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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1295087
    작성자 : 역사광황
    추천 : 39
    조회수 : 4030
    IP : 218.235.***.167
    댓글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8/17 20:03:28
    원글작성시간 : 2016/08/15 16:25:25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5087 모바일
    탈라스 전투(The Battle of Talas, 751년)
    751년의 탈라스 전투(The Battle of Talas)는 두 개의 제국, 이슬람 제국과 중국의 당唐 제국이 중앙아시아 패권을 결정지은 전투이다.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은 뜨는 해, 당唐은 지는 해로 비유할 수 있겠다.

    오늘날 탈라스 전투는 누구나 알정도로 유명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의 당唐 제국과 아바스 이슬람 제국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군사적 충돌이었던 탈라스 전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8세기의 중앙아시아는 여러 부족과 지역 강국들, 실크로드 장악을 위한 투쟁 그리고 정치적 권력, 종교적 헤게모니라는 여러 요소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자이크와 같았고, 수많은 전투와 동맹, 그리고 양다리를 걸치거나 배신 등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그때 현재의 키르기스스탄 탈라스강 유역에서 일어난 하나의 전투가 중앙아시아에서의 중국과 이슬람의 패권 다툼을 끝내고 불교/유교의 아시아와 이슬람의 아시아 사이의 경계선을 확정시켰다. 그리고 종이 만드는 방법이 탈라스 전투 전에 이미 중앙아시아에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탈라스 전투로 세계사적 주요 발명품인 제지법이 중국에서 서방 세계로 전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 탈라스 전투의 배경
    강력한 당 제국(618~906)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대부분의 기간동안 군사적인 점령보다는 일련의 무역협정과 명목상 보호령이라는 형태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사용하였다. 640년 이후로 당唐이 마주한 가장 까다로운 적은 손챈캄포(Songtsan Gampo)가 세운 토번이라는 강력한 티베트 제국이었다.

    현재의 신장(Xinjiang)에 해당하는 중국 서부와 그 주변 지역에 대한 패권은 7~8세기 동안 중국과 토번의 뺏고 뺏기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중국은 또한 북서쪽에서는 투르크계인 위구르족, 인도-유럽어족의 투르판인들, 그리고 남쪽 국경에서는 라오스/타이족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 나당전쟁과 토번 : http://yellow.kr/blog/?p=745

    ◎ 이슬람의 팽창과 중국과의 충돌
    중국이 이러한 주위의 적들과 상대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초강대국이 중동에서 성장했다. 아랍인들에 의한 번개같이 빠른 이슬람의 팽창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기득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651년 이슬람은 사산 제국(Sasanian Empire)의 야즈데게르드 3세(Yazdegerd III)가 마지막으로 도망갔지만 결국 암살당한 곳인 메르브(Merv)를 점령하는데, 위치는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의 마리(Mary) 근처이다. 이곳을 전진기지 삼아 이슬람은 부하라(Bukhara, 안국安國), 페르가나 분지(Ferghana Valley), 그리고 한때 오늘날 중국과 키르기즈(Kyrgyz)와의 국경선 근처인 카슈가르(Kashgar, 소륵疏勒)까지도 정복했다.
    메르브는 한나라 반초(班超, 32~102년)가 서역원정때 점령하기도 했었다.

    사산 제국의 멸망은 야즈데게르드 3세의 아들인 페로즈 3세(Peroz III)에 의해 당나라 장안(Xian, 長安)에 알려지게 된다. 그는 아랍군의 추격을 피해 동방으로 도피하다가 670년 중국 당나라에 도착하였다. 8년 후 파사(波斯, 페르시아) 왕으로 책봉되어 서역에 돌아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타하르 지방에 머물렀다.

    당 제국과 이슬람 제국은 715년 아프가니스탄 페르가나 분지에서 군사적으로 처음 충돌했다. 아랍인들과 티벳인들은 소그디아(Sogdia), 페르가나 분지 주변의 왕 또는 통치자인 이히시드(ikhshid)라 불리는 사람을 'Alutar'라 불리는 사람으로 교체했는데, ikhshid가 당唐에 개입을 요청했고 당은 10,000명의 군대를 보내 Alutar를 전복시키고 ikhshid를 다시 복귀시켰다.
    2년후, 아랍과 티벳의 군대는 악수(Aksu)라는 현재의 신장 지역에 있는 2개의 도시를 포위하자 중국은 카를룩(Qarluq) 용병을 보내 그 포위를 풀게한다.

