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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moonhyung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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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663510
    작성자 : sss989
    추천 : 16
    조회수 : 3198
    IP : 175.252.***.192
    댓글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4/21 17:05:07
    원글작성시간 : 2013/04/21 02:55:23
    http://todayhumor.com/?humorbest_663510 모바일
    붉은방 1

     

     

     

    펌]출처 무서운이야기

     

     

    장편소설입니다 -
    치밀한구성과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
    길다고 겁내지마시고 시간나시면 차분히 읽어보세요~
    재밌습니다 :)

    초장편입니다


    1.

    혜주가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아파트 공용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혜주는 두 번이나 주차장을 돌았다. 결국엔 현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끼어서 차를 주차할 수 밖에 없었다.


    앞에 주차된 차의 뒤쪽을 아슬아슬하게 가로막아 차를 주차하면서 혹시 옆 차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신경이 쓰였다. 어차피 내일도 아침 일찍 나가야 할 것이라 별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였다. 차에서 내려 현관까지 걸어오면서 괜스레 더 신경이 쓰였다.


    피곤한 하루였다. 어젯밤도 브리핑 준비로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한 혜주였다. 하지만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피로였다. 수술도 그렇고 브리핑도 그렇고 막 전문의를 단 의사에게는 주어지기 힘든 기회였다. 과장의 절대적인 신임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어제 낮, 수술에 들어가기 위해 소독을 하고 있는 혜주에게 과장이 갑작스레 말을 던졌다.


    "이 수술, 혜주씨가 집도하도록 해요."


    "네? 제가요? 하지만 과장님께서 하시기로....."


    "내가 혜주씨를 믿으니까 맡기는 거요."


    "네....."


    혜주는 약간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과장의 갑작스런 지시를 예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병원에서 과장급에게 배당된 수술을 전문의가 대신 집도하는 것이 간간이 있는 일이었지만 이처럼 큰 수술을 맡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과장의 말이 떨어진 그 순간 혜주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겸손 섞인 승낙이 아니라 자신감에 찬 쾌재였다. 얼마나 이런 순간을 기다렸던가. 어렵지만 그만큼 성공을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폐암 중기, 이미 왼쪽 폐의 절반이 암세포로 뒤덮여 있는 환자였다. 폐동맥까지 거의 잠식해 들어간 암세포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동맥을 끊어 다시 이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하지만 혜주는 이미 자신이 있었다.


    혜주의 상상 속에서 그리고 꿈속에서 이런 류의 폐암 수술은 이미 수십 차례나 반복되었다. 때로는 맥박이 영으로 떨어져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환자가 벌떡 일어나 혜주를 쳐다보기도 했다. 혜주는 언제나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해서 꿈 속 환자의 얼굴을 직접 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혜주는 이미 그 꿈 속 환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혜주가 태어나기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흐릿한 흑백 사진으로 밖에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 혜주는 꿈속에서 그 아버지를 수술하고 또 수술했다.


    수술을 하는 내내 혜주의 손놀림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과장조차도 혜주의 과감하고 정밀한 수술실력에 놀라는 눈치였다. 혜주는 꿈속에서 하던 대로 기계적으로 손을 놀렸다. 문득 대학 시절 한 젊은 가정의학과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슈바이처나 대단한 의학자가 아니라 염가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잘 훈련된 엔지니어이다."


    교수의 말은 일반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영세 의원의 부족을 지적한 것이었지만, 혜주는 이 말을 다른 식으로 받아들였다. 엔지니어..... 혜주는 자신이 물컹한 기계의 부속을 만지는 정비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혜주는 F1경기에 참가하는 전문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특급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서 몇몇 부서진 차들을 잘못 만져 영원히 못쓰는 차가 된다하여도 그로 인해서 최고의 엔지니어가 탄생할 수 있다면, 그러한 작은 희생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혜주의 무의식 속에는 자리잡고 있었다.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로 공을 들인 수술을 끝내고 과장과 함께 수술실을 나선 혜주의 눈에 안절부절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 가족들이 들어왔다. 가족들은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일어나 과장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수술은 성공적입니다. 물론 차후 경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이번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과장은 마치 조산원이 '아들입니다!' 하는 소식을 전하듯 미소를 머금고 그들에게 수술 경과를 전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흘렀고, 부인인 듯 보이는 아주머니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빠져 나오는 과장과 혜주의 뒤로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가 던져졌다.


