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일이나 지났군요.
선한 웃음뒤로 보이던 쓸쓸하고 가엾기만 한 영혼을 가졌던 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측은해 하던 슬픈 내 뒷모습이
수채화처럼 그려졌던 눈오던 그 날, 바로 그 날 밤이 하얗게 밝아버린지 말이에요.....
저는 학생입니다. 정확히 편입을 준비하는 가장 불쌍한 학생중 하나이죠.
학원에서 더이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선생들 밖에 없을지도 모를 나이를 가진 슬픈 학생입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선택했던 편입의 길은, 이제 막 시작하긴 했지만
여전히 어둡고 멀기만 합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는 일은,
정말 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그런 기분이죠.
저는 하루 하루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왤까요, 비참하다고하면 비참한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제가 살 수 있는 것은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세상에 나쁜놈들만 있는게 아니다'
'머리 나쁘고 공부는 못해도 씹탱, 그래도 착한사람이 되자'
라는 평소 제가 가지고 있는 그 긍정적인 사고들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꽉 막혀 보일 정도로 정말 한 없이 순수해서 너무나 착한, 만화에 나오는 착한 주인공
같은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에 더 가깝지요.
하지만 내가 참을 수 있고,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그게 '착한 일' 이라면
좀 좆같더라도 해 버리자는 생각으로 살 고 있습니다.
아니, 이젠 바꾸어야 하겠군요.
그런 생각으로 살 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5일 전, 진눈깨비가 추척추척 내리던 그 날, 전 노량진 역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환승을위해서 긴 계단을 지나 저기 지하철역 입구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죠.
그 때 제 어깨를 두드리는 손 하나,
슬쩍 뒤를 돌아보니 어떤 아저씨 한분이 하얀 입김을 애써 뱉으며 서 계시더군요.
그러면서 본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 합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이제 집엘 가야 되는데 손가방을 잃어버리셨다고 입을 여십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요.
게으른 사람들, 이런식으로 살아가시는 분들... 서울에 참 많으시지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듣고 있었습니다.
손가방 안에 지갑하고 휴대폰도 다 들어 있는데... 막차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집엘 못간다고,
사람들 잡고 사정을 해보지만 자기더러 욕만 하더라며 눈물을 글썽이십니다.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지만 겉으로도 멀쩡하게 차려 입으셨습니다.
희생없이 편하게 돈 벌며 살아가는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게 됐지요.
그리고 구구절절 서울 사람들은 정이 너무 없다느니 하시면서 섭섭해 하시며
사투리라서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어서 미안한데, 정말 내일 꼭 돈을 부쳐 주겠으니
차비를 좀 줄 수 있냐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 그냥 다른 사람들 처럼 지나쳐 버릴걸 하고 후회를 하며 생각을 해보니
이분, 거짓말 하시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지나가 버리고, 결국 그 분 차비도 못 빌린채 발만 구르시며
어쩌지도 못하고 추운날 밖에 계실 게 떠오르더군요.
결국 전 오늘도 확인했던 통장 잔고를 떠올릴 수 밖에 없더군요.
월세, 학원비, 차비, 세금 휴대폰 비.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돈들 제외하고
한달에 제 용돈면목으로 쓸 수 있는 돈, 약 10만원.
아무리 아껴쓰고 발광을 해봐도 늘 부족한 돈이라 정말 갈등이 되더군요.
이대로 미안하며 바로 저 앞에 있는,
곧 따뜻하게 내 몸 뉘일 수 있는 집으로 연결 해 주는 지하철 입구로 가버릴 것인가,
아니면 한 5만원 쥐어 드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가 나눌 것인가.
그렇게 한 몇초 갈등하고 있는데 정신이 빡 들더군요.
그렇게 나쁜사람이 싫다며 좋게 살아가자고 생각 해 왔으면서
정작 다른 사람이 힘들때 그냥 지나쳐 버릴 생각을 해 버리다니...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3만원 정도야 있는데 이 가엾은 분 한분 못 도와 드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을 할수 있을까...
따뜻하게만 보이던 지하철 입구가 마치 악마가 그 시커먼 입을 벌리고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참 허세같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살만하다는 나라라는 걸 보여 주자는 생각도 듭니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꺼내어 돈을 보니 3만 얼마가 들어있더군요.
그리고 연습장 찢어, 휴대폰 번호 적어드리며 내일 꼭 전화 주셔야 된다고 말씀도 드립니다.
고맙다고 미소짓는 아저씨.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천사의 얼굴로 보이더군요.
그 후로 오늘까지 5일.
역시나... 정말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아직도 전화는 걸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늘 밝게 살고 싶어, 안 좋은 일 있어도 웃는 저 이지만,
요즘은 자꾸 부정적으로 되어 가는 것만 같으네요.
서비스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더이상 친절과 미소는 제게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
손을 내밀어 빛을 비추겠다는 정말 '좋은생각' 같은 잡지에나 있는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저 같은 병신같은 사람들이 그런 새빨간 사람들의 뱃속을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제 삶의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아직 적은 나이지만 이런식으로 세상에 실망을 하면 안될텐데... 하고 마지막 발악도 해보지만
역시 이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해보면 참 간단한 것이었는데요.
그렇게 모든걸 잃어버렸으면 당연히 경찰서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을텐데...
그렇게 추운 날 길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진 않았을텐데요.
어쨌거나 이제 좋은사람인척 그렇게 살지는 않으렵니다.
정말 대한민국은 더이상 아무도 믿지 못하게 변해 버렸군요.
웃기게도 지금 너무 삼겹살이 먹고 싶은데
그 흔한 고기 하나 사 먹을 돈이 없다는게 더 슬픈 것 같습니다. 망할 이 대한민국 보다 말입니다.
제기랄...
너무 슬퍼지는 하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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