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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심해로의여행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3-08-06
    방문 : 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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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차단해제
    게시물ID : lovestory_58322
    작성자 : 심해로의여행
    추천 : 3
    조회수 : 1292
    IP : 121.184.***.91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8/12 19:46:56
    http://todayhumor.com/?lovestory_58322 모바일
    [펌] 북한 고위층 탈북이야기-마지막
    <div><span style="font-size: 24pt"><strong><font color="#c31a1b">북한 고위층 </font><font color="#c31a1b">탈북이야기</font></strong></span><span style="font-size: 12pt"><strong><font color="#c31a1b">-마지막</font></strong></span></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초린이는 나 때문에 거의나 두 시간 넘게 여기 저기 통화했다. </div> <div>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친척의 허락보다 그의 전화비가 더 걱정됐다.</div> <div></div> <div>북한 같았으면 그 통화 값이 일반 주민 월급의 3배가 넘을 것이다. </div> <div>북한에선 핸드폰이 특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div> <div>가입비만 800달러가 되고 그 외에 접수비용 100달러를 더 내야 한다. </div> <div>그러고도 중앙체신성 체신상의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한다. </div> <div></div> <div>그 기간에 중앙체신성은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성으로부터 신청자의 범죄경력, </div> <div>혹은 핸드폰 사용가능 여부를 조회 및 협의한다.<br /></div> <div></div> <div><br />모든 신청자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은 핸드폰 번호를 줄 때 중앙체신성에서 두꺼운 중국산 </div> <div>구식 핸드폰을 300달러에 의무적으로 사도록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div> <div><strong>그러나 불평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strong> </div> <div></div> <div>내가 번호를 받을 때만도 허가결정 번호를 보니 2000번 안이었다. </div> <div>그 소수의 특권으로 들고만 다녀도 폼 나는 물건이기 때문에 대부분 핸드폰 사용자들은 </div> <div>돈을 따지지 않는다. </div> <div>별도로 해외에서 작고 예쁜 외국 핸드폰을 구입하여 쓰면 그만인 것이다.<br /><br />가장 인기는 액정판이 칼라로 된 한국의 삼성 핸드폰이 다. </div> <div>이렇게 핸드폰 구입비까지 합쳐 거의 1500에서 1800불을 주어야 진정 목청 큰 핸드폰 소유자가 </div> <div>되는 것이 내가 북한에서 탈출할 때 당시의 2004년 실상이다. </div> <div>일반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2500원인데 핸드폰 한 달 최소 통화비는 2만원이니 열배나 넘는 </div> <div>통화요금에 습관적으로 늘 신경이 쓰였던 나는 초린이가 통화를 끝내고 돌아설 때 손을 저었다.<br /></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안 된다면 그만 둬, 어차피 한국 가야 하는데"</div> <div><br />"아닌데, 데려 오라는데"<br /><br />초린의 대답은 짧고도 명료했다. </div> <div>심양의 서탑이란 곳은 중국에 와서도 내가 처음 본 개혁개방 도시였다. </div> <div>외국의 유명 로고타이프는 물론 한글간판들이 많고 너무도 번화하여 한국이 아닌가싶을 정도였다. </div> <div>1월말인데도 흰 종아리를 드러낸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이 신기했다.<br /><br />김정일과 함께 원산 갈마초대소에서 식사하며 봤던 왕재산경음악단 무용수들의 짧은 치마 이후 </div> <div>두 번째인 것 같았다. </div> <div>내가 처음 친구를 만났던 것도 그 자리에서였다. </div> <div>당조직부 5과에서 지도원을 했던 친구는 할아버지가 김일성의 동지였고, </div> <div>아버지는 김정일의 동창생이었다.<br /></div> <div><br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서 당조직비서가 혁명선배들을 잘 모실 줄 안다며 </div> <div>사례를 든 이름이여서 북한에서 더 유명했다. </div> <div>그래서 또 우리는 국경을 넘은 그 순간부터 살인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div> <div></div> <div>변화와 세계가 보이는 이 번영의 도시로 친구와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div> <div>나는 이 생각으로 초린이가 앞에서 웃으며 손 흔드는 데도 아무 반응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따라갔다.<br /></div> <div></div> <div><br />초린이가 삼촌이라고 소개한 사람의 집은 연길의 신광용의 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div> <div>평수도 꽤 넓었고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도 무척 밝았다.</div> <div>가죽소파에 앉을 때에는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다.<br /></div> <div></div> <div></div> <div><br />"일단 피아노를 보여 주십시오."<br /><br />아들 전용으로 보이는 작은 방에 검은 색 YAMAHA가 있었다. </div> <div>나는 의자에 앉기 바쁘게 페달부터 밟아보았다. </div> <div>그동안 얼마나 피아노를 그냥 방치했으면 오른 쪽 페달이 눌러지는 것이 아니라 뻑뻑한 게 긁히는 감이</div> <div>들었다. </div> <div>건반을 맨 아래 옥타브 음부터 위까지 눌러보니 소리는 괜찮아보였다. </div> <div>검은색 건반들도 비교적 정상이었다. 다만 조율하지 않은지 좀 오래된 것 같았다.</div> <div>나는 피아노는 노래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자주 관리해주지 않으면 계절과 집안의 온도 변화로 </div> <div>사람의 목소리처럼 음정에도 이상이 온다고 훈시했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한번 해봐요" </div> <div></div> <div>초린이가 참지 못하고 졸랐다.</div> <div>나는 숨찼던 시간들을 잊고 잠시나마 안정을 얻고 싶은 갈망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div> <div>속으로 먼저 의미해 봤다. </div> <div>그러고나서 "라" 온음을 왼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오른 손으로 미 라~도 미 라~도 이렇게 </div> <div>8분음표로부터 시작하자 옆에 선 초린은 두 손을 살포시 마주 잡았다.<br /></div> <div><br />나는 두 눈을 감았다. </div> <div>가을의 고요를 들려주는 것만 같은 전반부 선율에서 긴장으로 종 종 잊었던 두고 온 집을 보고 싶었다. </div> <div></div> <div>아니 보였다. </div> <div>내가 치던 피아노며 어머니가 늘 앉아 감상하시던 소파, </div> <div>내 귀가 어두워진다며 아버지가 감춘 헤드폰 대신 녹음기 스피커에 갔다 대고 몰래 듣곤 했던 </div> <div>어머니의 청진기. </div> <div></div> <div>그리고 누나가 안고 있던 조카의 작은 손까지 보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div> <div>이별이 슬픔으로 이어지고, 소원이 공포로 변하던 여기까지 오는 길의 갈래마냥 내 손이 </div> <div>빨라지는 간주와 후반 부분에선 심장이 막 뛰었다.</div> <div>마지막 음정과 함께 페달에서 조심히 발을 뗄 때에는 미간이 떨리며 끝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div> <div>물을 떠 가지고 온 초린은 건반에 그냥 올려 진 내 손에 쥐어주며 다른 때와 달리 조용히 말했다.</div> <div></div> <div><br /><br />"우리 삼촌 좋은 사람이예요, 그치 삼촌? </div> <div>나도 오빠가 한국 갈 때까지는 친구처럼 잘해줄게요."