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R ROCK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제각기 각개전투를 하던 헤비메틀(넓게는 락)의 여러 서브 장르들은 본격적인 자구책을 강구했는데, 하이브리드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두 가지 이상의 음악스타일 섞기는 음악적인 유행을 초월하여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글│성시권 Editor
극단적인 관점에서 보면, 90년대의 락씬에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짜깁기’ 사운드가 난무했다고 봐도 그리 과언은 아닌데, ‘90년대판 앨리스 쿠퍼’로 평가받았던 마릴린 맨슨은 쇼크락의 충격에, 나인 인치 네일스로 대표되는 인더스트리얼과 코어/헤비니스를 접목시킨 ‘파격 덩어리’였고, 피터 스틸이라는 걸출한 카리스마를 보유하고 있는 타입 오 네거티브는 헤비메틀에 고딕/둠메틀적인 요소를 믹스시킨 괴기 집단이었다. 세기말 락의 경향을 가장 확실하게 대변해주던 그룹 중의 하나인 콘 또한, 헤비메틀과 코어, 힙합, 고딕/고쓰(Goth) 등의 강점을 살려 90년대식 하이브리드 사운드를 뿜어댔다.
한편, 멜로딕 데쓰메틀과 고딕메틀은 스래쉬메틀과 정통적인 데스메틀/그라인드코어에 식상한 메틀 팬들을 다시 한번 마케팅 타깃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인데, 당시까지 사악함과 잔혹성만을 앞세우던 선배들의 파괴미학은 앳 더 게이츠라는 선구자적인 밴드를 시발로 하여 그동안 이 장르와는 유리되었던 요소인 멜로디를 대폭적으로 수용, 듣기 좋은(?) 데쓰메틀을 만들어갔고, 고딕메틀은 스트링과 어쿠스틱 피아노를 바탕으로 한 클래식적인 비장미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으로 70년대의 아트락에 버금가는 구성미를 보이면서 그 동안 아트락이 거머쥐고 있던 왕관인 ‘가장 예술적인 락의 장르’라는 타이틀을 위협하면서 동조세력들을 규합하게 된다.
필자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신종 장르인 스토너락/메틀(Stoner Rock/l)은 요즘 음악보다는 70년대 언더그라운드 메틀 씬의 영향을 받은 복고적인 스타일이다. 이 장르 역시 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장르이고 메이저보다는 마이너 취향의 음악이다 보니, 복잡다단한 현재의 락 씬에서 그 음악적인 영향력이 그리 뚜렷하다고는 볼 수는 없다. 국내에서는, 외지와 온라인 음악 사이트 등을 통해 몬스터 마그넷과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와 같은 밴드들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이 장르가 음악 팬들에게 신고식을 마치게된 것이다.
특유의 최면적, 몽환적인 프레이즈와 과거의 짐 모리슨, 제리 가르시아의 망령이 느껴지는 스토너락은 한번 듣게 되면 이후에 몇 번이고 다시 듣게 끔 만드는 약물적인 중독성과 블랙 새버쓰와 블루 치어(Blue Cheer),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Oyster Cult)와 같은 위대한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을 지닌 채, 잔잔하지만 꾸준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현재까지도 컬트 팬들을 서서히 포섭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스토너락/메틀 밴드들은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블랙 새버쓰, 블루 치어, 블루 오이스터 컬트, 호크윈드(Hawkwind) 같은 밴드들의 장시간의 환각적인 잼(Jam)과 토니 아이오미의 유산인 가공할 만한 헤비 리프, 사이키델릭의 환각성, 애시드락의 그루브를 90년대 그런지/얼터너티브락의 헤비함을 통해 여과해냄으로써 발전시켰다. 한마디로 철저한 복고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고나 할까…. 과거의 복고적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스토너락/메틀은 어떻게 보면, 과거 사운드의 조합과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진부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더없이 레트로(Retro)에 집착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음악일 수도 있다. 어쨌든, 몬스터 마그넷(Monster Magnet)과 카이어스(Kyuss) 같은 밴드들은 90년대 초기의 얼터너티브 메틀 붐의 절충적인 감각에 잘 맞아떨어졌고 얼터너티브/모던락/그런지에 싫증을 느낀 후, 랩코어와 테크노/인더스트리얼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도파’들을 차례차례 자신들의 추종세력으로 흡수해 나갔다.
이 장르의 원류 및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블랙 새버쓰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다. 헤비메틀에 악마주의라는 사상을 최초로 결합한 이 선지자 그룹은 주술적이고 흑마술적인 이미지로 인해 이후에 등장한 정통 헤비메틀 밴드들을 물론, 데쓰/블랙메틀과 둠메틀 그룹들에게 절대적인 정신적 영향을 미쳤고 토니 아이오미의 헤비/사이키델릭 프레이즈들은 스토너락/메틀 계열의 기타주법 및 사운드 메이킹에 초석을 마련하게 해준다. 그밖에 그레이트풀 데드의 제리 가르시아와 블루 치어의 리 스티픈스(Leigh Stephens)과 브루스 스티픈스(Bruce Stephens), 블루 오이스터 컬트의 도날드 로에서(Donald Roeser)도 이 사운드 확립에 영향력을 끼친 주요인물들로 언급할 수 있다.
그런지가 점차 모습을 감추고, 테크노/인더스트리얼과 힙합이, 얼터너티브 메틀과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스토너락/메틀은 여전히 매니아들을 위한 컬트적인 장르로서 그 생명력을 유지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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