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첫 즉흥여행을 마치고 온통 머릿속은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div> <div>내게 떠난다는 의미는 집밖을 벗어나는 것이었기에</div> <div>기한이 얼마나 걸리든, 장소가 동네 놀이터든 어쨌거나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div> <div> </div> <div>제대로 콧바람이 들었던 것이다.</div> <div> </div> <div>어디든 상관없었지만,</div> <div>첫번째 여행으로 자신감이 붙었기에 뭔가 대단한 여행을 하고싶었다.</div> <div>그때만해도 내 생각에 대단한 여행은 집에서 최대한 멀리가는 것이었다.</div> <div> </div> <div>어디로 갈까 고민한 끝에 부산으로 행선지를 정했다.</div> <div> </div> <div>늦은 밤,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div> <div>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가 가까워서였다.</div> <div>당시 20대 초중반을 달리던 내게 할증붙은 택시를 타고 먼 거리를 가기에는 부담스러웠다.</div> <div> </div> <div>그냥 하염없이 걸었다.</div> <div>평소 엄청난 길치였지만, 어차피 처음 오는 길.</div> <div>어디로 향하면 어떠랴라는 마음으로 무식하게 우직하게 차가 씽씽 오가는 새벽길 직진을 감행했다.</div> <div> </div> <div>얼마나 걸었을까.</div> <div>하늘이 검붉은 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주변 가로등과 새벽 햇살이 섞여 오묘한 빛을 만들었다.</div> <div> </div> <div>이쯤이면 될까?</div> <div>두시간이면 많이 걸었다.</div> <div>그래봐야 내 걸음걸이로 3km 남짓 걸었을테지만...</div> <div> </div> <div>택시를 잡았다.</div> <div>"안녕하세요! 사장님 해운대요!"</div> <div> </div> <div>설렘이 뭍어나는 내 인사에도 택시 사장님은 아무 대꾸없이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엑셀을 밟았다.</div> <div>오히려 감사했다.</div> <div>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엷게 드리워진 새벽공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div> <div> </div> <div>드디어 도착한 해운대.</div> <div>고요했고 싸늘했다.</div> <div> </div> <div>바닷가를 먼저 둘러보기 전에 비워진 뱃속부터 채워야겠다는 생각에</div> <div>이리저리 꼬불꼬불 내 멋대로 주변을 돌아다녔다.</div> <div>그러다 도착한 어느 골목길.</div> <div>소고기 국밥집이 늘어서 있었다.</div> <div> </div> <div>이른 아침이어서 손님이 없어 그랬는지</div> <div>원래 분위기가 그런건지 모르겠지만</div> <div>앞에 나와계신 아주머니들께서는 저마다</div> <div> </div> <div>"소세지 공짜~ 무한리필이야"</div> <div>"요구르트도 줘여~~"</div> <div>"이리와 이리!"</div> <div>"여기가 젤 맛있는 집이야."</div> <div> </div> <div>한마디씩 외쳤다.</div> <div> </div> <div>고민할 필요도 없었다.</div> <div>다리도 아팠고 배도 고팠기에</div> <div>내 위치에서 동선이 가장 짧은 집에 들어섰다.</div> <div> </div> <div>내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div> <div>그 당시 소고기국밥이 3000원.</div> <div>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기에 국밥 한 그릇과 모닝 소주 한병을 주문했다.</div> <div> </div> <div>국밥 국물보다 밀가루맛나는 싸구려 소세지가 식욕을 자극했다.</div> <div> </div> <div>반병남짓 비워내고 요구르트 하나 뒤로물어 잘근잘근 뜯으며 다시 해운대로 향했다.</div> <div>쥐파먹듯 뚫은 쬐마난 구명에서 감질맛나게 꿀렁대며 흐르는 요구르트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맛본 값비싼 파르페보다 달콤했다.</div> <div> </div> <div>고급 호텔과 아파트를 등지고 늘어선 황량한 백사장이 눈에 들어왔다.</div> <div>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힌 해변을 걷다 이내 인도와 이어진 계단에 앉아 숨을 돌렸다.</div> <div> </div> <div>갈매기가 서너마리쯤 띄엄띄엄 하늘을 날아다녔고,</div> <div>멀리 배 한척이 보였다.</div> <div>흐린날씨 탓에 수평선은 바다와 뿌연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div> <div> </div> <div>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div> <div>잠을 깨기 위해 근처 커피숖으로 향했다.</div> <div>그때만해도 내 몸이 카페인에 거부감이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던 터라</div> <div>따뜻한 라떼 한잔을 시켜 다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다.</div> <div> </div> <div>파도는 고요했고, 내 마음도 고요해졌다.</div> <div> </div> <div>졸음이 쏟아져 근처 숙박집을 어슬렁 거렸다.