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선 이런저런 내기를 많이 한다. 한창 쇠도씹어먹을 나이인 20대 초반의 남성들이 모여있다보니 내기를 하다보면 들끓는
승부욕으로 분위기가 과열되기도 한다. 지나친 승부욕으로 장난으로 시작한 내기가 내 군생활 모든것을 건 일생일대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의례 마지막은 사고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린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이기도 하다. 내기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단순해지고 유치해졌다.
그때 우리는 한창 족구내기에 빠져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항상 내기족구를 했다. 처음엔 평범한 커피 쏘기로 시작된 내기는
날이 가면 갈수록 커피에서 음료수로 그리고 음료수에서 px쏘기로 발전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고 이제는 다들 월급도 떨어져가고
px내기도 시들해 질때 쯤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것이 초등학생도 안할 진팀이 딱밤맞기였다.
처음엔 웃으면서 시작했지만 지고나서 딱밤을 한대 맞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상대편엔 딱밤 장인이 있었다. 지금까지 맞았던
딱밤이 딱총이었다면 녀석의 딱밤은 공성병기였다. 한대 맞고나니 나는 내 머리가 제자리에 붙어있는지 두개골이 갈라진건 아닌지
황급히 확인해야 했다. 일보의 펀치를 맞는 기분이 이런기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엔 찾아온건 지옥같은 고통이었다.
고통이 사라진후 내 안에 남는건 분노 뿐이었다. 반드시 이 고통을 되갚아 주리라. 그렇게 이를 악물고 다음세트가 이어졌고
우리는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드디어 달콤한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고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숨을 고르며 잘익은 사과를 반으로
쪼개는 이미지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쿵후보이 친미가 통배권으로 물이 가득찬 항아리를 박살내듯 네놈의 머리를 박살내주마라고
다짐하며 손가락을 최대한 제껴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녀석의 머리엔 선명한 손가락자국이 새겨졌다.
복수를 완성한 만족감에 내 얼굴은 미소로 물들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이 안으로 굽혀지지가 않았다.
당황한 나는 억지로 손가락을 안으로 굽혀보았지만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결국 나는 의무실로 향했다. 인대가 늘어난것 같다는 의무병
말에 나는 당혹스러워졌다. 어쩌다 이런거냐고 묻는 의무병의 말에 차마 딱밤을 때리다 이렇게 된거라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나는
달콤한 승리와 인대를 맞바꾼 바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해안에 들어간 우리는 지루함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궃은 날씨 때문에 나가서 뭘 하지도 못하고 내무실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차에 후임들이 부식을 가지고 왔다. 어디 뭐 맛있는거라도 나왔나 살펴보는 난 이내 눈쌀을 찌푸리고 말았다.
부식으로 나온것은 2인치라는 양파음료였다. 굶주린 이등병들조차도 먹기를 꺼려했고 먹지 않고 짱박아둬도 암묵적으로 용인해주던
전설의 음료였다. 부식이 나왔지만 누구하나 쉽게 다가가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사람이 마시자는
내기를 제안했다. 몰아주는 것도 아니고 마시는 것이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또 우리에게 묘한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해서는 안되는 내기를 시작했다. 이깟 가위바위보 하나에 또 엄청난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사람이 줄어들수록
긴장감은 고조되었고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한 자들은 제대라도 한듯한 환호를 질렀고 패배한 자들의 얼굴에는 시름많이 가득했다.
대개 그렇듯이 이런 게임은 처음 제안한 사람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처음 이 내기를 제안했던 후임이 결국 최후의 1인으로 남았다.
선처를 바라는 그의 호소에 우리의 마음도 흔들렸다. 그걸 다 마시게 하는건 너무나 비인도적인 처사였기에 우리는 세캔만 마시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캔을 쥔 그의 손은 이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뚜껑을 따는 순간 풍기는 비릿한 양파냄새에 우리는 세캔도
무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한캔을 비운 그의 얼굴은 슬픔과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는 우리의 얼굴도 못볼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그를 만류했지만 그는 괜한 호기를 부리며
두번째 캔을 따 거침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마신다기 보다는 들이붓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싶을정도였다. 식도를 열어 맛을 느끼기도
전에 쏟아붓는 것이 그의 목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채 반캔을 마시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료수는
역류하기 시작했고 그는 그대로 우워워어억 이라는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가 지나간 길엔 애처롭게 음료수 길이
나있었다. 헨젤과 그레텔 처럼. 그후로 우리는 그를 앵그리 어니언맨이라 불렀다.
무모했던 내기의 마지막은 어느 날 근무가 끝나고 나서였다. 근무가 끝나고 우리들은 집결지로 모였지만 차는 오지 않았다.
차량에 문제가 생겨 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차는 오지 않았고 멍하니 앉아있다 우리들의 눈에 들어온건 버려진 쪽배 한척이었다.
그 배는 방치된지 오래되어 이미 물이 새고 있는듯 바닥엔 물이 흥건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배에 몰려간 우리들은
배에 올라타서 누가 오래 균형을 버티고 서있는가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배에 올라타 균형을 버티고 서 있는데 누군가 묶인 줄을
풀었고 그렇게 배는 바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웃으며 그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 빨리 당겨달라는 내 말에
그들은 좀있으면 건너편 TOD에서 발견될거 라는 농담을 던졌고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복귀하는 차량 불빛이 보일때 쯤에야
우리는 이미 줄이 손에 닿는 거리를 벗어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하는 사이에도 배는 하염없이 흘러갔고 나는 이대로
바다미아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과 이럴줄 알았으면 배구공이라도 하나 가져올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대충 거리를 가늠해보니 아무리 힘껏 뛰어도 발목까진 물에 잠길 거리였다.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최대한 반동을 이용해 멀리 뛰기 위해 나는 몸을 앞뒤로 흔들었고 그순간 나는 내가 나의 균형감각을 너무 맹신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몸은 그대로 뒤집어져 바닷물에 쳐박혔고 그렇게 나는 12월의 바닷물에 흠뻑 젖게 되었다.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