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아마 이런 글 쓰면 별로 좋은 말 듣진 못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글은 아닐 거에요. 그래도 답답해서 써 봅니다.</div> <div><br></div>원래 이상적인 선거는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후보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들고 나오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우선순위대로 투표하겠죠. <div>완벽하진 않지만,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 혹은 해결을 요하는 문제들이 득표율대로 우선순위를 부여받는 셈입니다. </div> <div>새로운 대표자는 그 우선순위대로, 그 비중대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무난한 민주사회의 위정자가 될 수 있어요. 지분 따라 배당받는 투자와 비슷하죠.</div> <div><br></div> <div>그런데 지금 대선은 별로 이상적이지 않아요. 사회적 여유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니까 느긋하게 배당을 기다려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거든요.</div> <div>그런데 그거하곤 관계없이 선거는 다가왔고, 어떤 결과가 나오던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div> <div>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뭐냐? 거칠게 말하자면 연대보증 좀 서달라는 거에요. 내 얼굴 봐서.</div> <div><br></div> <div>원래 보증 서달라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약속할 만한 게 없거든요. 그런 게 있으면 보증을 왜 서달라고 하겠습니까.</div> <div>사실은 무슨 약속을 해도 잘 해야 본전치기라는 거 이 판에 있는 모두가 대강은 알고 있어요. </div> <div>그런데 원래 보증 서달라는 사람이 급하기는 또 급하거든요. <span style="font-size:9pt;">그럼 어떻게 할까요? 두 가지가 있죠. 판을 속이거나, 도게자를 하거나.</span></div> <div>판을 속이는 것은 갑을관계가 뒤바뀐 듯이 믿게 하는 겁니다. 가장 흔한 방법으론 보증 안 서주면 나쁜 놈이라고 소문내겠다는 고전적 방법 있군요.</div> <div>교묘하게 보증을 서주는 것이 나중에 긍정적인 시너지효과 가져올 거라고 포장하는 방법도 있습니다.</div> <div>직접 매달려서 동정심을 호소하는 거야 뭐 다들 설명을 안 드려도 아실 거구요. </div> <div><br></div> <div>그런데, 보증 서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div> <div>이 사람이 어떤 계획 아래서, 얼마나 성실하게 빚을 갚을 것인가? 중요한 건 그것뿐이에요.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보증이라면 그 무게감이 다르죠.</div> <div>이 사람이 어떤 좋은 목적을 위해서 보증을 필요로 하는가?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선하게 살아왔는가? </div> <div>그거들 결정에 영향을 간접적으로 미치는 부차적인 고려사항입니다. 선의를 가졌지만 빚을 못 갚았다? 그럼 내가 대신 망해줘야 되는 거니까. </div> <div><br></div> <div>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투표권은 그 결정권입니다.</div> <div><br></div> <div>물론 선거가 일반적인 연대보증과 완전히 같진 않아요.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보증 안 서겠다고 했어도 지장 찍힐 수 있다는 점이죠.</div> <div>그 결과? 9년동안 신나게 고통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러니까 그래도 가장 덜 위험한 후보한테 보증 서줘야 그나마 낫지 않겠냐?</div> <div>일견 일리있는 말이에요.</div> <div><br></div> <div>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가 서 있는 계약구도 자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도 감안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요.</div> <div>일반적으로 보증이 급한 사람은 자신이 직접 와서 매달립니다. 말이라도, 립서비스라도 그렇게 하죠. 자기가 못 나온다? 대리인이라도 쓰겠죠.</div> <div>그런데 이번 구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직접 상환계획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던지고 있어요. 한 번도 아닌걸요.</div> <div><span style="font-size:9pt;">더구나 그걸 보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찾아와서 역성을 듭니다.</span></div> <div>이 사람들은 대리인이 아니에요. 표면적으로 나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계속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div> <div><br></div> <div>믿을 만하니까 까짓거 한 번 보증 서줘봐라,</div> <div>저 사람이 다른 데서도 보증 받아야 되서 불안불안하게 보이는 것뿐이지 막상 보증 받고 나면 말 잘 들을 것이다,</div> <div>거 불안하면 일단 보증 서주고 나서 감시하고 목소리 내면 될 거 아니냐.