<br /><br />거실로 옮겨 앉은 우리는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div> <div>초린의 삼촌 말에 의하면 애 교육은 신경 쓰지 말고 기회가 오면 내일이라도 당장 </div> <div>한국으로 가도 좋다고 했다. </div> <div>아들에게 음악교육을 시키려는 이유는 전문성보다도 인성교육 차원이라고 했다.<br /><br />어린 나이에 비하면 너무도 고집이 세고 난폭해서 음악정서를 주입시켜 </div> <div>억지로라도 교정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이 중요한가 물었다. </div> <div>나는 정서를 알자면 우선 음감부터 익혀야 하기 때문에 청음연습을 동반하며 피아노를 </div> <div>배워주겠다고 했다. </div> <div>삼촌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지갑을 꺼내어 50원을 내밀었다. </div> <div>초린이가 손뼉을 치려다 말고 자리를 박차며 발끈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삼촌 더 주세요!"<br /><br />당황한 나는 집에서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큰 신세라며 일어선 초린의 손을 잡아당겼다. </div> <div>순간 그 손의 부드러움이 내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div> <div>산 속에서 날을 새고 소외양간에서 쪼그리고 잘 때 친구와 내가 주로 만졌던 것은 거친 것들밖에 없었다.</div> <div>때로 친구의 손을 덥석 잡을 때에도 사람의 손이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div> <div>떨리는 전율이 만져졌고 뜻밖에 살아난 두 목숨이 만져졌을 뿐이었다.<br /><br />나는 초린의 그 손에서, 그 촉감에서 삶과 인간의 향수가 느껴졌다. </div> <div>지금도 나는 선불일 뿐이라며 한 달에 350원을 주겠다고 말하는 삼촌을 향해 </div> <div>눈물에 젖어 쏘아보던 초린의 그 눈을 가끔 그려보군 한다.</div> <div></div> <div><br /><br />우리가 이야기를 거의 마칠 때쯤 문이 떨어져 나갈듯 열리며 조그만 애가 쳐들어왔다. </div> <div>삼촌이 중국말로 소리치는데도 그 애는 무엇을 찾는지 아랑 곳 없이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div> <div>그리고는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문이 깨져나갈 듯이 쾅 닫고 사라졌다.<br /><br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10살짜리 어린 애가 아니라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싶어 웃음이 났다. </div> <div>상상했던 것보다 그 애는 훨씬 씩씩했다. </div> <div>눈 떠서 잘 때까지 뛰거나 고함쳤다. </div> <div></div> <div>매일 아침 9시부터 나는 가르쳤고 초린은 옆에서 통역하고, </div> <div>이렇게 어른 두 명이 달라붙었는데도 통제가 안 됐다.<br /></div> <div></div> <div><br />피아노 앞에 앉으라면 의자위에 올라서 건반을 발로 밟았고 청음연습 시키려면 들려주는 음정마다 </div> <div>놀리듯 강아지 흉내 내며 멍멍했다. </div> <div>보다 못해 삼촌 엄마가 한 손엔 막대기와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으름장 놓기도 했다.</div> <div>초린의 설명에 의하면 삼촌엄마가 막대기를 들면 애가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div> <div>아닐세라 삼일 후 그 녀석이 나에게도 칼을 장난감처럼 쳐들고 덤벼들기도 했다. </div> <div>김광선에게 친구의 행처를 묻고 있는데 전화 선 코드를 뽑기에 쏘아본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br /><br />나는 그날부터 음악선생이 아니라 독재자가 되었다. </div> <div>야단치는 것은 기본이고 애가 반항하려면 시범으로 초린이를 때린 척 했고 </div> <div>초린이는 아파 죽는 척 했다. </div> <div>한번은 어린놈이 초린의 가슴을 들여다보겠다고 막무가내여서 막대기로 </div> <div>엉덩이를 몇 대 때리기도 했다. </div> <div>울지도 않고 씩씩대던 그 동심의 결심이 어떤 엄청난 계획이었는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br /></div> <div><br />애가 밖으로 도망친 후 삼촌이 부르더니 70원을 주었다. </div> <div>하여 내 주머니엔 120원이 모아졌다. </div> <div>나는 그 돈으로 초린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 </div> <div>고마워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도피생활로 잃었던 나의 인성을 찾고 싶었다. </div> <div>떠돌며 쫓기는 과정에 밟히고 소멸된 내 인격과 자존심을 찾고 싶었다. </div> <div>나를 인간으로 복원하고 싶었고 그 열정과 지혜로 하루 빨리 한국행을 다시 시도해보고 싶었다.<br /></div> <div><br />해가 점점 식어가는 저녁 쯤 나는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 </div> <div>초린과 그의 대상, 이렇게 셋이서 웨이터들이 현관 앞에 줄지어 선 고급음식점으로 갔다. </div> <div>내가 사는 밥이어선지 입맛에 맞았다. </div> <div>초린의 대상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맘이 통할만큼 괜찮아 보였다. </div> <div>나는 비로소 초린이의 앞날이 안심되면서도 한편으론 그 대상이 은근 슬쩍 부러웠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너 배신만 해봐라!"<br /><br />술이 조금 들어가니 이런 공갈도 하게 됐다. </div> <div>웃으며 던진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초린의 대상은 좋은 뜻인 줄 알고 그냥 미소만 지었다. </div> <div>나는 그때 언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div> <div>사람의 모든 감정은 언어로부터 시작되는구나 하고 새삼 알았다. </div> <div>밥값은 내가 몰래 계산했는데 모태주가 비싸서인지 조금 모자랐다.</div> <div>초린이 카운터로 달려와 야단치는 것을 나머지 돈만 겨우 내게 했다.<br /><br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서탑으로 갔다. </div> <div>대상이 거스름돈을 안 받겠다며 택시에서 먼저 내리자 초린은 기어이 받아내어 </div> <div>내 주머니에 살짝 넣어주었다. </div> <div>나는 주머니에 들어온 그 손을 또 한 번 잡아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div> <div>대신 초린이가 두 남자를 양 옆에 끼고 콩 콩 뛰며 걸어서 행복했다.<br /><br />삼촌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우리는</div> <div>열려진 문 안의 광경에 굳어지고 말았다. </div> <div></div> <div></div> <div></div> <div><font color="#c31a1b"><strong>공안이 두 명 서 있는 것이 아닌가.</strong> </font></div> <div></div> <div>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왠지 이상하게도 죽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div> <div>그런데 다음의 상황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div> <div>삼촌 아들이 내 앞으로 흔들흔들 걸어오더니 내 배를 꾹 찌르며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br /><br />공안 한 명이 내 앞으로 바투 왔다. </div> <div>대뜸 초린이가 나서며 그 말을 받았는데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div> <div>공안과 초린이 사이에 고성이 오고 갔다. </div> <div>이때라 싶었는지 초린이 삼촌이 설명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우리가 전에 당신이 탈북자이기 때문에 공안에 말하면 붙잡히니깐 </div> <div>절대 밖에 나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근데 오늘 저 놈이 나가서 탈북자가 있다면서 </div> <div>공안을 데리고 온 거요. </div> <div>이 사람들이 그래서 왔는데 초린이가 금방 한국 사람이라고 했으니 절대 놀라지 말아요."<br /><br />공안이 나에게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div> <div>초린이가 애인처럼 내 팔을 끼며 웃었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여권 보여 달라고 해요. </div> <div>가방을 분실했다고 내가 말해주겠으니 아무 이야기나 하세요. 빨리"<br /><br />우리의 긴장과는 상관없이 덩지 큰 초린의 대상이 다른 공안에게 꽥 소리쳤다. </div> <div>아마 담배를 끊으라고 욕을 한 것 같았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초린아. 