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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아의꿈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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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 : 1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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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1491278
    작성자 : 코코아의꿈
    추천 : 30
    조회수 : 5150
    IP : 218.54.***.41
    댓글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09/06 21:37:42
    원글작성시간 : 2017/09/06 14:35:34
    http://todayhumor.com/?humorbest_1491278 모바일
    [단편] 무진도 주민 몰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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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원이가 자금을 가지고 잠적했다.
     

     
     국장이 두어달 동안 만주에 머무는 동포들에게서 독립군 양성 자금을 받아와 본부로 조달하는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서겸에게 건넨 말은 무미건조 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오로지 독립 이라는 목표 하나로 만난 사람이니 어떠한 정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이념도, 가치관도 다른 사람에게 애초부터 바라는 바는 없었다. 서겸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서겸의 옷 매무새는 지나가던 걸인의 넝마가 차라리 깔끔해 보일 정도였다. 문득 국장이 걸치고 있는 가죽 코트가 부러워졌다. 마음에 담겨있는 수백가지의 말들이 한숨으로 변환되어 불쑥 튀어나왔다.
     
     
    “이제원은 잠적할 인간 아닙니다.

    “하지만 잠적했다. 돈 가지고 온다는 놈이 연락 하나 없어.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일본 놈들이 잡아갔을 확률은,

    “그래도 우리 광복회에 있는 이상 기본의 체력은 가지고 있을 것인데, 그깟 쪽바리한테 잡히겠나?

    “아니, 이제원은…”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아. 이제원이는 돈을 가지고 잠적했다. 고얀 놈, 가난한 글쟁이 거둬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일하랬더니 자기 인생의 해방을 도모하려고 하나…”

    “국장님.

    “못난 놈.
     

     
    결국 서겸은 질문하기를 포기했다. 국장은 늘 이런 식이었다. 본인만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서겸은 문득 부푼 독립의 꿈을 안고 찾아왔다 학을 떼고 돌아간 어린 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이 약 세 달 전의 일이었다. 적어도 먼 훗날 언젠가 자신이 속한 이 곳 ‘대한제국광복회가 언급되는 날이 온다면 국장은 절대 좋은 면모가 부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현 시점으로서는 유일하게 국장을 까 내리는 방법이었다. 국장이 접힌 종이 두 장을 서겸에게 던지듯 건넸다.
     

     
    “…뭡니까?

    “그거가 이제원이의 마지막 전보랑, 전보 마지막 발신지 위치 나타낸 거다.
     

     
    종이를 펼쳐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본 이후에 발견한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섬이었다. 연해주로 가는 바다 길목의 구석에 처박혀 있는 손톱만한 섬 그림 아래에 조그맣게 ‘무진도(霧津島)’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지도상의 크기가 사실이라면 진즉 수몰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서겸이 남은 종이를 펼쳐보았다.

     

     

    資金 確保.

    近時日 大韓帝國

    -      霧津島, 李碩珉

     

     

    “찾아와. 찾아와서 동포들을 배신하려 든 죄를 물을 것이다.

    “…”

    “다른 놈들 맡기려고 했는데 다른 놈들은 내보내기가 영…물론 권서겸이 네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것이 가장 큰 이유야.

     
    서겸은 말 없이 종이를 입고 있던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국장이 양담배를 꺼내 들었다.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어지간한 갑부들도 구하기 힘들다는 고급 미제 담배였다.
     

     
     “…가보겠습니다.

    그래, 권서겸이 자네만 믿네. 알고 있지?

     
    영 꺼림칙한 말이었다. 서겸이 국장을 등지고 걸어가다 문득 멈춰 서서 고개만 뒤로 살짝 돌렸다.

     
    “국장님. 뭐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래, 한번 물어봐.

    왜 굳이 이제원을 자금 조달원으로 보낸 겁니까? 앉아서 기고문 쓰는 일 주로 맡던 애를?

    “…말 했지 않나. 인력이 부족했다니까.

    넉 달 전인가, 일제 놈들이 재산을 다 뺏어 가 빈털터리 되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

    “코트 좋아 보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옷 장사 하셔서 아시는데, 딱 한달 째 되는 시기가 옷 망가지기 좋은 시기라 합디다. 특히 고급 가죽은 더더욱.

    “…”

     
    서겸이 입고있던 코트 깃을 매만졌다.

     
    돈이 급하시면 말을 하시지. 이제원 찾는데 쓰이는 돈은 다 자금에서 빼서 쓰겠습니다.

    ,?

    “코트 잘 입으십시오. 가난한 옷장수 아들이 얼마나 돈이 있겠습니까? 결국 그 자금 찾아오는 일이 다 우리 나라 독립을 위한 일의 일환 아니겠습니까.

    ,…”

    걱정은 마시죠, 적당히 일부만 빼낼테니. 그럼, 수고하십시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더 꺼내다가 몸싸움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겸은 그대로 인사를 건네는 것을 마지막으로 국장실을 나왔다. 문득 욕설과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

     

     

     

     

     

     무진도 주민 몰살사건

     

     

     

     

     

    “무진도?

    “네, 어르신. 무진도 가는 배편을 찾고 있습니다!

    “무진도가…뭐시냐….

     
    서겸은 동일한 질문을 5번 가량 반복한 시점에서 점차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 무진도는 작았다. 문제는 너무 작아서 그 곳으로 가는 배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가지고 다니던 장총과 총알 몇 개를 넣은 가방을 매고 자금에서 일부를 빼내어 돌아다닌 항구들의 선장들은 모두 무진도에 대해 ‘모른다’, 혹은 ‘가지 않는다’의 이분법적 대답을 내놓았다. 서겸은 어떻게 제원이 무진도로 갈 수 있었는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향한 곳은 항구가 아닌 나루터였다. 강을 가로질러 바다로 향하는 배편이 몇 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귀가 반쯤 먼 어르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30분 가량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무진도 가는 배편 있냐는 말입니다!

    “…무진도?

     
    서겸이 화를 참으려는 의도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다. 여기서 한번 더 동일한 대답을 듣는다면 서겸은 어르신에게 화를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네, 어르신. ,,도 말입니다!

    “어허… 무진도가…”

    “뭐여, 무진도 가는 사람이여?

     
    서겸이 고개를 들었다. 50대 즈음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짐을 가져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사투리를 쓰며 본인의 배로 추정되는 나룻배에 실기 시작했다. 서겸의 표정이 단박에 펴졌다. 차마 구세주를 만난 듯 환해진 표정을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남자는 무덤덤하게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묶어둔 밧줄을 손보기 시작했다.

     
    “어르신…아니, 사공님.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이 배가 무진도 가는 배 맞습니까?

    “사공님은 무슨. 그냥 야매로 배워서 노질 하는거니께 편하게 한씨 아즈씨라 불러라. , 나는 무진도 가는 사람은 아이다. 본래 여짝에서 정씨 라고 무진도 가는 사람이 한명 있었는디 얼마 전부터 영 보이질 않드라고.

    “네?

    “거 총각도 다 알아보고 왔으니 무진도니 뭐니 하는거 알겄지만 거가 워낙 쪼매나서 가려는 사람도 없으야. 가봐야 사람 몇 살지도 않아서 장사도 못 허고 힘만 들지. 그 사람이야 거짝이 고향이니 지 부모 모신다고 왔다 갔다 했다지만 우리같이 무신 연고 하나 없는 사람들이 뭐하러 생고생을 하겠나?

