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font size="2">군인들의 최대의 적은 바로 시간이다. 군생활 자체가 시간과의 싸움이고 짬을 먹으면 먹을수록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간다. </font></div> <div><font size="2">딱히 할만한 것도 없고 시간은 남기에 남는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기 위해 우리들은 여러가지 여가생활을 즐겼다. </font></div> <div><font size="2">내무실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고 밖에 나가 축구나 족구같은 운동등으로 남는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마저도</font></div> <div><font size="2">질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가진거라곤 몸뚱아리 밖에 없었기에 할수 있는 것들은 제한되었고 우리들은 점점 유치해지기 시작했다. </font></div> <div>초등학교 때나 하던 술래잡기나 다방구 같은 게임들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다큰 어른들이 뭐가 좋다고 하하호호 뛰어다니며 놀다보면 어느덧 </div> <div>해는 뉘엿뉘엿지고 저녁먹으로 가자는 분대장의 외침에 아쉬운 발걸음을 떼기도 했다. </div> <div> </div> <div>이런 게임들은 유행을 타기 마련이었다. 한참을 비석치기에 매진해 연병장의 메덕스라는 칭호를 얻을때 쯤 비석치기는 유행을 지나갔고 다음으로 </div> <div>찾아온 유행은 말뚝박기였다. 군대에서 하는 모든 활동엔 전투라는 접두어가 붙는다. 우리가 하던 말뚝박기도 전투말뚝박기였다. 밖에서 하던 </div> <div>말뚝박기가 즐거운 놀이였다면 군대애서 하는 말뚝박기는 너의 허리와 나의 엉덩이 둘 중 하나는 부서지는 그런 게임이었다. 유행은 들불처럼 번져</div> <div>어느새 쉬는 시간엔 부대 곳곳에서 여기저기 인간 말뚝들이 박혀 있는 광경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남들보다 큰 체격에 중학교 때 이미 말뚝박기를 하다</div> <div>바짓가랑이를 숱하게 터트려 본 나는 손쉽게 소대 에이스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뚝박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이제 조금씩 그 </div> <div>열기가 시들해 질 때 쯤이었다. </div> <div> </div> <div>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다. 평소 앙숙이던 옆소대 동기를 Px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말뚝박기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div> <div>서로 니가 잘하네 내가 잘하네라고 차마 성인들의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싸움을 벌이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동기의 야 이 띱떼끼야 니가 그렇게 </div> <div>말뚝박기를 잘해? 연병장으로 따라와. 라는 그의 도전을 나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기에 내일 여가시간에 정식으로 붙기로 </div> <div>하고 PX를 떠났다. 하지만 훈련과 근무로 대결은 계속해서 연기되었고 그 사이에 단순한 대결에서 진쪽이 5만원빵 내기로 판이 커지고 말았다. </div> <div>그 사이 이 쓸데없는 내기는 어느새 양쪽 분대장들도 참가하여 소대간의 자존심대결로 번졌고 우리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연습에 매진했다. </div> <div>아마 훈련할 때도 이처럼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div> <div> </div> <div>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고 이 경기에 참가할 인원들을 살펴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이건 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div> <div>그동안의 혹독한 훈련으로 이미 나를 뛰어넘는 인재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후임들을 보는 건 나의 즐거움이었다. </div> <div>특히 몇 몇 후임들의 발전이 눈에 띄었는데 그 중 한명은 인간의 기원은 조류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남들보다 길고 날카로운 꼬리뼈의</div> <div>소유자였다. 그야말로 말뚝박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신체였다. 처음엔 보잘 것 없었지만 피나는 훈련을 통하여 그는 꼬리뼈로 비공을 찌를 정도의 </div> <div>실력자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체대 출신인 다른 후임은 말뚝박기 특기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무게와 핀포인트를 찌르는 </div> <div>컨트롤을 모두 보유한 그는 인간항타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둘만 있으면 절대 지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div> <div>비록 에이스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화려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잠시 애틋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결을 앞두고 내 손을 꼭 잡으며 넌 가자미다. 라고 </div> <div>말하는 고참의 말에 나는 진흙투성이가 되기로 했다. </div> <div> </div> <div>그렇게 옆소대 인원들과 마주섰을 때 나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을 느꼇다. 그들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한덩치씩 하는 데다가 </div> <div>특히 날 거슬리게 했던건 자주 보지 못했던 신병의 모습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표현이 가능했다. 훈련소 비만소대 출신. </div> <div>보통 성인의 1.5배는 되보이는 육중한 모습은 시작도 전에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비실비실 웃던 동기는 돈은 준비됐냐며 저급한 도발을 던졌고 </div> <div>나는 질세라 너희들 중 적어도 셋은 의가사로 집으로 보내주마 특히 넌 지옥으로 보내주마. 라고 맞대응 했다.</div> <div>막 경기를 시작하려던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후임 한명이 뛰어오더니 날 찾았다. 위병소에서 밥교대를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div> <div>원래 가야 할 고참이 작업중이라 나에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을 한것이었다. 고참의 부탁이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div> <div>않았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분대장은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다녀오라고 말했다. 여기 너를 능가하는 인재가 둘이나 있으니 믿고 다녀오라는 </div> <div>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믿기로 했다. </div> <div> </div> <div>부리나케 밥교대를 다녀오니 다행이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루한 싸움이었다. 서로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다 지쳐버린 </div> <div>차에 그쪽에서 한가지 제안을 해왔다. 가위바위보 없이 무너지는 쪽이 지는 데스매치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 의미없는 소모전을 빨리 끝내고 싶어</div> <div>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쪽에선 한가지를 더 제안해왔다. 아이템전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무슨소리냐고 물으니 도구를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div> <div>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이해가 갔다. 옆소대 후임 하나가 근무복장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아마도 탄띠와 수통을 이용해 타격을 </div> <div>극대화 시키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우리는 장비착용은 한명으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도 서둘러 내무실로 들어가</div> <div>깔깔이를 가져왔다. 그렇게 깔깔이를 두겹씩 껴입고 마지막 게임은 시작됐다.</div> <div> </div> <div>마침내 상대방의 공격을 견뎌내고 드디어 우리의 공격차례가 돌아왔다. 하나 둘 씩 상대방의 등허리에 올라타고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이 남았다.</div> <div>그리고 마지막 주자의 등에 달려있는건 지주핀을 채운 군장이었다. 후임이 달려오는 걸 힘차게 뛰어오르는 걸 보며 난 승리를 직감했다. </div> <div>하지만 난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지주핀을 가득 채운 군장을 메고 점프를 뛴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div> <div>엉덩이에 반쯤 올라오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후임은 그대로 바둥대다 늦여름 수명을 다한 매미가 미끄러지듯 그대로 뒤집어져 낙하했다. </div> <div>그리곤 한참동안을 애처롭고 뒤집혀 바둥댈 뿐이었다. </div> <div> </div> <div>결국 난 내 피같은 돈과 건강 모두를 잃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