미안해, 나 때문에 삼촌이 벌금 물리는 거 아니야?"<br /><br />내 목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초린이가 공안에게 보다 당당하게 말했다. </div> <div>그랬더니 공안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급하게 했다. </div> <div>초린이가 내 팔을 꽉 그러안았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어머나! 차를 부르고 있어요, 어마나 어쩌지?"<br /><br />그리고 비명처럼 중국말로 소리치자 대상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공안을 콱 밀쳐버렸다. </div> <div>그와 동시에 초린이가 내 앞을 다급히 막아섰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뛰어요!"<br /><br />나는 계단을 몇 개씩 짚으며 미친 듯이 날아 내려왔다.</div> <div>내 뒤에서 울리는 고함과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div> <div>그보다도 그 이후로 초린이와 영 영 헤어질 줄도 모르고 말이다.<br /><br /><br /></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밖으로 달려 나와 나는 가장 구석진 곳에 숨었다. </div> <div>혹시나 공안이 가고 나면 초린이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div> <div>설사 붙잡혀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도 감사하단 인사와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고 싶었다. </div> <div>그래서 아파트 현관이 보이는 어둠 속에 숨어 지켜보았다. </div> <div>숨을 겨우 진정할 때쯤 사이렌을 울리며 공안 차가 왔다.<br /><br />뒤이어 두 대가 다시 들이닥치며 모두 8명이 내렸다. </div> <div>4명은 올라가고 나머지는 나를 찾으려는지 흩어졌다. </div> <div>그들 중 한 명이 날 발견할 수 있는 곳까지 접근할 때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 </div> <div>처음엔 걷는 척하다가 이어 냅다 뛰었다. </div> <div>아마 십 분 넘게 달린 것 같았다. </div> <div></div> <div>공안이 따라 붙지 않았다는 것을 두 번 세 번 확인했을 때에야 </div> <div>허리를 숙이고 토하듯 기침하며 가슴을 두드렸다.</div> <div></div> <div><br /><br />그 밤은 몹시 추웠다. </div> <div>연길에선 어떻게 산에서도 이틀이나 잤을까. 얼어 죽지 않았을까. </div> <div>초린이 덕에 호강했던 며칠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사무치게 느껴졌다. </div> <div></div> <div>그래서 더 보고 싶었고, 도망칠 때 뒤에서 울렸던 쿵 소리가 공안이 문을 막고 있던 초린이를 </div> <div>밀어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넘어지며 머리가 깨진 것은 아닌지 그가 불쌍해서 울고 싶었다.</div> <div></div> <div><br /><br />나는 내가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 온 길을 더듬어 되 돌아가려했다. </div> <div>그런데 초린이 삼촌 집에서 외출 첫 날 당한 일이라, </div> <div>그리고 친구랑 함께 뛰었다면 약속대로 골목마다 오른쪽으로 돌아섰겠지만 </div> <div>너무 여념 없었기 때문에 좀처럼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br /><br />창문에서 내려다 본 기억으로는 기차역과 여러 선의 레일들이 뻗은 곳이어서 </div> <div>나는 그 근처에서 온 밤 헤매었다. </div> <div>내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한참 후였다. </div> <div>그러나 나는 허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웃음이 났다. </div> <div>초린이가 맛있다며 손뼉 치던 음식들이 아니었던가. </div> <div>나는 그날 밤 장춘에서와 마찬가지로 PC방에서 잤다.<br /><br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div> <div>시집노트와 신분증이 있는 곳을 만져보니 그대로였다. </div> <div>가진 것이 많았다면 몰랐겠지만 그때에는 내 재산이 그게 전부여서 겨울옷은 </div> <div>주머니가 많아서 더 따뜻하게 여겨졌다. </div> <div>초린이 삼촌 집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어둠 속에서 미처 못 봤던 건물들이 난잡해서인지 </div> <div>밝은 낮이 도리어 더 캄캄했다.</div> <div></div> <div><br /><br />초린이가 표를 주었던 찜질방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앞에서 가다려 보련만,,,,</div> <div>택시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도통 알 재간이 없었다. </div> <div>나는 목숨을 건 이 먼 탈출에서 좀 더 세심하고 치밀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심각하게 반성했다. </div> <div>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방법을 고심했다. </div> <div>문득 광용이 생각이 났다. </div> <div>전화를 걸군 했으니 그의 핸드폰에 삼촌 집 번호가 남아있으리라. </div> <div>그래서 전화를 하면 초린은 기필코 다시 달려 나오리라. </div> <div>그것이 안 된다면 그동안 고맙다고 인사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br /></div> <div><br />전화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는 돈! 이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div> <div>광용에게 전화하고 다시 초린이 삼촌 집으로 연결하자면 최소 1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div> <div>나는 혹시나 떨어진 돈이라도 없을까. </div> <div>본능적으로 보도블럭을 유심히 살폈다. </div> <div></div> <div><strong>땅만 보며 30분 걸었는데도 땡전도 보이지 않았다.<br /></strong></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갑자기 초린이가 언젠가 이야기해줬던 서탑교회가 기억이 났다. </div> <div>탈북자들이 거기 가서 동냥을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돈을 많이 준다는 것이었다. </div> <div>어떤 탈북자는 그 돈을 모아 여권을 사서 편안히 갔다고도 했다. </div> <div>하여 머리를 쳐들고 십자가가 솟아있는 그 하늘을 찾았다.</div> <div>인생을 통째로 맡기는 구걸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전화비 1원만 부탁할 수도 있지 않은가. </div> <div>그것은 절대 동냥으로 되지 않으리라! </div> <div></div> <div>하지만 보이는 것은 부와 번영을 다투어 자랑하는 건물들과 고객을 부르는 광고 간판들뿐이었다. </div> <div>그 속에 경회루라는 한글 간판이 보였다.<br /><br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div> <div>점심 식사 전이라 청소하는 아줌마만 있었다. </div> <div>"안녕하세요" 인사했더니 아직 식사시간 전이라고 말해 나는 얼른 서탑교회를 물었다. </div> <div>그가 그려준 약도와 설명대로 15분 쯤 걸어서 찾아갔더니 마침 한 무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div> <div></div> <div>나는 현재 크리스챤이다. </div> <div>주말마다 강남교회에서 기도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아마 예배 전이었던 것 같다.</div> <div></div> <div><br /><br />그때 그들이 흘리는 한국말이 나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div> <div>내가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내 민족, 대한민국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div> <div>패션도 남달랐다. 옷감 재질이나 디자인도 중국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div> <div>생머리 여자와 머리를 밤색으로 염색한 젊은 남자가 내 옆을 지나칠 땐 북한에서 보았던 </div> <div>"가을동화" 드라마 주인공들 같기도 했다. 뿌듯했다. </div> <div>나의 민족이 보기 좋아서 더 자랑스러웠다. </div> <div>나는 이미 그들 속에 평등하게 서있는 것 같기도 했다.