     
    서겸이 난감하다는 기색을 비추었다. 다른 곳에서도 이미 퇴짜를 맞은 상황이라 더 이상 가볼 곳도 없었다. 아주 잠시나마 직접 배를 빌려 나가볼까 하는 상상이 들었지만 이내 자신이 노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서겸은 망설임 없이 선택을 포기했다. 남자, 한씨가 짐을 다 실었는지 고정시킨 줄을 단단히 묶고 배를 묶은 줄을 풀기 시작했다.

     
    “어이, 총각. 무진도는 와 가라카는데?

    “네? , 그… 아는 사람이 거기 있어서 가려 합니다.

    “아는 사람? 그런거 치고는 처음 보는 얼굴인디…”

     
    더 이상 입을 열면 자신이 맡은 일이 발설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서겸이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체했다.

     
    “하믄, 나가 태워다 줄 수 있기는 한데 어찌 할텨?

    다시 한번 서겸의 표정이 구세주를 만났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뭐, 그짝으로 완전히 가는거는 아이고 그 근방으로 나가는디 중간에 떨구고 갈 수는 있으야.

    “정말이십니까?

    “대신에 나가 나중에 총각 데리러 갔을 때 없으믄 그냥 가버릴 거시여. 나도 돈 빌어먹고는 살아야지 않겄어?

     
    서겸이 드디어 배편을 구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배 안에 탑승한 한씨가 노를 저으며 서겸에게 타라는 손짓을 했다. 망설임 없이 서겸은 배에 급히 뛰어 들어가다시피 달려갔다. 배가 아주 잠시 출렁거렸다. 한씨가 노를 저으며 점차 나루터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 총각. 근디 뱃삯은 안 주나?

    “…”

    “무려 왕복으로 태워다 줄 거신디 두둑하게 부탁헐게?

     

    결국 서겸은 가지고 있던 나머지 돈을 전부 뱃삯으로 내어주어야 했다.

     

     

     

    무진도는 이름에 충실했다. 화창했던 하늘은 바다에 대해 무식자에 가까운 서겸 조차도 의아할 수준의 안개에 뒤덮여 점차 빛을 잃어갔다. 숨이 막혀온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거리 분간이 영 되지 않는 통에 결국 한씨는 작은 등불을 꺼내 들었다. 끈으로 매어 놓았던 짐 꾸러미에서 기름을 조금 담는가 싶더니 곧 불을 붙여 주변을 밝혔다. 눈에 띌 정도의 효과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앞길을 밝히는 것에는 손색이 없었다. 서겸이 코트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제원이 등단을 위해 여러 번 필사와 창작을 거듭하며 적어 내리던 글이 수기로 적혀 있는 것이었다. 서겸이 만주로 떠나기 전 제원이 전해준 것이었다.

    ‘권수장님, 이건 제 행운의 물품입니다!

    ‘나는 미신 같은거 안 믿어.

    ‘에이, 제가 이걸 늘 가지고 있을 때마다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무사 귀환 하시라고, 꼭 그러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정세가 꽤나 흉흉해지던 터라 만주로 떠나던 서겸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을 모두가 낮게 점치던 순간이었다. 수첩을 건네던 제원의 표정은 언제나 그랬듯이 참으로 밝았었다. 그 티 없이 입꼬리를 올리며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선했다. 서겸이 수첩의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란 말인가! 아가리를 벌려 산 자의 목을 물어뜯고 삼키는 꼴은 참으로 잔혹하기 그지없나니!

     

     
    기억이 맞다면 문예지에 기고 하려다 결국 검열에 걸려 잘려진 글의 일부였다. 본인의 말로는 전쟁의 참혹성을 나타내고자 비유적 표현을 썼다지만 서겸의 입장에서는 그저 괴랄한 글일 뿐이었다. 서겸이 다른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내가 S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을 때 S는 나의 목에 두 팔을 감고 눈을 감은 채 나의 혀를 탐미했다. 어떠한 수식어구도 나의 황홀한 기분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으니! S의 둔부를 매만지다 은밀한 사이로 손을

     

     
    서겸이 황급히 수첩을 덮었다.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예상치도 못한 내용 덕에 얼굴이 시뻘개지며 급히 수첩을 안주머니에 넣어야 했다.

     
    “…얘는 뭘 이런 걸 또 적어놔서,

    “총각, 저 보이나? 저기가 무진도네.

     
    한씨가 손을 뻗어 바다 어딘가를 가리켰다. 서겸이 정신을 차리고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희미하게 무언가의 형체가 보였다. 다만 안개 때문에 선명한 모습은 아니었다.

     
    “어때, 보이나? 저만치 작아서 사람도 몇 그 정씨 말로는 땅도 딱 마을 들가는 길이랑 사람 사는 곳만 다듬어져 있다 카드라.

    서겸은 다시 한번 무진도에 들어간 제원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진도의 입구는 마땅한 선착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채 안내판도 세워지지 않고 섬 안쪽으로 길 하나가 나 있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하게도 섬의 공기에는 안개가 가라앉아 있었다. 바다를 가로질러 올 때 만큼은 아니어서 길을 가는데 지장이 있을 만큼은 아니지만 주변이 뿌옇게 물들어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한씨가 섬 근처에 배를 가져다 댔다. 바로 자신의 본 목적지로 향할 요량인지 배를 완전히 모래사장에 대지는 않았다. 서겸이 배에서 내렸다. 찰박, 하는 물소리와 함께 신발과 바지 밑단이 소금기를 머금고 젖어 들어갔다.

     
    “딱, 해질 때 데리러 올텐게, 때 맞춰서 오는기다, 알았나?

     
    서겸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씨는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서 다시 노를 저었다. 그것이 의례적인 인사인지는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한씨가 켜 놓았던 등불조차 무()에 파묻혔다. 서겸이 고개를 돌려 길을 바라보았다. 길 주변은 정말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무성할 정도의 잡초가 자라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서겸의 키와 맞먹을 정도였다. 사실 길이 나 있다는 것조차 제초작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누군가가 풀을 눌러서 통로를 만든 수준이었다. 서겸이 한숨을 쉬며 젖어버린 신발을 마른 모래사장 위로 옮겼다. 제원을 찾아낸 뒤 자금을 찾아 같이 복귀한다. 그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풀을 밟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음에도 꽤나 큰 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서겸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디에선가 섬 사람들은 폐쇄적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사람 하나 찾아서 나가는데 그거 하나 협조를 못해줄까 싶었다. 사실, 현 시점에서 서겸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제원을 찾는 것 보다 안개 때문에 해가 가려져 시간을 가늠하기 힘든 것이었다.

     

     마을은 한씨가 얘기했던 말들이 이해가 갈 정도로 깊숙한 곳에 있었다. 서겸이 꽤나 걸음을 오랜 시간 옮겼음에도 마을은 영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걷기만 했음에도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가늠해보려 했지만 이내 그럴 시간에 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세워져 서겸은 그저 눌려진 풀을 밟으며 걸을 뿐이었다. 옷을 잡고 펄럭이며 서겸의 머릿속에 먼저 든 생각은 ‘우선 물을 달라 요청하자’ 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장총과 총알만 가지고 온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병이라도 챙겨오는 것인데.

