는 것 뿐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기억은 의식의 한켠에 쌓아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추억의 파편이 아니라 의식 그 자체의 필수 구성요소이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기억이 없어지면 순간만을 인식하는 의식은 부싯돌에서 튀는 찰나의 불꽃 같다고나 할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기억의 뼈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기억의 궁전이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영원히 꺼지지 않는 배화신전의 불꽃처럼</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의 제안에 무무는 그 자신의 모든 기억의 하부구조가 되는 핵심 기억들을 뽑아내 바이오칩으로 구웠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또 무유의 말대로 기억은 언어 영역뿐만 아니라 감정과 오감 영역에도 걸쳐 있는 복합적인 구조를 갖춘 </span></font><font face="Gulim, serif">4</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차원 데이터베이스 같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평생에 걸쳐 경험하고 형성해 온 감정과 오감의 기억까지도 낱낱이 찾아내고 풀어내어 바이오칩에 굽는 작업도 병행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특히나 그 영역의 작업을 할 때 무무는 마약에 더 의지했던 모양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심지에서 타오르는 불꽃에서 심지가 없어져도 그대로 타오를 수 있는 불꽃을 채화하여 갈무리하는 작업은 무신론적 유물론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을 초월해서도 지속될 기억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육신은 마비시키고 정신은 활성화해야 했기 때문에 마약은 정교한 기억 적출 수술을 위한 마취제로서 필수였던 셈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식물인간이 된 무무와 무무를 일깨우려는 무유가 맞닥뜨린 싸움의 상대는 시간과 행운만이 아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또다른 막강한 싸움 상대는 바로 돈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치료는 무유의 연구 주제가 되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대학병원의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연구에는 막대한 돈이 들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와의 공동 연구가 시작될 때 확보한 연구 기금은 급속도로 소진되어가고 있어서 돌파구가 필요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행히 그 무렵 뇌제세동기로 작동할 기억궁 바이오칩 시제품 두 개가 완성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에게 이식하기 전에 뇌제세동기가 무무의 면역체계에 거부반응 없이 적응하는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의 생체전기회로와의 접속 전위와 임피던스가 적절한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제세동기 바이오칩이 완성된다 해도 곧바로 이식할 수는 없겠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운영체제가 다른 두 컴퓨터를 연결하는 데에도 네트웍의 구성을 위한 별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에어가 필요한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라는 생체 컴퓨터를 전자 컴퓨터들로 이루어진 가현 인터넷에 접속하자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론 그렇겠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와 컴퓨터의 접속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만남 정도에 비교할 수 있을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문제는 짧은 시간 안에 접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뇌 쪽에서보다는 컴퓨터 쪽에서</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우리의 경우 뇌제세동기 바이오칩 쪽에서 뇌의 입출력 패턴을 읽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입출력 패턴을 맞추어가야 하겠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러니까 그 대목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 프로그래밍보다는 아무래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더 쉬울 테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제세동기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컴퓨터에 꽂히자마자 컴퓨터에 맞게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깔고 그 길로 컴퓨터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스마트 주변기기처럼</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에 물리자마자 뇌파의 패턴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자신의 내장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최적화하여 거부반응이나 방화벽을 유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뇌의 일부로서 매끄럽게 작동해야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행히 무무는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 그 설계 작업을 훌륭하게 마무리해 놓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렇다고 이식 전 정상작동 여부를 검사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h6 class="western"><a></a><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동굴 </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작동검사를 마친 바이오칩이 두개골에 이식되고 나무가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듯 바이오칩 리드 선이 두개골 조직을 파고들어 뇌막에 촉수를 박을 때까지 일주일 내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바이오칩과 무무의 뇌가 전자적으로 접촉하자마자 바이오칩과 연결되어 있는 무유의 컴퓨터 화면에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는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일주일간의 악몽은 짧은 첫 잡음 신호로 기록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론 무무 자신 말고는 그 잡음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알 수는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몸을 빼낼 수 없는 진흙 같고 칠흑 같은 확률의 바다에 잠긴 채 존재의 해면 아래에서 가능성으로만 떠돌던 식물인간 무무는 그렇게 뇌제세동기 바이오칩이란 첫 관찰자를 얻음으로써 딱 일주일만에 의식을 존재의 수면 위로 건져올릴 수 있게 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브라운 운동 중인 꽃가루의 악몽에서 빠져나왔지만 무무의 의식은 끊임없이 맴도는 작은 소용돌이에 갇혀 여전히 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의 오감으로부터 신호가 끊긴 상태에서 그의 의식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무한 맴돌이 아니면 