</div> <div>한눈에도 좋아보이는 호텔이나, 층이 높은 고급 건물을 피해 구석으로 들어갔다.</div> <div>약간 허름해 보이는 건물 앞에는 입간판으로 '사우나. 목욕' 이라고 적혀있었다.</div> <div> </div> <div>취!향!저!격!</div> <div> </div> <div>망설일틈 없이 들어가 '한명이요~!'를 외치고 자리를 잡았다.</div> <div> </div> <div>뜨끈한 방 공기에 이내 잠이 들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오후 2시.</div> <div>점심때도 지났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어정쩡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div> <div> </div> <div>별로 초조하진 않았다.</div> <div>오늘 못보면 내일이 있고,</div> <div>내일도 안되면 모레가 있기 때문이다.</div> <div> </div> <div>대충 옷을 걸쳐입고 어슬렁어기적 바닷가로 향했다.</div> <div> </div> <div>아침과는 다른 풍광이었다.</div> <div>손깍지 낀 연인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고,</div> <div>삼삼오오 모인 고딩들이 시끌벅쩍 수다를 떨며,</div> <div>어린 아이 손을 붙잡은 엄마아빠가 해운대 백사장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div> <div> </div> <div>약간 소외감이 들었지만, </div> <div>어때?</div> <div>나도 그들 중 한명일뿐인데.</div> <div> </div> <div>근처 편의점에서 사리곰탕에 뜨거운 물을 부어 아무데나 걸터 앉았다.</div> <div>볶음 김치는 없었지만 그대로 훌륭했다.</div> <div>뜨신 국물에 속을 풀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비린내 진동하는 자갈치 시장은 마치 티비에서 보던 오페라 하우스 같았다.</div> <div>이유없이 신이나서 아무 가게 앞에 섰다.</div> <div>젋은 사장님이었다.</div> <div> </div> <div>"뭐 드릴까요? 광어 얼마 우럭 얼마 세꼬시는 얼마. 도미가 좋긴 한데. 멍게 개불 서비스 드려요."</div> <div> </div> <div>"광어 1kg에 얼마에요?"</div> <div> </div> <div>"원래 얼만데 얼마에 드릴게요. 먹는데는 2층으로 올라가심 됩니다. 멀리서 오신거 같은 데 서비스로 멍게 두개!"</div> <div> </div> <div>젊은 사장님이 안내하는 식당으로 올라갔다.</div> <div>운좋게도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div> <div>상추와 깻잎 꾸러미를 안주삼아 소주 두어잔을 비워내자 광어와 멍게가 도착했다.</div> <div> </div> <div>이제부터 시작이다.</div> <div> </div> <div>수산시장 짠내에 취하고 쫀득한 광어에 취하고 좋은데이에 신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div> <div> </div> <div>우럭매운탕 서비스에 감동의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린 뒤,</div> <div>다시 해운대로 향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벤치에 앉아 노을이 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봤다.</div> <div> </div> <div>내 인생이 하루라면 아직 나는 한낮일텐데, 왜 내 앞날은 컴컴한 밤 같은가.</div> <div>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상에 젖은 채 한참이나 바다를 바라봤다.</div> <div> </div> <div>좀전에 사리곰탕을 샀던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캔을 샀다.</div> <div>마른 오징어도 빼놓을 수 없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숙소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았다.</div> <div>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소름이 돋았다.</div> <div>이게 '어으~~시원하다'는 거구나......?!</div> <div> </div> <div>우연찮게 인생의 참맛을 느끼며 하루를 마감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리고 다음날.</div> <div>달맞이 고개에 올라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다 부산역으로 향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두번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div> <div>그제와, 또 어제와 다름 없었다.</div> <div> </div> <div>여행이 뭔가 나를 바꿔놓지는 못했다.</div> <div>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div> <div> </div> <div>이렇게 몇번이고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다보면 나는 조금쯤 커있을까?</div> <div> </div> <div>이제는 세번째인지도 네번째인지도 중요하지 않은,</div> <div>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며 </div> <div>그렇게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