     

    마을 주민을 만나자 마자 할 부탁으로 물을 요청하는 것을 1순위로 삼은 서겸은 슬슬 뻐근 해지는 두 다리를 이끌고 섬의 안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던 서겸이 고개를 들자 눈 앞에는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여태껏 걸어왔던 풀길 대신 흙 바닥이 펼쳐진 것이 보였다. 비록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잡초와 더불어 수북한 덩굴들 때문에 일부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상관 없었다. 서겸이 어느덧 얼굴 가득 흘러내린 땀방울을 옷 소매로 훔쳤다. 이제 절반의 성공이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망설임 없이 흙 바닥에 발을 내딛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그리고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략 이십여 채의 민가와 장승이나 우물 등이 위치해 있는 모양새는 영락없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구성물만이 마을의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민가를 보기 전 서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다량의 핏자국 이었다. 우연히 도축 과정에서 나오는 피가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 끌려가 듯 한 방향으로 향해 있는 자국, 웅덩이를 이루다 말라붙어 지금은 형편없이 갈라진 것부터 몸싸움이라도 난 것인지 이리저리 튀어 있는 자국도 존재했다. 문제는 이러한 자국들이 한군데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겸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 안에서, 핏자국들이 어지럽게 엉겨 붙은 채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저 물 한 모금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던 서겸의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예상치도 못한 유혈사태에 주민들은 지금까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추측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전염병 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운 나쁘게도 일본군의 침입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결국 서겸은 민가가 밀집된 구역으로 향했다. 직접 찾아보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계십니까?

     

    서겸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민가는 마치 예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 마냥 인적이 없었다. 곳곳에 문이 열려 있고 어느 곳은 부서진 흔적이 역력해 폐가촌 이라 칭해도 이상할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마을 앞과 비슷하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눌러 붙어 있다는 사실이 분명 사람이 적어도 최근까지 존재하기는 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서겸이 민가를 돌아보다 문득 윙윙거리는 소리에 어느 민가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아마 소나 돼지 따위를 키우던 것인지 작은 축사가 있었다. 서겸이 축사의 문을 열었다.

     

    “윽!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짧은 경악이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그곳에는 돼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대체 무엇을 보고 죽은 것인지 희번덕한 눈을 차마 감지도 못하고 위로 부라리면서 입에는 거품이라도 물었던 것인지 말라붙은 침 자국이 보였다.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반쯤 썩어가는 상처 위에 피가 굳어 있었으며 그 위로 요란한 날갯짓을 하는 파리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밀려들어오는 역겨움에 서겸이 축사 문을 닫았다.

     

    “…불쌍한 것. 개한테 물려 죽었나보네.

     

    물론 상처 부위가 견공의 이빨 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무딘 티가 났지만 서겸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겸은 마을의 꽤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이제 슬슬 민가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선 이래 간간히 보였던 잡초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계속 걸어 섬의 반대쪽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앉아서 쉬기에도 영 찝찝한 상황이라 서겸은 그저 마른 입술만 혀로 몇 번 훑어낼 뿐이었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 탓에 말라버린 목을 부여잡은 서겸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서겸이 난감하다는 듯 눈가를 쓸어 내렸다. 이대로 라면 자금은 둘째 치고 제원 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제원은 이미 다른 곳에 갔을 수도 있었다. 결국 한숨을 내쉰 서겸은 결심을 한 듯 몸을 뒤로 돌렸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모래사장으로 돌아가 한씨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진작에 말라버린 신발을 바닥에 디뎠다.

     

    부스럭

     

    서겸이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무언가의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 분명한 생물체의 존재였다. 어쩌면 이제서야 서겸의 목소리를 들은 마을 주민이 바깥으로 나온 것 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묘하게 싸한 기운이 서겸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서겸은 매고 있던 가방 끈을 더 꽉 쥐며 몸을 돌렸다.

     

    “저기, 말씀 좀 묻겠…”

     

    말을 더 이상 이을 수 없었다. 서겸의 뒤에 다가오던 것은 차마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아마도 뇌의 일부와 뇌수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반쯤 날아가버린 머리 틈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두 눈은 동공을 잃은 채 아무렇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온 몸은 이 세상 어느 환자도 이렇게 일그러진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흉하게 뼈가 엇나가고 부러진 것이 보일 수준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것’의 이빨이었다. 입가에는 눌어붙은 피가 묻어 있었으며 이빨은 반쯤 부러지거나 빠져 있었다. 입을 열 때 마다 들려오는 괴랄한 소리에 결국 서겸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이…”

     

    도망가야 했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이 가장 먼저 시키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다리에 힘이 풀린 상황이라 일단은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서겸이 급히 가방을 풀어 총을 꺼내려 손을 놀렸다. ‘그것’이 점차 서겸에게 다가왔다. 서겸의 손이 마음과는 다르게 꼬여왔다. 가방은 열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서겸이 쥐어 뜯듯이 가방을 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것’이 서겸과 다섯 발자국을 남겨둔 거리까지 다가왔다. 서겸의 마음이 더욱 더 조급 해졌다. 다리가 떨려왔다. ‘그것’이 서겸에게 손을 뻗으며 아가리를 벌렸다. 서겸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며 뒷걸음질 치려 했다.

     

    -

     

    그리고 ‘그것’은 곧 총성과 함께 머리가 완전히 날아가고야 말았다. 머리를 잃은 몸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 쉬던 서겸이 발 끝으로 몸을 건드려보았다. 여전히 움직임은 없었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것인지 서겸의 몸에 힘이 돌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겸은 그제서야 열리는 총 가방에 짜증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뭣 같은 가방.

     

    그리고나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 곳에는 놀랍게도 서겸이 그렇게 자금과 같이 찾아 헤매던, 제원이 앞에 서있었다.

     

    “이제원!

     

    서겸이 반가움에 급히 달려가 제원과 마주했다. 평소라면 징그럽다며 오히려 제원이 더 붙어왔을 터였지만 이상하게도 이 순간 만큼은 자신이 더 제원을 고파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몰랐다.

     

    “이제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방금 그 괴물은…아냐, 이 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전염병? 일제 개놈들이 우물에 독이라도 탔나? 아니, 일단 얼마나 이 섬에 있었…”

     

    바쁘게 저가 할 말들을 쏟아내던 서겸이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제원은 말이 많았다. 워낙 성격이 밝은 것도 있었지만 주변에서 ‘제원이 일본 놈들에게 잡혀가도 말하는 걸로 풀려날 놈’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도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하는 것 역시 존재했다. 그러한 제원이, 말이 없었다. 오히려 몸을 떨고 있었다. 서겸이 끌어안고 있던 제원에게서 떨어졌다.

     

    “…이제원.

    “…”

    “…대체,

    “…보름. 저는 이 곳에 보름 동안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라는 뒷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제원은 떨고 있었다. 단순히 ‘괴물’을 봐서 그런 것이 아닌, ‘지옥’을 본 자의 눈이었다. 서겸은 그러한 눈을 단 한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전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을 때 마을 전체가 몰살 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한 소녀에게 담겨있던 것이었다. 서겸은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대체, 그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물을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제,

    “총 소리, 총소리가 났으니 그 자들이 몰려올 겁니다. 여기는 위험해요.

    “무슨 소리야, 이제원? 알아듣기 쉽게 말해.

