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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리타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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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story_157719
    작성자 : 암리타
    추천 : 0
    조회수 : 631
    IP : 203.212.***.39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08/09/07 22:37:38
    http://todayhumor.com/?humorstory_157719 모바일
    이강백 - 파수꾼
    출처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hi-gok/pa-su-ggun.htm) 




    등장 인물 

    해설자 

    파수꾼 가 

    파수꾼 나(노인) 

    파수꾼 다(소년) 




    [해설자] (관객들에게 무대와 등장 인물들을 설명한다) 이곳은 황야입니다. 이리떼의 내습을 알리는 망루가 세워져 있죠. 드높이 솟은 이 망루는 하늘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늘은 연극의 진행에 따라 황혼, 초생달이 뜬 밤, 그리고 아침으로 변할 겁니다. 저기 위를 바라보십시오. 파수꾼이 앉아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하늘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시커먼 그림자로만 보입니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파수꾼이었습니다. 나의 늙으신 아버지께서도 어린 시절에 저 유명한 파수꾼의 이야기를 들으셨다 합니다. 물론 할아버지에게서 들으셨던 거죠. 이제와선 저 망루 위의 파수꾼은 전설적 인물이 된 것이지요. 또 다른 파수꾼들, 우리와 같은 시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망루 아래에서 양철북을 칠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망루 위의 파수꾼이 이리떼를 발견했다 외치면, 그들은 양철북을 두드릴 겁니다. 그 소린 황야에서 울려 퍼져서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전달되고, 그럼 주민들은 이리떼의 내습에 대항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이리떼는 무척 교활하죠. 그들의 습격이 탄로 난 걸 알아채면 일단 뒤로 물러납니다. 그리고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거죠. 이러한 반복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망루 위의 파수꾼이 갑자기 외친다)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가의 손이 번쩍 들려진다. 이리떼가 나타난 방향을 가리킨다. 망루 아래 파수꾼들은 양철북을 두드린다. 외침과 북소리 계속. 불안이 점점 고조된다. 해설자는 달아난다. 노인 파수꾼 나의 북 치는 모습은 늠름하다. 소년 파수꾼 다는 두려움에 질려서 헛치기만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버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다] (아직도 겁에 질려서) 이리떼라구요? 




    [나] 걱정 마라. 이젠 물러갔단다. 




    [다]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는데요? 




    [나] 너는 낮은 곳에 있다. 그러니까 보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저 망루 위의 파수꾼은 아주 높은 곳엘 있지 않니? 그는 멀리까지 바라본다. 너하곤 위치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소년 파수꾼 다는 당황해서 다시 엎드리고, 파수꾼 나는 양철북을 두드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다] --- 정말 물러갔어요? 




    [나] 그렇다. 안심하고 일어나렴. 




    [다] 그래도, 저어, 아직 몇 마리 남아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랬다가 엉겁결에 달려들어 꽉 물 수도 있겠구요. 




    [나] 파수꾼의 눈은 정확하단다. 단 한 마리의 이리도 그 눈을 피해 숨을 순 없지. 




    [다] 아, 저는 그걸 생각 못했어요. 죄송해요. 파수꾼의 눈을 의심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이리라는게 그렇죠, 이리를 믿어선 안 된다고 배웠거든요. 이리는 엉큼하고, 사납고, 그 날카로운 이빨에 물리면은--- 




    [나] 이리가 그렇게도 무섭니? 




    [다] 네. 




    [나] 그럼 왜 파수꾼이 될 생각은 했지? 




    [다] 이렇게까지 무서움을 탈 줄은 몰랐거든요. 저 자신도 부끄러워요. 파수꾼이 되는 연습을 할 때엔 이렇진 않았습니다. 제법 용감했죠. 특히 칭찬을 받은 건 제 눈이었어요.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진 것도 척척 알아냈거든요. 마을 사람들도 감탄했어요. '최고의 눈이다. 넌 파수꾼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요, 저는 여기에 오길 지원했던 거예요. 그러나 여기 와보니 사정이 다르군요. 저는 한번도 망루 위엘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한가지 여쭙겠는데요, 왜 저 망루 위의 파수꾼은 교대하질 않죠? 




    [나] 저분은 말이다, 지금까지 실수를 하지 않았단다. 단 한번도 이리떼를 놓친 적이 없었어. 




    [다] 굉장하네요. 




    [나] 아무렴. 넌 어때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니? 




    [다] 자신 있어요--- 허지만요, 한 두 번쯤은 실수도 있을 거예요. 




    [나] 그럼 큰일난다. 이리떼의 습격을 놓쳐 봐라. 마을의 가축과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넌 아예 섣불리 망루 위에 올라 갈 생각도 마라. 얘야, 저 높은 곳보다 이 아래는 할 일이 많단다. 양철북도 쳐야 하구, 여기저기 놓아둔 이리 덫들도 살펴야 하구--- . 방금 전 습격 때 저쪽에서 탁 치이는 소리가 났었다. 너, 나하고 덫 보러 가지 않을래? 




    [다] 전 여기 있고 싶어요. 




    [나] 이리가 걸렸으면 좋겠는데--- 그럼 다녀오마. 




    (파수꾼 나 퇴장. 오랜 침묵. 다는 망루 위를 쳐다보기도 하고 키발을 딛고 사방을 살피기도 한다. 금방 이리가 덤빌 것 같아서 그는 안절부절 못 한다. 마침내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파수꾼 나가 들어온다. 무겁게 생긴 강철제 덫을 어깨에 둘러매고 와서 내려놓는다. 




    [나] 또 헛쳤다. 교활한 짐승도 다 있지. 나뭇가지를 대신 끼워 놓고 몸은 달아났지 뭐냐. 얘야, 이 덫 좀 함께 벌리자. 




    (두 파수꾼은 덫 입을 함께 벌린다. 이빨들이 달린 덫이 벌어지며 파수꾼들에게 위압을 준다) 




    [다] 무섭게 생겼어요. 




