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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723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53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9/03/22 14:30:58
    http://todayhumor.com/?lovestory_87233 모바일
    [BGM] 빌려 울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8J1zSsdFliM






    1.jpg

    김태형오리몰이

     

     

     

    나에게 저녁은 오리를 몰고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의 몇 평 모래호수에는

    마른 바닥을 죄 파헤쳐 발이 빠진 오리가 둘

    집에 가자는 소리는

    한 뼘 작은 엉덩이 밑에 깔렸을 뿐

    점점 눈썹만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안 가겠다고 짧은 날개짓으로

    등 돌려 꽥꽥꽥 떼쓰는

    이 야단스러운 놈들을 콧등이 노란 두 아이를

    잘 타일러 집으로 이끄는 것은

    그러나 내가 아닌 저물녘이었습니다

    깜깜해졌다고 깜깜해졌다고

    그제야 젖은 모래를 털며 뒤따르는 아이들

    뒷짐까지 지고 앞장서던 나는

    가다 말고 가다가 말고

    자꾸만 뒤뚱거리며 뒤를 돌아보는데

    아이들이 냅다 집으로 뛰어가는데

    뚱뚱하고 피곤한 오리만 하나 남았습니다

    고집스레 말 안 듣는 한 엉덩이만

    무거운 그림자를 끌고서 뒤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2.jpg

    하청호에움길

     

     

     

    살아있는 길은 굽은 길

    에움길이다

    지렁이가 가는 집

    개미가 가는 길

    할머니 집 가는 시골길도

    에움길이다

     

    에움길을 타박타박 걸어보자

    발을 디딜 때마다

    흙은 탄력 있게풀잎은 제 몸을 눕혀

    내 발을 받쳐준다

     

    나비가 나르는 하늘 길도

    굽어져 있다

    이리 저리 나를 때마다

    바람은 사뿐히

    나비 몸을 떠받쳐준다

     

    살아있는 것들이 다니는 길은

    굽어져 있는 길

    우리네 길

    에움길이다







    3.jpg

    마경덕오래된 가구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의 힘에 밀려

    간신히 한 발을 떼어 놓는다

    움푹 파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본

    허름한 목판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에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 있는 네게 기대여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었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 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오래된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 아래 무성한 그늘을 떨어뜨리고







    4.jpg

    박성우해바라기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가 피었다

    참 모질게도 딱

    등 돌려 옆집 마당 보고 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말동무 하듯 잔소리하러 오는

    혼자 사는 옆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모종하고 거름내고 지주 세워주고는

    이제나 저제나 꽃 피기만 기다리던 터에

    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해바라기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은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슬몃슬몃 손 포개면서

    우리집 해바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5.jpg

    고영민빌려 울다

     

     

     

    바위는 어떻게 우는가

    자귀나무는

    배롱꽃은

     

    불볕에 달구어진 너럭바위가

    소나기를 만나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잠든 사이

    양철지붕을 빌려

    비가 한참을 울다 갔다

    애가 울면 아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젖을 꺼낸다

     

    나는 여태껏

    매미가 우는 줄 알았다

    나무가 매미의 몸을 빌려 울고 있었다

    울음이 다하면

    얼른 다른 나무 그늘에 붙어

    대신 또 몸으로

    울어주고 있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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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22 18:49:40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2] 2019/03/22 23:48:48  221.154.***.4  아재개그만  23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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