    “…일단 가야 합니다. 가야 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어가며 주위를 급하게 둘러보던 제원은 이내 서겸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잡힌 손을 억지로 놓게 하고서 모든 사실을 말하도록 추궁했을 서겸이었지만 현재 제원의 상태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이는 탓에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그저 제원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흙 바닥을 밟으며 달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발걸음 소리가 방금 전 서겸과 제원이 있었던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다수가 몰려 다니는 소리였으며 동시에 느리지만 귓가를 울리는 지옥 같은 목소리였다. 발걸음이 닫는 곳 마다 바닥에 눅진한 피와 무언가 썩어 문드러져 곪아버린 상황에서 생기는 체액이 뒤섞인 괴이하고 진득한 액체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참으로, 구역질 나올 정도로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제원은 서겸을 데리고 꽤나 오랜 시간을 달렸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모양새라 간간히 발이 꼬여 중심을 잃을 뻔한 상황이 찾아옴에도 서겸은 쉽게 멈춰서 쉬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제원은 조급했다. 그것은 확실히 서겸이 알고 있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랐다. 때문에 제원에게 묻고자 하는 것 역시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제 서겸에게 타는 듯한 갈증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뛰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주변을 살피던 제원이 멈춰선 곳은 불과 한두시간 전에 서겸이 제원을 찾을 당시 들린 낡은 민가 중 한 곳이었다. 서겸이 익숙한 장소에 작게 어,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까 전 상처 부위가 썩어 눈을 까뒤집은 채 죽어 있던 돼지를 보고 혀를 찼던 곳이었다. 제원이 민가의 안쪽으로 들어가 축사의 문을 열어젖혔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것인지 능숙한 손놀림에 서겸이 곧 무언가를 물으려 했지만 곧 코 끝을 찔러오는 역한 악취에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으며 헛구역질을 해야 했다. 제원이 서겸을 축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서겸은 돼지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코를 부여잡으면서도 조심스레 다리를 뻗어야 했다. 곧 제원 역시 축사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온 몸에 악취가 배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지친 몸이 휴식을 원하는 듯 묵직한 피로감이 몰려오자 결국 서겸은 벽에 기대어 스르륵 주저앉았다. 제원이 주머니를 뒤지다 급히 서겸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장님, …총탄 있으십니까?

     

    무어라 묻기도 전에 이미 덜덜 떨리는 손을 내미는 제원은 상당한 다급함이 묻어났다. 두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괜찮냐는 물음이 통할 얼굴이 아니기에 결국 서겸은 가방을 열어 총탄 두 개를 제원에게 건네 주었다. 그나마도 제원이 워낙 손을 떨던 탓에 한번 바닥에 떨어트린 것을 서겸이 다시 주워 줘야 했다. 제원이 총탄을 장전했다. 철컥, 하는 소리 외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숨을 한번 내쉰 서겸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

    “아까 그 것은 또 뭐고, 너는 왜 그렇게 몸을 떨고 있어.

     

    제원이 고개를 돌려 서겸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다물고선 이내 그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서겸은 기다리는 것 만이 답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제원을 바라보았다. 지붕과 축사를 받치는 기둥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너무나도 흐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제원이 총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보름 전에, 자금을 가지고 오다 일본 놈들한테 들켜서, 급히 아무 배나 잡아타고 온다는 것이 이곳 무진도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아보고 탔어야 되는데 아무 사공이나 잡고 돈 줄 테니까 일단 가달라 부탁한 것이….

    “…”

    “그렇게 무진도에 들어오니 마을 사람들은 제가 외지 사람이라고 경계를 하더군요. 잠시 머물다 나가겠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돌아온 건….

     

    제원이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사공이 다시 배를 몰고 들어오는 날에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런데…배를 몰고 온 사공이 일제 놈들을 태우고 와버려서…”

     

    이번에는 서겸이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제서야 서겸이 세웠던, 제원에게 일어난 사건들의 조각이 하나씩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원의 몸이 다시금 잘게 떨렸다. 서겸이 최대한 안심시키려는 목적으로 잘 올라가지 않는 입 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여전히 바깥에 안개가 껴 있어 시간을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아.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가니, 이제 나랑 같이 나가자. 일제 개나리 놈들 때문에 빠져 나오는 것이 늦었다 하면 분명 국장님도 바로 이해해 주실 테니 너무 걱정은 마. 이제 안심해, 너 구하려고 내가 왔잖냐.

    “…”

    “그나저나 그 놈들 비겁한 놈들일세. 어떻게 마을에다 그런 끔찍한 괴물들을 풀어놓고,

    “수장님.

    “응?

    “그거… 괴물 아닙니다.

     

    말을 이어가던 서겸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땅바닥만 바라보던 제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서겸이 바라본 그 모습은 처참할 정도의 공포였으며, 동시에 도와달라는 간절한 목소리였다.

     

    “제가 죽인 그 것이… 이 마을의 이장이란 말입니다.

    “…지금 뭐라 한 건지 다시 말해봐.

    “저를 잡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죄다 한데 모아 놓고서 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한 일본 놈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단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놈이 그 놈한테 가까이 다가갔는데 갑자기 눈을…까 뒤집고서…목덜미를…”

    “…”

    “마을 이장부터 시작해서 노약자, 어린 아이, 사공까지…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피하는 것이 전부였고… 미처 몸을 못 피한 사람들은…”

     

    말끝을 흐리며 다시금 진정된 것으로 알았던 제원의 몸이 떨려왔다. 서겸은 제원이 겪었을 일들에 대해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대체, 말로 표현하지 못한 상황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공포와 절망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일까. 서겸을 바라보던 제원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권수장님.

    “…”

    “…살려주십시오.

    “이제원.

    “살고 싶습니다. 제발…살려주십시오.

     

    소리를 듣고 바깥에서 ‘그것들’이 몰려올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채 입술만 덜덜 떨면서 깨무는 제원의 모습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서겸이 잡고 있던 가방 끈을 급히 놓고서 제원에게로 다가가 두 손으로 뺨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이제원, 나 봐봐. 우리는 분명히 여기서 살아서 나갈 거야. 나 만주에서 일본 놈 여럿 죽여봤어. 저 사람도 아닌 것들 죽이는 거 일도 아냐.

    “…수장님.

    “내가 너랑 살아서 나간다는데 내 장총을 걸게. 너도 내가 총 없으면 절대 바깥 안 나가는 거 잘 알지?

     

    서겸이 늘 가지고 다니는 장총 없이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원이 모를 리 없었다. 서겸이 품 속에서 제원의 수첩을 꺼내 들었다.

     

    “보이지? 내가 이거 가져왔어. 네 행운의 물건이니 이제 네가 가져가. 이거 가지고 있을 때마다 좋은 일 있었다며. 이제 빠져나가는 일만 있는 거야. 너가 가지고 온 자금만 가지고 바로 나가자.

     

    차마 울지는 못하겠는지 결국 서겸을 끌어안고 목덜미 부근에 얼굴을 묻은 제원은 그저 떨리는 두 팔로 서겸을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안식을 바라는 마음인지, 차오르는 공포를 주체할 수 없어서인지 서겸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제원이 가진 감정이 어떠하든 최대한 긍정적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등을 쓸어내려 줄 뿐이었다.

     

    “이제원, 자금 위치만 알려줘. 같이 가서 가지고 떠나자. 여기 해 질 무렵에 사공이 온다 했으니 그 배를 타면 되니까.

     

    서겸에게서 떨어져 잠시 머뭇거리던 제원이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말을 꺼냈다.

     

    “…마을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창고가 하나…있습니다. 공동 식량 창고…인데, 거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제 잘못이라며, 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을…구해오라며 강탈해서…”

     

    아주 잠시나마 서겸의 표정이 조금은 일 처리가 복잡해졌다는 생각을 숨기지 못했다. 외지인인 제원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귀찮은 상황이었으며 현 시점에서는 더더욱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렇다 해서 제원의 잘못은 아니었으니, 최대한 빨리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자금을 회수해야 했다.

     

    “일단 가자. 내가 가서 도와줄 테니 일단 같이 가자. 곧 해가 저물 거야. 그 전에는 어떻게든 자금을 회수해야 돼. 그러니 이제원, 앞장서서….

