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font size="2">해안에서는 하루에 두 번씩 부식이 나왔다. 보통 점심때는 빵이나 과자가 나왔고 저녁때는 라면이 주로 나왔다. </font></div> <div><font size="2">점심에는 인원수에 맞춰 개인적으로 부식을 지급했고 저녁때 나오는 라면은 근무를 마치고 나서나 근무 전에 다 같이 </font></div> <div><font size="2">모여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라면은 컵라면이 나왔는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컵라면이 나와도 따로 물을 부어 </font></div> <div><font size="2">먹는게 아니라 다 같이 취사장에 모여서 냄비에 끓여먹었다는 점이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 날도 근무가 끝나고 다같이 취사장에 모여 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다. 한참 라면을 먹다 문득 한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font></div> <div><font size="2">굳이 컵라면을 냄비에 다같이 넣고 끓여먹을 필요가 있을까? 사실 이등병때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점이었지만 그 시절엔 </font></div> <div><font size="2">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던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라면을 약간 덜 익혀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컵라면 같은 경우는 면이 얇은 경우가 많아 냄비에 넣고 끓이면 먹을때쯤 되면 면이 다 불어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이제는 짬도 먹을만큼 먹었고 위보단 아래가 많아진 이 시점에서 나는 이 일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리고 그 것이 전쟁의 서막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컵라면을 굳이 냄비에 끓여먹을 필요가 있냐는 나의 말에 제법 많은 인원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세력도 만만치</font></div> <div><font size="2">않았다. 나의 말 한마디에 평화롭던 취사장은 순식간에 시끌벅적 해졌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꺼번에</font></div> <div><font size="2">냄비에 넣고 끓여먹어야 한다는 동인과 아니다 컵라면이 괜히 컵라면이겠느냐 그냥 물을 부어 먹는게 맞다 라는 서인으로 </font></div> <div><font size="2">나누어져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다 그들 내부에서도 그렇다면 약간 덜익혀 꼬들꼬들하게 </font></div> <div><font size="2">먹자는 남인들의 등장과 아니다 라면은 푹 익혀서 먹어야 한다 라는 북인으로 나누어져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만 갔다.</font></div> <div><font size="2">급기야는 그럼 반은 냄비에 끓이고 반은 부어서 먹자는 탕평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라면이 다 무슨</font></div> <div><font size="2">소용이냐며 난 그냥 안먹고 들어가서 잠이나 더 자겠다는 염세주의자들 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렇게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이 쓸데없는 토론은 계속 이어졌다. 냄비에 끓여먹기를 주장하는 자들의 주된 의견은 그동안 </font></div> <div><font size="2">먼저 간 고참들이 이룩한 유구한 전통과 관습을 깨버릴 수 없다는 것과 컵라면 용기에서 환경호르몬이 흘러 나온다는 것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그렇게 몸걱정이 되면 이시간에 라면을 먹지말고 담배부터 먼저 끊으라는 반대파의 불만섞인 의견이 터져나왔고 </font></div> <div><font size="2">이미 정상적인 토론의 범주를 벗어나 원색적인 비난이 빗발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font></div> <div><font size="2">그리고 애초에 이 논란을 초래한 나에게 냄비파의 수장격이었던 고참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근무가 끝나면 </font></div> <div><font size="2">후임들이 먼저 취사장에 내려와 라면을 끓이고 라면이 완성되면 고참들이 내려와 라면을 먹고 올라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그리고 뼛속까지 사대부였던 그 고참은 다 같이 내려와 라면을 끓이면 그동안 쌓아왔던 후임과 고참들 간의 경계가 사라지는</font></div> <div><font size="2">것이라며 지금은 단지 라면이지만 이 라면으로 인해 혁명의 불씨는 들불처럼 번져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font></div> <div><font size="2">결국엔 이등병이 혼자 PX에 가는 그런 세상이 올거라며 나를 위험한 사상을 가진 반동분자로 내몰았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그러고 보니 내 의견에 동조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이 일이등병 들이었다. 사실 나는 그런생각까지 하지도 않았고 단지 내 개인적인</font></div> <div><font size="2">취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 뿐이었지만 이미 일이등병들에게 나는 후임들의 권익보호와 자유를 위해 앞장서 투쟁하는 </font></div> <div><font size="2">혁명의 지도자 면다르크, 면게바라, 면코너가 되어있었다. 그 고참은 당장이라도 나를 화형시키고 싶어하는 기세였다.</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일은 커질대로 커졌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쌍팔년도 마인드를 </font></div> <div><font size="2">가지고 군생활을 하냐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쉽사리 의견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font></div> <div><font size="2">의미없는 소모전을 반복하다 그렇다면 막내에게 결정권을 주자고 말했고 고참은 좋다고 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먼저 얘기를 꺼낸 고참의 말에 막내는 맞습니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의기양양한 고참을 뒤로 한 채 나는 내 의견을 전달했고 </font></div> <div><font size="2">내 말에도 후임은 맞습니다를 연발했다. 사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얘기할 후임은 없었을 것이다. 줏대없는</font></div> <div><font size="2">막내의 말에 뚜껑이 열려버린 고참은 이 황희정승같은 새끼야. 너부터 먼저 맞자며 달려들었고 결국 우리는 합의점을 찾아 낼 </font></div> <div><font size="2">수 없었다. 이 논쟁은 한참을 지속되다 부대 안에 정수기가 들어오면서 일단락을 맺게 되었다.</font></div> <div><font size="2"></font>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