    '나의 성공이다!'


    과장의 뒤를 따라 걸으며 혜주는 속으로 몇 번을 되새겼다. 이것으로 과장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혜주 앞에 남은 것은 국내 최고의 외과의로 명성을 쌓아가는 일 뿐이었다. 현재 폐암 수술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라 불리는 과장마저도 언젠가는 혜주가 따라잡아야 할 목표였다.


    "내일 브리핑도 혜주씨가 준비하도록 해요." 과장이 걸음을 늦추지 않고 말을 던졌다.


    "네?"


    혜주는 깜짝 놀라 물었다. 과장이 수술을 맡긴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번 지시는 은근한 야망으로 가득 찬 혜주로서도 정말 놀라운 말이었다. 브리핑을 혜주가 맡는다는 말은 이 수술이 공식적인 혜주의 집도 기록이 된다는 말이었다. 경험뿐만이 아니라 작게나마 명성을 쌓을 발판마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과장님...."


    혜주는 차마 감사하다는 말도 알겠다는 말로 못하고 그 자리에 서 버렸다.


    "혜주씨 실력이 있어 보여서 내 이러는 거요. 고마워 할 꺼 없어요."


    과장은 늘 그렇듯 할 말을 하고 먼저 걸어가 버렸다. 혜주는 잠시 멍하니 섰다가 마침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지나가는 간호사가 이상하게 쳐다보아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혜주는 함박 웃음을 띤 채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브리핑 준비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밤을 꼴딱 새며 연습을 하고 또 했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이 죄다 모인 국내 최고대학의 부속 병원이니 칼날 같은 질문이 아니 들어올 리가 없었다. 혜주는 대학시절 줄줄 외운 해부학 기본서까지 꺼내 다시 읽으며 브리핑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혜주는 역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수술 내용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지만 과장의 도움도 매우 컸다. 시종일관 혜주의 재능을 칭찬하며 브리핑 내내 우호적인 분위기를 주도해나간 것이다. 막 전문의를 단 혜주의 너무 이른 성공에 몇몇 이는 시기심 어린 눈초리도 보였지만, 과장의 절대적 신임 하에 혜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브리핑을 해 나아갔다.


    ".........이상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과장이 먼저 박수를 쳤다. 브리핑 룸 내의 외과의들이 따라 박수를 치고 과장이 또 한 번의 치하의 말을 했다.


    "수고 많았어요. 혜주씨. 역시 훌륭하군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혜주는 과장이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것은 과장의 인정이 혜주의 앞날에 빛을 던져준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혜주가 진심으로 과장을 존경하는 까닭도 있었다. 과장은 국내 외과수술 방면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짧은 미국 유학시절도 있었지만 과장은 거의 모든 수술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성공시킨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혜주 역시 그가 성공시킨 여러 수술들을 전문의 과정을 밟는 내내 수 차례나 목격하였다.


    물론 혜주가 과장을 존경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국내 최고대학 부설병원의 과장을 지내고 있을뿐더러 국립보건원 연구이사를 겸임하고 있으며 보건원 산하 폐암연구학회 회장을 지내고 있는 과장은 그야말로 국내 외과 의학계의 노른자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청빈한 학문적 성공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혜주에게 과장은 가장 이상적인 표본이었다. 그러나 과장은 결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법은 없었다. 순순히 혜주와 같은 실력 있는 후학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만 보아도 과장의 인간됨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혜주의 몸이 오징어처럼 늘어졌다. 혜주는 집에 들어 가자마자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서 자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화장은 지우고 자야겠지? 어쨌든 오늘밤만은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푹 자리라 혜주는 다짐했다.


    그러나 집 앞에 도착한 혜주는 뜻밖의 소포에 쏟아지던 잠이 달아났다. 노란 소포 포장 용지에 싸여진 상자에는 또박또박 보낸 이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경남 밀양시 밀양대학교 석진규."


    주소를 읽어나가는 혜주의 얼굴에 놀라움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진규. 어린 시절 혜주와 한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였다. 혜주는 얼른 들어가 소포를 열어보고픈 마음에 서둘러 가방에서 열쇠를 꺼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열쇠 구멍에 열쇠를 맞추는 일조차 쉽지가 않았다.