     

    그르륵

     

    말을 하던 서겸은 물론 제원까지 순간 숨을 멈췄다. 그것은 절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아까 전 반쯤 썩어가던 ‘그것’을 만났을 때 났던 소름 끼치는 소리. 절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겸이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뻗어 땅을 더듬거렸다. 그러다 손에 가방 끈이 잡히자 그것을 끌어당겨 가져와 가방 입구를 열었다. 기다란 장총에 두발의 총탄을 집어넣어 장전하고서 당장이라도 쏠 수 있도록 손가락을 방아쇠에 가져다 댔다.

     

    “수장,

     

    서겸이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차라리 적군이라면 그나마 똑같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덜 긴장되었을 지도 몰랐다. 손에 땀이 차 올랐다. 뼈가 갈리는 듯 귓가를 자극하는 소리가 점점 다수의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동시에 체감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겸이 총을 집어 든 제원에게 자리를 지키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제원은 아직 몸을 얕게나마 떨고 있었다. 차라리 제원 보다 ‘그것들’을 덜 접해서 겁이 더 없는 자신이 행동하는 것이 나았다. 어느 순간부터 악취는 중요하지 않았다. 돼지를 넘어 축사의 입구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괜히 문을 열었다 사태가 더 커질 가능성이 없잖아 있음을 알던 서겸은 축사 벽에 난 조그만 구멍을 발견하고서 허리를 조심스레 숙였다. 나무로 이루어진 축사의 벽은 당장 부서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얇고 낡아있었다.

     

    “…”

     

    서겸과 제원 모두 숨을 죽였다. 서겸이 구멍으로 눈을 가져다 댔다. 좁은 구멍, 그 틈새로 무엇이든 보려 벽에 뺨이 닿을 정도로 밀착했다. 그러나 구멍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벽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생생했지만 시야는 그저 까맣게 물들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겸은 자신이 눈을 감는 것인가 싶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고서 손등으로 벅벅 비볐다. 그리고 고개를 한번 움직여 천장을 한번 바라봤다 다시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댔다. 여전히 바깥에서는 귀를 울리는 기분 나쁜 소리들이 떠날 기미 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몰려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보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말을 잇던 서겸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급히 얼굴을 벽에서 떼어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손에서 느슨하게 쥐고 있던 장총을 다시 장전한 서겸이 땅바닥에 떨어져있던 가방을 매고 몇 걸음 물러서 총구를 구멍에 가져다 댔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바깥을 보려 눈을 가져다 대던 구멍이었다.

     

    “수장님?

    “이제원, 총 들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그대로 시행한다. 내가 총 쏘자마자, 있는 총알 다 쓴다 생각하고 갈겨.

    “수장님.

    “일단 내 말 들어. 작정하고 쏴, 알겠어?

     

    대답은 따로 돌아오지 않았다. 서겸이 조심스레 한쪽 눈을 감고 총구를 조준했다. 제원이 손바닥에 흥건한 땀 덕분에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한 총을 고쳐 쥐었다. 서겸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귓가를 울리는 발포음과 함께 벽에 꽤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발포의 잔해로 꽤나 많은 양의 먼지가 흩날렸다. 서겸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귀가 멍멍했다. 피어 오르는 먼지가 마치 무진도를 뒤덮은 안개 같았다.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먼지가 점차 걷혔다. 주변이 갑자기 고요해졌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먼지가 거의 걷히고 나자 가장 먼저 서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발포 때문에 생긴 구멍,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그것’ 이었다. 머리의 반이 날아간 채 바닥에 쓰러져 뇌수와 터져버린 뇌 조각들을 바닥에 흩뿌린 어느 썩어버린 여자의 육신. 부릅뜨고 있는 눈의 색은 서겸이 구멍을 통해 보았던 것과 같은 색이었다.

     

    “…이제원.

    “…”

    “쏴.

    “…네?

    “쏴! 죽기 싫으면 있는 대로 갈겨!!!

     

    서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쿵 하는 균열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총을 쏴서 나는 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벽에 몸통을 부딪쳐 부수려 시도하는 소리였다. 축사 벽이 순식간에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든 벽인데다 서겸의 총격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할 상황임은 너무나도 뻔한 광경이었다. 제원이 급히 총을 꺼내 들었다. 갑자기 손이 불현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봐온 살육의 현장이 다시금 머릿속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먹어 치우고 도망치는 사람들 마저 쫓아가 먹어 치우던, 그리고 그 광경을 살고 싶어서 돕지 못했던 나날들. 벽이 부서지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다. 서겸이 제원의 상태를 훑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벽을 한번 바라본 뒤 가방에 다시 총을 집어넣고서 제원의 손을 잡았다.

     

    “이제원. 그냥 총 쏠 생각 하지 말고 뛰어.

    “…네?

     

    !

     

    “총 쏠 생각 하지 말고 존나 뛰라고, 멍청한 놈아!!

     

    벽이 부서졌다. 수십 마리의 ‘그것들’이 일제히 탐욕을 머금은 목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겸이 제원의 손을 잡고 ‘그것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은 방법은, 정면돌파였다.

     

    “시발, 뛰지도 못하게 생겼네!

    “수장님!!

     

    짧은 순간 무언가를 생각한 서겸이 제원의 손을 잠시 놓는가 싶더니 그대로 ‘그것들’에게 달려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이 없어 제원은 그저 서겸만 부르다 밀려오는 ‘그것들’에 들고 있던 총을 최대한 빠르게 장전할 뿐이었다. 달려오는 서겸을 발견한 ‘그것들’ 중 하나가 괴악한 소리를 내며 아가리를 벌렸다. 그것은 마치 쇠붙이가 날카로운 무언가와 마찰하는 순간에 들리는 불협화음 같은 소음이었다. 제원이 잠시 서겸 쪽을 바라보다 급히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그것들’을 향해 총을 잡은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서겸이 멈춰 서서 몸을 돌리는 듯싶더니 그대로 왼발에 중심을 싣고서 오른다리를 들어 자신 앞으로 다가오던 ‘그것’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우드득,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서겸은 자신의 발에 질척하고 역겨운 액체가 묻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져 그 짧은 순간에도 욕지거리 내뱉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몸을 다시 돌려 아주 잠시의 틈을 발견하고 ‘그것들’의 무리에서 멀어진 뒤 확인해보니 진작에 부식된 티가 역력한 시체의 머리가 체액과 뇌수를 질질 흘리며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당연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어서 서겸은 아무 것도 못 본 척 장총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사이 제원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그것들’에게 남는 총알들을 쏘고 있었다. 애초부터 많은 총알을 가져온 경우가 아니라 아껴 쓰지 않는다면 꽤나 곤란해 질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겸에게 받은 총알 역시 얼마 되지 않아 곧 궁지에 몰릴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제원이 뒷걸음질치며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을 장전하길 반복했다. 한쪽 눈이 빠진 채 침을 줄줄 흘리던 ‘그것들’ 중 하나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 나 잔해가 공중에 흩뿌려졌다. 순간 밀려오는 구역질에 제원이 떨리는 손을 반대 손으로 부여잡고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철컥

     

    “…시발.

     

    총알이 다 떨어졌다. 방아쇠를 당겨도 헛도는 소리만 나는 총에 제원이 순간 낭패라는 듯 주머니를 뒤져 총알을 찾으려 하다 결국 총을 거꾸로 고쳐 잡고서 개머리판으로 점차 자신을 조여오듯 몰려오는 ‘그것들’을 향해 휘둘렀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운 좋게 머리를 맞아 부서져 죽는 것들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별 효력 없이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제원이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시야가 점차 어두워졌다. 제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원!!

     

    -!