정처없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또렷한 오감 자극이 없어지면서 돛도 닻도 풀린 배처럼 동력과 북극성을 상실하고 물의 흐름에 실려 떠돌고 있었기 때문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자기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외부로부터 별빛 하나 새어들어오지 않는 암흑성운 한 가운데에서 떠도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지라고는 작은 섬 하나 없는 외톨이 물의 행성</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리고 그 행성의 칠흑같은 망망한 바다 위에 떠도는 유일한 부유물인 나무토막이 바로 식물인간 무무의 의식 상태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흔들리는 파도밖에는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외계는 없었고 안팎의 구분이 없어져버려 자신의 내면은 규정조차 할 수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러한 부유 중간중간에 찾아오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락으로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느낌은 주체를 특정할 수 없는 서술문처럼 다가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정신과의 접속이 끊겨버린 육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육신의 지수화풍을 기반으로 하여 작동하는 오감이 해체되고 있는 과정을 머나먼 안드로메다의 암흑성운을 떠도는 무무의 정신이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을 상실한 무무의 정신은 일종의 블루 스크린에 빠져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이후에는 또 어떤 상태가 될지도 알 수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가 보기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식물인간이 된 무무는 공회전하고 있는 의식까지 죽어버리는 뇌사에 빠지면 끝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더 이상 되살릴 가망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자체적으로 몸의 생명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뇌간이 살아있는 식물인간일 때 어떻게든 되살려내야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두개골에 바이오칩을 심어 저승 어귀인 안드로메다의 암흑성운을 떠돌던 무무의 의식을 일단 이승 입구인 은하계까지 끌어내린 무유 덕분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자신이 평생 구축한 자기 내면의 매트릭스인 마음 속을 꿈의 형식을 빌어 떠돌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직 지구와는 한참 먼 태양계의 끝 명왕성 근처 우주공간을 헤매고 있는 격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h6 class="western"><a></a><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뇌사</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가 국립과학재단에 제출한 연구 제안서는 거절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두개골에 심은 뇌제세동기 바이오칩에 대한 추적 연구도 포기한 채 사흘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작성해서 보낸 제안서였기 때문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블루 스크린에 빠진 컴퓨터를 재부팅하지 않고 정상작동 상태로 유도해내듯</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식물인간의 뇌 일깨우기뿐만 아니라 치매예방과 치료에 직접 관련되는 연구이기에 대중적으로도 각광 받는 연구 주제인데다가 찾기 힘든 맞춤한 연구 대상이 이미 대기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제안서가 거절된 결과는 무무의 업보라고 할 수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전투적인 무신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유물론 전사로서 무무는 가현 인터넷 상에서 숱한 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하드 사이언스 빼고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심리학이나 인류학 같은 소프트 사이언스는 과학으로도 치지 않는 그의 강경하고 딱딱하며 천박하기까지 한 유물론은 물리학자나 화학자들 사이에서도 적을 만들 정도로 턱없이 편협했던 탓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식물인간이라면 더 이상 살아있다 할 수 없을 것</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사는 육신이라는 정교한 화분에 피어났던 정신이라는 한 떨기 꽃이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본인의 관점에서 이미 죽은 그를 되살린다는 것은 무신론자를 두번 죽이는 셈</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국립과학재단의 연구 제안서 거절 뉴스에 달린 냉소적인 댓글들 대부분은 실은 무무 자신이 남들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와 그의 패거리들은 가현 인터넷 곳곳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서 모두 까기를 반이성 박멸이라 외치며 반이성을 완성하고 다녔던 터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다시 옥탑방으로 되돌아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환자수송용 드론을 타고 병원에서 옥탑방까지 비행함으로써 무유의 연구비는 바닥이 마침내 났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를 옥탑방 안 침대에 눕히고 나서 묵직한 저음으로 떠올라 점으로 사라지는 드론을 따라 서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식물인간이든 아니든 환자를 무료로 그냥 맡겨둘 수 있는 병원이나 세상은 아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제부터 무무의 간호는 무유 혼자만의 일이 되고 말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행히 무무가 퇴원하기 전에 무유는 환자용 특수 침대를 병원으로부터 임대해올 수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거동할 수 없는 환자를 먹이고 씻기고 대소변을 처리해주는 로봇 침대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두개골에 심어진 뇌제세동기 바이오칩은 더 이상 시험가동하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옥탑방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백 퍼센트 가동을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제세동기를 통해 나오는 뇌파의 곡선이야말로 무무로부터 나오는 유일하게 움직이는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상현실과 온라인의 세상이었지만 의사로서의 일이란 게 가현 인터넷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무유는 무무의 옥탑방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행히 바이오칩은 온라인으로 실시간 접속이 가능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컴퓨터 화면을 스물 네 시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무무의 바이오칩과 직접 접속되는 초전도 양자간섭기를 아예 머리띠 삼아 두르고 다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의식 상태를 흐릿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있는 무무의 뇌를 그저 미세하게 둔탁한 두통으로 무유는 느낄 