<br /><br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div> <div>1원쯤은, 이런 생각으로 왔지만 1전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div> <div>마치도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가 손 내미는 것 같고 내 어머니가 구걸하는 것 같아 </div> <div>도저히 용납 되지 않았다. </div> <div>차라리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아 문을 열려는데 지키고 있던 사람이 물었다.<br /></div> <div></div> <div></div> <div><br />"어떻게 오셨어요?"</div> <div><br />"목사 좀 만나려고 합니다. 꼭 말씀 드릴게 있어서 그럽니다."<br /><br />내 억양에서 북한 사람임을 금방 안 그 사람이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죄송한데 목사님은 예배를 하셔야 합니다. </div> <div>그리고 일요일에 오세요, 그때 돈 줄게요, 지금은 안 돼요."<br /><br />난 필사적으로 반항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난 돈 구걸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돈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가려고 왔다구요."</div> <div><br />"여기 탈북자들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영사관이나 대사관으로 찾아가세요, </div> <div>탈북자들이 여기 자주 오기 때문에 공안도 근처에 많아요, 안 잡히겠으면 빨리 가세요."<br /><br />서탑교회를 빠져나와 공안을 뒤로 의식하며 걸음을 다그치는 나의 가슴 속에선 울분이 치솟았다. </div> <div>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에는 "우리 말" 이란 시가 있다. </div> <div></div> <div>남의 말에 억눌리며 살려 달라 애원하는 그 우리 말이 </div> <div>"남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국어라고 생각해보시라" 고 호소하는 시가 </div> <div>바로 그때 심경을 그대로 옮긴 시다. </div> <div>나는 정말 그때만큼 대한민국이 미워본 적 없었다. </div> <div>내 짚는 걸음마다 연길시장 끝에서 외치던 친구의 절규도 들렸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우린 한국 못 가, 너무 사정을 모르고 왔어, 한국 사람만 만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div> <div>우린 지금 꽃제비야, 이러다 잡힐 건 뻔해. 잡히면 너나 나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div> <div>3대멸족이라고! 그래서 잡힐바엔 차라리 죽으려고 샀다! 왜?"<br /><br />심장이 울렁거렸다. </div> <div>친구가 선택했던 칼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div> <div>어쩌면 내가 지금 깨닫는 것을 친구는 그때 먼저 안 것일지도 모른다. </div> <div>공원의 차디 찬 벤치에 앉아 갈 곳 없는 운명을 생각하니 만약 공안과 마주서면 어떻게 할까. </div> <div></div> <div>이런 마지막 상황을 그려보게 되었다. </div> <div>만약 칼이라도 있었으면..</div> <div></div> <div>혹시나 하는 마음에 윗 주머니를 더듬는데 무엇이 잡혔다. </div> <div>손을 넣어보니 종이었다. 꺼내어 집어 던진 그 종이를 보던 나는 벌떡 몸을 솟구쳤다.</div> <div>돈이 아닌가. 그것도 1원짜리 두 장이었다. </div> <div>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div> <div>아니 어제 밤 택시에서 내릴 때 초린이가 기어이 챙겨 넣어준 거스름돈, 그 2원이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초린아!"<br /><br />나는 그 이름을 부르며 달렸다. </div> <div>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주먹으로 씻고 나면 또 흐려져 앞을 가렸다. </div> <div>마침내 전화를 밖에 내 놓고 통화 장사를 하는 아줌마에게 나는 돈을 던지다 시피하고</div> <div>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div> <div>그다음 광용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초린의 얼굴을 생김 그대로 기억해내려 했다.<br /></div> <div></div> <div></div> <div><br />"여보세요"</div> <div><br />"나예요, 내 말 좀 들어주세요"<br /><br />광용의 목소리가 들리기 바쁘게 통화시간을 단축할 일념으로, </div> <div>그래야 초린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오직 그 한 생각으로 빠르게 말했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돈이 없어 그러니 핸드폰을 이제 곧 닫고 내가 계속 통화를 했던 집 번호, </div> <div>그 번호를 알려줘요, 내가 다시 금방 전화하겠으니깐,"</div> <div><br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요?"<br /><br />다시 설명하려고 하는데 광용의 다음 말이 내 입을 막았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친구가 죽었어요"</div> <div><br />"뭐?"</div> <div><br />"당신 친구가 죽었다구요"</div> <div><br />"무슨 말이야! 똑바로 설명해 이 자식아!"<br /><br />고함치는 내 입도, 들고 있는 수화기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진정해요. 일단 진정하고 듣기만해요, 창용아저씨가 공안에 갔을 땐 친구 사진만 보여주더래요, </div> <div>모른다고 하니깐 그냥 협박만 하다가 돌려보내더래요. </div> <div>근데 어제 친구 작은 삼촌이라는 사람한데서 전화가 왔었어요. </div> <div>친구가 당신이랑 헤어지고 나서 연길에 왔을 때 내가 말했잖아요, </div> <div>친구 작은 삼촌을 찾았다고, 그때 내 전화번호를 주었었는데 어제 밤 전화가 왔었어요, </div> <div>그래서 나갔더니 조카가 죽었다는거예요,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막 울어요. </div> <div>공안에 붙잡혀 가던 도중 오줌 싸게 해달라고 차를 세워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대요."<br /><br /><font color="#c31a1b"><strong>나는 그 뒤의 광용이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strong> </font></div> <div><font color="#c31a1b"><strong>죽었다.</strong> </font></div> <div></div> <div></div> <div>그 말은 내 친구와 이어질 수 있는 말이 아니어서 그냥 서있기만 했다. </div> <div>설사 친구의 삼촌이 한 말이라도 절대 가능할 일이 아니었다. </div> <div>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 </div> <div>다른 사람도 아닌 내 친구가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div> <div></div> <div>틀리는 말 일거야, 아니 오해일거야, 속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오열에 울지 말자. 울</div> <div>지 말자 스스로 타이르며 걸었다. </div> <div>그러다 걸음을 뚝 멈춘 그 자리서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br /><br />친구가 그렇게 사정했는데도 사주지 않았던 술 생각이 나서였다. </div> <div>잠시나마 한국행을 포기할지라도, </div> <div>그래서 잠시나마 함께 나약해질지라도 그때 술 한 병 사서 먹었을 걸, 그러면 오히려 더 분발했을 걸,,,</div> <div>공안과 북한 보위부의 끈질긴 추격에 피가 타는 삶의 순간을 단 한 번 적셔보려 했을 뿐인데도 </div> <div>그 소원마저 이르지 못한 친구의 곡절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div> <div><br /><br />그때 더 안타까웠던 것은 나에겐 돈 한 푼도 없었다. </div> <div>그래서 위안으로나마 친구의 마지막을 기원하고 두 손 모아 빌어 줄 술 한 잔도 없었다!</div> <div></div> <div>술 한 잔도 없었다.</div> <div></div> <div></div> <div>술 한 잔도 없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div> <div><br />나는 자주 지인들에게 그 친구와 탈북과정을 이야기해주군 했다. </div> <div>그러면 한결같이 글로 남기라고 했다.</div> <div>하지만 탈북 후 5년 동안 친구의 마지막 운명을 부정하고 살았던 나였다.</div> <div>혹시 글로 옮기면 지금도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친구의 탈북을 방해할 것만 같은 미련 때문이었다.