    [나] 나뭇가지 때문에 이빨이 상했어. 날카롭게 쇠줄로 쓸어야겠다. (쇠줄을 꺼내 덫 이빨을 간다. 금속성의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가끔가다 이리가 치어 줘야 재미있는데, 통 그래주질 않는단다. 치었는가 가보면 또 헛 치었구, 이리는 정말 교활해. 황야에 수천 개의 덫을 놓았지만 용케도 걸려들질 않어. (덫니에 날이 섰는지 엄지손가락을 대본다.) 자, 됐다. 이리야, 이번엔 제발 철컥 걸려 다오. 제자리에 가져다 놓구 오마. 




    [다] 내일 아침에 가세요. 




    [나] 내일 아침에? 




    [다] 그래요. 지금은 어둡잖아요? 




    [나] 어둡기는--- 아직 훤해. 




    [다] 가시면 안돼요. 여긴 아직 훤하지만 덫 놓을 덤불 속은 어두울지 몰라요. 그 속에 이리가 숨어 있다 덤벼들면 어떻게 해요? 저 같으면 내일 아침까진 꼼짝도 안하겠어요. 




    [나] 넌 참 겁두 많다.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소년 파수꾼 다는 엎드리고, 노인 파수꾼 나는 양철북을 두드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나] 넌 또 엎드렸구나. 




    [다] 이리떼, 다 갔어요? 




    [나] 양철북이라도 좀 쳐보질 그랬니? 네가 함께 쳐주면, 나 혼자서 이렇게까진 고달프지 않겠는데--- 




    [다] 아, 저는 쓸모 없는 사람 같아요. 




    (잠시 침묵, 파수꾼 나는 상심하는 소년의 얼굴을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나] 그래도 난 네가 좋다. 




    [다] 제가 좋아요? 




    [나] 응. 




    [다] 겁만 내는데두요? 




    [나] 그래도 좋은 걸. 난, 너 오기 전엔 쓸쓸했었다. 위를 보렴. 저 망루 위의 파수꾼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어 말벗도 안됐다. 그래 난 하루 종일 홀로 있는 거나 다름없었지. 양철북도 요란하게 두들기고, 수천 개의 덫을 둘러보러 다녔다만 혼자인 건 어쩔 수 없더라. 얘야, 외롭다는 것 그게 뭔지 아니? 




    [다] 몰라요. 




    [나] 젊었을 땐 나도 몰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황야에 바람이 분다든가 깊은 밤 달이 떴을 때, 외롭더라. 그래서 난 마을 촌장님에게 편지를 내었었지. 파수꾼을 한 명 더 보내 달라구 말이다. 마침 지원자가 있다더구나. 바로 너였다. 




    [다] 용감한 사람이 오길 바라셨죠? 




    [나] 아니. 




    [다] 저처럼 겁쟁이를 기다리신 거예요? 




    [나] 아니. 




    [다] 그럼--- 




    [나] 누구였으면 하고 미리 정해 두지 않았단다. 그랬다가 만일 틀린 사람이라도 오게 되면 난 덜 기쁘지 않겠니? 그런데 첫눈에 너를 보자 한껏 기뻤다. 그 순간 나는 정한 거란다, 바로 네가 왔으면 하고. 내 뜻은 이루어졌다. 넌 그때 휘파람을 불며 왔었지? 




    [다] 네. 




    [나] 내 귀가 즐겁더라. 




    [다] 고마워요. 




    [나] 오히려 고마운 건 나다. 




    (황혼이 점점 짙어진다. 해설자, 슬그머니 등장. 마분지로 만든 초생달을 하늘에 걸어 놓고 퇴장. 두 파수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다.) 




    [나] 야, 하늘 곱다. 그지? 




    [다] 네. 




    [나] 어젯저녁 네가 올 때도 이랬다. 난 평생 그 광경을 잊지 못할 거다. (잠시 침묵) 어떠냐, 너 양철북 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을래? 




    [다] 배우겠어요. 




    [나] 그러면서도 넌 망루 위만 바라보는구나. 그렇게도 올라가고 싶으냐? 




    (다, 고개를 떨군다.) 




    [나] 양철북 치는 것두 괜찮은 거란다. 소리가 요란하긴 하지만 귀에 익으면 그 재미를 알게 된다. 자아, 우선 여러 가지 박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마. (그는 강약을 두어 양철북을 두드린다.) 재미있지? 이 박자 치기에 맛들이면 어느새 이리떼 같은 건 다 잊어 버린다. 자, 너도 쳐보아라. 




    [다] (나를 따라 양철북을 치다가 갑자기 겁에 질려서 나와 등뒤에 숨는다) 저기, 저기--- 




    [나] 왜 그러니? 




    [다] 이리가 오구 있어요. 




    (해설자, 식량 운반인이 되어 등장. 이리 껍질을 썼다. 유모차 비슷한 손수레를 밀며 들어온다.) 




    [운반인] 안녕하십니까, 파수꾼님? 망루 위의 파수꾼님도 안녕하세요? 제가 왔어요. 저를 좀 보세요! 이렇게 손을 흔들고 있어요! 




    [나] 자네 수다떨긴 여전하군. 어서 짐이나 내려놓게. 




    [운반인] 일주일 분 식량입니다요. 쌀, 야채, 그리고 마른 생선. 이 속엔 특별 요리가 들어 있습니다요. 자, 받으십쇼. 이 맛있는 냄새가 나는 상자를. (나에게 주며) 통째로 구운 닭고기죠. 지난번에 부탁하신 걸 가져왔어요. 




    [나] 고마우이, 정말 고마워. (다에게) 안심하고 나와. 식량 운반인이야. 




    [다] 왜 이리 껍질을 썼죠? 