    딸깍. 문 따는 소리가 들리고 혜주는 허리를 숙여 소포를 들어올렸다. 뭐가 들었는지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혜주는 소포를 들고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2.

    87년 여름이었을까. 혜주와 진규는 초등학교 4학년을 한 반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지냈다. 둘은 전교 1, 2등을 다투는 사이였고, 다만 혜주가 여자라는 이유로 부회장에 낙점이 된 것이었다. 혜주는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불만이었다. 해서 진규와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로 반장과 부반장을 선임하게 된 날 혜주는 다시 부반장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1학기 두 번의 시험에서 두 번 다 혜주가 아슬아슬하게 진규를 이겼지만, 담임선생님은 싫다는 진규를 억지로 반장의 자리에 앉혔다. 혜주는 그 날을 계기로 진규와 친하게 지내기로 결심을 하였다.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는 여자아이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체념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반장 자리를 사양하는 진규의 조용한 성격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된 날이었다.


    "이번 중간고사 1등은 진규다. 평균 97.5점. 반장이 체면을 차렸구나. 자, 모두 박수!"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진규는 성격답게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혜주는 4학년 들어 처음으로 진규에게 전교 1등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별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혜주는 0.2점 차이로 이번엔 2등이구나. 혜주에게도 우리 박수 한 번 쳐주자."


    아이들은 또 한 번 부러운 섞인 박수를 쳤다. 진규 역시도 박수를 치며 혜주를 쳐다보았다. 혜주는 진규와 눈을 마주치며 입으로 '축 하 해!'라고 신호를 보내었다. 진규는 혜주의 입 모양을 읽었는지 '고 마 워!'라고 답을 해 왔다.


    그 날 저녁 진규와 혜주는 늦게 학교에 남아 아이들의 받아쓰기 채점을 하고 있었다. 시골 학교엔 늘 그렇지만 선생님들이 과중한 업무에 치게 마련이고,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몇몇 아이들이 받아쓰기 채점과 같은 소소한 일거리를 도와주기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전교 1등과 2등이 한 반에서 반장과 부반장을 맡고 있으니 더욱 믿고 잡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이었다.


    창가로는 낮부터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도 다들 집으로 갔는지 조용한 운동장의 풍경만이 들어왔다. 혜주와 진규는 창가에 책상을 붙여놓고 마주앉아서 채점을 하고 있었다.


    진규가 먼저 자기 몫의 채점을 다하고는 붉은 색연필을 책상에 놓았다.


    "많이 남았니? 도와줄까?"


    1학기 중에도 이런 기회가 있었지만, 진규와 혜주는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워낙에 혜주가 차갑고 딱딱하게 굴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반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편이 갈라져 크게 싸우는 일이 있었던 까닭에 그 분위기에 묻혀 서로 말을 주고받기도 어색했던 점도 있었다. 해서 1학기 내내는 누군가 먼저 채점을 끝내도 그냥 말없이 기다리고 있기만 했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의 혜주가 보낸 우호적인 메시지가 둘 사이의 서먹함을 없애버렸는지 진규가 먼저 말을 건네어왔다.


    "잠깐만." 혜주가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몫의 시험지는 매겼다.


    "나도 다 했어."


    혜주와 진규는 색연필을 놓고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선생님 왜 안 오시지?"


    "내가 가서 말씀드릴까?" 진규가 대답했다.


    "그냥 기다리자. 좀 있으면 오시겠지."


    "그래, 그럼 그러자."


    선생님을 기다리는 둘 사이에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진규였다.


    "혜주야. 넌 꿈이 뭐야?"


    "꿈?"


    "응. 커서 뭐가 될꺼야?"


    "난 의사." 혜주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왜?"


    "암을 고치려고."


    "암?"


    "응.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대."


    "그렇구나. 안됐다."


    "물론 난 아버지 얼굴도 못 봤어. 나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거든."


    그 때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채점 다 했니?"


    "네."


    "그럼 그냥 거기 놓고 가거라. 수고했다."


    "네."


    "그래. 선생님이 좀 바빠서 그래. 미안하다. 다음에 선생님이 맛있는 거 사주마."


    "네. 선생님. 안녕히 계셔요."