<br /><br />내가 대한민국 영사관에서 2달 반을 머무르고 있던 마지막 날들에도 </div> <div>내 얼굴을 알아본 청진과 무산에서 온 탈북자가 6명이나 되었다. </div> <div>그때도 그들은 광용의 말과는 다르게 친구 소식을 전해주었다. </div> <div>우리가 탈북 후 뒤늦은 조치인지 평성과 청진 등 전국 곳곳에 친구와 내 수배사진이 걸렸었다고 했다.<br /><br />평양시 중앙기관 사람들의 탈북인데다 친구 가문이 워낙 유명하여 사람들 속에서 </div> <div>소문이 자자했다는 것이다. </div> <div>며칠 후 동인민반 회의에서 "배신자의 말로" 라는 강연을 했는데 </div> <div>그 사례들 중 우리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div> <div><br /><br />아마 그 6명도 이 수기를 보고 있다면 영사관에서 친구의 죽음을 결단코 부정하던 </div> <div>고집스런 나를 기억할 것이다. </div> <div>그런데 얼마 전 친구의 이름을 알고 있는 평양에서 온 고위탈북자가 친구의 자살을 확인해주었고, </div> <div>그 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이 수기를 쓰게 되었다.<br /><br />이 저녁에도 나는 친구가 마지막을 결심할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div> <div>어질고 착한 그가 어떻게 몸이 부서지는 그 벼랑 밑으로 뛰어내릴 용단을 했을까. </div> <div>하고 눈물 흘리게 된다. </div> <div></div> <div>북한은 중국 공안에 그를 <strong><font color="#c31a1b">살인자 </font></strong>라고 신고했다.<br /></div> <div></div> <div><br /><strong>남을 살해한 도피자는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 </strong></div> <div><strong>자유의 선택을 살인으로 규정한 김정일 독재가 살해했고. </strong></div> <div><strong>북한의 악법인 3대멸족이 살해했다. </strong></div> <div><strong>내 친구는 이렇게 나이 30에 죽었다.</strong></div> <div></div> <div><strong><font color="#c31a1b">창용아저씨가 비밀로 해달라던 그 700달러를 가슴에 품은 채, </font></strong></div> <div><strong><font color="#c31a1b">대한민국에 오지 못한 한을 심장에 묻은 채 말이다.</font></strong><br /><br /><br /></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뜬 눈으로 날을 밝힌 후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div> <div>더는 공안이 무섭지 않았다. 설사 잡힌다 해도 친구와 똑같은 선택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div> <div>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때의 충격은 나에게 삶이란 매 순간이 기적이고 </div> <div>생명의 도전임을 느끼게 했다.</div> <div></div> <div></div> <div><strong><span style="font-size: 12pt">북경으로 가자!</span></strong> </div> <div></div> <div>나는 일어섰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자살했다는 광용의 말은 친구가 그렇듯 자살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처지이리라. </div> <div>내가 빨리 가야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그를 구출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div> <div>그리고 광용의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그렇게 가는 길이 곧 친구의 한을 갚는 복수가 될 것 같았다. </div> <div>하여 나는 북경으로 가는 차비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머리를 싸쥐고 고민했다. </div> <div>도둑질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일요일을 기다려 서탑교회 앞에서 동냥하는 것은 더욱 싫었다.<br /><br />나는 이 수기를 쓰는 기회에 심양 서탑의 경회루 사장님께 사죄를 하고 싶다. </div> <div>이유야 어쨌든 나는 그 분께 사기를 쳤다. </div> <div>구차한 변명이겠지만 그때 나의 처지에선 한글 간판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div> <div>그래서 경회루로 찾아들어간 것이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사장 좀 불러주세요"<br /><br />나는 구걸이 아니라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하게 사장을 찾았다.</div> <div>잠시 후 나타난 40대 중반의 남성은 세무조사라도 나 온 중국 공무원 같은 내 폼을 살피더니 </div> <div>직원을 향해 소리쳤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여기 차 두잔!"<br /><br />직원이 차를 놓고 가기를 기다렸던 나는 입을 열었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전 북한에서 왔습니다."<br /><br />그러자 사장은 다시 소리쳤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여기 밥 가져와!"<br /><br />나는 사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요리 냄새에 창자가 끓었지만 그 말에 발끈하는 척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나는 밥 먹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씀 드릴게 있어서 왔을 뿐입니다."<br /><br />사장은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이번에도 역시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밥 취소! 가져오지 마!"<br /><br />나는 순간 오늘 굶겠구나 하고 속으로 탄식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혹시 000기업을 아십니까?"</div> <div><br />"그 기업이라면 우리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근데 무슨 일로?"</div> <div><br />"그럼 그 회사 000회장님도 아십니까?"</div> <div><br />"내가 어떻게 그런 분을 알겠소. 도체 뭘 물어 보려고?"<br /><br />나는 그 회장의 프로필을 알고 있었다. </div> <div>북한에 있을 때 남한의 유명기업들을 대북사업으로 유도하기 위해 통전부가 작성했던</div> <div>CEO들의 개인 자료들을 열람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div> <div>통전부의 그 자료들을 토대로 나는 탈북자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알 수 없을 만큼 </div> <div>000기업 회장의 친인척관계와 알려지지 않은 약간의 가족갈등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div> <div>끝으로 중국 한인회 회장과 안면 정도는 있는 것 같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div> <div>그러고 나서 또박또박 말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나는 그 분 조카입니다."<br /><br />사장은 차를 마시다 힐끔 쳐다보았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큰 아버지가 지금 미국 갔는데 저의 탈북을 알고 모레 당장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div> <div>근데 나는 친구가 북경에서 기다리는 관계로 더 못 있을 것 같습니다. </div> <div>내가 단순히 동냥이나 하러 왔으면 그 이상 요구했겠지만 난 지금 차비만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div> <div>꼭 갚겠습니다. 그 이상으로"<br /><br />아마 경회루 사장님은 속으로 코웃음 쳤을지도 모른다. </div> <div>어쩌면 나를 대단한 사기꾼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div> <div>그러나 그도 몰랐던 000기업 회장의 흥미진진한 직계 일화까지 주어 섬기는 것을 보고 </div> <div>정말 조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div> <div>아무튼 경회루 사장님은 북경까지 250원 정도 소요될 것이라며 선뜻 내주셨다. </div> <div>아직까지 중국에 가지 못한 이유로 나는 그 분께 빚을 졌다.