수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한참 일하는 도중</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무무의 생각이 나거나 심지어 교통사고로 죽은 지 이십 년도 넘는 무무의 부모</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곧 그의 형 부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심지어 자신의 부모님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는 부작용도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생사를 오가는 조카에 대한 연민이 초전도 양자간섭기를 통해 기본자극으로 증폭됨에 따라 그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 무무와 형 부부와 부모님과 묘한 생사를 넘어선 일체감을 문득문득 체험하곤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간호사가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에도 무유는 자신도 형도 어렸을 적</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부모님과의 행복한 한 때가 생생하게 떠올라 일찌기 체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턱을 받친 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무유의 모습에 간호사는 적잖게 당황하는 눈치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슨 일이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간호사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처음 보는 인물로</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려 황색 가사 차림의 스님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는 순간적으로 긴장하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적이 나타난 셈이기 때문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시주의 극락왕생을 빌어드리러 왔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h6 class="western"><a></a><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뇌 제세동기</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마약에 만신창이가 된 몸의 추락은 일단 멈췄는데도 마음은 추락을 멈추지 못했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의식 상태가 계속되면서 마음의 밑받침을 상실한 몸은 더 추락하는 악순환 끝에 무무는 마침내 뇌사에 빠지게 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가 난데없는 강렬한 희열을 느꼈던 그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뇌에서 오는 신호가 더 미묘한 신호로 바뀐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미약하고 둔탁한 느낌의 두통이 미열과 미묘한 편두통으로 바뀌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께선 어떻게 아시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현 인터넷 광장에서 자주 만난 사이 아니겠습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시주의 상태는 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었을 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제게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갑자기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공교롭게도 중요한 순간에 오게 되었군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저와의 인연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과거생에 부모자식으로 한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하니</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티벳 스님의 웅얼거리는 낮은 목소리의 대답은 전혀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가 죽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조금 전에 느꼈던 강렬한 희열과 함께 느꼈던 일체감이 한순간에 슬픔으로 변하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슴 한 켠이 아련하게 저리기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저를 무시주에게 데려가 주십시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반응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선 채로 눈물만 흘리고 있는 무유의 소매를 가만히 잡아당겼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두 사람은 병원 앞에서 무인 택시를 타고 절반쯤 비어 있는 윌셔 길을 달려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0</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분도 되지 않아서 무무의 옥탑방에 올라갈 수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에게 무무의 겉 모습은 평소와 다른 점이 별로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의식의 표정과 침대 가장자리에 걸쳐져서 힘없이 꺾여 있는 손목의 각도까지 똑같아 보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무무에게로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려고 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말렸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때서야 지금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은 아무 의미가 없으리라는 의사로서의 냉철한 판단이 나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는 대신 컴퓨터로 무무의 뇌제세동기 바이오칩에 접속하여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안에 저장되어 있는 무무의 일생의 기록들과 기억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리고 추억들을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무무의 뇌에 쏟아붓기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순간 그는 몸을 휘청거렸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초전도 양자간섭기를 통해 그 정보가 자신의 뇌로도 흘러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꼭 감을 수밖에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강렬한 충격이 그의 정신에 가해지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이 아니라 정신에 시술하는 심폐소생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것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멀쩡한 그의 의식에 쏟아져 들어오는 기억의 폭탄 때문에 그는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터져버리지나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는 자신의 이마를 휘감고 있는 초전도 양자간섭기를 벗으려 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깨 위까지 힘겹게 들어올린 그의 두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손가락을 가늘게 