    [운반인] 왜 이걸 썼느냐구? 이리가 덤비지 않도록 쓴 거지. 이리는 사람을 물지만, 자기네 종족을 물지 않거든. (나에게) 어때요, 맛있는 냄새가 나죠? 




    [나] 흥. 흥. 근사한데! 




    [운반인] 열어 보시죠, 어서. 




    [나] 아냐. 지금 열진 않겠어. 두었다가 멋진 저녁을 차릴려구 그래. 환영할 친구가 왔거든. 자네에게 소개함세. 새로 온 파수꾼이야. 아주 용감하지. 양철북 치는 솜씨도 나보다 갑절 낫구. 




    [다] 아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운반인] 악수를 청해도 되겠지? 왜 머뭇거리나? 아, 내가 쓴 이리 껍질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인데. (머리 부분만 벗어 젖히고) 이젠 됐지? 




    [다] (운반인이 내민 손을 잡는다) 안녕하세요? 




    [운반인] 반갑수.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소년 파수꾼 다는 엎드리고 나는 양철북을 두드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운반인] 하마터면요, 이리에게 죽을 뻔 했습니다요. 껍질을 다시 써서 물리지 않았죠. 




    [나] 마을은 어떤가? 난 양철북을 치면서도 걱정이 돼. 주민들은 잘 방비하고 있을까? 별일은 없겠지? 




    [운반인] 이리 막는 거야 잘 하고 있죠, 뭐. 하지만 약방 영감 왜 그 말라깽이네 약방 영감 말이예요, 그 영감이 지붕 위에서 떨어져 두 다리를 몽땅 부러트렸지 뭐요. 그 영감, 재수 옴 붙었지. 글쎄, 새벽녘에 잠이 깰까말까 하는데 양철북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더래요. 그러자 거리에서 사람들이 외치기를 '으악! 이리떼가 몰려온다.' 영감 넋 나갔죠. 지붕 위로 피신 가는데요. 몸은 떨리구, 뒤에선 금방 이리가 물 것 같겠다, 엉금엉금 기어올라가다 뚝 떨어진 거죠. 




    [나] 그런 말 하는 게 아냐. 




    [운반인] 그렇죠, 뭐. 지붕 위에서 떨어진 영감이 한 둘이어야지요. 양철북 소리 들려오구 '이리떼다!' 하니까, 우물 속에 빠져 죽은 아이 이야길 제가 했던가요? 




    [나] 그만 두게. 




    [운반인] 그렇죠, 뭐. 우물 속에 빠져 죽은 아이가 어디 한 둘이어야죠. 수두룩하니까 별로 우습지도 않아요. 자기 집에 불을 지른 남자 이야기는 어때요? 담배를 피우려구 성냥을 그었는데 들려 오는 양철북 소리! 그 남자 엽총 들고 뛰어나가 신나게 공포 쏜 건 좋았죠. 허나 집에 돌아와 보니 불--- 




    [나] 그만 두래도! 




    [운반인] 그렇죠, 뭐. 집 불태운 남자가 어디 한 둘인가요? 북소리 들려오구 '이리떼가 몰려온다' 하니까--- 




    [나] (역정을 내며) 제발 그만 둬! 




    [운반인] 왜 그래요? 하긴 그렇죠, 뭐. 




    [나] 뭐가 그렇다는 거야? 




    [운반인] (시무룩하게) 아무 것도 아녜요. 




    [나] 남의 불행을 재미있어 하면 안되네. 




    [운반인] 그게 어디 남의 불행인가요? 나도 그 속에 살고 있으니까 내 불행이죠 뭐. 짐 다 내려놨으니 이만 돌아가겠어요. 




    [다] 저녁 식사하고 가세요. 




    [운반인] 밤 되기 전에 가 봐야겠어. 




    [다] 곧 밤이 돼요. 식사 하시구 자고 가세요. 




    [운반인] 여긴 재미없는 걸. 양철북 소리 들려 올 때 '이리떼가 온다!' 외치면--- 




    [나] 자네가 외치구 다니나? 




    [운반인] 그렇죠, 뭐. '이리떼다' 하고 외치는 사람이 한 둘이어야죠. 모두들 외치는데요. 지난주 화요일 밤, 북소리 들려 와서 '이리떼다' 외치구 골목을 막 돌아서는데, 웬 여자가 내 어깨에 매달립디다. 열 여섯이나 일곱쯤 될까요, 두려워서 바들바들 떠는 게 꽤 예쁘더군요. 말 들어보나마나 어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달라는 거죠. 마침 골목 끝에 대피용 지하실이 있어서--- (웃는다) 




    [나] 그래 어떻게 했나? 




    [운반인] 처음엔 껴안아 줄려구만 그랬어요. 허지만 나도 사낸데 어디 그래요? 마침 지하실엔 단 둘 뿐이었겠다, 그 앨 바닥에 눕히고 재밀 좀 봤죠. 




    [나] (치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어서 가게. 




    [운반인] 안녕히 계십시오, 파수꾼님. 




    [나] (다를 가리키며) 다음에 올 땐 이 애 물건을 가져와. 밤에 덮고 잘 담요가 없어. 




    [운반인] 언제 가져올까요? 




    [나] 내일 아침 당장 가지고 와. 




    [운반인] 알았어요. 내일 아침 또 오죠. (다에게) 잘 있우. 랄랄랄 




    라라라--- 




    (해설자, 빈 수레를 끌고 퇴장) 




    [다] 화나셨어요? 




    [나] 아니. 




    [다] 성난 얼굴인데두요? 




    [나] 아까 그 운반인 말이다, 이리 같은 놈이다. 오늘밤에도 어두운 거리에 숨었다가 몹쓸 재미를 노리겠지. 나의 양철북 소릴 그런 놈들이 악용하고 있다니, 마음 상한다. (사이) 그만 두자. 이러다가는 오늘 저녁이 쓸쓸해질 것 같구나. 얘, 우리 식탁을 차리지 않겠니? 