</div> <div><br /><br />훗날 심양에 가면 꼭 사장님을 만나 뵙고 용서를 빌고 싶다. </div> <div>내 믿음으로는 웃으며 이해해주실 그런 분이시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나는 그렇게 북경으로 갈 수 있었다. </div> <div>버스에 오르기 전 터미널 근처에서 한국의 대표언론사의 신문을 샀다. </div> <div>남이 보면 한국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br /><br />나는 북경으로 가면 어떻게 대사관이나 영사관으로 들어갈지 고민해보았다. </div> <div>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div> <div>심양도 서탑을 벗어나면 힘든데 북경은 더 할 것이다. </div> <div>아니 북경도 서탑처럼 한국거리가 있을 것이다.</div> <div>그 쪽부터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하며 신문을 펼쳤다.</div> <div>가보고 싶은 한국이어서 점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게 됐다. </div> <div></div> <div>그런데 한 장 두 장 펼치던 나의 눈에 갑자기 불꽃이 튀었다. </div> <div>한 쪽 작은 구석에 그 신문사 전화번호가 있는 것이 아닌가. </div> <div>나는 생각을 모으기 위해 눈을 감았다.</div> <div></div> <div><br /><br />북한 노동신문 같은 경우 중국 주재 특파기자 세 명 중 두 명은 단순히 기자가 아니라 </div> <div>대남공작부서와 국가보위부의 스파이다. </div> <div>한국은 사기업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특파기자의 업무 특성상 </div> <div>한국 국정원과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br /><br />바로 이 것이다! 특파기자를 찾자! </div> <div>나는 무릎을 쳤다. </div> <div></div> <div>버스에 내리기 바쁘게 전화박스를 찾았다. </div> <div>신문에 적혀있는 번호를 돌리는 동안 한국 영사관처럼 거절하면 어쩌나 싶어 두근거렸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여보세요"<br /><br />아가씨 목소리였다.<br /></div> <div></div> <div><br />"안녕하십니까. 제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div> <div>저는 북한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다 며칠 전에 탈출한 사람입니다. </div> <div>저는 한국행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네 신문사에 특종을 제보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br /></div> <div>"잠시만요"<br /><br />아가씨의 목소리가 나보다 더 다급해보였다. </div> <div>잠시 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여보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자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줄 수 있습니까?"</div> <div><br />"나는 전화를 오래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쫒기는 몸입니다. </div> <div>그러니 당신네 신문사 북경 주재 특파기자 전화번호를 알려주십시오, </div> <div>도청 될 우려가 있으니 반드시 그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십시오."</div> <div><br />"네 네, 알려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알려드리겠습니다."<br /><br />나는 그가 알려준 번호를 즉석에서 다시 돌렸다. </div> <div>훗날 특파기자는 나와 만난 자리에서 자기 핸드폰으로 탈북자가 전화 올지는 </div> <div>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div> <div>나는 그 쪽 본사는 왜 그 정도로 멍청하냐고 웃으며 농담했지만 </div> <div><strong>그때의 나에겐 그 전화번호가 운명적인 행운이었다.<br /></strong></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여보세요"<br /><br />특파기자 핸드폰은 세 번째 시도 끝에야 연결됐다. </div> <div>나는 그 동안에 내가 한국 영사관과 통화할 때 어떤 점이 실책이었는가를 </div> <div>생각해 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div> <div>단순히 탈북자의 한국행 소원보다도 내가 누구이고, 어떤 정보가 있으며, </div> <div>그래서 한국에 어떻게 필요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상대방에게 정확히 인식시키는 것이 </div> <div>중요하다고 판단했다.</div> <div></div> <div><strong><span style="font-size: 12pt">그것도 단 한번 주어진 통화 기회에! 가장 분명하게!</span><br /></strong></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저는 통전부에서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div> <div></div> <div>이 말로부터 시작한 나는 논리정연하게 탈북동기와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div> <div>그리고 현 처지를 이야기했다.</div> <div>마지막엔 국정원과 연결시켜줄 것을 희망한다는 말로 끝맺었다.</div> <div>그 분은 오랜 특파기자 경험이 있는지 아주 냉철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제가 국정원을 모르죠, 알 수도 없죠. </div> <div>하지만 내가 아는 다른 사람에게 말해보겠으니 십분 후에 다시 전화 걸어보십시오"<br /><br />나는 정확히 십분 후에 수화기를 들었다. </div> <div>그러자 다른 번호를 알려주며 지금 그 분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해보라는 것이었다. </div> <div>나는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하면서도 혹시 날 피하려고 이러는 것이 아닌가 싶어 </div> <div>차마 전화를 놓을 수가 없었다. </div> <div>그런데 그가 알려준 다른 번호는 신호음이 한 번 울리기 바쁘게 반색했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여보세요"</div> <div><br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에서..."</div> <div><br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정말 만나고 싶었습니다."<br /><br />그 사람은 내 말을 서둘러 막으며 이야기했는데 그 내용들이 날 놀라게 했다. </div> <div>그는 내가 친구와 함께 언제 탈북했으며 살인자로 수배되고 있다는 것, </div> <div>공안은 물론 중국 국가안전국에서도 쫒고 있다는 것과 북한 대사관으로 </div> <div>어제 북한 국가보위부가 나왔다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div> <div>그러면서 물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지금 친구랑 같이 있지요?"<br /><br />친구와 헤어졌다는 나의 대답에 침묵을 지키던 그는 다시 물었다.</div> <div></div> <div></div> <div><br /><br />"그럼 당신 신분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신분증이 있지요?"</div> <div><br />"네, 그건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갖고 있습니다."</div> <div><br />"알았습니다. 당신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div> <div>친구는 훗날 찾기로 하고, 그러니 그 자리에서 절대 떠나지 마세요. </div> <div>우리가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br /><br />그 다음 과정부터는 나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div> <div>내가 더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고마운 손길들의 보호로 안정을 보장 받은 </div> <div>그 나날에도 나는 폭풍의 공포에서 고요의 공포에 떨었다는 것이다.<br /><br />내가 미처 몰랐던 중국 국가안전국의 추격과 나를 체포하기 위해 별도로 북경까지 파견된 </div> <div>국가보위부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div> <div>실제로 탈북 전 업무 차로 북경 주재 북한 대사관에 들렸던 평양출신 한 고위 탈북자는 </div> <div>내 사진을 들고 온 국가보위부 사람들과 대화 한 적도 있었다. </div> <div></div> <div>그 자리서 북한 보위부 사람들은 한 놈은 잡았으니 나만 무조건 잡아 들어가면 된다고 했고, </div> <div>북한 대사는 이 넓은 중국 땅에서 어떻게 찾냐고 푸념했다고 한다. </div> <div>그는 얼마 전에 호혜일이란 이름으로 "북한요지경" 책을 냈다.