떨기만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미타불</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스님이 불호을 외웠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탓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시주</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괜찮아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물론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장시 망설이다가 다짜고짜로 무유의 머리에서 머리띠를 벗겨내버렸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순간 무유의 손가락이 떨림을 멈추었고 뒤이어 두 팔이 툭 하고 무릎 위로 떨어져 내렸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이나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괜찮아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뭐가 어떻게 된 거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의 걱정스런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무유가 마침내 기운을 차리고 고개를 들고 힘겹게 일어나 무무가 누워 있는 침대 맡 의자에 가 앉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도 뒤따라 침대맡에 서서 무무를 내려다 보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 머리띠가 뭔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아직 손에 들고 있는 초전도 양자간섭기를 내려다 보고 나서 무유를 쳐다보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의 설명을 다 들은 스님은 창가로 걸어가 옥탑방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빌딩의 회색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 머리띠를 제가 써봐도 될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잠시 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침대 맡으로 돌아온 스님이 무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h6 class="western"><font color="#000000"><font face="Arial Unicode MS"><span lang="zh-cn">이름</span></font></font></h6>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침대 옆에 놓여 있는 딱딱한 나무 의자 위에 반가부좌를 틀고 무무의 머리쪽으로 바짝 다가앉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리고 나서 초전도 양자간섭기 머리띠를 이마에 둘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모습이 전설 속 손오공을 닮았다고 무유는 한가한 생각을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침대에 달려 있는 쪽책상 위에 펼쳐 놓은 옆으로 길쭉한 두툼한 종이 조각 묶음을 한 장씩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티벳 사자의 서</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죽은 이들을 위한 저승길 여행 안내서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재로선 아무 것도 없는 상황</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티벳 스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초전도 양자간섭기를 통해 무무의 뇌에 접속하고 저승길을 안내한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사에 빠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실질적으로 죽은 자에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생명유지 장치가 붙지 않는 이상 곧 죽게 되어있는 사람에게 말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원래 스님의 제안은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은 무무에게 죽은이를 위한 책 읽어주기였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신경외과 의사인 무유에게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조카가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터에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마음과 정성을 모아 반사적으로 두 손을 모으거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다 못해 자신을 둘러싼 이 우주 자체 또는 무무와 자신의 운명에 대고 하소연이라도 길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기도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저승길 여행 안내서라고는 하지만 일단 무의식으로 빠져들고 있는 그를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래야 저승으로든 이승으로든 인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영혼이 존재하든 안 하든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를 만한 그 무엇이 언제 육신을 떠나거나</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유물론자들이 정 원한다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무엇의 물질적 기반이 언제 육신에서 무너져내리고 소멸되는지 의사들의 현대 의학</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첨단 의술로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잘 압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체계 안에서 무엇을 살아있다고 또 무엇을 죽어있다고 부르는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렇지만 아무리 정교한 기계 장치라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심지어 가장 예민한 시각을 자극하는 광학 장치에도 해상도라는 한계가 있는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어떻게 해상도 너머에 존재할 그 가능성까지 그토록 용감하게 무시합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거야말로 문제의 초기조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제약조건</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전제를 뒤집어 엎는 반과학적 태도 아닌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이 무무의 옥탑방에 오기 전 병원에서 무유에게 했던 말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 말씀대로 우리의 오감과 이성에 어떤 해상도가 존재한다면 과학자들도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확신에 찬 종교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들은 다른 현미경을 들여다 본다는 걸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를 테면 영혼불멸설을 봅시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유신론자들도 자신들의 연구에서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고 편하게 생각해줘도 좋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소위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과학적인 연구방법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은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우리가 