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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7일, SBS TV에서는 드라마 <장길산>을 방영했습니다.
이 장길산은 그 해 11월 16일까지 방영되었는데, 같은 방송사에서 만든 드라마 <임꺽정>보다는 시청률이나 세간의 반응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홍길동 및 임꺽정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도적인 장길산에 대해 드라마로 만들어 다루었다는 점에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장길산은 조선 숙종 임금 시절(1674~1720년)에 활동했던 유명한 도적이었습니다.
다만 홍길동이나 임꺽정에 비하면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인물인데, 이유는 그의 활동 무대가 주로 평안도나 함경도 같은 먼 변방이었기 때문입니다.
1697년 1월 10일자 <숙종실록>의 기사에서는 장길산에 대해 “극악한 도적 장길산이 여러 지역을 오가며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매우 많으며, 10년이 넘도록 아직 잡히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매우 간략하게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 시대 활동한 범죄자들을 수사한 기록인 추안급국안에는 상당히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추안급국안에 의하면, 장길산은 지금의 함경북도 경흥도호부 남쪽의 서수라나 평안북도 벽동군의 해천동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서수라는 현재 러시아 연해주와 국경을 마주한 곳이고, 벽동군은 중국과 마주한 압록강 유역의 지역입니다. 두 곳 모두 조선의 북쪽 끝인 변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안급국안에서는 장길산이 거느린 무리들의 규모를 가리켜, 유마기오천보병천여(有馬騎五千步兵千餘)라고 기록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5천 필의 말과 1천여 명의 보병들이 있었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을 그냥 타고 다닐 말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한자 기(騎)에는 단순히 말을 탄다는 뜻 이외에도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인 기병(騎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말을 탄 병사 5천 명과 걸어 다니며 싸우는 보병 1천여 명이 있었다(유마기병오천有馬騎兵五千).”라고 해석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렇다 해도 의문이 남는 건, “5천 필이나 되는 말을 타고 다닐 병사들이 장길산에게 있었을까?”하는 점입니다.
장길산이 활동했던 곳은 조선의 북쪽 끝인 함경도고, 함경도는 청나라와 국경이 붙은 곳이라서 조선인 이외에도 중국인들 중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조선으로 도망쳐 오거나 혹은 청나라와 조선 국경을 넘나드는 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함경도는 조선 초기부터 뛰어난 기병들의 산지였는데, 장길산이 활동하던 숙종 시절에는 조선 각지에서 흉년과 기근이 계속되어 군사들 중에서도 탈영하는 자들이 많아서, 그들이 장길산의 수하로 들어가 노략질을 일삼았던 것이 아니었을지요?
여기서 한 가지 대담한 추리를 더 해볼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익은 그의 책인 성호사설에서 장길산이 본래 재인 출신의 광대라고 적었는데, 재인은 곧 조선 시대의 천민인 백정과 같은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백정은 북쪽에서 내려 온 몽골족과 여진족 같은 기마민족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장길산도 혹시 북방 기마민족의 후손이고, 그런 출신과 성장 환경 때문에 5천 명이나 되는 많은 기마병을 거느리면서, 조정의 체포에 맞서 10년 동안이나 싸우며 끝내 잡히지 않고 한 때 나라를 뒤엎으려는 반란 세력과 손을 잡을 만큼 위세를 떨쳤을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155~1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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