    (두 파수꾼은 야외용 식탁을 펴놓는다. 접시도 준비된다. 조그맣게 생긴 석유 램프도 식탁 한가운데 놓여진다. 다가 성냥을 그어 램프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망루 위의 파수꾼이 소리지른다.)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다는 불을 켜지도 못하고 식탁 밑으로 숨는다. 나만 홀로 어둠 속에서 양철북을 두드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나] 불을 켜렴. 




    [다] --- 이리, 다 갔어요? 




    [나] 너 어디에 있니? 




    [다] 식탁 밑에요. 




    [나] 이런 다 갔다. 안심하고 나오너라. 




    (다가 석유 램프에 불을 붙인다. 식탁 주위가 밝아진다. 노인과 소년은 식탁에 마주 앉는다.) 




    [나] (요리가 든 상자를 내밀며) 냄새를 맡아보겠니? 




    [다] 맛있겠는데요. 




    [나] 널 위해 마련했단다. 얘야, 용감한 사람이 되마구 약속해 줄래? 




    [다] 저는 겁보예요. 잘 아시잖아요? 




    [나] 내 얼굴 보아라. 아직도 성난 표정인 건 아마 너에 대해선지도 모르겠다. 좀 영리한 자들은 나쁜 짓만 하구, 너처럼 착한 애는 겁쟁이니까 말이다. 둘 다 속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얘야. 지금 곧 너더러 용감해지라는 건 아냐. 허지만 너도 언젠가는 용감한 남자가 될 수 있지 않겠니? 




    [다] (한숨을 쉬고 나서) 그럴 수 있을까요, 저두? 




    [나] 그럼. 처음부터 용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단다. 수천 번 두려워하다가도 단 한번 그 두려움과 맞설 때, 그 사람을 용기 있다구 부르는 거야. 자, 약속해 주겠니? 




    [다] 약속해요. 




    [나] 됐다. 상자의 뚜껑을 열으렴. 큼직한 닭이었으면 좋겠구나. 




    [다] 굉장히 커요! 




    [나] 반으로 자르거라. 한 몫은 저 망루 위의 파수꾼 거다. 나머지 반절은 너와 내가 나누자. (망루 위를 향해 외친다.) 식사하십시오! 




    (가, 대답이 없다.) 




    [다] 망루 위에 올라가서 말씀드릴까요? 




    [나] 아니다. 저 분은 누가 망루 위에 올라오는 걸 싫어해. 음식은 그냥 놔두면 잡수시고 싶을 때 줄을 내려보낸단다. 그럼 그 줄에 매달아 드림 되는 거야. 사실 저녁 식사만이라도 함께 하면 얼마나 좋겠니. 이 석유 램프 불빛이 좀 아름다우냐? 그런데 텅 빈 식탁에 홀로 앉아 저녁 식사를 할 때엔 이 아름다운 불빛에 비춰 볼 얼굴이 그립더라. 얘야, 어서 먹으렴. 




    (두 파수꾼들은 식사를 계속한다. 한동안 말이 없으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나] 난 네가 좋아. 




    [다] 하루종일, 그 말씀뿐이었어요. 




    [나] 그래도 부족한 걸 어떻게 하니? 




    [다] 저에겐 너무 과분한 걸요. 




    [나] 아니야. 넌 네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몰라서 그래. 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꿈, 나를 애태우는 갈증이란다. 이 황야의 한복판에서 난 너라는 꿈을 꾼다. 현실에선 보이지 않는 고결한 것, 사라진 옛날의 파수꾼들, 넌 바로 그것이 되어야 한다. 예전엔 많은 파수꾼들이 이 망루 아래에서 살다 죽는 걸 자랑으로 여겼지. 일생을 여기 쓸쓸한 땅에서 보내며 그저 말없이 이리떼와 대항한 그 생애를 기뻐했단다. 그들은 지금 이 황야에 묻혀 있어. 웅장한 대리석 관에 잠들기보다, 한닢 갈대 아래 매장되는 걸 사내답다고 생각했다. 파수꾼이란 그런 거야. 난 여기서 죽을 것이다. 너의 두 손이 내 눈을 감길 때, 난 다음을 이어줄 너에게 감사할 거다. 보아라, 저쪽 갈대 아래 묻힌 옛 파수꾼들이 모두 일어나 침묵 속에 너를 보고 있잖니? 넌 그들의 꿈이야. 이 황야의 크기와 맞먹는 꿈, 이젠 네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걸 알겠지? 




    [다] 아, 내가 겁보만 아니었더라면--- 




    [나] 넌 나에게 약속했다. 벌써 잊었어? 




    [다] 아뇨. 그래도 자꾸만 겁이 나는 걸요. 




    [나] 난 너의 약속을 믿는다. 제발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라. 




    [다] 네. 




    [나] 난 네가 좋아. 




    [다] 저도--- 




    [나] 내가 좋으냐? 




    [다] 네. 




    [나] 모처럼 즐거운 밤이구나. 구운 고기도 맛이 있고. 얘, 좀 더 먹지 그러니? 




    [다] 됐는 걸요, 이만하면. 




    [나] (하품을 하며) 오랜만에 포식을 했더니 졸립다.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자기 담요를 덮으려다가 다를 대신 덮어 주며) 춥지? 조금만 날 지켜 주렴. 곧 깨어나 너와 교대하마. 




    [다] 이 담요, 덮고 주무세요. 




    [나] 아냐, 너나 덮어. 난 습관이 돼서 괜찮다. 




    [다] 천막에 가서 주무시지 그러세요? 




    [나] 잠시 웅크리고 자면 되는걸. 




    (파수꾼 나, 식탁에 상반신을 엎드리고 눈을 감는다.) 




    [다] 이리떼가 오면 어떻게 하죠? 




    [나] (잠에 빠져 가는 졸리는 목소리로) 넌 약속했지? 