들어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 우주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우주의 법칙 또는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인정하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는 과학자들만의 미덕이 아닙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오히려 과학자들은 그 우주의 섭리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속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저승길 안내서</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무래도 저로서는 가설치고는 너무 멀리 나간 가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드네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한 톨의 증거도 없이 쌓아올린 거대한 모래성 같은 느낌이랄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뇌사라는 황망한 상황에서도 무유는 어느새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강하게 옹호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입자인 전자의 천변만화하는 흐름을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백년 전 현실 세계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일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들 역시 가현 인터넷 속 일들에 대해서는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현실적 증거라고는 단 한 비트도 찾지 못하겠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알고 보면 너도 나도 현실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다고 봐야겠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모두 각자 구축한 사적인 가상현실을 공적인 현실로 확신하는 맹신이 있을 뿐</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승도 저승도 일종의 가상현실로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상현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상현실과 현실은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상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한 순간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스님의 온화한 태도에 대해 무유는 안심하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현 인터넷 광장에서 무무와는 적대 진영에 속했다고는 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에 대한 그 어떠한 악의나 적의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과거생의 부모자식이 현재생에서 재회한다는 것도</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나노 스케일까지 촘촘한 인과율이라는 엄정한 우주의 섭리가 일면 거칠고 나름 복잡하고 고차원인 인간세로 투영되고 편집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에서 삼라만상을 만들어낸 빅뱅이 가능했다면 그 어떤 게 불가능하겠는가 싶기도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래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변하면서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불가능</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라는 최종 딱지를 붙일 수는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런 거대한 결론은 신 또는 인간적 지성이나 이성의 외삽 극한에 놓인 미지의 존재의 몫이니까</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미지의 영역은 미지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일단 그 앞에서 겸손하자는 게 미신일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의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티벳 사자의 서</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독경은 계속되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가 옥탑방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시작한 독경은 한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최소한 생명유지장치를 단 채 여전히 저승과 이승 사이에 머물고 있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유는 스님과 함께 오랫만에 옥탑방을 나와 윌셔길을 서쪽으로 달려 바닷가로 나갔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비좁은 옥탑방에서 향을 피우고 하루 스무 시간씩 독경하는 스님을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그저 수행의 일부라고 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초인적인 모습에 무유는 완전히 항복하고 말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하루 한 두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할 수 있을 때마다 그도 스님 곁에서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독경을 들으며 명상과 호흡법 수행을 따라하곤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시주의 현재 상태를 의사로서는 어떻게 보시나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해변을 걸으며 스님이 무유에게 물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눈부신 </span></font><font face="Gulim, serif">11</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월의 태양</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여전히 따스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무유는 생각해봤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사 상태로 몇년씩 가는 사례에 비추어볼 때 무무의 현 상태는 별로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다만 정말 최소한의 생명유지장치만으로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흔치 않은</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의료계의 작은 기적이라 할만 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사 상태인 것은 맞지만 매우 안정적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흔치 않은 경우이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께서 보시기에 무무의 상태는 어떤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아직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인 중음계에 머물고 있을 겁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원래 육신까지 죽은 상태에서도 </span></font><font face="Gulim, serif">49</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일 동안 그 세계에 머문다고 하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시주의 