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지금 와서 다시 보는 한국 불교와 진짜 불교의 차이<br> <br>1. 영혼의 차이<br><br>영혼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단멸론자와 불가지론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영혼의 존재를 긍정한다.<br>육체는 단지 그릇일 뿐이고 정신 부분이 따로 존재하여 그것이 종교에 따라 <br>사후 세계로 가던지 윤회를 한다고 생각한다. 2500년 전 인도에서도 브라만교가 그런 논리를 펼쳤다.<br>그들은 변치 않는 '아트만'이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듯 몸을 갈아탄다고 생각했다.<br>하지만 이런 논리는 그 당시에 이미 불교의 태동과 함께 박살 났다.<br><br>불교에서는 '존재'를 크게 정신과 물질, 세세하게는 오온이라는 다섯 가지 무더기로 설명한다.<br>그곳에 변치 않는 '자아', '영혼', '아트만', 등등의 것은 없다고 말한다.<br>마치 강물은 고정된 형태가 없지만 '한강'처럼 이름을 붙였을 뿐인 것과 같다.<br>정신현상 또한 한강이 흘러가듯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에 <br>내 것이 아니고, 나도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니다.<br><br>이런 흐름 속에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불교다.<br>다시금 말하지만 영혼 같은 것은 없고 정신 현상도 조건의 영향을 받아서 <br>일반적으로 육체가 없으면 정신현상도 작동할 수 없다.<br><br>2. 사후세계<br><br>신을 믿는 종교, 혹은 절대자가 존재하는 종교는 법칙을 가볍게 무시한다.<br>그러나 불교는 법칙을 설명할 뿐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br>'의도'에 따른 업이 결과를 맺는 '인과'를 설명할 뿐이다.<br>그렇게 법칙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고 그 사이의 틈이란 것은 없다.<br>이것을 멈추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로지 아라한만이 이 흐름을 끊는다.<br>'확정된 업'이 아니면 다음 생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br>삶의 마지막 순간 떠오른 마음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다. <br>그래서 고통 속에서 죽는 대부분의 삶은 악처로 간다. 극히 일부만 선처로 갈 뿐이다.<br><br>3. 인간의 조건<br><br>'모래사장의 모래'와 '손톱에 올릴 수 있는 모래의 양'은 비교가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난다.<br>그만큼 선처로 가는 사람은 적다. 6가지 세상 중 좋은 곳은 천상과 인간세상 단 둘 뿐이다.<br>끊임없이 윤회하기에 악처로 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br>한번 악처에 빠지면 다시 선처로 나오기란 매우 매우 오래 걸린다. <br>예를 들어,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선업을 하기 매우 어렵다. 약육강식만 존재하기 때문이다.<br>악처에서 악행을 하게 되어 악처로 끊임없이 흘러간다.<br><br>아주 적은 인간만 선처로 가지만 이런 위험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br>그것이 바로 '5계'이다. 5계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가진다.<br>특히 비구로서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면 그의 바람은 대부분 이루어진다.<br>선업을 많이 쌓았다면 악행을 했어도 희석되는 부분이 있다.<br>물컵에 소금을 한 줌 넣으면 매우 짜듯 선업이 적다면 작은 악행으로도 악처에 난다.<br>강물에 소금을 한줌 넣어도 짜지 않듯 선업이 많다면 작은 악행은 상쇄되거나 사라진다.<br>불구로 태어났어도 부잣집에 태어나면 돈 걱정은 안 하는 것처럼 선업은 언제나 좋다.<br>5계는 인간의 조건도 된다. 즉,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예외 없이 선업이다. <br>다만 선업이 약하거나 악업이 많다면 정상적으로 살지 못한다.<br><br>4. 제사<br><br>사람들은 사후세계를 두려워하지만 죽음이 임박하기 전까지는 선업을 잘하지 않는다.<br>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죽은 뒤에 제사로 퉁치려고 하지만 이것은 부질없는 짓이다.<br>내가 지은 업은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br>악행 또한 비교도 안될 만큼의 선업으로 희석시키지 않는 한 돌아온다.<br>아라한이 되는 것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논외다.<br>이미 경전에서 번거로운 제사보다 훨씬 수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5계라고 나온다.<br><br>5. 예언<br><br>경전에서도 나오고 수행이 잘 된 사람이 예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의 원리는 이렇다.<br>사람으로 태어나면 보통 평균 수명의 삶을 살 것을 안다. <br>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기대수명도 알 수 있다.<br>유전학적으로도 그 사람의 수명을 유추할 수 있다.<br><br>이처럼 수행을 통해 정신현상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 그 존재의 정신, 물질, 과거 업과 미래 업을 분석할 수 있다.<br>이번 생을 있게 한 '업'과 '지금 시점'에서의 미래까지 흐름을 보게 된다.<br>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조건들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불교는 숙명론이 아니다.<br>드물지만 조건을 변화시켜 단명할 삶이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 <br>이런 경우도 악업이 지금 발현이 안 될 뿐이다. 조건만 맞으면 악업은 발현될 준비상태가 된다.