    [다] 약속했어요. 허지만요, 제가 용감할 수 없을 때 이리떼가 오면 어떻게 해요? 




    [나] (웃으며) 네가 용감할 그때를 꼭 맞추어 와 달라구 부탁하렴. 




    [다] 하는 수 없군요. 




    [나] 부탁했니? 




    [다] 못했어요. 




    [나] 왜 하질 않구? 




    [다] 이리가 어디 들어주겠어요? 




    [나] 하긴 그렇구나. 




    (침묵. 파수꾼 나는 잠들었다. 오랜 사이. 다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램프 불빛만 남고 모든 것이 서서히 어둠 속에 묻힌다. 해설자, 슬그머니 들어와서 초생달을 떼어 간다. 사이. 주위가 희미하게 밝아 오면 새벽. 바람소리가 요란해진다. 파수꾼 다가 문득 잠을 깬다. 그는 잠시 멍하니 둘러본다. 차츰 정신이 들자, 사태가 심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램프를 들고 일어난다.) 




    [다] 바람소리? 아니면 이리떼가 몰려오는 소리일까? 무서워지는데. 난 어쩌면 좋아! (잠든 파수꾼 나에게 다가간다.) 아니, 깨울 순 없어. 좀더 주무시도록 해야지 (나의 얼굴을 램프 불빛에 비춰보며) 이 주름진 얼굴, 햇빛과 바람에 거칠어진 피부, 근심 많은 분이 잠드신 것을--- 그런데 무섭다구 깨운다는 건 염치없는 짓일 겁니다. 황야는 어젯밤보다 수천 배나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난 외톨이에요. 지금 내가 얼마나 쓸쓸한지 아시겠지요? 하지만요, 주무십시오. 어떻게 난 견뎌 보겠어요. (잠든 나에게 담요를 벗어 주고 물러난다.) 왜 새벽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울까? 손발이 얼어붙는 걸. 이럴 때 말야, 이리떼가 와서 덤벼들면 난 꼼짝없이 죽겠지? 반항 한번 못하고 죽는 건 억울해. 여기 계신 파수꾼님도 당 하고 말 거야. 그리고 마을의 가축들은? 그 순한 양이며 염소들은 지금 곤한 잠을 잘 텐데? 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리떼 밥이 되겠다. 아, 무서워! (식탁으로 뛰어갔다가 멈칫 서서) 아니, 주무십시오. 난 견디겠어요. (사이, 얼굴 표정 밝아지며) 그래, 괜한 걱정을 했군. 망루 위에 파수꾼이 계시잖아. 그분은 잠들지 않았을 거야. 그분이 이리떼를 감시할 테니까, 안심해도 돼. (망루 위를 향하여) 망루 위의 파수꾼님, 눈을 뜨고 계셔요? --- 왜 대답이 없으시죠? (침묵) 망루 위의 파수꾼님, 당신마저? 당신까지 잠드셨군요! --- 나 혼자다. 눈을 뜨고 있는 건 나 혼자뿐야. --- 바람소리? 아니면 이리떼가 몰려오는 소릴까? 아무래도 수상해. 난 어쩌면 좋지? 그래, 망루 위에 올라가자. 눈을 뜬 건 나뿐이잖아. 내가 이리떼를 감시해야지. 




    (파수꾼 다는 양철북을 메고 망루 위로 올라간다. 가는 여느 때와 같은 부동자세. 다는 숨어들 듯 가의 등뒤에 서서 황야를 바라본다. 사이.) 




    [다] 아름다워라. 새벽의 황야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다는 기겁하듯 놀란다. 망루 아래로 급히 내려온다. 그는 양철북을 두드리려고 하지만, 겁에 질린 듯이 헛치기만 한다. 그는 땅에 엎드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다] 흐유! (망루 위를 향하여) 이리뗀 정말 다 물러갔나요? 대답해 주세요. (침묵) 왜 말이 없으시죠? 잠드셨어요? 파수꾼님, 당신은 또 잠드셨군요? 




    (파수꾼 다는 망루 위에 올라간다.) 




    [다] 이리떼만 없다면 이곳은 얼마나 평화로운 곳일까? 지평선 저 멀리 하늘가를 좀 봐. 하얀 구름이 흘러가네. 




    (사이)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다는 황급히 망루 아래로 내려와 엎드린다. 그러나 어떤 의아로움이 두려움 속에서 생겨난다. 그는 망설이듯 일어나 망루 위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본다.)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다는 망루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는 가와 황야를 번갈아 바라본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파수꾼 다는 망루 아래로 내려온다. 심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다] 이리떼라구요? 황야 저쪽에는 흰 구름뿐이었어요. 




    (긴 침묵. 밝아지는 아침. 식탁 위의 석유 램프 불빛은 희미해졌다. 파수꾼 나가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너무 잤다는 듯이 흠칫 놀라며, 그는 램프 불을 끈다. 그리고 뒤 돌아서다가 망루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다를 발견한다.) 




    [나] 잘 잤니? 




    [다] (힘없이) --- 네. 




    [나] 너, 어디 아픈 게 아니냐? 




    [다] --- 아뇨. 




    [나] 날 일찍 깨우지 않고. (다의 이마를 짚어 보며) 열이 많다. 담요를 덮지 않아서 그래. 난 괜찮대두 날 덮어 주었구나. 




    [다] 아뇨. 담요는 밤새껏 제 차지였어요. 새벽 무렵에야 덮어 드린 걸요. 




    [나] 아무래도 너 아픈 것 같다. (다의 몸을 담요로 감싸주며) 몸을 덮혀라. 




    [다] (방치해 둔 이리 덫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덫으로 흰 구름을 잡나요? 




    [나] 응? 흰 구름을? 




    [다] 네. 하늘의 흰 구름을요. 




    [나] 구름을 어떻게 덫으로 잡니? 