     

    순간 ‘그것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다 곧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동시에 진득한 체액이 바닥과 제원의 다리를 적셨다. 제원이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조심스레 떴다. 머리가 완전히 부서진 ‘그것들’ 중 하나의 몸통이 제원의 다리 옆에 쓰러져 있었다. 제원이 본능적으로 다리를 웅크렸다.

     

    “이제원, 대답하지 말고 잘 들어!! 내가 총 쏘면 무조건 내 쪽으로 달려!! 이번에도 못 뛰면, 우리 둘 다 뒤진다 생각해라!! 알아들었나!!

     

    제원은 서겸의 말 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들’이 몸을 돌려 서겸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은 가히 지옥에서 찾아온 망자의 모습이었다. 소리에 민감한 것인지, ‘그것들’은 더 이상 제원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제원은 서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서겸은 그저 총을 겨눈 채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것들’이 다가옴에도 서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때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목 울대가 울렁거릴 정도로 침을 삼키면서도 조용히 한걸음 물러설 뿐이었다. 제원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겸이 총구를 아래로 겨눴다. 그것들이 점차 서겸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제원은 여전히 서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서겸을 믿을 뿐이었다. ‘그것들’과 서겸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조금만 손을 뻗었을 때 잘못하면 서겸이 잡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서겸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서겸이 한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돼지에게로 총구를 조준했다. ‘그것들’이 서겸에게 손을 뻗었다. 서겸이 방아쇠를 당겼다.

     

    “윽!!

     

    순간 귀를 울리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마치 비행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에 버금갈 정도로 크고 귓가를 울리는 소리였다. 동시에 제원은 귀를 틀어막는 동시에 머리 위로 온갖 액들을 뒤집어 써야 했다.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 온통 뒤섞인 진득한 액체들. 고개를 들어보니 몸의 반절이 날아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손을 허우적대는 ‘그것들’, 머리가 날아가 썩은 고깃덩이가 된 ‘그것들’, 몸이 터져 뚫려버린 구멍에서 곪아버린 내장과 살덩이들을 쏟아낸 채 여전히 눈을 까뒤집고 있는 돼지와 그것들에게서 나온 온갖 체액과 뇌수들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타격을 입지 않은 ‘그것들’은 바닥에 넘어져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제원!!

     

    제원이 서겸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바닥의 액 때문에 미끄러질 뻔한 것도 잠시, 지금이 아니면 벗어날 기회가 없음을 알아 급히 이를 악물고 달려나갔다. 손에서 들고 있던 총이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바닥을 기는 ‘그것들’을 피해가며 서겸이 있는 쪽으로 달려온 제원은 그제야 어느 정도 안도의 의미가 섞인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서겸이 순간 제원의 몸에서 나는 악취에 살짝 코를 막았지만 그것도 잠시, 급히 제원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점차 섬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안개에 가려져 시간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멈춰선 곳은 아까 전 제원이 마을의 ‘이장’을 쏜 곳이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부서져 있는 이장의 몸뚱아리는 괴악한 모양새였다. 두 사람 모두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제원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액에 절은 옷들을 한 벌이라도 더 줄이려는 의도였다. 서겸이 손에 묻은 액을 바지에 문질러서 닦아냈다.

     

    “수장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가.

    “아까, 뭐가 펑 하고 터졌었는데.

     

    서겸이 가방을 열고 남은 총탄이 있는지 살폈다.

     

    “만주가 되었건 어디던지 일본 놈들 다음으로 많이 본 것이 사람 시체야. 사람 시체도 몸에 바람 차면 터지고 그러는데 그 돼지 꼴이 딱 바람 차서 터지기 직전이었거든. 운이 좋았어.

     

    곧 서겸의 표정이 낭패라는 듯 미간이 구겨졌다. 손을 뻗어 남은 총탄을 집자 단 두 개만이 손바닥 안에 잡혔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은데다 총탄을 더 배급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최대한 아껴 쓴다 해도 위험해질 확률이 높았다. 우선 총탄을 주머니에 넣은 서겸이 가방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가방, 안 가져가시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번거로워. 저런 것, 비싼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엉겨 붙은 제원의 머리칼을 손으로 한번 헝클어트려서 정리해준 서겸이 총을 고쳐 잡고서 하늘을 쳐다봤다.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진하게 끼인 안개 때문에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금을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돌아가자는 생각이 조금씩 샘솟았지만 그렇다 해서 원초적 목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겸 자신이나 제원 둘 다 충분히 지친 상황이었으며 특히 제원은 지난 시간들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잊고 있었던 갈증이 다시금 서겸을 덮쳐와 마른 입을 자극시켰다. 서겸이 손을 바지에 다시 한번 닦아내며 물었다.

     

    “이제원. 방금 우리가 조진 것들이 이 마을에서 괴물로 변한 사람들 전부냐?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지만, 더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환장하겠네.

     

    서겸이 마른 목을 부여잡았다. 타는 듯한 갈증에 더 이상 침조차 고이지 않았다. 조금은 혼미해지는 정신에 결국 허리를 숙이고 눈을 잠시 감았다 뜬 서겸은 이내 몸을 일으켜 마른 세수를 했다.

     

    “…가자.

    “권수장님.

    “가서, 돈만 찾아서 오자. 돈 안 주겠다 하면 뺏어서라도 와야지.

     

    서겸이 비척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제원은 그저 괜찮냐는 말을 조용히 삼키며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자신보다 서겸이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생각한 것이 이유였다.

     

     

     

     ‘공동 식량 창고’ 는 제원의 말 대로 마을의 깊은 곳까지 걸어가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으며 동시에 제원과 서겸에게 축적된 피로 역시 한없이 쌓여만 갔다. 특히나 제원은 걸어가는 동안에도 몸을 잘게 떨면서 긴장을 쉽게 놓지 못했다. 아직 모든 ‘그것들’을 없애지 못했다면 긴장하고 있는 것이 맞는 행동이었지만 너무 과도한 떨림이 서겸의 눈에 적나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서겸 역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에 차마 타오르는 듯 말라버린 목을 하소연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미 시간도 많이 소모한 상황이었다. 하늘에 안개가 짙게 껴 얼마나 시간이 남은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상황에서 쉬었다 가는 것은 독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창고의 문 앞으로 다가간 제원이 헛기침을 했다. 희미하게 인기척이 들렸다.

     

    “그러고보니, 대충 몇 명이나 생존해 있었나?

    “제 기억이 맞다면… 어린 아이 세명에 어른 열댓명 정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각보다 주민 수가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던 상황 이라…”

     

    서겸이 머릿속으로 아까 전 자신이 총을 쏴서 부서트린 ‘그것들’의 숫자를 얼추 헤아렸다. 그리고 자신이 보았던 ‘그것들’이 십여 개 가량 이었으니 어림 잡아도 아직 꽤 많은 숫자가 남아있음에 순간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것들’과 제원에게 섬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오라며 내쫓은 주민들. 최대한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제원.

    “네?

    “사람들에게 곧 구출한 배가 올 것이니 빨리 돈을 넘겨 달라 해. 그 다음 상황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고개를 끄덕인 제원이 창고 문 앞을 두드렸다. 순간 내부에서 들리던 인기척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거기 사람이요?

    “…접니다. 섬을 나갈 방법을 찾아오라고 내보내셨던,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눈 하나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살짝 열렸다. 정확한 착의는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눈가의 주름이 나이가 꽤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겸은 노인의 눈을 바라봤다. 노인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혹감과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시선이었다. 다수의 작전에서 여러 시선을 마주한 경험이 있는 서겸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어르신, 말씀하신 대로 탈출선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빨리 돈을 넘겨주십시오. 배가 곧 도착하니 돈을 빨리 주셔야 지요.