    750년에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는 아바스 왕조에게 전복되어 멸망한다. 이때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장군과 싸운 실질적인 인물이었던 호라산 총독 아부 무슬림(Abu Muslim)이 747년 메르브에서 무장 봉기하여 혁명군을 서쪽으로 진군시켜서 우마이야 군대를 격파했다. 그 공적으로 인해서 호라산 총독이 됐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부 무슬림이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아바스 왕조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 아바스 왕조 이슬람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의 팽창 정책을 지양하고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견실화 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한 관심 지역의 하나가 페르가나 분지와 그 너머의 동쪽 국경 지대였다.
    중앙아시아 동부에서 티베트,위구르와 동맹한 이슬람 세력은, 뛰어난 전술가인 지야드 이븐 살리흐(Ziyad ibn Salih) 장군이 이끌고 있었고 중국은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의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있었다. 그는 고구려 유민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탈라스에서의 결정적인 충돌은 페르가나의 또 다른 분쟁에 의해 촉발되었다. 750년 페르가나의 왕은 이웃인 석국(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Tashkent 일대)의 통치자와 국경 분쟁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군대를 지원해 달라고 중국에 호소하였고, 고선지 장군이 출병하게 된다.

    원래 타슈켄트(석국, 石國)는 수 · 당 시대에 있던 소무(昭武) 9국 중 하나인데, 지리적으로 당과 아랍-이슬람의 양대 제국 사이에서 양쪽 세력의 눈치를 보며 강한 세력에 사대주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당이 고창(高昌)을 격파하고 구자(龜玆)와 토화라(吐火羅, Tokharistan, 박트리아)를 정벌하자 이들 9국은 잇따라 당에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조공하였다. 7세기 후반부터 아랍제국이 강성해 페르시아를 공멸하고 하외지역(河外地域, 중앙아시아의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까지 육박하자, 이제는 당에 등을 돌리고 그들에게 복종하고 신하가 되기를 청하였다.

    고선지는 타슈켄트를 포위했고 타슈켄트 왕을 속여 항복을 받아내었다. 약속과 달리 장안으로 연행된 타슈켄트 왕은 처형 당했는데, 마치 651년 이슬람이 메르브Merv 정복에서 일어났던 일과 데쟈뷰인 것처럼 타슈켄트 왕의 아들이 탈출하여 아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 아부 무슬림(Abu Muslim)에게 사건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하였다.

    아부 무슬림(Abu Muslim)은 메르브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동쪽으로 행군하여 지야드 이븐 살리흐(Ziyad ibn Salih) 장군과 합류하였다. 이슬람은 이 지역에서의 아바스 왕조 이슬람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 탈라스 전투
    751년 7월, 두 개의 강력한 제국의 군대가 현재 키르기스, 카자흐스탄 국경 근처인 탈라스에서 만났다. 그리고 5일 동안 전투를 치뤘다.

    전쟁터가 어딘지 아직 모른다. 일반적으로는 막연하게 역사상의 구(舊) 탈라스라고 지목하지만, 그 탈라스가 오늘날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인지를 놓고도 탈라스성이니, 탈라스평원이니, 탈라스강이니 하는 등의 주장이 엇갈린다.

    당(唐) 쪽의 기록에는 "고선지가 이끌었던 한(漢)과 번(蕃,오랑캐)의 군사가 모두 3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슬람 쪽 기록인 『이븐 아시르 연대기』에 따르면 "아바스군은 당군 5만을 죽이고, 2만을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당(唐) 쪽의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이 연대기의 기술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는 것 같다.
    이슬람 군의 규모는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이슬람 쪽 문헌에는 권력 투쟁에서 패한 우마이야 왕조의 지지자들이 당(唐)의 힘을 빌려 아바스 왕조에 보복하려 한 것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탈라스 전투는 전쟁으로서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구당서(舊唐書』「본기(本記)」에서는 이 전쟁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신당서(新唐書)』「본기」에 "고선지가 대식과 탈라스 성에서 전쟁을 벌였으나 패했다"고 단 한 줄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우마이야 왕조의 지지자들에게 부탁을 받고 아바스 왕조라는 새로운 이슬람 세력의 실력을 시험해 볼 요량이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투르크계 카를룩(Qarluq)이 전투 시작후 며칠만에 아바스 측에 합류하자 당唐 군대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중국측 기록에서 카를룩이 원래 당의 번蕃으로 참전하였으나 전투 중에 배신하여 아바스측으로 돌아섬으로써 당군이 크게 패하고 말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슬람의 기록에 따르면, 카를룩은 이미 탈라스 전투 전에 아바스와 동맹을 맺은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카를룩이 당 군대 진형의 배후를 갑자기 공격한 사실을 보면 이슬람의 서술이 더 신뢰가 가긴 한다.