    [다] 그래요. 구름은 흘러가는 거예요.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서 고요히 흘러만 가요. 이리 덫으론 잡을 수 없죠. 




    [나] 헛소릴 하는구나. 넌. 몸을 덥히고 있으면 곧 나을 거야. (덫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침이 됐으니 덤불 속도 훤해졌겠지. 그럼 덫 놓구 오마. 




    [다] 그 덫으로는 흰 구름을 못 잡아요. 




    (파수꾼 나, 덫이 무거워 비틀거리며 퇴장한다. 잠시 후, 해설자가 운반인이 되어 손수레를 끌고 등장.) 




    [운반인] 잘 있었나, 어린 파수꾼? 




    [다] 어서 오세요. 




    [운반인] 담요 가져왔어. 고참 파수꾼은 어디 가셨나? 




    [다] 덫 놓으러 가셨어요. 




    [운반인] 엊저녁 말씀대로 날이 새자 마자 가져 왔는데 칭찬을 못 듣게 됐군. 




    [다] 기다리시면 오실 거예요. 




    [운반인] 아니, 그냥 가야지. 여긴 잠시라두 있고 싶지 않아. 너무 쓸쓸해. 망루만 솟아 있지 뭐 볼 것두 없구. 난 네 마음을 모르겠어. 여긴 왜 있지? 평생 있어 봐야 그게 그거 아냐? 양철북이나 두들기는 거밖에 더 있느냐 말야. 아까운 인생만 썩혀 보내는 거지. 어젯밤에 난 너를 생각했어. 너는 인생을 즐겨야 해. 어때? 달아나지 않으려나? 이 수레에 타라구. 어디든지, 네가 가구 싶은 데로 태워다 줄게. 




    [다] 어젯저녁에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이리가 무서워서라도 아마 난 당신의 수레에 탔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안돼요. 타고 싶어도 탈 수 없어요. 




    [운반인]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나? 




    [다] 마을에 가시거든 이 편지를 촌장님께 전해 주세요. 아주 중대한 거에요. 




    [운반인] 내용이 뭔데? 




    [다] 말할 수 없어요. 




    [운반인] 괜찮어, 말 안해두. 도중에 뜯어보면 알게 될 걸 뭐. 




    [다] 보시면 안돼요. 




    [운반인] 걱정 말아. 곧장 촌장님께 전할 테니까. 그럼 잘 있어. 랄랄 라라라--- 




    (해설자, 퇴장. 사이. 파수꾼 나가 들어온다.) 




    [나] 아침 식사하겠니? 




    [다] 지금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나] 무얼 좀 먹어야 기운이 나는 거란다. 얘, 남은 닭고기 너나 먹으렴. (음식 담긴 접시를 다에게 가져가 턱 밑에 받쳐든다.) 네 얼굴이 핼쓱하다. 몹시 아프니? 




    [다] 파수꾼님--- 




    [나] 응? 




    [다] 이리는 정말 없는 거죠? 




    [나] 오호라, 넌 이리가 무서워서 병난 거구나. 요 겁쟁이, 우리 양철북을 두드리자. 그걸 힘껏 두드리고 있노라면 이리떼가 덜 무서워질 거야. 




    [다] 양철북을 쳐요? 




    [나] 그래. 치는 법을 가르쳐 주마. 




    [다] 소용없어요, 그건. 사실을 말씀 드리죠. 오늘 새벽 눈을 뜨고 있던 건 저 뿐이었어요. 모두들 잠을 잤구요. 그 틈을 노려 이리떼가 습격해 오면 어찌나 하구 전 두려웠어요. 그래서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갔던 거예요. 그 높은 곳에서 저는 이 황야의 전부를 바라보았죠. 아무데도 이리는 없더군요. 보이는 거라고는 저 멀리 하늘가에 흰 구름뿐이었어요. 그걸 향해 망루 위의 파수꾼은 '이리떼다!' 외쳤습니다. 세 번이나요. 세 번, 저는 망루 위에서 그걸 제 눈으로 보았어요. 이리떼라곤 없어요. 흰 구름뿐이예요. 




    [나] 얘야, 난 네 맘을 안다. 넌 망루 위엔 올라가고 싶었겠지? 이리가 무서웠구. 더구나 어린 너에겐 이 쓸쓸한 곳이 맞질 않는다. 그래서 넌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다] 저는 정말 망루 위에 올라갔었어요. 




    [나] 그럴 리 없어. 넌 아까부터 제정신이 아니더라. 덫으로 어찌 구름을 잡겠느냐고 횡설수설할 때부터 난 걱정스러웠다. 제발, 이리떼가 없다는 소린 하지도 말아라. 




    [다] 여기 낮은 곳에 있으니까 모르는 거예요. 하지만 저 높은 곳엘 올라가면 이리떼가 없다는 걸 알게 돼요. 




    [나] 얘야, 자꾸만 우기지 말아라. 나는 이 황야에서 평생을 지냈단다. 넌 여기 온지 겨우 사흘밖엔 안 됐구. 그런데, 사흘밖에 안된 네가 평생을 보낸 나보다 뭘 잘 안다구 그러니? 




    [가]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나는 확신 있게 양철북을 두드린다. 다는 여느 때와는 달리 침착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담요를 벗어 네모 반듯하게 갠 다음 식탁 위에 놓는다. 그는 북을 두드리는 나를 바라 보면서 몹시 안타까운 표정이 된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다] 정말 이리가 있다구 믿으세요? 




    [나] 보렴, 방금도 이리떼가 오질 않았니?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양철북을 치며 평생을 보냈겠느냐? 서운하다. 아무리 아픈 애라지만 너무 심한 말을 하는구나. 




    [다] 죄송해요. 하지만 어쩜 그 많은 나날을 단 한번도 의심없이 보내셨어요? 




    [나] 넌 그렇게도 무섭니, 이리가? 




