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개 세계관에서 시작한 이야기였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지 모름. 

애로우도 그렇고, 요즘 드라마들의 장르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경단원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다만 이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고,

또 작중 무대가 되는 헬스 키친이라는 동네가, 다름 아닌 어벤저스 타워를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라는 게 한몫을 했다고 본다. 

윈터 솔져 같은 작품이 있다고 해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밝음' 임.

어떤 작품이던 기본적으로 유머가 짙게 배여 있고, 특히 아이언맨으로 대변되는 쾌남 히어로들이 

현실의 부조리나 외계의 침략자들, 자신들을 향한 각종 음모에 맞서 하이퍼 테크놀로지 슈트나 우월한 육체, 비브리늄 방패로 

악당들을 때려부수는 이야기라는 것임. 

쿠키에 떡밥이 있을 지언정, 영화 안에서 승부의 판정은 항상 히어로의 것으로 끝나지. 

하지만 데어데블 시리즈는 그런 게 없음. 

시즌 1 내내, 맷은 피스크(킹핀)과 비교해서 명백한 약자임. 심지어 핀을 집어 넣은 시즌 2에도, 

니가 한 일은 죄다 헛짓거리였다~ 라는 소리를 듣는 판에.

맷이 상대하는 범죄 조직들, 그것도 국제적인 규모가 아니라 그냥 헬스 키친이라는 동네 안에서 깝치고 나도는 범죄 조직들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자신이 뭘 어떻게 해도 뿌리를 뽑을 수 없는, 무한히 생겨나는 억누를 수 없는 악 정도로 묘사되지.

여기서 기존 시네마틱 유니버스와의 갭이 생기는 거임. 

헬스 키친에서 어벤저스 타워는, 티저 포스터에도 보이듯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임.

하지만 어벤저스 타워에서도 그럴까? 뉴욕 전역을 내려다보는 그 타워에서, 헬스 키친에서 일어나는 온갖 더러운 일들이 과연 눈에 들어올까.

솔직히 시즌 내내 걸쳐 등장하는 적들은 기존 어벤저스 멤버들, 세상이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멤버들 중 누가 와도 싹다 토벌 가능함.

피스크? 걔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힘이던, 아니면 사회적 지위나 재력, 권력이던 스타크의 발톱 때만치도 못 낄거임. 

잘난 슈트 하나만 팔아도 피스크 조직 전체를 살 수 있을걸. 

하다 못해 캡틴도 마찬가지고. 단순히 무력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나 인지도로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도 있겠지.

물론 실드가 그러라고 만들어진 집단은 아니지만, 걔들이 마음 먹고 헬스 키친의 잡놈들 조지자고 하면

완전한 박멸까지 얼마나 걸릴까? 난 삼 일이 안 걸릴 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 

헬스 키친은 완벽하게 고립된 세상임. 밤마다 어린 소년이 납치당하고, 12살 소녀는 어느 건물 골방에 붙잡혀서 강제 성매매를 당하지.

누가 보아도 천인공노할 온갖 부조리가 일어나고 있고, 그 부조리들은 저 어벤저스 타워 위의, 영웅들 중 누가 손만 내밀어도 해결이 가능한데 

그렇지 않음. 그걸 해결하려고 용쓰는 건, 맷 머독과 프랭크 캐슬 같은, 몸도 마음도 이미 부조리에 걸레짝이 된 피해자들 뿐이거든. 

그리고 그들의 기준에선, 그들이 박멸해야 할 악과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도덕 윤리는 너무나도 무겁고 가혹한 적수임. 

어벤저스의 영웅들은 그저 그들의 대화 중 간간히 농담으로나, 액자에 담긴 신문 기사에서나 나올 뿐이지.

현실적으로는 찬조출연해줄 제작비라던가 이런저런 문제가 얽혀 있겠지만, 이상할 건 하나 없다. 

헬스 키친의 세상 속에서, 그들은 신화 속 인물들만큼이나 먼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