    전쟁에 참여한 수만의 당나라 군사 중 소수만 살아 남았다. 고선지도 병사들의 주검을 남긴 채, 부하 이사업 등과 백석령을 통해 허겁지겁 퇴각하여 생존하였다. 『신당서(新唐書)』「이사업」전에는 “험한 백석령에서 꼬챙이에 꿴 생선처럼 늘어선 적의 보병과 기병들을 몽둥이로 마구 때려 죽이며 길을 터 귀환했다”고 당시의 참상을 기록해놓았다.

    살아남은 전쟁 포로들은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마르칸트(Samarkand)로 보내졌다.

    고선지 당唐 군대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탈라스 전투는 어떻게 보면 전략적 무승부와 가까웠다. 제국의 전면적인 싸움이 아닌 지방 영주의 싸움같은 성격이었는지 이슬람의 동쪽으로의 전진은 중지되었고,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혼란스러웠던 당나라는 관심을 중앙아시아에서 북부와 남부 국경에서의 반란에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 사람들이 그 싸움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 것도 아니었는지, 고선지는 그 패전으로 문책을 받지 않았다. 그는 뒤에 안록산의 군대와 싸우다가 의심을 받아 처형되었다(755년). 아이러니하게도 탈라스 전투의 다른 주인공이었던 아부 무슬림(Abu Muslim)도 같은 해에 그의 세력신장을 두려워한 제2대 칼리프 만수르에게 암살당한다.

    ◎ 탈라스 전투의 결과
    탈라스 전투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중국과 이슬람이라는 두 개의 문명권이 충돌한 것이고, 오늘날까지 이 지역 주민의 대다수가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는 것도 이 전투의 결과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탈라스전투는 세계사의 전개에서 이처럼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승리를 거둔 이슬람 측에서는 이 전투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도 없을 뿐만 아니라, 수만 명이 몰살당한 중국 측에서도 아주 단편적인 기록만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당唐의 쇠퇴기가 시작되는 한 부분으로서 이 전투를 언급하고 있다. 같은 해에 북중국에서는 거란이 당의 군대를 격파했고, 지금의 윈난성인 중국 남쪽에서는 타이/라오스 민족이 봉기하였다.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내전 수준이었던 755~763년의 안사의 난(安史─亂)은 당 제국을 더욱더 약화시켰다. 763년에는 티베트가 중국의 수도인 장안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제국 내부의 극심한 혼란으로 말미암아, 751년 이후 중국은 타림 분지 너머로 영향력을 미칠 의지도 힘도 없었다. 서역은 중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명(明)이 신강성 동부에 잠시 진출했던 것을 빼놓으면 18세기 중엽에 청(靑)이 진출할 때까지 중국은 서역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당연히 승자가 역사를 쓰는 것이지만, 이슬람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 전투는 주목받지 못하였다. 탈라스 전투 이후 얼마동안은 이 전투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이슬람 내부의 권력 투쟁인지는 몰라도, 이 전투의 승리자였던 아부 무슬림(Abu Muslim)의 암살(755년)과도 상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탈라스 전투 직후 중앙아시아를 시찰한 칼리프의 동생 만수르는 아부 무슬림의 권위에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형에게 "그를 빨리 죽이지 않으면 왕조는 안정될 수 없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베리 호버만(Barry Hoberman)은 9세기 이슬람 역사가 타바리(al-Tabari, 839~923)가 탈라스 전투를 전혀 언급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탈라스 전투 이후 500년이 지나서야 역사가 이븐 아시르(al-Athir, 1160~1233)와 다하비(al-Dhahabi, 1274~1348)의 글에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라스 전투는 중요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약화된 중국 제국은 중앙아시아에 더 이상 간섭할 수 없었고, 아바스 이슬람의 영향력은 증가하였다.

    중앙아시아는 탈라스 전투 후 250년 이내에 대부분의 불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투이후 이슬람군에 포로로 잡힌 사람들 중에는 두환(杜環, Du Huan)을 포함하여, 숙련된 중국인 장인들이 다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처음에는 이슬람 세계에서 나중에는 유럽까지도 종이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얼마되지 않아 제지 공장이 사마르칸트,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카이로, 델리 등으로 속속 만들어졌다. 그리고 1120년에 유럽 최초의 제지 공장이 지금의 스페인 사티바(Xativa, 현재의 발렌시아)에 설립되었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이 도시에서 제지 기술은 아탈리아, 독일, 그리고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이 종이 기술의 출현은, 목판 인쇄술과 이후 목활자(木活字) 인쇄술과 함께 중세 유럽의 과학, 신학, 역사의 발전에 커다란 역활을 하였다.

     751년.png

    - 751년의 역사지도

    Map-2010-Modern-Silk_Road01.jpg
    - 현대판 실크로드도 옛날과 다르지 않다. 페르가나(Fergana)와 타슈켄트(Tashkent)가 탈라스 전투 당시 양 제국의 주요 갈등 지역이었다.

    당시의 세계사 연표는 :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751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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