    [다] 오히려 이리가 있다고 믿었던 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땐 숨기라도 했으니까요. 땅에 엎드리면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지금은요, 이리가 없으니 땅에 엎드려야 아무 소용없구요. 양철북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오직 이제는 제가 본 그 사실만을 말하고 싶어요. 




    (해설자, 촌장이 되어 등장. 검은 옷차림. 이해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과 정중한 태도.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촌장] 수고하시는군요, 파수꾼님. 




    [나] 아, 촌장님. 여긴 웬일이십니까? 




    [촌장] 추억을 더듬으러 왔습니다. 이 황야는 내가 어린 시절 야생 딸기를 따러 오곤 했던 곳이지요. 그땐 이리가 무섭지도 않았나 봐요. 여기저기 덫이 깔려 있고 망루 위의 파수꾼이 외치는데도 어린 난 딸기 따기에만 열중했었으니까요. 그 즐거웠던 옛 추억, 오늘 아침 나는 그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 이 곳엔 찾아온 거예요. 




    [나] 잘 오셨습니다, 촌장님. 




    [촌장] 오래 뵙지 못했더니 그 동안 흰머리가 더 많아지셨군요. 




    [나] 촌장님두요, 더 늙으셨어요. 




    [촌장] 오다 보니까 저쪽 덫에 이리가 치어 있습디다. 




    [나] 이리요? 어느 쪽이죠? 




    [촌장] 저쪽요, 저쪽. 찔레 넝쿨 밑이던가요--- 




    [나] 드디어 잡는군요! 




    (파수꾼 나 퇴장. 촌장은 편지를 꺼내 다에게 보인다.) 




    [촌장] 이것, 네가 보낸 거니? 




    [다] 네, 촌장님. 




    [촌장]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해서 고맙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이 편지를 가져온 운반인이 도중에서 읽어 본 모양이더라. '이리떼는 없구, 흰 구름 뿐' 그 수다쟁이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있단다. 조금 후엔 모두들 이곳으로 몰려올 거야. 물론 네 탓은 아니다. 넌 나 혼자만을 와 달라구 하지 않았니? 몰려오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불청객이지. 더구나 어떤 사람은 도끼까지 들고 온다더라. 




    [다] 도끼는 왜 들고 와요? 




    [촌장] 망루를 부순다구 그런단다. '이리떼는 없구 흰 구름 뿐' 이것이 구호처럼 외쳐지구 있어. 그 성난 사람들만 오지 않는다면 난 너하구 딸기라도 따러 가고 싶다. 난 어디에 딸기가 많은지 알고 있거든. 이리떼를 주의하라는 팻말 밑엔 으레히 잘 익은 딸기가 가득하단다. 




    [다] 촌장님은 이리가 무섭지 않으세요? 




    [촌장] 없는 걸 왜 무서워하겠니? 




    [다] 촌장님도 아시는 군요? 




    [촌장] 난 알고 있지. 




    [다] 아셨으면서 왜 숨기셨죠? 모든 사람들에게, 저 덫을 보러 간 파수꾼에게, 왜 말하지 않는 거예요? 




    [촌장]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다] 거짓말 마세요, 촌장님! 일생을 이 쓸쓸한 곳에서 보내는 것이 더 좋아요? 사람들도 그렇죠! '이리떼가 몰려온다' 이 헛된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그게 더 좋아요? 




    [촌장] 얘야, 이리떼는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 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 개의 쓸모 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된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구,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다] 왜 제가 헛된 짓을 해요? 제가 본 흰 구름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겁니다. 이제 곧 마을 사람들이 온다죠? 잘 됐어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가서 외치겠어요. 




    [촌장] 뭐라구?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 웃으며) 사실 우습기도 해. 이리떼? 그게 뭐냐? 있지도 않는 그걸 이 황야에 가득 길러놓구, 마을엔 가시 울타리를 둘렀다. 망루도 세웠구, 양철북도 두들기구,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서 떨기도 한다. 아하, 어제부터 내가 이런 거짓 놀이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만, 나도 알고는 있지. 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다] 그럼 촌장님, 저와 같이 망루 위에 올라가요. 그리구 함께 외치세요. 




    [촌장] 그래, 외치마. 




    [다] 아, 이젠 됐어요! 




    [촌장] (혼잣말처럼) --- 그러나 잘 될까? 흰 구름, 허공에 뜬 그것만 가지구 마을이 잘 유지될까? 오히려 이리떼가 더 좋은 건 아닐지 몰라. 




    [다] 뭘 망설이시죠? 




    [촌장] 아냐, 아무것두--- 난 아직 안심이 안돼서 그래. (온화한 얼굴에서 혀가 낼름 나왔다가 들어간다.) 지금 사람들은 도끼까지 들구 온다잖니? 망루를 부순 다음엔 속은 것에 더욱 화를 낼 거야! 아마 날 죽이려구 덤빌지도 몰라. 아니 꼭 그럴거다. 그럼 뭐냐? 지금까진 이리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흰 구름의 첫날 살인이 벌어진다. 




    [다] 살인이라구요? 




    [촌장] 그래, 살인이지. (난폭하게) 생각해 보렴, 도끼에 찍힌 내 모습을 피가 샘솟듯 흘러 내릴 거다. 끔찍해. 얘, 너는 내가 그런 꼴이 되길 바라고 있지? 




    [다] 아니예요, 그건! 




    [촌장] 아니라구? 그렇지만 내가 변명할 시간이 어디 있니? 난 마을 사람들에게 왜 이리떼를 만들었던가, 그걸 알려줘야 해. 그럼 그들도 날 이해해 줄 거야. 




    [다] 네, 그렇게 말씀하세요. 




    [촌장] 허나 내가 말할 틈이 없다. 사람들이 오면, 넌 흰 구름이라 외칠거구, 사람들은 분노하여 도끼를 휘두를테구, 그럼 나는, 나는--- (은밀한 목소리로) 얘, 네가 본 그 흰 구름 있잖니, 그건 내일이면 사라지고 없는 거냐? 




