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width=400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하얀 소복과 머리의 손톱만 한 리본이 신경에 거슬렸다. 하릴없이 허공을 한참 응시했다.<BR>장례식장의 썰렁한 분위기가 싫었다. 오랜 침묵은 그의 죽음을 반복해서 머릿속에 떠올리게<BR>하며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BR><BR>어느샌가 내 옆에 다가와 계셨던, 고모님께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씀하셨다.<BR><BR>"사람은 죽어서도 서너 시간은 귀가 열려있데."<BR><BR>고모님께서 한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뺨에 덕지하게 퍼져 말라붙으려는 눈물을 쓸어내셨다.<BR><BR>고모님께서 내 등을 쓰다듬으시며 말씀이 이어가셨다.<BR>목이 메는 듯 뚝뚝 끈기는 고모님의 말씀은 좀체 무슨 뜻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으나<BR>내 등을 떠미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내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라며 보채는 눈치였다.<BR><BR>고모님께서 가련한 여인 코스프레를 만끽할 수 있게 나는 그의 관 앞으로 다가섰다.<BR><BR>검은색 천으로 뒤덮인 좁은 관 안에 그가 들어있다는 사실에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BR>관에 귀를 가져가 꼬옥 붙이니 "웅"하는 작은 소음만이 귓속에 맴돌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BR><BR>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그에게 남길 마지막 말을 떠올려 보았다.<BR>내가 말을 꺼내려 하자 고모님께서 목청을 높여 통곡을 시작하셨다.<BR><BR>고모님의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BR>고모님의 눈물은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혼자 남을 내가<BR>가엽고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들려와 조금은 고맙다는 감이 들었다.<BR><BR>관속의 그는 정말 나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걸까. 몸을 더욱 바싹 기울이자 내 머리칼이 앞으로 쏟아지며<BR>내 입 모양을 자연스레 감춰주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BR><BR>"나는 당신이 죽어서 너무도 홀가분해요.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BR><BR>지옥불에 휩싸여 신음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자,<BR>가슴 한켠이 아리면서도 응어리져있는 분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BR><BR>말을 마치고 그의 영정사진을 올려다보자 뒤에서 고모님이 나를 끌어안으셨다.<BR>고모님의 떨리는 손이 그녀의 슬픔이 진실 된 것이라는 것을 내게 호소하는 것처럼<BR>내 몸을 흔들었다.<BR><BR>내 몸을 감싼 고모님의 옷소매를 움켜쥐었을 때, 구석에 서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그가 보였다.<BR>지금 관속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 나는 그에게 저주를 받았다. 영영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BR>그는 희멀건 한 송장 같은 모습의 귀신이 되어 내 옆에 서있었다. 그는 튀어나올 것 같은 큰 눈을 사방팔방으로 굴렸다.<BR>그 행태가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마냥 산란하게 꿈틀거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토악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BR><BR>그의 몸이 뼈가 없는 사람처럼 스르륵 무너져 내리더니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슬슬 장례식장을 누볐다.<BR>장례식장을 이리저리 휘젓던 그는 나의 다리깨에 다가들어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이<BR>죽어서도 아직 처량히 현세에 미련이 남은 천치 같아 신경질이 나고 정나미가 떨어졌다.<BR><BR>잠이 든 척하던 그는 슬금슬금 손을 움직여 내 무릎을 간질였다. 살을 문데는 소리가 스삭 하며 사방에 퍼질 듯 크게 들리는데<BR>고모님은 저만치 구석에 앉아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귀신인 걸까. 아니면 내가 망상에 휩싸여 만들어낸 허깨비일까.</P> <P>생각에 잠기려는데 무릎을 간지르던 그의 손이 소복을 비집어 들고 허벅지를 더듬어 올라왔다.