<br /></div> <div></div> <div><br />그가 내 손을 잡고 전해주던 그 끔찍한 말들이 서울 생활 5년 동안 꿈에서 자꾸 들리기도 했다.</div> <div>나는 북경 주재 영사관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혹시나 이 차가 북한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div> <div>부들부들 떨었다. </div> <div></div> <div>얼마 후 양 옆에 바투 붙어 앉았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말했다.</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장선생님, 이젠 웃으세요,</div> <div>머리를 들고 저기를 보세요, 태극기예요. 대한민국 국기예요"<br /><br />나는 그들이 가리키는 손끝을 바라보았다. </div> <div>거기엔 정말 파란 하늘을 뚫고 일어 선 하얀 태극기가 있었다.</div> <div>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데 울음부터 쏟아져 나왔다.<br /><br />진정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div> <div>그때는 내가 참아야 될 눈물이 아니었다. </div> <div>눈물이 참아주고 다독여 주어야 할 나였다.</div> <div><br /><br />내가 믿어지지 않아서 울었고 함께 못 온 친구 얼굴이 떠올라서 또 울었다. </div> <div>그때 천만마디 말로도 다 표현 못할 나의 격정을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에 담았다. </div> <div></div> <div><strong>태극기를 보았을 때, 그 깃발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 땅을 보지도 못했지만, </strong></div> <div><strong>자유와 민주도 몰랐지만 그 밑에 온 몸이 무너져 </strong><strong><span style="font-size: 12pt"><font color="#c31a1b">대한민국 만세 </font></span></strong><strong>를 외쳤다고,</strong><br /><br /><br /></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br />탈북스토리 연재 후 많은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div> <div>그런 엄청난 고생과 위험을 겪었을지 몰랐다며 어떤 분은 통화 과정에 울기도 하셨다. </div> <div>그 분들에게 나는 2만 명의 탈북자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씀 드렸다. </div> <div>아니 어쩌면 난 남들에 비해 덜 고생하며 탈북한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div> <div></div> <div>북한에서부터 갖고 나온 달러에 기댈 수라도 있었고, 창용아저씨, 신광용씨, </div> <div>왕초린과 같은 평생 못 잊을 은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br /><br /><br />나의 굶주림이란 거지처럼 거리에서 동냥을 한 번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div> <div>1월의 산 속에서 추위에 떤 날도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는다. </div> <div>그리고 대한민국 영사관에 들어갈 때까지 중국 땅에서의 방황도 남들처럼 수년세월이 아니라 </div> <div>2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br /><br />산속에서 몇 년을 토굴생활 하다가 온 탈북자들, </div> <div>공안에 잡혀 북송됐다 살아 온 그 기막힌 운명들을 글로 옮겼다면 아마 나의 탈출기는 </div> <div>배낭여행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br /><br />그들의 곡절 많은 탈북여정을 어떻게 다 그려낼 수 있겠는가.</div> <div>탈북자동지회 홍순경회장님은 태국에서 북한 보위부에 납치되어 실려 가는 과정에 불행 중 </div> <div>다행의 차사고로 현지경찰에 망명을 요구할 수 있었다. </div> <div>자유북한방송국 김성민 국장은 쇠고랑을 찬 채로 달리는 북한열차에서 뛰어내려 </div> <div>자유의 소원을 두 손에 꼭 모아 쥐고 무릎걸음으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기어서 넘었다. </div> <div></div> <div>우리의 탈북은 한 목숨만으로도 부족한 것이기도 하였다. </div> <div>탈북자구출센터 백명학 소장은 세 번이나 북송됐다 세 번 탈출하여 대한민국 품에 안길 수 있었다.<br /><br />조선일보 강철환기자는 노예 같은 북한공민의 권리조차 없었기에</div> <div>인권을 찾아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다.<br /></div> <div></div> <div></div> <div><br />이렇게 온 우리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탈북자라고 한다. </div> <div>그러나 탈북자란 그 이름마저 갖지 못한 채 이국땅을 방황하다 숨진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div> <div>메콩강의 급류 속에서 튜브 하나에 가족의 운명을 실었다가 아이만 살려 보낸 한 부부의 비극도 있고, </div> <div>영사관 진입 도중 공안들이 달려들어 눈앞에서 생이별한 눈물의 母女(모녀)도 있다.<br /></div> <div><br /><font color="#c31a1b"><strong><span style="font-size: 12pt">탈북!</span></strong> </font></div> <div></div> <div><strong>그 말은 이렇듯 북한체제의 탈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strong></div> <div><strong>결심할 때 이미 생명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목숨의 탈출이기도 하였다.<br /></strong></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하기에 인류가 말할 수 있는 모든 비극이 가슴에 응축되어 피멍든 그들, </div> <div>각자마다 최소한 이별의 아픔이라도 부여안고 모대기는 그들이 바로 우리 2만 명의 탈북자들이다.<br /><br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부르짖고 싶다. </div> <div>당신들에겐 그냥 태어난 대한민국이지만 우리 탈북자들에겐 이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찾아오지 않으면 </div> <div>안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div> <div>정녕 조국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죽어서도 묻히고 싶은 곳이라는 것을!<br /></div> <div></div> <div></div> <div><br />나는 또한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에게 엎드려 큰 절을 드리고 싶다.<br />내 조국 반쪽이라도 이렇듯 자유의 땅! 민주의 땅! 선진화의 땅으로 만들어주셨기에 </div> <div>우리는 우리의 생명도 사람의 것이라고 기어이 살아서 가리라! 외치며 사생결단 찾아 올 수 있었다.<br /><br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의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br />대한민국 흙 한줌도 보듬고 싶을 만큼 이 땅이 고마워서 울고, </div> <div>그래서 북한에 두고 온 그리운 얼굴들 때문에 또 운다. </div> <div>이별은 떠나는 마음보다 보내는 마음이 더 아프다 했지만 살아도 삶이 없던 그 땅에선 </div> <div>이별의 권리마저 없었기에 그 아픔마저 주지 못한 나는 이별의 죄인이다.<br /></div> <div><br />어디 나뿐이겠는가. </div> <div>우리 탈북자들 모두가 아직도 탈북하지 못한 가슴 반쪽을 부여잡고 </div> <div>좋은 음식이면 좋은 음식에 목이 메어 울고, 설날이면 또 가는 한 세월에 울고 있다. </div> <div>분단의 철책선이 땅에만 아니라 그렇듯 생살까지 찢으며 가로 지른 그 수난자들이 </div> <div><strong>바로 우리 탈북자들이다.<br /></strong><br />이 수기를 쓰는 며칠 동안에도 나는 5년 동안 겨우 잠재웠던 악몽에 또 다시 시달려야 했다. </div> <div>두만강을 넘다가 총에 맞기도 했고, 창용아저씨 장모집 옆 빈농가에 숨어있다 불쑥 나타났던 </div> <div>공안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div> <div>친구가 공안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날 살리려고 벼랑에서 뛰어내린 꿈을 꾼 날에는 </div> <div>한 밤중에 일어나 앉아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div> <div><br /><br />북한 땅에서 어떻게 살았던가 싶을 만큼 기억만으로도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div> <div>악몽만으로도 숨 가쁜 생사에 가슴조려야 하는 탈북자가 어디 나뿐이랴.