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손날, 새끼손가락 아랫부분.
흔히 결혼선이라 불리는 손금.

당신이 나를 떠나가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서 손금에 관련한 글을 읽었던 적이 있어요.

얼마전에 사주를 봤어요.
저는 여자를 잘 만나야 인생이 성공하는 쪽이래요.

나이는 동갑. 같은 학교. 같은 학과.
너무나도 예뻤던 당신에게.

오늘 어쩌다보니 당신 생각이 났어요.
선배들이 묻더라구요. 어떻게 사귀게 되었냐구요.

당신을 생각하면 언제나 당신의 눈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남대문시장에서, 뭐 바뀐 것 없냐고, 렌즈 하나 바꿔놓고 맞춰보라고 했었던 당신.

힌트를 준답시고 내 얼굴에 자기 얼굴 가까이 대면서 맞춰보라고.
그 때 당신이 날 바라보던 그 눈빛만 항상 먼저 기억이 나요.

나는 당신이 왜 좋았을까요.



6월 4일, 그래 지방 선거가 있었던 날.

너는 아주 뜬금없이 날 학교로 불러냈었지.
쉬는 날이었지만, 난 너가 부르던 말에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길을 나섰어.

나도 모르겠다. 너에 대한 감정이 확고했던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도 내 감정에 확신이 들지도 않았던 시기였는데.

누구를 따로 부른 것도 아니고 넌 나만 불러냈었지.

그날따라 넌 유난히 술을 많이 마시더라.
내가 말려도 넌 꿋꿋이 술을 시켰어.

내가 집에 갈 마지막 막차가 끊길 때까지 넌 나보고 가지 말라고 했었지.

그래, 어쩌면 그 말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나랑 함께 있어달라는 그 말.

그 눈빛.






그때까지도 난 너에 대한 마음이 확고하지 않았어.

1학년때부터, 남중남고 출신인 나에게, 여자애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그 때

넌 나에게 "너 완전 막장이구나?!"라면서 친한 듯 말 걸어주던 너.

전역하고 나서 너를 다시 보았을 땐, 이상하다. 너무나도 예뻐졌었어.

난 보자마자 네게 "너 왜 이렇게 예뻐졌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 했었지.

1학년 때 너를 보며, 1학년 때 내가 너와 사귀게 되었을 줄 알았다면
그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넌 항상 특별했었어, 그러고보면.
나 같은 머저리에게 친한 듯 말 걸어준 것도 너무나도 신기했고
나 같은 등신과 끝까지 관계를 이어 나갔다는 것도 신기했었어.

어쩌면 나는, 그 때부터 너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 그 날. 너와 처음으로 술 자리를 같이 했던 그 날.
더 이상 술은 그만 먹자고 널 막고, 네 손목을 그리고 네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까지 갔던 그 날

가슴이 너무 아팠어.

그러고보면 넌 나의 이상형이었거든.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고
무엇을 하든 하고 싶은 것이 확고했고
강했고
담배도 피워물 줄 알았고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네 손목을, 그리고 은근슬쩍 네 손을 잡았을 때.

그리고 네가, 술 때문에 힘들어하며 나한테 기댔던 그 때.

나도 모르게 너에게, 사귀자고 용기내어 이야기 했었지.

나도 술을 마셨던지라, 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기도 했어.




그런데 넌 받아주었지.













너한테 미안해.

사귈 때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게 너무 많이 떠올라.

너만 생각하면

언제나 창피하고

미안해.









날 떠나가서 다행이야.

그리고

나 같은 놈이랑 사귀어 주었어서

고마워.

난 네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인간 쓰레기처럼 지내고 있었을 거야.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가르쳐줘서 고마워.








이제 다시는 널 볼 수 없겠지만
네가 나를 떠나갔으니 더 이상 날 볼 일 없겠지만

어떤 인생을 살든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인 것을 떠나서

넌, 앞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잊지 못할 은인이나 다름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