<br>'확정된 업'인 경우는 예외 없이 반드시 발현되는데 예를 들어, 부모 살해는 다음 생이 지옥 확정이 된다.<br>이것은 목이 잘리면 다시 살아날 수 없듯 법칙상 결코 바꿀 수 없다.<br>아라한인 경우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br><br>6. 붓다의 사후?<br><br>붓다의 완전한 열반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br>마치 촛불이 꺼졌는데 촛불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br>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촛불은 3가지 조건이 이루어져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br>촛불이 꺼지면 촛불이 어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br>'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존재하기도, 비 존재하기도 한다'<br>이 네 가지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br>화로에 불이 붙으면 화톳불, 초에 붙으면 촛불, 장작에 붙으면 장작불이다.<br>불이 꺼지고 난 후 불이 어디 갔느냐고 언급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이 이상하거나 사기꾼이다.<br><br>7. 기도<br><br>불교는 조건과 현상을 설명하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종교가 아니다.<br>선업을 짓고 '이 선업의 공덕으로 000 하기를' 바라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br>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br>독재국가의 지도자가 수만 명을 죽이면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받는다.<br>그를 지지하는 수 억의 지지자가 그가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도 한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br>악업이 발현될 조건이 만들어진다면, 조건을 변화시킬 힘이나 지혜, 선업이 없을 경우 발현이 된다.<br><br>8. 보시<br><br>엄밀히 따지면 나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좋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br>마치 노름꾼에게 만원을 주는 것보다 착하고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한 끼 사 드리는 것이 더 좋은 것과 같다.<br>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지친 여행자에게 쉴 곳을,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는 것은 매우 이롭다.<br>불교적으로는 계를 더 많이 지킬수록, 수행이 깊은 사람일수록, 결과가 100배씩 차이가 난다.<br>성인에게는 한 끼만 대접해도 결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경전엔 이런 예시도 나온다. <br>아침, 점심, 저녁, 300명에게 일정기간 동안 식사를 대접해도 <br>성인인 수다원 한 분에게 한 끼 드리는 것에 1/16도 미치지 못한다.<br>중생이 내가 아는 만큼 업의 결과를 안다면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지 않고서는 먹지 않을 것이다.<br><br>보시의 종류와 이익은 상세하게 설명되어있지만 생략한다.<br><br>9. 악업<br><br>업의 발생은 조건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이다.<br>걸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벌레를 밟아 죽인 것이 죄가 된다면 걷는 것만으로도 악업이 쌓인다.<br>다행히도 법칙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심히 걷는 이유가 있다면 단지 자비심에서다.<br>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전, 의도가 없다면 어떤 것도 업을 일으키지 않는다.<br>살생이 악업을 불러일으키지만 살생이 업이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br>1. 의도 2. 행동 3. 행위의 성공, 하나라도 없다면 살생의 업은 일어나지 않는다.<br>물론 악한 의도는 언제나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온다. 하지만 행위를 하고, 성공을 해서 오는 악업에 비하면 적다.<br><br>10. 선업<br><br>기도라고 하고 욕심이라고 쓸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선업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br>존경의 표현 - 향을 태우거나, 절을 하거나, 꽃을 올리거나 하는 것들은 좋은 마음의 업과 행동을 한 것이다.<br>제대로 된 존경의 표현이 아닌 경우 - 음식을 불상에 올리는 것은 도교의 제사나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br>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는 육체적 노동도 마찬가지다. <br><br>11. 사후세계의 재판<br>따위는 당연히 없다.<br><br>12. 부적<br>도교 꺼, 비구는 도사가 아니다.<br><br>13. 사주팔자<br>도교 꺼, 비구는 계율상 점을 치면 안 된다. 비구는 장사꾼이 아니다.<br><br>14. 소림사<br>불교는 육체적 단련을 위한 곳이 아니다. 비구는 트레이너가 아니다.<br><br>15. 염주, 목탁, <br>비구는 제사장이 아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금기다.<br><br>16. 사찰음식<br>비구는 요리사가 아니다. 걸식하는 자(빅쿠)다.<br><br>17. 대승불교<br>...</p> <p> <br></p> <p>비구계를 보면 지금의 불교가 얼마큼 괴리가 심한지 알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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