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 style="text-align:center;font-size:9pt;line-height:1.5;">곧 6.25고 호국보훈의 달이 끝나가는 이 시점 이런 글 하나 정도는...)</span></div> <div><br></div>예전에 영화 포화 속으로를 계기로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녔던 어느 학도병의 편지..잘 알고 계실겁니다. <div><br></div> <div>"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div><br></div> <div>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div> <div><br></div> <div>저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버렸습니다.</div> <div><br></div> <div>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div> <div><br></div> <div>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div> <div><br></div> <div>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div> <div><br></div> <div>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div> <div><br></div> <div>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div> <div><br></div> <div>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린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div> <div><br></div> <div>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습니다.</div> <div><br></div> <div>어머니!</div> <div><br></div> <div>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 내 나는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div> <div><br></div> <div>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壽衣)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div> <div><br></div> <div>어머니!</div> <div><br></div> <div>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div> <div><br></div> <div>어머니!</div> <div><br></div> <div>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집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div> <div><br></div> <div>어머니!</div> <div><br></div> <div>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냉수를 들이켜고 싶습니다.</div> <div><br></div> <div>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div> <div><br></div> <div>다시 또 쓰겠습니다.</div> <div><br></div> <div>어머니! 안녕! 안녕!</div> <div><br></div> <div>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div> <div><br></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6/1434746040cXHpAfmZ.jpg" alt="M20130607.010330803490001i2.jpg" style="border:none;width:160px;height:222px;"></div> <div style="text-align:center;"><어느 학도병의 편지의 주인공 학도병 이우근 -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div><br></div> <div>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6.25가 발발하기 전의 대한민국은 정말 지독했습니다. 장비는 둘째 치고라도 건국이후 최초의 징병검사가 50년 1월에 실시되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죠.</div> <div><br></div> <div>전쟁이 발발하자 병력과 장비 모든 면에서 밀린 국군은 후퇴를 거듭합니다. 이런 상황 하 정부는 다급히 징병을 실시하여 병력을 보충하고자 하였으나</div> <div>넘치는 피란민과 소집체계의 붕괴 및 미비로 병력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div> <div><br></div> <div>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상태에 많은 학도병들이 펜과 책 대신 총을 잡고, 군복이 아닌 교복 차림으로 계급장 대신 "학도의용대"라는 완장을 차고 겨우 사격방법이나 익힌채로 전선에 나갔습니다.</div> <div><br></div> <div>이들 대부분의 나이는 4~6년제 중학생..M1소총이 자신의 가슴팍에 오거나 자신보다 큰...15살 ~ 18살의 까까머리 학생들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6/143474657952ZqCPDXRZEsEBm16wXG1RY.jpg" alt="IMG_1032.jpg" style="border:none;width:320px;height:428px;"></div> <div style="text-align:center;">< 전몰학도병충혼탑 ></div><br></div> <div>이런 학도병들이 최후의 보루로 싸운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포항여중 전투입니다.</div></div> <div><br></div> <div>위 편지를 쓴 이우근 학도병이 전사하고 영화 포화속으로의 모티브가 되었던 전투죠.</div> <div><br></div> <div>1950년 8월 포항을 지나 부산을 공격하려던 북한군 766유격대를 불과 71명의 학도병이 무려 11시간 동안 막아낸 전투입니다.</div> <div><br></div> <div>실제 참전하셨던 정수득 님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의성에는 전국에서 모인 87명의 학도병이 있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이들은 안동 길안까지 걸어가 3사단으로 찾아갔으나 당시 사단장이던 백인엽 장군은 16명만 받고 나머지 71명에게는 귀향명령을 내렸다고합니다.</div> <div><br></div> <div>이에 나머지 학도병들은 김석원 장군의 휘하에 들기 위해 포항으로 향합니다.</div> <div><br></div> <div>8월 10일 포항역에 도착한 학도병들은 전황에 관련된 브리핑을 받고 포항여중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div> <div><br></div> <div>소대장과 분대장은 투표로 뽑고 저녁에 M1 소총과 실탄 250여발을 보급받았습니다.</div> <div><br></div> <div>11일 밤 적의 포탄이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비상이 걸린 학도병 들은 급히 경계에 돌입합니다.</div> <div><br></div> <div>새벽이 되자 약 20여명 정도의 북한군이 접근을 시작했고 경계 중이던 학도병들은 일제사격을 가해 모두 전멸시키는데 성공합니다.</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6/14347475247BdDEt59XZHineDyZr.jpg" width="250" height="201" alt="images.jpg" style="border:none;"></div> <div style="text-align:center;"><앞 줄에 학도병들이 보인다></div><br></div> <div>그 상태로 아침이 되자 다시 한번 적의 공격이 시작되나 별 피해없이 적을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오전 11시 적은 장갑차를 앞세워 전진하기 시작했고 1시간 후..후방이 뚫리면서 전우들이 쓰러졌습니다.</div> <div><br></div> <div>총을 갈겨 적을 쓰러뜨렸으나 곧 손에 관통상을 입고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div> <div><br></div> <div>13명 정도가 포로가 되었는데 밤이 되자 호송을 시작했습니다.</div> <div><br></div> <div>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일부 포로가 와~ 하는 소리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면서 호송대열은 혼란에 빠졌고 이 때다 싶은 정수득 님은 재빠르게 탈출해</div> <div><br></div> <div>인근 부둣가로 도망갔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거기서 민간인을 만나 옷도 갈아입고 부상도 처치하고 잡도 실컷 자고 이튿날 경주의 야전병원으로 향했으나 중간에 북한군을 만났습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학생이라고 말하니 통과시켜줬고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죠. 그리고 부상을 입었으니 치료해 달라고 하자 민간인은 치료가 안된다며 거부했습니다.</div> <div><br></div> <div>군번도 계급장도 없으니 전투에서 부상당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던겁니다.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한 그는 집으로 내려가 치료를 마쳐야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이 학도병 71명이 벌어 준 11시간..이 11시간은 정말 금쪽과 같은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신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3사단과 미군이 재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div> <div><br></div> <div>하지만 그 댓가는 컸습니다. 74명중 47명이 채 20살이 되기전에 인생을 끝마쳐야 했습니다.</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6/1434748249XAMUdzBTxHFa.jpg" width="200" height="252" alt="images (1).jpg" style="border:none;"></div> <div style="text-align:center;"><학도병, 학병, 학도의병></div><br></div> <div>6.25 전쟁 당시 직접 총을 잡고 전투에 참가한 학생들 수 5만명..</div> <div><br></div> <div>후방 혹은 점령지에서 공작이나 선무활동을 전개한 학생들 수 25만명..</div> <div><br></div> <div>조국의 위기를 방관할 수 없어 일본에서 건너온 재일학도의용군의 수 642명..</div> <div><br></div> <div>이들 중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죽어간 의용군의 수 7000명..</div> <div><br></div> <div>이들은 1951년 2월 28일 종군학생복교령이 내려지면서 학교로 복귀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뒤였습니다.</div> <div><br></div> <div>또한 이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다시 한번 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칩니다.</div> <div><br></div> <div>이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장담하건대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습니다.</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center;"><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6/1434748961PPpaTyvK.jpg" width="300" height="168" alt="images (2).jpg" style="border:none;"></div> <div style="text-align:center;"><br></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