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font size="2">어느 화창한 날. 나는 터벅터벅 내무실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분대 분대장이 전역하고 분대장이 바뀌면서 </font></div> <div><font size="2">연병장 한 구석에서 약식으로 분대장 이취임식을 마치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새로 분대장이 된 고참의 어깨에 달려있는 </font></div> <div><font size="2">칙칙한 녹색의 견장이 그때는 왜그리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쯤 저 견장을 달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만 </font></div> <div><font size="2">남은 군생활을 생각하니 깝깝할 뿐이었다. 분대장이 바뀌면 새로 분대장임명장이 나왔고 내 손에 든 분대장임명장을 </font></div> <div><font size="2">바라보니 한숨이 나왔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보통 분대장임명장은 액자에 끼워서 걸어 놓는데 우리소대는 좀 특이한 방법으로 액자를 전시했다. </font></div> <div><font size="2">처음 자대배치를 받고 내무실에 들어갔을 때 내 눈에 들어온건 공중에 떠있는 액자였다. 허공에 떠 있는 액자를 </font></div> <div><font size="2">보며 적어도 염력정도는 써줘야 분대장이 될 수 있는거구나 라고 생각하며 고참들을 우러러 보았다.</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알고보니 액자를 낚시줄에 매달아 </font><font size="2">천장에 고정시킨 거였다. 이 부대에는 망치랑 못이 없나? 라는 생각과</font></div> <div><font size="2">저걸 왜 굳이 저렇게 매달아 놨을까? 아니면 기존의 벽에 거는 기성적인 액자전시의 관념에서 탈피해 분대장의 위엄을 </font></div> <div><font size="2">아방가르드적인 설치미술로 표현하려 한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거 말고도 할 고민이 많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font></div> <div><font size="2">넘어가기로 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하지만 천장에 액자를 매다는 일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고 그 작업은 후임들의 몫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먼저 액자의 구석을 낚시줄로 묶은 후 천장 석고보드의 나사를 풀어서 나사에 줄을 묶고 고정시켜야 했다. </font></div> <div><font size="2">이 때 어느 한쪽이 기울어서도 안되고 너무 높거나 낮아서도 안되었다. 가장 중요한건 액자의 각도였다. </font></div> <div><font size="2">45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해 누워있을때도 서 있을때도 액자가 잘 보이는 각도로 매다는게 핵심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러다보니 처음 액자를 매달 때는 거의 한시간을 액자와 씨름해야 했다. </font></div> <div><font size="2">문제는 우리 부대가 거의 격주로 토요일 마다 전투준비태세 훈련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무실을 비워야 하니 </font></div> <div><font size="2">당연히 액자도 따로 떼어내 보관해야 했고 그때마다 이 정신나간 짓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하도 액자를 떼었다 달았다 하다보니 어느정도 숙련이 됐지만 그래도 한 번 달때마다 거의 20분씩은 </font></div> <div><font size="2">소요가 됐고 이제는 액자만 봐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날따라 몸은 더더욱 천근만근 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내무실로 들어가 일단 액자를 내렸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냥 액자 뒷면만 열어서 종이만 바꿔 </font></div> <div><font size="2">끼우면 되었을걸 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바닥에 내려놓은 액자만 허망하게 바라보다 나는 다시 액자와 </font></div> <div><font size="2">씨름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제대로 달리지가 않았고 짜증은 짜증대로 나기 시작했다. </font></div> <div><font size="2">그 순간 잔머리가 떠올랐다. 어차피 다음주면 훈련때문에 다시 뗄 액자인데 굳이 정성들여 매달 필요가 </font></div> <div><font size="2">있을까 라는 생각에 나는 주변 눈치를 살피고 테이프를 가져와 천장에 액자를 대충 붙혀버렸다. </font></div> <div><font size="2">나의 이런 기지에 스스로 감탄하며 천장에 매달린 액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하지만 모든 사고의 원인은 안전불감증이라고 했던가. 그날 밤 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괴성이 조용한 내무실 안에 울려퍼졌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font></div> <div><font size="2">내무실에 불이 켜지고 보이는 것은 인중이 붉게 물든 고참의 얼굴이었다. 테이프가 액자의 무게를 이기지 </font></div> <div><font size="2">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떨어진 액자는 자고 있던 고참의 인중에 적중했다. 그것도 소대에서</font></div> <div><font size="2">제일 지랄맞은 고참의 인중으로. 싸구려 스카치 테이프의 장력은 액자의 무게를 견디기엔 역부족 이었고 </font></div> <div><font size="2">나는 수능시험을 본 이후 처음으로 학창시절 과학공부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이미 고참의 얼굴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고 나는 극도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제발 아무도 눈치채지 </font></div> <div><font size="2">못하고 그냥 단순한 사고로 넘어가기를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지만 결국 분노에 찬 고참은 </font></div> <div><font size="2">치밀한 현장검증 끝에 천장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발견했고 이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font></div> <div><font size="2">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은밀하게 계획한 테러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font></div> <div><font size="2">그리고 오늘 액자 단 놈이 누구야라는 고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름다웠던 유년시절을 떠올렸다. </font></div> <div><font size="2">아마도 그것이 주마등이라는 이었으리라. 앞으로 나선 날 바라보는 고참의 얼굴을 보며 나는 </font></div> <div><font size="2">내 인생이 여기서 마감되는구나 라고 직감했다. 앞으로 내 군생활 남은 시간의 전부를 널 파멸시키는데 </font></div> <div><font size="2">사용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 얼굴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 후로 그 고참이 제대할때 까지 나는 숱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font></div> <div><font size="2"></font>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