    “에…에, 그러니까….

    “약속하신 내용 이잖습니까.

     

    잠시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방황하던 노인은 급히 창고 문을 닫았다. 서겸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수장님, 이를 어째야 합니까…?

    “저 사람들, 네가 살아 돌아오리라 생각도 못했을 확률이 높아. 그러니 자금을 어찌저찌 하려다 저렇게 당황한 것이겠지.

    “그러면,

    “계획을 조금 변경한다. 남아있는 돈만 탈환하던지, 아니면 그냥 가던지. 이미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어. 그리고 애초부터 내가 구조선 끌고 온 것도 아니라 저 사람들 다 못 태워.

     

    말이 끝나기가 문이 다시금 눈만 보일 정도로 열리더니 아까 전의 노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서겸이 문 틈새의 상황을 살폈다. 보이는 시야각이 좁아 정확한 식별은 무리였지만 희미하게 어른과 아이들이 한데 뭉쳐 있는 모양새가 보였다.

     

    “어르신. 약속을 지키셔야죠!

    “에… 그러니까, 돈은 우리가 배에 타고 주겠네! 우리도 살아야 되지 않겠나!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이 많이 굶주린 상태야. 일단 배에 태워주면 무조건, 바로 돈을 주겠네.

    “어르신, 말이 다르잖습니까! 분명 제가 돌아오면 바로 주신다고,

    “어허! 사람이 말이 조금 바뀔 수도 있지! 거 젊은 청년이 어른 말하는데 어디 그렇게 말꼬리를 잡나!

    “…”

    “여하튼, 돈은 우리를 배에 태우고 나서 주겠네. 싫으면 우리도 곤란허이!

     

    노인이 급히 문을 닫으려는 듯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 순간, 서겸이 제원의 앞으로 나와 문 틈새로 손을 집어넣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내가 강한 힘으로 문을 잡자 노인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자네는 누구…”

    “어르신, 실례 좀 하겠습니다?

     

    서겸이 망설임 없이 강한 힘으로 문을 밀었다. ,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리고 노인이 나동그라졌다. 서겸이 내부를 살폈다. 꽤나 넓은 창고 안에는 ‘공동’ 식량 창고 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수십개의 쌀가마가 쌓여 있었다. 간간히 과일이나 다른 건어물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마을 사람들이 적어도 굶어서 고생하는 일은 없던 것이 확실했다. 서겸은 애초에 노인의 말을 믿지 않았던 터라 그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에구구, 나 죽네….에구구, 나 죽어….

    “어르신, 그거 가지고 죽으면 저는 골백번도 더 죽었습니다. 엄살 그만 피시고 일어나시죠.

    “초, 총각. 총각은 누구길래 이렇게 난리야? 이러다 ‘그 놈들’이 쳐들어오면 총각이 책임질 거야?

     

    식사라도 하고 있었는지 입에 묻은 밥풀을 다 떼지 못한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서겸은 그저 귀아프다는 듯 눈가만 살짝 찡그릴 뿐이었다. 제원이 창고 내부를 살폈다. 자금이 어떻게 되었을까, 불안한 마음 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이 무진도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결국 자금 때문이었으니 초조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급히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던 제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드럼통이었다. 낡아빠져 녹이 슨 티가 역력한 드럼통 내부에서 희미하게 불씨가 타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제원이 자금을 담아 가지고 왔던 가방이 놓여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제원이 드럼통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장정 두 명에 의해 앞을 가로막히고 말았다.

     

    “비키십시오!

    “어딜 가려고 그래? 우리 배 태워주면 준다고 했잖아!

    “말이 다르잖습니까, 당신들이나 어르신이나!

    “조용히 안 해? 이러다 그 놈들 몰려오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세 사람의 실랑이가 계속될수록 점차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서겸이 문득 나머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주로 아낙네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대다수인 집단은 싸움을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제원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겸의 추측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다수의 사람들은 제원을 모든 사태의 원흉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더불어 제원을 빨리 내쫓았으면 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제원이 왜 창고에서 내쫓겼는지 대강 짐작이 된 서겸은 보름 동안 고생했을 제원을 속으로 안쓰럽다 생각했다. 말싸움이 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장정 두 명 중 한명이 제원을 후려칠 듯 손을 높이 들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서겸이 들고있던 장총을 장전해 장정을 겨누었다. 철컥, 하는 소리에 손을 들던 장정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서겸에게 집중되었다.

     

    “뭐,뭐야!

    “뭐긴 뭐겠나. 대한제국광복회 만주의열단 소속 돌격부대 수장 권서겸이지. 지금부터 내 부하를 건드리는 모든 사람들은 일본 놈 이랑 동일한 취급을 해주겠다. 대가리 구멍 나기 싫으면 당장 비켜.

    “다, 당신! 이렇게 지위 남용해도 되는거라,

    “되지. 지금 회수하려는 돈이 독립운동을 위해 모인 자금이거든. 그 돈 건드리는 새끼가 딱 두 놈 있어. 하나는 자금 나르는 놈, 또 하나는 자금 강탈하려는 놈.

    “…”

    “당신들이 전자는 아닌거 같으니 계속 말 나오게 하면 후자로 간주하겠다. 말 더하기 전에 비켜.

     

    그제서야 앞을 막고있던 장정들이 길을 터주었다. 제원이 급히 드럼통으로 달려갔다. 드럼통 안을 들여다보니 내부에 종이뭉치들이 땔감 마냥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원의 모습에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한 서겸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잠시 절망적이라는 표정을 지은 제원이 급히 가방을 열어 자금들을 확인했다.

     

    “자금은, 멀쩡한가?

    “…만원이 빕니다.

    “…많이도 태워 먹었네. 일단 가져와, 돌아간다.

    “자,잠시만!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제원이 가방을 가지고 서겸에게 돌아왔다. 서겸이 총을 내리고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려 했다.

     

    “우리도 태우고 가, 우리도 살려 달라고!!

    “거짓말 한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믿나? 먼저 사기친 쪽은 당신들이야.

     

    서겸이 사람들의 말을 못 들은 척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자,잡아! 우리가 더 쪽수가 많아. 잡아서 우리가 배 타면 되는 거야!

     

    노인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서겸이 순간 난감하게 됐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점차 창고 바깥으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겸이 뒷걸음질치다 본능적으로 가방을 든 제원을 뒤로 밀어냈다. 제원이 다시금 긴장된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과 대치했다. 두 사람이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미 지친 상황이었고 확실히 쪽수로는 밀리고 있었다. 여기서 떼로 몰려든다면 아무리 서겸과 제원이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뒷걸음질치는 와중에도 최대한의 이성을 유지하려던 서겸이 제원의 손을 잡았다.

     

    부스럭

     

    서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창고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희미한 인영은 분명 ‘그것들’ 이었다. 아마 창고 문을 열고 실랑이를 하는 사이 소리를 듣고 몰려온 듯 보였다. 제원 역시 곧 발견한 것인지 다시금 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직 나머지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정신이 팔려 발견하지 못한 듯 그저 두 사람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서겸이 제원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원. 뛸 수 있겠나?

    “…네.

    “그럼 뛰어. 이번에 망설이면 다음은 없어.

     

    제원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멈춰선 서겸이 장총을 한손으로 높이 들고서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귀를 울리는 두 발의 총성과 장총의 반동 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간 건지 총을 떨어트린 서겸이 반대손으로 제원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뛰어!!

