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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56625
    작성자 : 시우쇠
    추천 : 10
    조회수 : 536
    IP : 165.194.***.77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3/06/22 14:16:13
    http://todayhumor.com/?lovestory_56625 모바일
    엄마 -김어준-
    엄마

    글 : 김어준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총수)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다른 집에선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해서 먹는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계란도 딱 세 개만 프라이되어 나온 것이다.

    순간 ‘장난하나?’ 생각했다.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옆 친구에게 한마디 따지려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난 다른 집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다.

    우리엄마는 손이 그렇게 컸다.

    과자는 봉지가 아니라 박스 째로 사왔고, 콜라는 병콜라가 아니라 PET병 박스였으며,

    삼계탕을 했다 하면 노란 찜통-그렇다, 냄비가 아니라 찜통이다-에

    한꺼번에 닭을 열댓 마리는 삶아 식구들이 먹고,

    친구들까지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을 도는 방범들까지 불러 먹이곤 했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완전 재배치되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그 즉시 결정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잦으니 작은 책상이나 액자 따위를 살짝 옮겼나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할 때나 옮기는 장롱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끌려 다녔으니까.

    오줌이 마려워 부스스 일어났다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혼자 옮기고 있는

    ‘잠옷바람의 아줌마가 연출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퍼포먼스’의 기괴함은

    목격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벽 세 시 느닷없이 깨어진 후 팬티만 입은 채 장롱 한 면을 보듬어 안고

    한 달 전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로 장롱을 네 번째 원상복귀 시킬 때 겪는

    반수면 상태에서의 황당함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난생 처음 화장실에 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들어온 것도

    우리엄마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낼 파워풀한 액션이었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여 화장실로 도피한 아들,

    그 아들에게 할 말이 있자엄마는 문짝을 부순 것이다.

    문짝 부수는 아버지는 봤어도 엄마가 그랬다는 말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듣지 못했다.




    물리적 힘만이 아니었다.

    한쪽 집안이 기운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친척 어른들을 향해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을 박으면 천벌을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며 일어나던엄마, 그렇게 언제나 당차고 씩씩하고 강철 같던 엄마가,


    보육원에서 다섯 살짜리 소란이를 데려와 결혼까지 시킬 거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담당 의사는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지만 엄마는 그나마 반신마비에 언어장애자가 됐다.



    아들은 이제 삼십 중반을 넘어섰고 마주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만큼 철도 들었는데,

    정작 엄마는 말을 못한다.

    단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짝을 뜯고 들어와서는 다음 번에 잘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쳤던엄마,


    사실은 바로 그런 엄마 덕분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롭게 사는

    오늘의 내가 있음을 문득 문득 깨닫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 엄마는 말을 못한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엄마의 휠체어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사신 거냐?' 고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이 글은 월간 샘터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하는 나눔의 글잇기 연작으로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글쓴이 김어준 님은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1% 나눔 캠페인에 참여해 이 글의 원고료 전액을 아름다운재단 공익출판기금에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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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장 아래 약졸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훌륭한 어머니에게서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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