    [다] 아뇨. 그렇지만 난 오늘 외치구 싶어요. 




    [촌장] 그것 봐. 넌 내 피를 보구 싶은 거야. 더구나 더 나쁜 건, 넌 흰 구름을 믿지도 않아. 내일이면 변할 것 같으니까, 오늘 꼭 외치려구 그러는 거지. 아하, 넌 네가 본 그 아름다운 걸 믿지도 않는구나! 




    [다] (창백해지며) 그건, 그건 아니에요! 




    [촌장] 그래? 그럼 너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해. (괴로워하는 파수꾼 다를 껴안으며) 오늘은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나도 내일은 너를 따라 흰 구름이라 외칠 테니. 




    [다] 꼭 약속하시는 거죠? 




    [촌장] 물론 약속하지. 




    [다] 정말이죠, 정말? 




    [촌장] 그럼. 정말 약속한다니까. 




    (파수꾼 나가 들어온다.) 




    [나] 또, 헛치었습니다. 이리는 워낙 교활해서요, 친 것 같아도 가보면 달아나구 없어요. 




    [촌장] 다음에는 꼭 잡히겠지요. 




    [나] 미안합니다. 이번에 잡았더라면 그 껍질을 촌장님께 선사하구 싶었는데--- 




    [촌장] 받은 거나 다름없이 감사합니다. 




    [나] (촌장에게 안겨 있는 다를 가리키며) 그 앤 지금 몹시 아픕니다. 




    [촌장] 네. 열이 있는 것 같군요. 




    [다] 간밤에 담요를 덮지 않아서 병이 났어요. 




    [촌장] 이만한 나이 때 누구나 한번씩은 앓는 병이겠지요. 




    [다] 내 잘못이었어요. 담요를 꼭 덮어 줘야 하는 건데. (다에게) 얘야, 난 널 좋아해. 아픈 것 빨리 좀 나아 주렴. 




    [다] (힘없이 웃으며) --- 고마워요. 




    [나] (관객석 쪽으로 돌아서다가, 흠칫 놀라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오죠? 




    [촌장] 마을 사람들이지요. 




    [나] 마을 사람들요? 




    [촌장] (관객들을 향해) 어서 오십시오, 주민 여러분. 이 애가 그 말을 꺼낸 파수꾼입니다. 저기 빙긋 웃고 있는 식량 운반인, 이 애가 틀림없지요? 네, 그렇다고 확인했습니다. 이리떼인지 아니면 흰 구름인지, 직접 이 아이의 입을 통하여 들어봅시다. 




    (파수꾼 다, 쓰러질 것 같은 걸음으로 망루를 향해 걸어간다. 나가 근심스럽게 쫓아간다.) 




    [나] 얘야, 괜찮겠니? 




    [다] --- 네. 




    [나]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넌 이리떼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떠는 겁쟁이인데. 망루 위에 올라가서 엎드리면 안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널 보러 오지 않았니? 얼마나 큰 영광이냐. 이 기회에 말이다. 넌 너 자신이 파수꾼이라는 걸 힘껏 자랑해야 한다. 알았지, 응? 




    [촌장] 그만 올라가게 하십시오. 




    (파수꾼 다는 망루 위에 올라간다. 긴 침묵. 마침내 부르짖는다) 




    [다] 이리떼다, 이리떼! 이리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가의 손이 번쩍 들려지며 그도 외친다. 파수꾼 나는 신이 나서 양철북을 두드린다. 북소리, 한동안 계속된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떼는 물러갔다. 




    [촌장] 주민 여러분! 이것으로 진상은 밝혀졌습니다. 흰 구름은 없으며 이리떼뿐입니다. 이 망루는 영구히 유지되어야 하겠지요. 양철북도 계속 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이리의 습격 때 까진 잠시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돌아가십시오. 가시거든 마을 광장에 다시 모이시기 바랍니다. 수다쟁이 운반인의 처벌을 논의합시다. 그럼 어서 돌아가십시오. 이리떼가 여러분을 물어뜯으러 옵니다. 




    (망루 위에서 파수꾼 다가 내려온다.) 




    [나] 난 네가 이렇게 용감해질 줄은 몰랐구나. 




    [촌장] 고맙다. 정말 잘해 주었다. 




    [나] 아냐, 난 몰랐던 건 아니었어. 넌 나에게 용감한 사람이 되마구 약속하질 않았니? 난 그때 이미 알아 본 거야, 넌 꼭 훌륭한 파수꾼이 될 거라구. 




    [촌장] 얘, 나 좀 보자. (한갓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너한테는 안됐다만, 넌 이곳에서 일생을 지내야 한다. 




    [다] --- 네? 




    [촌장] 마을엔 오지 말아라. 




    [다] (침묵) 




    (바람 부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 온다) 




    [촌장] 난 저 사람들이 싫어. 내 마음은 너와 함께 딸기 따기에 가 있다. 넌 내 추억이야. 너에게는 내가 늘 그리워하던 것이 있다. 




    (사이) 




    [촌장] --- 하지만, 여긴 너무 쓸쓸해. 




    (사이) 




    [촌장] --- 미안하다. 




    (사이) 




    [촌장] 그럼, 잘 있거라. 




    [나] 가시려구요, 촌장님? 




    [촌장]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나] 제가 저만큼 바래다 드리지요. 덫도 좀 살펴 볼 겸 해서요. (함께 걸어가며) 그런데 말입니다, 양철북을 치던 내 모습이 멋있지 않던가요? 




    (촌장과 파수꾼 나, 퇴장한다. 바람소리만이 더욱 거칠어진다. 잠시 후, 망루 위의 파수꾼이 '이리떼다' 외친다. 파수꾼 다는 조용히 양철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막- 

    암리타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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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와요 IF, UMC, 2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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