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정치ㆍ선거개입 사태와 관련한 시국선언이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대학가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천지역 대학 게시판에는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23일 현재까지 서울대를 필두로 이화여대ㆍ경희대ㆍ성공회대 등 서울지역 여러 대학 총학생회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규탄하고 관련자 처벌, 정부와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 또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인천지역 대학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시국선언 발표의 절차적 문제와 당위성 등을 놓고 학생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국선언을 찬성하는 학생들은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대표해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인하대 한 재학생은 학내 게시판을 통해 “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의혹의 실체를 속단하기엔 이르고 이 사건과 관련해 의견이 다른 학생도 있는 만큼 총학생회가 전체 학생 대표로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글은 조회수 8000건을 넘었다.

또 다른 인하대의 한 학생도 “시국선언―촛불시위―국정 마비―대통령 탄핵, 이게 목적이죠? 당신들. 솔직하게 말해 봐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 학생은 이런 글을 캡쳐한 뒤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극우 성향의 누리집)에 인증했다. 인천대의 한 학생도 “야당의 민주화는 현 시대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뭐 하나 터졌다하면 나라가 망했느니, 여론 조작이라고 욕하는 것밖에 없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학생도 일베에 이 화면을 캡쳐한 뒤 인증하는 글을 올렸다.

이런 글들은 일베에서 ‘산업화(우파논리로 좌파논리를 제압하는 것)’ 인증 글로 통한다. 이런 인증 글을 살펴보면, 자신이 재학 중인 학내 게시판에 구성원의 동의 없이 학교 이름을 걸고 시국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글과,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시국선언을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취지의 글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인하대와 인천대의 시국선언 반대 글에도 이런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일베를 이용하는 박영도(27)씨는 “최근 들어 시국선언과 관련한 내용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특히 학교별로 산업화 인증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학내 게시판에 시국선언 반대의 글이 속속 올라오면서 인천지역 대학 총학생회는 시국선언 동참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공론화된 사안을 조직원의 동의 없이 결정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내 게시판에 시국선언 반대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시국선언 동참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주안에 학생들의 의견과 단대회장 회의를 통해 시국선언 동참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내 게시판에서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데다, 일반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갖지 못했다”며 “이를 충분히 수용한 뒤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