    혜주와 진규는 가방을 메고 교실을 빠져 나왔다.


    혜주가 진규에게 같은 질문을 한 것은 집으로 향하는 기나긴 둑길을 반 넘게 걸어왔을 때였다.


    "진규야. 넌 꿈이 뭐야?"


    "나? 글세." 진규는 한참을 고민했다.


    "나도 의사." 진규의 대답이었다.


    "의사? 왜?"


    "혜주 너랑 같이 의사하면 좋을 것 같아서."


    진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순진했다. 그래서인지 혜주는 갑자기 진규가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그래 우리 나중에 커서 같이 의사하자."


    "그래."


    노을지는 긴긴 둑길을 걸어가던 두 꼬마의 모습은 이미 20여 년 전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그 20년 중 10년은 서로 연락이 끊긴 채 각자의 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혜주의 문 앞에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진규의 소포가 배달되었다.


    혜주는 조심스럽게 가위로 소포의 포장을 뜯어내었다. 안에는 봉투에 든 편지 한 장과 드링크제 한 통이 들어있었다. 혜주는 얼른 봉투에 든 편지부터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혜주에게.

    안녕? 잘 있었니? 이렇게 불쑥 소포를 보내서 놀랐지? 서로 연락이 끊긴지도 10년이 되어 가는 구나. 넌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사가 되었다며. 우연히 네 소식을 듣게 되었어.


    난 여기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어. 산학 협동으로 얼마 전에 드링크제 하나를 개발했는데, 식약청의 허가도 떨어졌고, 이제 상품화하는 일만 남았어. 내가 연구하는 동충하초라는 건데, 암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었어. 너에게 이 샘플을 보내주고 싶었어.


    네가 의사가 되어 암을 고치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 나도 함께 하기로 했는데, 결국 그렇지 못했지. 하지만 난 나대로 새로운 접근법을 찾았단다.


    언제 한 번 서로 만나서 얼굴보고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드링크 한 번 마셔봐.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 안녕.

    석진규.

    짧은 편지였다. 그렇지만 혜주에게는 어린 시절의 감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2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는 진규의 소식이 어쩐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혜주 자신이야말로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마저도 들었다.


    혜주는 드링크가 든 박스를 열었다. 시중에서는 보지 못한 박스였다. 안에 든 병에는 딱히 상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판매가 되지 않은 시제품인 것이 표가 났다. 다만 뚜껑에만 '冬蟲夏草(동충하초)'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혜주는 한 병을 따서 꿀꺽 마셔버렸다. 쌉싸름한 향이 시중에 파는 드링크 제품의 맛과 딱히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혜주의 휴대폰이 울린 것은 그 때였다. 가방 속에 든 휴대폰을 찾느라 혜주는 가방을 죄다 털어야 했다. 허겁지겁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받자 들리는 목소리는 과장이었다.


    "혜주씨? 나 최과장이오."


    "아, 네. 과장님. 이런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과장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 좀처럼 긴장하는 법이 없는 과장의 목소리가 이처럼 들떠 있는 것과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것을 보면 굉장히 중요한 일이 틀림없었다. 급한 환자일까?


    "혜주씨. 지금 날 좀 도와줄 수 있겠소?


    "과장님, 무슨 일이시죠?"


    "전화로 말하긴 어려운 사안이오. 하지만 무척 중요해요. 꼭 혜주씨가 날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저야 과장님께서 부탁하신다면 언제든지 도와드려야죠. 지금 어디세요?"


    "일단 병원으로 와주게."


    "네, 지금 제가 병원으로 갈게요."


    "고마워요. 혜주씨."


    과장의 전화가 끊겼다. 혜주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더욱 궁금해 왔다. 혜주는 서둘러 백에서 꺼낸 물건들을 다시 쓸어 넣었다. 과장이 이토록 급하게 혜주를 찾을 만한 일이라면 한 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가방을 들고 문단속을 하고 나오면서 혜주는 주차에 대한 걱정이 퍽이나 쓸모 없는 걱정이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혜주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진규가 보낸 드링크의 뚜껑이 자신의 가방 속에 들어간 사실은 알지 못했다. 물론 그 뚜껑이 혜주에게 얼마나 큰 행운을 안겨다 줄 것인지 역시 혜주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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