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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8_Hellcat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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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956386
    작성자 : R-18
    추천 : 39
    조회수 : 2033
    IP : 121.164.***.181
    댓글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10/06 17:34:06
    원글작성시간 : 2014/10/06 13:59:45
    http://todayhumor.com/?humorbest_956386 모바일
    [나눔인증] 키사라님께서 보내신 연필이 도착했습니다.(닉언죄)
    저는 목수입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일도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걸 만듭니다.

    DSCN0691.jpg

    P1030045.jpg

    20140705_141851.jpg

    바로 위 사진의 머리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무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연필은 필수입니다.
    치수를 재고, 선을 긋는 데는 연필만한 게 없거든요.
    다른 재료들은 너무 얇거나, 굵거나, 필요한 만큼의 강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연필을 고집합니다.

    문제는 나무같이 표면이 고르지 못한 물건에 사용하다 보니 연필이 매우 빨리 닳는다는 것입니다.
    일이 많은 날이면 새 연필이 금새 몽당연필이 되고 말죠.

    여분의 연필을 항상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없을 때는 '일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연필이란 목공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빛과 소금과도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평소처럼 애게를 구경하던 와중에 키사라님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여러가지 필기도구를 나눔하고 계시더군요.

    113.PNG

    사실 이 글을 클릭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 나도 나눔 좀 받아볼까?' 하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는 타블렛으로만 그리거든요!

    손그림은 놓은지 오래고(아마 고등학생 때 쯤) 게다가 그림도 자주 그리는 편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3번 연필 항목을 보고는 저의 탐욕스러운 목수의 혼이 제 귓가에 속삭였습니다.

    '빨리 신청해서 이 연필을 가로채! 넌 연필이 필요하잖아! 연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거야! 내 귀에 캔디!'

    그래서 어찌저찌 댓글을 달았습니다만, 나머지 한 쪽에 있는 저의 자아가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이 멍청아! 너는 그림 그리는 데 쓰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얼마나 민폐인지 모르겠어?'

    사람은 항상 자신의 자아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가치있게 써주실 분께 돌아가는 게 좋겠다싶어 신청을 취소했습니다.


    다음 날, 키사라님께서 재차 올려주신 글을 보았습니다.
    연필세트에는 신청자가 없다더군요.
    그래서 제게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코감기를 동반한 몸살감기에 벌벌 떨던 저는, 하늘이 감기와 연필을 동시에 주셨구나 하면서 낼름 메일 주소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스피드로 키사라님께서 연필을 발송해 주시고...

    아직도 감기를 떨치지 못해 골골대고 있던 월요일. 젊은 집배원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집 앞 골목을 메웠습니다.


    "R-18님!"

    물론 본명과 주소를 알려드렸기 때문에 제 닉네임으로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한동안 동네에서 밝히는 변태아저씨로 낙인찍혔을 겁니다.

    그리고 아픈 몸을 이끌고 택배 상자를 뜯었습니다.

    신문지와 에어캡으로 꼼꼼하게 포장된 택배박스.
    송장에 적힌 동글동글하고 깔끔한 글씨로 이미 짐작했지만, 역시 정성스런 포장이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덩어리가 두 개!

    DSCN1052.jpg

    한쪽에는 예쁜 손편지와 함께 약간의 과자가...
    그리고 한 쪽에는 10월의 가을하늘을 연상시킬만큼 투명한, 마치 키사라님의 마음과도 같이 투명한 깨끗한 비닐로 쌓인 연필이 있었습니다.

    b0062814_498096dc959ed.jpg

    누군가에게 편지가 담긴 먹거리를 받아본 건 거진 7~8년 만이었습니다.
    과자들이 제 취향에 맞지 않을까 걱정하셨는데, 저는 과자 엄청 잘 먹습니다.

    먹는 모습도 인증하고 싶지만 며칠 째 몸살감기로 골골대는데다, 깔깔이를 입은 30대 초반의 남루한 모습으로는 감히 먹샷까지 찍을 수는 없더군요.

    bombju2.jpg
    <먹는 모습 이미지 사진>
    이걸로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DSCN1053.jpg

    저라면 그냥 되는대로 구겨 넣었을 건데, 과자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군대가면 배웁니다. 오와 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는 저 자태라니!
    너무도 감동적인 모습에 아마 한 동안은 못 먹지 싶습니다.(거짓말)

    DSCN1054.jpg

    워낙에 많은 연필이기도 했지만, 제가 즐겨쓰는 2B 연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굵고 무른 4B를 제외하면 모두 나무를 다루는 데에 매우 적합한 연필들입니다.
    이로써 한 동안은 연필 걱정을 하지 않고 나무를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1~2년 정도는 연필사러 안 가지 싶네요.

    부담없이 쓰라고는 하셨지만, 귀한 나눔, 아껴서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호의에 감사드리며, 제가 역으로 무언가 나누어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메일 한통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래밍 서적 및 글짓기 관련 서적이 조금 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가 다른 이에게는 정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것을 절실히 느꼈구요, 저도 기회가 닿으면 키사라님처럼 애게에서 나눔을 하고 싶군요.
    원래 나눔은 줄줄이 이어져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나눔 감사했고,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시길 빌겠습니다.



    추신 : 
    DSCN1055.jpg

    상자는 고양이가 잘 쓰고 있습니다.
    신문지는 마당에서 장작 태울 때 부싯깃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R-18의 꼬릿말입니다
    5RMBTQU.jpg

    하... 아이마스도 안 본 놈들이 아이돌을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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