<BR><BR>내가 힘차게 그의 옆 통수를 휘둘러 때리자 그는 흠뻑 하며 놀란 척 잠에서 깬 시늉을 하더니 또 이리저리 부산히<BR>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식당의 단이 높은 곳에 오르려는 그의 몸부림이 끔찍하고 징그럽게만 보였다.<BR><BR>그는 귀신이 되어서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난 그에게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젖어들었다.<BR><BR>그는 주방에 다가들어 "꺼억꺼억" 하는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음식들을 집어 들었다. 어설프게 집어 들던 음식들이<BR>바닥에 쏟아져 내리자, 그는 손을 사용하지 않은 체 입으로 바닥에 떨어진 음식들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BR><BR>그의 입가에 묻어난 기름기 들이 번들거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그가 게걸스레 입을 쩝쩝거리는 소리는 점진적으로</P> <P>나의 이성을 마비시켜가는 것만 같았다. 쌀 한 톨이 아쉬운 듯 방바닥을 혀로 할짝이는 그가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웠다.<BR><BR>"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아무 기억도 없어. 나는 어차피 죽었잖아."<BR><BR>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무심하고 초점 없는 눈동자와 서늘한 표정이 보기 싫었지만,<BR>그의 기괴한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를 향해 몸이 굳은 사람처럼 나는 그를 응시해야 했다.<BR><BR>그는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는 듯 다리를 투닥거리며 주방 돌바닥에 쉴 새 없이 털어댔다.<BR>끝도 없이 신경을 거스르는 그의 움직임에 정신이 몽롱해 졌을 때는 이미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상태였다.<BR><BR>"죽어. 이제 그만 좀 죽어서, 사라져."<BR><BR>내가 입을 열자 고모님께서 급하게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BR><BR>"뭐? 무슨 일이야?"<BR>"고모, 저기 저거 보여요?"<BR><BR>고모님께서 왈칵 눈물을 쏟으셨다. 고모님께서 내 어깨를 움켜쥐으시며 내게 정신을 차리라는 듯 타이르는 소리가<BR>귓가에 울렸다. 고모님께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분명히 보이는 그의 모습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BR><BR>"죽어 이제!!! 죽어!! 죽으라고!!!! 이제 그만 좀!!! 죽어!!!! 죽어!!!!!!!!!!!!!!!!!!! 죽어!!!!!!!!!!!!!!!!!!!!!!!!!!!!!!!!!!!!!!!!!!!!!!!!!!"<BR><BR>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근육이 모두 풀려버리는 것처럼 내가 바닥에 쏟아져 내리는 것을<BR>저항할 수가 없었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것처럼 짜릿한 소름이 온몸을 휘감았다. 시야가 검게 물들어가는 것을<BR>느끼는데 그가 슬금슬금 다시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BR><BR>"정신이 드셨나요?"<BR><BR>다시 눈을 떴을 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색 가운에 말끔한 와이셔츠.<BR>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무심하면서도 인자한 듯,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듯 복잡한 인상이었다.<BR><BR>"여기는 병원이에요. 어디에서 정신을 잃으셨는지 기억하세요?"<BR><BR>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들어내 눈앞에 어른거렸다.<BR>내가 그의 손을 따라 눈을 굴리자 다시 의사는 질문을 해왔다.<BR><BR>"말씀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직 몸에 기운이 없으세요?"<BR>"아니요. 이제 괜찮아요."<BR><BR>내가 의사에게 대답하자 의사가 손에 든 수첩에 무언가를 빠르게 휘갈겨 써내려갔다.<BR>극적이는 볼팬의 소리가 조용한 병실을 가득 채웠다.<BR><BR>"어디에서 쓰러지셨는지 기억하시죠?"<BR><BR>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게 편한 인상을 남기려는지<BR>애써 짓는 웃음처럼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보여 기분에 거슬렸다.<BR><BR>"기억해요."<BR>"어디에서 쓰러지셨는데요?"<BR>"아버지 장례식장에서요."<BR><BR>의사는 다시 수첩에 무언가를 빠르게 써내려갔다.<BR>의사의 미간에 잡힌 주름살이 묘하게 거슬려옴을 느꼈다.<BR><BR><BR><BR><BR>-1부 끝-</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