경우</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육신 자체는 지수화풍으로 아직 분해된 것은 아니라</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중음계에 못 미치는 무의식에 빠져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의식에서 빠져나와 중음계를 통해 저승으로 가든</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승으로 되돌아오든 해야겠는데 걱정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저승 입구에서 맴도는 영혼 또는 중음계라는 에너지 양자 우물에 빠져 무한 진동하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이름이야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말이죠</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는 무의식 안에서 자의식이라 부를 만한 걸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을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과학 입장에서 무무는 자의식은 고사하고 무의식이라 부를 만한 것조차 갖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블루 스크린에 빠진 컴퓨터처럼 뇌 안에서 튀는 전기 불꽃은 전무하고 따라서 뇌 안팎으로의 정보 흐름도 완전히 멈춘 상태라는 것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우리의 </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가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에 따르면 무시주가 말씀하신 그런 무의식도 있긴 하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경우에도 인간의 영혼은 결코 잠들거나 사라지지 않는 초월의식인 참나의 영역이 있어 인간의 오감과 이성이 빠져 있는 무의식 그 자체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하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보통 의식과는 주파수를 달리하는 에너지 흐름으로서 초월의식 쯤이 되겠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들은 한인타운으로 되돌아와 정갈한 채식전문 밥집을 찾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사자의 서 독경을 녹음으로 대체하면 어떨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사십구재까지는 지금처럼 하겠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그 이후에는 그렇게 하시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사십구재 이후에는 독경은 녹음으로 하고 뇌제세동기 바이오칩도 최대 출력을 유지하면서 초전도 양자간섭기는 제가 머리에 쓰고 다닐 생각입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바이오칩으로부터 양자간섭기로의 과도한 입력을 제한해야겠지만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의 경우 뇌제세동기 바이오칩으로부터의 입력되는 기억과 오감 자극 정보를 그대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와 많은 기억을 공유하는 무유의 경우에는 그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현실과 가상현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실체와 환영</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삶과 죽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참 어려운 문제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네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를 위해 스스로 찾아와 주신 것도 고맙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많은 가르침</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특히 고맙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옥탑방으로 올라가면서 무유가 말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실은 모두 허상이란 사실을 인정하거나 알기는 쉬워도 온 존재를 통해 느끼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지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바닷가에서 보았던 석양빛도 얼굴을 간질이던 해풍도 발을 적시던 파도도 나의 뇌에는 그 어느 것 하나 직접 닿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아차려보기는 하는데도요</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나 자신을 포함한 온 우주가 나의 마음 또는 나의 뇌가 만들어낸 정교하기 짝이 없는 가상현실이란 말이 아마도 맞을 겁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뇌사를 기준으로 한 사십구재</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임의의 시간일 수 있었지만</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공교롭게도 뇌사 상태에서 빠져 나온 날이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여전히 식물인간 상태였지만 생명유지장치를 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유는 기뻤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사자의 서</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를 바랑에 챙긴 스님이 옥탑방 문 앞에 섰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무무에게 사자의 서 독경이 효험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 못 했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고맙습니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 serif">"</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무시주에게도 절대절명의 시간에 부를 이름 하나는 있어야 했겠지요</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아무 것도 도움도 위로도 안 되는 상황</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마지막 순간에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그 이름은 내 이성과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대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내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 들어온 이상</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그 상황에서는 이미 쓸모 없는 것으로 판명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Arial"><span lang="zh-cn"><font face="Gulim">그 마지막 이름이 실체가 있든 환영에 불과하든지 간에</font></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 face="Gulim"><span lang="zh-cn">스님은 인자한 웃음을 남기고 돌아섰다</span></font><font face="Gulim, serif">. (</font><font face="Gulim"><span lang="zh-cn">끝</span></font><font face="Gulim, serif">)</font></font></p> <p style="text-indent:.5in;margin-bottom:0in;"><font color="#000000"></font><br></p> <p style="margin-bottom:0i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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