     

    동시에 그것들이 기다렸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달려와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까 전 느릿하게 달려온 것은 전초전이라 말하고 싶은지, 아니면 두 사람이 지쳐서 속도가 떨어진 건지, ‘그것들’은 소름 돋을 정도로 맹렬하게 사람들과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고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것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물려 뜯기는 사람은 물론 창고 안으로 도망치려 시도하다 잡히거나 비명을 지르다 최후를 맞는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제원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운 좋게 물리지 않은 채로 자신과 서겸의 뒤를 쫓는 사람 두 명, 그 뒤를 이어 몰려오는 십여개의 ‘그것들’. 그리고 저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뜯어 먹히고 살려 달라 외치며 피바다가 생기는 광경까지.

     

    “이제원, 뒤 돌지 말고 그냥 뛰어!

     

    서겸의 외침에 그제서야 정신이 든 제원은 점차 힘이 빠지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줄 수 있었다. 안개가 여전히 짙었다.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까마득하게 긴 길을 지나 아직도 괴악한 소리를 내며 몸이 반으로 끊어진 ‘그것들’을 지나쳐 풀을 눌러 만든 길에 다다랐다. 이제, 끝이 보였다. 서겸은 일본군과 싸울 때 조차 이렇게 뛰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었다. 점차 체력의 한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서겸의 다리는 몇 번이고 꼬여서 바닥에 얼굴을 쳐 박을 뻔 했으며 제원 역시 돈가방의 무게 때문인지 액으로 젖었던 몸이 땀으로 다시 젖을 정도였다. 서겸이 힐끔 뒤를 돌아봤다. 아까 전 창고에서 봤던 장정 중 한 명과 여자 한 명, 그리고 저만치 몰려오는 ‘그것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지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까 전과 비슷한 속력이었다. 서겸의 머릿속에는 제발, 아직 한씨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었다. 점차 바닷바람 특유의 짠내 섞인 공기가 두 사람의 뺨에 닿아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 모두 이를 다시금 악물었다.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섬을 떠나려는 듯 노를 바닷가로 저으려던 한씨가 서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기겁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멀쩡한 자태로 돌아갔던 사내가 온갖 풍파를 맞은 꼴을 하고서 돌아오니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제원과 서겸이 급히 나루배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급하게 탔는지 순간 배가 격하게 출렁일 정도였다.

     

    “빨리, 빨리 가주십시오.

    “아니, 이기 다 무슨 꼴이고? 글고 저 놈은 또 누꼬?

    “가면서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출발해주십시오.

     

    다급해 보이는 서겸의 표정에 한씨가 알겠다는 듯 노를 저었다. 배가 서서히 바닷가로 들어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밀려오는 갈증과 근육통에 서겸과 제원이 배에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온 몸이 쑤시는 것도 쑤시는 것이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 곤두세우던 감각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장님, 괜찮으십니까?

    “…아니. 죽겠다.

    “그래도,…살았잖습니까.

    “그래, 살았지….이 일을 어떻게 국장님한테 설명할지가 남았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배가 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서겸과 제원은 눈을 감았다. 일단, 몸을 좀 쉬고나서 대화할 생각이었다

     

     

    한씨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안개가 섬을 완전히 가리기 전, 희미하게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을 무언가의 무리가 덮치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안개에 뒤덮여 사라졌다. 한씨는 잘못 본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광경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찾지 않는 섬이나 마찬가지라 자신은 빠져나가면 그만인 곳이기 때문이었다.

     

     

     

     

     

     

     

    “…해서, 자금 일부를 분실하고 권서겸이 너는 어깨가 빠진 채 돌아왔다는 건가?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국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금을 다시 되찾아오고 제원 역시 일본군의 수색을 피하다 그렇게 된 상황인 것이 밝혀졌지만 서겸의 이야기는 좀처럼 믿기 힘든 줄거리였다. 시체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는다는 이야기는 국장의 입장에선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병원 침대에 누워 국장을 바라보던 서겸이 의례적으로 사온 선물 중 하나인 사과를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이건 뭐, 믿으라는 건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건 국장님의 자유니. 말 다 끝나셨으면 피곤하니 나가 주시죠.

    “…건방진 놈.

    “원래 이런 놈인거 아시잖습니까.

     

    국장은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서겸을 노려보다 바깥으로 나갔다. 국장이 나가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제원이 서겸의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섬에서 만났을 때 몸을 벌벌 떨던 그 때와는 다르게 많이 회복된 모양새였다.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서겸은 나지막이 생각했다.

     

    “이제원, 몸은 좀 어때?

    “권수장님이 걱정해주신 덕에 많이 나았습니다.

    “말은. 글은 잘 써지고 있나보네?

     

    제원이 손에 들고있던 수첩을 한번 흔들어 보였다.

     

    “이게 있잖습니까, 제 행운의 물건. 이게 있어서 그 섬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던거고요.

    “내가 고생한건 생각도 안 하지?

     

    제원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권수장님 몫이 8할은 더 되죠. 이 수첩은 2할 정도?

    8할이 뭐냐, 9할도 더 되지.

    “하하. , 아까 바깥에 국장님 계시던데 무슨 얘기 나누셨습니까?

    “별 얘기 했겠냐. 그냥 나랑 네가 겪은 거 솔직하게 말했지. 돈 조금 날려 먹은 것도 말하고.

    “그거 믿으실 분은 아니신데…용케도 넘어가셨습니다.

    “그렇다고 지어낼 수는 없으니까. 어차피 누구한테 얘기를 하던 믿을 사람은 없어. 그리고, 돈 빼돌려서 다른 짓 하려는 거 무산된 셈이니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고. 너는 이런 얘기 할거면 네 병실로 돌아가. 나는 좀 쉴 생각이니.

     

    제원이 급히 고개를 저으며 표 두 장을 꺼내 들었다.

     

    “이거, 요 사거리 극장에서 영화 상영하는 것인데, 같이 보러 가자 말씀 드리러 왔습니다.

    “…그거 내 기억이 맞다면 윤 경리가 너한테 보러 가라고 준 표인데?

     

    제원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서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 결국 헛웃음을 지으며 붕대를 감지 않은 손으로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나 팔 낫고나서 얘기해. 이 팔로 나 어디 못 간다.

    “아, ! 알겠습니다!

    “…하여간.

     

    결국 서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낙엽이 지는 어느 가을날의 모습이었다.

     

     

       서겸과 제원이 증언한 ‘무진도’에서의 일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한제국광복회’의 문서창고 깊숙한 곳에 처박히게 된다. 자금을 일부 분실했지만 일본군의 추격을 받다 일어난 일임을 정상참작 받은 제원은 섬에서 돌아온 후 얼마 뒤 문예지 등단에 성공하게 되고 서겸은 비슷한 시기에 만주로 돌아가게 된다. 제원은 두개의 장편을 문예지에 기고한 뒤 서겸을 따라 만주로 향하게 되고 이후 나라가 독립되고 두 사람의 소식은 제원의 ‘만주에 도착해 서겸을 만났다’는 연락을 끝으로 두절된다. ‘무진도’는 더 이상 배를 운행하는 사공도, 섬을 찾으려는 사람도 없어 서서히 잊혀지다 90년대 말 즈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겸과 제원의 증언은 대한제국광복회의 업적을 찾아내던 조직회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2007년도의 일이었다.

     


    코코아의꿈의 꼬릿말입니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올렸던 글을 등장인물 이름과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만약 타 사이트에서 글을 보셨다면 제가 올린 글이 맞습니다. 저는 나름 열심히 썼는데 다른 분들에게도 재밌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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