</div> <div>어차피 보증 안 서준다고 뻗대도 결국 서류에 지장 찍을 건데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밀어줘서 더 잘나가게 도와줘야 빚 잘 갚겠지?</div> <div>이 사람 봐봐라 얼마나 좋은 일 한다고 하냐, 또 이 사람 봐봐라 돈 떼먹게 생겼냐. 잘 나가면 너 빚 설마 떼먹기야 하겠냐.</div> <div>옹졸하고 어리석은 사람 되지 말고 까짓거 인심 한번 써라, 너 원래 나쁜 사람 아니잖아.</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이걸 보고 진심으로 설득되서 흔쾌히 연대보증 지장 찍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span></div> <div><br></div> <div>청년들이 원하는 거? 군게에서 요구한 거? 한 달 전부터 일관적이었습니다.</div> <div>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할 것,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신뢰의 시그널을 줄 것. 그걸로 끝날 문제였어요.</div> <div>이 사람이 채무를 성실히 갚겠구나, 하는 설득력 있는 확증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div> <div>그 요구가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거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요구였던가요? 상식적인 미래, 피드백이 통하는 정부, 이게 무리한 요구였습니까?</div> <div>그런데 거기 돌아온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청년 남성들에게 신뢰를 북돋아주는 약속이라고는 하지 못하겠군요.</div> <div><br></div> <div>무효표가 효율적인 정치적 의사표명의 수단은 되지 못합니다.</div> <div>그러나 신용이 떨어져가는 거래에서, 일종의 제도적 강제를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는 있어요.</div> <div>심리적 터부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결집된 의사표명이 집단 무효표 투척일 수 있습니다.</div> <div>그러나 그 목소리마저도, 보증 역성드는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있군요.</div> <div>5년쯤 전에는 제발 청년층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투표해라, 무효표도 의견표명이다, 이런 소리를 비슷한 채널에서 들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div> <div><br></div> <div>저는 청년층이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에는 분명히 이러한 이유가 중대한 포인트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div> <div>여성우대정책? 메갈식? 그건 우리 등짝을 향해 날아오는 칼입니다. 사실 칼이 날아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죠. </div> <div>그러나 칼날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그 두려움에서 그렇게 지분이 크지는 않아요. 총알이나 망치라면 두렵지 않은데 칼이어야 무섭겠습니까.</div> <div>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겠구나, 내가 믿었던 방어막이 사실은 나를 향하는 칼날이었구나, 이게 진정으로 사람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죠.</div> <div>에헤이 안 물어 안 때려 안 죽어 엄살피우지 마 하는 추임새는 덤이고.</div> <div><br></div> <div>두서가 없었는데, 보증 비유를 마저 들도록 할게요. 이 상황에서 사람에 의한 보증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div> <div>제도적으로 강제력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주관적인 신용은 이미 깨졌거든요. </div> <div>그래도 여러 가지 이유로 꼭 보증을 들어주고자 한다면 뭔가 의지할 구석은 있어야겠지 않겠습니까. 방패 하나는 들고 있어야 보험이 되지 않겠어요?</div> <div>아마 꽤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 그 방패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거라 믿습니다.</div> <div>들고 있는 것이 투표권 하나뿐이니, 이걸 이용해서 바리케이드라도 치겠다는 생각에서 말이죠.</div> <div><br></div> <div>저는 나름의 생각을 정했습니다. 저보다 과격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온건한 방법 찾으시는 분들도, 그래도 믿어보겠다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div> <div>다만 우리가 어째서 좌절하고 분노하는가, 그리고 그 방향이 어째서 이런 방향인가?에 대해서 머릿속을 나름대로 정리해 봤습니다.</div> <div>그 결론이 이것입니다. 우리의 분노가 이유 없거나 무리한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div> <div>그래도 희박해졌지만 '대의' 앞에 참아줘야 될 의무가 있는가? 그래야 할 구도도 당위성도 찾기 어렵군요. </div> <div>그럴 의무가 있다고 해도, 최소한 그것을 보증 강요하듯이 당연하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div> <div>선택이 다르고 생각이 같지 않겠지만, 같은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공유한다면 제 결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