<br /><br />그렇다. 우리 탈북자들은 결코 북한체제를 탈출만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br />우리의 탈북은 땅에 묻은 사람들의 복수였으며 독재 권력과 인간과의 치열한 </div> <div>전쟁이었으며 살아서 온 인간의 승리였다.</div> <div></div> <div><br /><br />나는 이 수기를 마치며 소원하건대 심양의 왕초린을 찾고 싶다. </div> <div>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 </div> <div>지금쯤 대상, 아니 남편이 되었을 그 친구와 결혼도 하고 어느덧 애들도 가졌을 것이다. </div> <div></div> <div>어느 날 불쑥 연락이 와서 친구처럼, </div> <div>아니 친척처럼 소식을 주고받고 내왕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공상을 해 본다.<br /><br />영사관에 들어가면 신광용에게 전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div> <div>그러면 초린이에게 내 소식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의 보호를 위해 허락해주지 않았다. </div> <div>며칠 동안 졸라 마침내 나대신 다른 분이 연락을 넣어 봤지만 그때 신광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div> <div></div> <div>그 후에 주민등록증을 받아 대한민국 국민이 된 날 창용아저씨를 통해 </div> <div>바뀐 광용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지금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div> <div>안타깝게도 광용은 초린이 삼촌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div> <div>현재 광용은 탈북자인 청진여자와 함께 노원구에서 살고 있다. 예쁜 엄마를 닮은 아들도 있다.<br /></div> <div><br />창용아저씨는 우리가 준 700달러로 견인기 대신 소 한 마리와 가전제품을 샀다고 했다. </div> <div>나는 그들에게, 아니 조선족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div> <div>솔직히 그들이 없다면 오늘날 2만 명의 탈북자도 없다고 본다. </div> <div></div> <div>비록 사회주의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민족적 동정심과 인간의 양심으로 </div> <div>김정일 정권에 침을 뱉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탈북자들에겐 숨어있을 은신처와 </div> <div>얻어먹을 만두가 있고 탈출의 방법도 있었다. </div> <div>그러고 보면 김정일은 민족의 포위망에 든 셈이다.<br /><br />분단의 38선 너머에는 자유민주주의 국민이 있고 내부에는 주민들의 분노가 있다. </div> <div>북쪽에는 김정일을 민족의 수치로 생각하는 우리 조선족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탈출을 도와주고 있다. </div> <div>그들은 중국에선 소수민족일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는 민족과 영토의 유구한 역사와 </div> <div>그 가치의 대를 잇고 증명하는 大민족이라고 본다.</div> <div></div> <div><br /><br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탈북자들이 그들에게 감사하고 단체 차원에서 </div> <div>연대활동도 벌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div> <div>더 많은 탈북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절실히 필요하고 </div> <div>그들이 우리의 예의와 도리에 감동하여 탈북자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해야 한다. </div> <div>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조선족 사람들이 親한정서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div> <div>김정일 정권을 더욱 고립시켜야 한다. </div> <div>또 그것이 북한체제 붕괴에 대비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며 궁극적인 통일의 위업이라고 본다.</div> <div><br /><br />나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이 수기를 볼 북한 통전부 친구들에게</div> <div>나의 오늘을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div> <div>나는 밥 한 줌에 생명을 느끼고 산 속에서 추위에 떨며 날을 새던 도피자가 더는 아니다.</div> <div></div> <div>못 알아들을 중국말에 멸시받고, </div> <div>개처럼 쫓기고 밥 한줌 값도 안 되는 동전을 소원하던 김정일정권의 주민이 아니다.<br /><br />나는 현재 국책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다. </div> <div>대학 강의도 나가고 내 손으로 쓴 책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와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를 </div> <div>누구의 간섭이 없이 출판할 수도 있었다. </div> <div></div> <div>한 달 전엔 서울 친구들도 부러워 할 새 아파트도 가졌다. </div> <div>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고마운 어르신들의 존함을 여기에 적는다면 </div> <div>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div> <div>나는 이렇듯 충성으로 바치는 삶이 아니라 성취로 가지는 삶을 살고 있으며 </div> <div>민주적인 선거권으로 대통령을 결정할 수도 있다. </div> <div>나는 내 목숨이 소중하고 내 삶이 이렇듯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처음 느꼈다.<br /><br />김정일은 자기에겐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다. </div> <div>그 불가능이란 정권도 총에서 나온다고 말할 줄 아는 독재자의 파렴치하고도 타락한 가능이다. </div> <div>그러나 나에겐 인간으로서의 불가능이란 없다. </div> <div>나는 이미 저 북한에서, 그리고 한국으로 찾아오는 험난한 길에서 극도의 공포도 체험해 보았고, </div> <div>외로워 보았고, 슬퍼 보았고, 친구를 잃은 상실의 아픔도 느꼈다. </div> <div></div> <div>나에겐 이젠 더 이상의 아픔이란 있을 수가 없다. </div> <div>이제 또 어려운 일에 부닥칠지라도 지금껏 겪었던 그 모든 좌절과 비극에 절대 비할 수는 없다. </div> <div>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며 백번이라도 다시 일어날 용기가 혈맥에 가득 차 넘친다. </div> <div>대한민국에서 나에겐 행복할 권리와 성공의 의무만 있으며 또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 앞날만 남았다. </div> <div>그 모든 것을 바칠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 새 가정도 예쁘게 만들기도 하리라. </div> <div></div> <div><strong>이것이 바로 자기에겐 불가능이란 없다는 독재자 김정일과 전혀 다른,</strong></div> <div><strong>나의 무궁무진한 인간의 가능이다.</strong><br /></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 />그동안 저의 글을 보아주신 여러분께,</div> <div>그리고 저의 탈북스토리를 특별히 배너로 만들어 소개해준 뉴데일리, 조갑제닷컴에 </div> <div>진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br /></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 align="center"><font color="#000000">출처= 작성자삥신새끼 님</font></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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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3 13:27:51  110.70.***.228  깜냥이집사  454013
    [2] 2013/08/13 17:10:35  138.108.***.10  쌀아쌀아  185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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