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width=400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지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토커의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BR><BR>그의 등 뒤에서 들어오는 거실의 불빛이 환했다. 환한 거실에는<BR>자신이 어질어 놓은 유리조각이야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 있어야 했었지만<BR>좀 전부터 치우는 소리가 들렸기에 애써 모르는 척 무시를 했다.<BR><BR>이상한 스토커.<BR><BR>다가오세요. 이 이상은 다가오지 마세요.<BR>내가 전하는 뜻이 무엇이 되었든 그 말에 순종적이었다.<BR><BR>여느 때와 같이 편의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였다.<BR><BR>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밥을 먹고 싶지 않았고,<BR>고단했지만 눕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지만 눈물이 말랐고, 소리치고 싶지만 목이 매였다.<BR><BR>불도 켜지 않은 방에 앉아 뜬눈으로 출근 시간까지를 보낸 일도 많았다.<BR>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BR>무거운 마음이 자신의 갈 길을 막고 있다는 막연하면서도 치졸한 마음이 들었다.<BR><BR>이틀이나 씻지를 않은 몸에서 쉰내가 났다.<BR><BR>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가지들을 대충 세탁기에 쑤셔 넣었다.<BR>차가운 샤워기의 물이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기름기가<BR>덕지해서 뭉텅이가 지는 머리카락에 흠뻑 물을 적셨다.<BR><BR>샤워를 마쳤을 때 욕실에 수건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BR>젖은 몸은 한 체로 방에 불을 켜고 서랍장에서 수건을 하나 꺼내 들어<BR>몸의 물기들을 떨궈냈다.<BR><BR>머리의 물기를 수건에 짜내는데 방의 풍경에 이질감이 들었다.<BR>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방을 골똘히 둘러보자, 책장 위에 놓인<BR>작은 선인장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BR><BR>눈에 초점이 풀리고 다리의 힘이 빠져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BR>다시 방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으나 다른 곳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느껴지지<BR>않았다.<BR><BR>머릿속에서 여러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BR><BR>내게 오만 원 두 장을 내밀며 "이런 곳에서 일하지 말고, 나랑 놀자."라고 했던 아저씨<BR>전화번호를 물어보고선 내가 고개를 흔들자 "씨발년."하고 욕을 하던 이름 모를 학생.<BR>이따금 실수인 척 내 엉덩이를 만져오는 편의점의 사장, 얼마 전 술 마시고 편의점 물건을<BR>집어던지던 대머리의 중년, 물건을 건네던 손을 변태처럼 더듬었던 아저씨.<BR><BR>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담배 한 갑만 사가는 아저씨.<BR><BR>말 없는 선인장 화분을 들어 가만히 바라보았다.<BR>솜털 같은 가시들이 일어선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은 느낌이 들었다.<BR><BR>어떻게 방에 들어왔을까, 누가 들어왔던 것일까.<BR>앞으로도 또 찾아올 생각일까.<BR><BR>내가 집에 없을 때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집에 있을 때도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BR>한밤중 몰래 집에 찾아들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BR><BR>오싹한 기분이 들며 허리가 꼿꼿이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BR><BR>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 망설였지만 집안에는 화분이 하나 더 생겼을 뿐, 다만 그뿐이었다.<BR>그리고 이상하게도 점점 추락하던 마음의 한켠이 경직되는 기분을 느꼈다. <BR><BR>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의 침입에 그동안 잊고 있던 자극이란 것을 경험했다.<BR>누군가 자신의 방에 머물렀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설렜다. 초라하고 꾸미지 않은<BR>방안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스스로 미쳤다는 생각을 하며 방안에 메시지를 남겼다.<BR><BR>'신고하지 않을게요. 또 오세요.'<BR><BR>포스트잇 메모지를 현관에 붙이며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BR>일부러 방의 문에 열쇠를 채우지 않았다. 혹시나 들어오지 못하는<BR>상황이 오히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스토커는 주말이 아니고서는 집에 찾아드는 일은 없었다.<BR>내가 적어 놓은 메시지들을 읽었다는 표시처럼 그가 방문한 날이면<BR>메모지는 사라져있었다.<BR><BR>나는 방을 화사하게 꾸며갔다. 커튼의 색을 바꾸고 이불을 세탁했다.<BR>허전한 방구석을 이리저리 보며 궁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며<BR>이름 모를 방문객을 기다리는 방에는 활기가 생겨났다.<BR><BR>어렴풋 그려지던 스토커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BR>그저 조용히 나의 방에 다녀가는 이상한 사람.<BR><BR>가끔씩 멀찌감치 서서는 편의점을 들여다보는 아저씨의 얼굴이 머리를 맴돌았다.<BR>한참을 서 있다가는 조용히 담배 한 갑만을 사가는 아저씨.<BR><BR>그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애절한 마음이 생겨나는 자신이<BR>이상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들떴다. 비로소 5년만에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BR><BR>-6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